야나기타 유키
1. 개요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호타준족 주전 중견수. 애칭은 기타(ギータ). 별명은 MR. 풀스윙,
2015년에 각성한 이후로는 '''퍼시픽리그 최고의 강타자'''. 야마다 테츠토 와 함께 양대리그 트리플 쓰리(3할 타율, 30홈런, 30도루)를 달성한 선수이다.[3]
2. 경력
2.1. 프로 입단 전
히로시마 출신으로 유년기엔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들락날락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열혈팬으로 자랐다. 그의 '히로시마 사랑'에 대해서는 아랫 항목 참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히로시마 상고 시절에는 다나카 마사히로, 사이토 유키 등 유명 선수와 같은 세대로서 여름 현 대회 4강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주오대학(中央大学)에 지원하였으나 탈락했고 히로시마 경제 대학에 진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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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말랐던 야나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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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는 체중이 68kg밖에 나가지 않던 야나기타였지만, 대학 진학 이후 카네모토 토모아키나 나카타 쇼 등이 다녔다는 체육관에서 체중을 늘린 결과 원거리 던지기나 50m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대학 통산 82시합에서타율 .428、8홈런 60타점이라는 성적을 남겼다. 대학시절에 이미 장타력 포텐으로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암암리에 소문이 났었으나 통산 홈런 수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데 그 이유가 워낙 팀내에서 군계일학이라서 상대팀 투수가 도망다니기에 급급한 결과(...) 장타보다는 배트에 정확하게 맞추는 타격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리하여, 2010년 드래프트에 참가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2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다. 지명 당시 일화가 있었는데 드래프트 직전 스카우트 회의에서 야나기타는 소프트뱅크의 2위지명 후보들 중 한 명이었다[4] . 그 중에서 누구를 2순위로 찍을 것인가 왈가왈부하다가 2015년 시즌에 치열한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키야마 쇼고(세이부)를 지명하기로 정리가 되던 와중에, 회의를 주재하던 오 사다하루 구단 회장이 갑자기 제동을 걸었다. 오 회장은 스카우트진에게 "얘들 중에서 제일 날리는 애가 누군가?"[5] 라고 질문을 던졌고, 스카우트진이 이구동성으로 "야나기타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바로 "그럼 얘 찍어."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면서 호크스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후문이 있다.[6] [7] [8]
여담으로 소프트뱅크의 이 해 드래프트는 야나기타를 제외하면 전원 폭망했다. 트레이드된 야마시타 아야츠구를 제외하면 아예 다 은퇴해버렸으니... 그런데 육성선수 드래프트는 나름 잘 뽑아서 6명 중 3명이나 주전이 되었다. 근데 더 웃긴 건 그 3명은 육성선수 4, 5, 6라운드 하위픽... 육성선수도 상위픽은 다 은퇴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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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프로 입단 후
2.2.1. 2012년까지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컨택의 문제로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어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1년 1군 6경기 출장, 2012년 68경기 출장에 그쳤고 스탯 역시 인상적이지 못했다. 여담으로 이러는 와중에 주니치 드래곤즈 내야수인 이바타 카즈히로는 2011년 모 방송 기획으로 선수들에게 최고의 파워히터를 물어보는 인터뷰에서 '내가 2군에서 봤는데 개쩔드라' 라면서 이례적으로 2군 선수인 야나기타를 꼽기도 하였고 이는 성지가 된다.
2.2.2. 2013년
오픈전부터 12개 구단 최다인 6홈런을 때려내며 눈도장을 찍는가 싶더니, 시즌 중간에 잔부상으로 빠지는 일이 있긴 했지만 차근차근 플레잉타임을 늘려가며 시즌 막판 4번 자리까지 수행하며 104경기 출장 .295 .377 .483 11홈런 41타점 10도루라는 호성적을 냈다.
2.2.3. 2014년
2014년부터는 드디어 전경기 출장을 달성한 팀내 부동의 중견수가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17(팀내 최고, 리그 3위), 출루율 .413(리그 2위), 15홈런, 70타점, 33도루(리그 2위). 2014년 일본시리즈에서는 리드오프맨으로 활약하며 우수선수상을 얻었다. 시즌 종료 후, 골든글러브(NPB)와 베스트나인을 수상하였다. 10월 9일부터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도 참가했는데, 이와쿠마 히사시와 와다 츠요시로부터 장타를 뽑아내는 등 시리즈 타율 3할 6안타 4타점이라는 대활약을 하였고, 그 해 타격왕 저스틴 모노는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다"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2.2.4. 2015년
9월 8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전에서 30호 좌월 홈런을 치면서 30-30 클럽 가입에 도루 2개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9월 15일 오사카 돔에서의 오릭스 버팔로스 전에서 시즌 30번째 도루를 성공시키며 '''NPB사상 10번째, 2015시즌 야마다 테츠토에 이어 두번째로 트리플 쓰리 기록에 성공했다.'''
9월 27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서 이대은에게 왼쪽 무릎 뒤쪽에 사구를 맞으며 교체되었다. 혼자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즌 아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등 부정적인 전망이 난무했다. 다행히도 타격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전력질주를 못하는 정도라고 한다. 다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스타팅 라인업에서는 제외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0.363 182안타 34홈런 99타점 32도루 OPS 1.101'''. 실로 어마무시한 성적이라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리그 MVP는 이미 확정된 분위기다.
팀내 청백전에 지명타자로 출전해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쿠도 키미야스 감독이 타격은 문제 없고 전력 질주도 할 수 있다고 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이후 팀이 2015년 일본시리즈에 진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붙게 되면서 야나기타와 마찬가지로 트리플 쓰리를 기록한 야마다 테츠토와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서는 부진했는데, 이대호 등 동료들의 맹활약으로 팀이 우승하면서 마음의 짐은 덜었다. 다만 시즌 막판 사구 후유증으로(왼쪽 대퇴골 타박상) 결국 프리미어 12 대표팀 명단에서는 제외되었다.[10]
11월 25일, 2년 연속으로 퍼시픽리그 베스트나인을 거머쥐었고, 동시에 퍼시픽리그 MVP에 선정되었다.
2.2.5. 2016년
4월 14일 경기에서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16경기 연속 볼넷 출루. 퍼시픽리그 기록을 갱신했다.[11] 본인의 선구안이 발전한 것도 있고, 작년의 어마어마한 성적에 힘입어 투수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보면 될듯. 4월 13일 현재 시점으로 타율은 .280인데 출루율이 '''.447'''.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1할 5푼을 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마크였던 장타는 봄에는 그다지 터지지 않았다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타격감이 상승하고 있다. 6월 20일 현재 타격성적은 .293/'''.452'''/.526 OPS .978 10홈런 10도루. 눈에 보이는 홈런이나 타율에 비해 쩔어주는 비율스탯, 특히 출루율을 찍고 있다. 가히 퍼시픽리그의 배리 본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시즌을 .306/'''.446'''/'''.523''' 18홈런 73타점 82득점 23도루로 마감했다. 야마다 테츠토처럼 2년 연속 트리플 쓰리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비율스탯을 찍었다. 양대리그 최다인 '''100볼넷'''을 얻어냈다. 다만 OPS는 전년도에 이어 준수했지만 이게 홈런이 줄고 사사구가 늘면서 균형을 맞춘 수치라서 전년도만큼의 포스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 흠이다. 그래도 도망다니는 상대팀 투수들을 상대로 장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인내심을 잃고 타율까지 까먹지는 않았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2.2.6. 2017년
아쉬운 것은 3할 30홈런 100타점을 '''1타점이 모자라'''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아쉬운 것은 2015년에도 '''1타점이 모자라''' 3할 30홈런 100타점을 실패했다. 무슨 마가 낀 듯(...) 시즌 말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으나 CS 파이널 스테이지 5차전에 1번 타자로 복귀해 언제 다쳤나는 듯 맹활약을 보였다.
팀이 1위를 했고, 세리그 히로시마도 1위를 차지해 히로시마와 일본시리즈에서 맞붙어 히로시마에서의 경기에서 부모님을 초대하겠다는 소원이 직전까지 왔으나 히로시마가 3위 요코하마에게 망신살을 당하면서 결국 일본시리즈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아닌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 붙게 되었다.
일본시리즈 2차전에서 뜬금없이 이대호의 등장곡인 대~호 콜과 오리 날다를 사용하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
2.2.7. 2018년
2017년 12월 23일 계약변경 교섭 때, '17년 시즌 2억 6천만엔에서 1억 4천만엔이 증가한 연봉 4억엔에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원래 2018 시즌 중 국내 FA를 취득 할 예정이어서 3년 총액 12억엔 및 옵션의 다년 & 고액 계약에 사인했다. 88년생인 야나기타는 이번 3년 계약이 끝날 시점에는 30대 중반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셈.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부터 보다 플라이볼을 치는 것을 의식하며 타구를 띄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야후오크 돔의 인조잔디가 보다 기다란 잔디로 교체된 뒤 야나기타의 장기였던 빠른 라인드라이브 타구[12] 의 속도가 잔디에 의해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메이저에서 호크스로 돌아온 카와사키 무네노리[13] 가 플라이볼을 쳐보라는 조언을 해 주었다고. 그 때문인지 스윙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5월까지는 상당히 부진했지만, 그 이후로는 대폭발하여 OPS 1을 가볍게 찍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그 최고의 강타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 대가인지는 모르지만 이전 시즌까지의 압도적인 선구안은 다소 무뎌진 듯 BB/K 비율이 다소 하락했다는 점은 살짝 우려. 하지만 3할 5푼에 30홈런을 치고 있는 타자에게는 사소한 문제이다.
2018년 4월 21일 닛폰햄 원정 경기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NPB 통산 65번째이자 한신의 후쿠도메 고스케 이후 1년 9개월 만의 사이클링 히트 달성이다.[14]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130경기 출전하여 타격왕(0.352)에 올랐고 개인 최초로 100타점도 기록하고 36개의 아치를 그리는 등 최고의 활약을 했다.
팀도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우승하고 센트럴 리그에서도 히로시마가 가볍게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며 드디어 부모님 눈앞에서 일본시리즈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2018년 일본시리즈 5차전에서는 연장 10회말에 나카자키 쇼타를 상대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시리즈 스코어 3-1을 만들어냈다. 고향 히로시마에서 열린 6차전에서도 팀이 승리하며 2년 연속 일본제일 제패에 성공하였다.
2.2.8. 2019년
12월 21일 현재 계약 갱신 협상을 호크스와 진행중이다. 제시받은 금액은 구단 사상 최고 연봉인 5억 7천만엔 + 플러스 옵션. 종전 호크스 최고 연봉액은 5억엔이다. 최종적으로 구단과 3년 계약, 추정 연봉 5억 7000만엔(약 65억 4200만원)으로 재계약하면서 소프트뱅크 호크스 역사상 최고 연봉자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15]
예년처럼 좋은 페이스로 출발했지만 도루 중 입은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날렸다. 38경기 .280 .410 .516 OPS .926 7홈런 4도루의 정규시즌 성적을 남겼다. 포스트시즌에는 전 경기 선발 출장해 호크스의 CS 제패와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 소프트뱅크와의 계약을 '''4+3년 계약'''으로 수정했다. 2020년부터 실행되며, 계약 첫 해 연봉은 기존과 같은 5억 7000만엔+옵션. 야나기타는 최장 7년의 계약이 끝나고 나서 은퇴할 것을 또한 밝혔다.#
2.2.9. 2020년
시즌 초반부터 '''.383 / .507 / .748 의 깡패급 스탯'''을 찍으며 대부분 타격지표 파리그 1위를 차지, 문자 그대로 '''다 때려부수는 중이다.'''
시즌 성적 .342 / .449 / .623, 29홈런 86타점을 기록하여 퍼시픽리그에서 유일하게 OPS 1을 넘기며 호크스의 우승을 이끌었고,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하며 본인의 두번째 MVP 시즌을 만들었다. 안타왕을 차지했고 콘도 겐스케를 2리 차이로 제쳤으나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8리차로 밀리며 타율 2위로 마무리. 안타왕 외에도 장타율 1위와 OPS 1위를 차지했다.
시즌 종료 후, 연봉이 6억 1천만엔으로 인상되며 마쓰이 히데키와 일본인 야수 최고 연봉 타이 기록을 세웠다.
3. 플레이 스타일
NPB 내에서도 손 꼽히는 큰 체격과 근육질에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대형 외야수. 50m를 5.9초에 주파하고 원거리 던지기가 125m가 나오는 데다가 입단 후 구단 내 자체 측정 때 마운드에서 148km/h를 기록할 정도로 강한 어깨를 자랑한다. 이러한 강견과 준족을 수비에도 잘 활용하며, 스피드가 넘쳐나는 주루 플레이 또한 무기. 상당한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는데 전 감독인 아키야마 코지의 현역 시절과 비견할만 하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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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타율만 보면 특급 교타자같지만, 사실은 '''진퉁 풀스윙어.''' 풀스윙의 대명사로, 잘 맞은 홈런 타구를 보면 외국인 타자 못지않은 무식한 비거리를 보여주는 편. 파워툴이라면 세이부의 나카무라 타케야라든가 니혼햄의 나카타 쇼 같이 야나기타와 비교할만한 타자가 있지만 현역 일본인 타자 중에 야나기타 정도로 밀어치기로 홈런을 양산해낼 수 있는 타자는 거의 없다. 스윗스팟에 정확히 맞지 않더라도 워낙 강한 손목힘에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잡아당겨서 1-2루 간을 뚫어버리는 힘 있는 땅볼이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자주 양산해내는 편이지만 전반적인 타구 방향은 고른 편으로 풀히터라고 보기엔 어렵다. 2013년부터 매년 4할 내외의 BABIP를 유지할 정도로 타구질도 좋다. 물론 높은 BABIP에는 빠른 발도 한몫한다. 워낙 타구가 강하다 보니 야나기타 타석에선 내야수비가 전반적으로 뒤로 물러나는 편인데 그러다 보니 완전히 빚맞은 느린 땅볼 타구가 내야안타가 많이 되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파워히터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타이틀은 2018년까지 수위타자 2번이 전부이다. 홈런과 타점 타이틀은 한번도 차지하지 못해서 이것 또한 미스테리이다.
스윙할 때의 장면을 놓고 보면 종종 그 회전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몸이 돌아가거나, 심지어 헬멧이 벗어지는 장면이 자주 보이는데, 모 살찐 교타자는 정확성 위주의 타격을 하는 자신과 풀스윙 위주의 야나기타를 정반대의 스타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사
6월 3일 DeNA와의 교류전에서 미우라 다이스케에게 날린 초대형 홈런. 전광판에 구멍이 선명하다.
매년 좋아지고 있는 선구안을 증명하는 BB/K도 인상적이다. 2013년 1:3에서 2014년 1:2 수준으로, 2015년엔 거의 0.8:1에 달할 정도로 삼진은 줄고 볼넷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볼넷이야 타격이 워낙 강하다 보니 투수들이 피해가자는 심리에서 볼넷이 늘어난 것도 있겠지만 야나기타 같이 풀스윙하는 타자가 이 정도로 삼진수를 매년 줄여가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2015년은 0.460(!!) 내외에서 출루율이 유지되는 상황.
같은 팀 선배 마쓰다 노부히로나 중견수 전임자 타무라 히토시의 뒤를 이어 유리몸의 조짐이 보이고 있기도 하다. 매년 시즌 말미에 부상을 입는데 2015년 말에는 부상 때문에 프리미어 12와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빠져야 했고, 2016년에는 시즌 막판 닛폰햄과 치열하게 선두경쟁을 하는 와중에 부상으로 빠지면서 팀의 DTD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시즌 내내 헤매다가 겨우 감을 잡고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더욱 뼈아팠다. 2017년에도 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다음날 경기 첫타석에서 풀스윙을 하다가 옆구리 근육 좌상으로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클라이맥스 시리즈까지는 복귀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잃어버린 감각을 생각하면 팀으로서는 뼈아픈 손실이다. 2019년에도 도루 중 당한 근육 파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을 날렸다. 이러한 부상 퍼레이드의 원인은 전술한 대로 큰 체구와 풀스윙, 허슬 플레이로 일관하는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인데 자칫하면 능력은 뛰어나나 부상이 잦은 인저리 프론의 딱지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4. 이모저모
- 2012년에는 당시 호크스 감독이었던 아키야마 코지를 따라서 이토이 요시오의 타격 연습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이걸 계기로 왕정치 회장과 아키야마 감독의 권유하에 2013년부터 이토이와 비시즌마다 함께 훈련한다고 한다. 이토이로부터 "(공을 날리는 건) 일본인 중에서도 최고. 괴물이다."와 "비거리는 기타 쪽이 2단계 위다" 라며 극찬을 받았다. 그 체격 좋고 운동 능력 쩌는 이토이가 극찬할 정도니 말 다 했다.
- 2015년 교류전 중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후 동갑내기 사카모토 하야토가 "오늘 경기끝나고 밥먹으러가자"고 제안했는데, 시즌중이고 컨디션관리는 중요하니까 시즌끝나고 권유하셈이라고 거절하며 높은 프로의식을 보여줘 화제가 됐었다.[18] 그리고 올스타 1차전 이후 같이 올스타에 출장했던 88년생 마에켄, 아키야마, 카지타니 등과 함께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88년생이 무려 9명이나 출장하는 와중에 사카모토는 올스타에 출장하지 못했지만 식사에는 참여하였다는 후문(...)
- 2015년 7월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다. 시즌 끝나고 발표했다. 아이는 2016년 봄에 출산예정 http://headlines.yahoo.co.jp/hl?a=20151129-00050055-yom-base
- 나성범이 존경하는 선수라고 밝힌적이 있다.
- 그의 삼촌인 야나기타 유타카도 니시테츠 - 타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와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투수로 뛰었던 프로야구 선수였다. 통산 110승 30세이브를 거두며 나름 활약했지만 그 반면 140패로 패배가 승리 수보다 더 많았고 무엇보다 역대 NPB 피홈런개수 통산 10위(359피홈런)의 기록을, 그것도 상위 10명 중 유일하게 200승에 다다르지 못한 투수로써 기록했다(...)
- 2018년 시즌 종료 후 TBS테레비에서 제작한 '프로야구 전력외 통고 2018'에서 소프트뱅크 선수들이 키도코로 류마 선수의 은퇴를 위로하며 밥 먹는 장면에서도 야나기타 등 선수들이 나왔는데, 한때 같이 뛰었던 모리후쿠 마사히코는 소프트뱅크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소개가 생략되어 일반인(...) 취급을 받았다.
- 현역 프로야구선수 중 SNS 팔로워 3위다. 1위는 트위터 200만의 다르빗슈, 2위는 예능 출연으로 유명한 닛폰햄의 스기야 켄시. 메이저리거인 다르를 빼면 일본리거중에서는 2위.
5. 히로시마 사랑
히로시마 출신으로 유년기엔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들락날락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열혈팬으로 자랐는데, 스스로를 "카프남자"라 자칭할 정도였다고 한다. 히로시마경제대학 당시 졸업 논문 주제는 '히로시마 카프의 경제 효과'였다. 구로다 히로키의 일본 복귀 때 누구보다도 반기며 대전을 열망했고 결국 교류전에서 열망하던 구로다와의 대전이 실현됐는데 4타석 3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맹타를 휘둘렀지만 팀은 패배. 올스타전에서는 방송 인터뷰 중 구로다에게 사인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히로시마에서 열린 2015년 올스타 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온 구로다와의 대전이 성사되었는데 스플리터에 헬멧이 벗겨질 정도의 헛스윙을 날리며 시원하게 삼진.
호크스도 좋아한다고 얘기 는 하지만 공공연히 카프의 우승을 보고 싶고 호크스팬은 되지 않겠다(...)고 코멘트를 할 정도. 심지어는 대놓고 ''' 「목표는 FA로 히로시마에 입단해서 카프를 우승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이다. 보통이라면 호크스 팬들로부터 미친듯이 까여야 정상이겠으나 활약이 활약인데다[19] , 아무리 본인이 FA로 히로시마를 가고 싶어도 히로시마가 '''그만한 거금을 내놓을 리가 만무하고''' 호크스의 모그룹이 히로시마와의 돈싸움에서 질 일은 절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정말로 히로시마로 이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측면이 많다. 그리고 19시즌 종료이후 7년 계약으로 사실상 호크스에 말뚝을 박았기 때문에 더더욱. 무엇보다 카프와는 리그가 다르기 때문에 호크스 팬들은 그냥 젊은 선수의 못 말리는 고향팀 사랑 정도로 생각하는 듯 하다.
못 말리는 카프 사랑 외에도 히로시마 지역 사랑 때문에 오프시즌이면 히로시마경제대에서 자율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 히로시마 지역 방송에 많이 나온다. 히로시마 뉴스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타팀 선수로, 고향 히로시마에 올 때마다 마음이 편하다고. 올 때마다 오코노미야키는 꼭 먹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오프 시즌 때는 빨간 옷에 신시내티 레즈의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자주 찍힌다. 이 카프 사랑은 히로시마 출신 타츠카와 미츠오 소프트뱅크 코치도 인증했으며, 2019년 후지 TV 정크스포츠에 출연했는데 구단에서 카프행을 만류했다고 한다.# 이 이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카프 팬들이 자주 가는 이자카야 목격담이 뜨기도 했으며, 히로시마 헬멧을 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히로시마 팬들은 대놓고 야나기타를 '후쿠오카 사는 카프 팬'이라고 부르는 중.
2020년에는 호크스 어린이팬이 후지TV 계열국인 TV니시니혼의 로컬 프로그램에서 대놓고 히로시마와 후쿠오카 중 어디가 좋아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재치있는 답변으로 호평을 받았다.
6. 연도별 기록
[1] 다만 등장곡을 자주 바꾸고 한번에 여러곡을 쓰는 스타일이다. 마츠다 노부히로랑 비슷한 케이스. 등장곡만 '''60곡 이상'''을 써서 등장곡이 꼭 뭐라고 찝어 말하기 어렵다(...).[2] '''光のような足と 突き刺すようなスロー いざ一振り決めて 輝け柳田(빛 같은 발과 찌르는 듯한 송구 자 한 방으로 결정지어라 빛나라 야나기타)'''[3] 후술하겠지만 정확히는 센트럴리그에서 야마다가,퍼시픽 리그에서는 야나기타가 트리플 쓰리를 달성함으로서 한 시즌에 두 리그 모두 트리플 쓰리를 달성한 선수가 나왔다는 것[4] 1위는 야마시타 아야츠구(山下斐紹)로 포수였다. 주로 1군과 2군을 오가다가 결국 육성선수로 입단한 동기 카이 타쿠야에게 밀려서 2017 시즌 종료 후 라쿠텐으로 트레이드되었다.[5] 누가 제일 타구 비거리가 긴가?라는 뜻.[6] 오 회장이 야나기타 입단 이후에 그의 풀스윙을 코치들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입단 초기 컨택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폼을 교정하기보다는 야나기타 본인의 폼을 유지하도록 지시하였고, 결과적으로 일본 최고의 강타자로 대폭발. 오 사다하루 회장의 혜안이 빛난 부분이다.[7] 엄밀하게 말하면 야나기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굳이 높은 순위에서 지명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차례가 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탓이 컸다. 설마 호크스 같은 풍부한 자금력을 소유한 팀이 중앙 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타자를 2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지명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하다.[8] 이시미네는 타격, 주루, 수비 모두 대학리그 탑급이었으나 똑딱이였다. 그래서 소프트뱅크와 세이부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9] 이 3명은 바로 센가 코다이, 카이 타쿠야, 마키하라 타이세이(2019년 소프트뱅크 주전 2루수).[10] 야나기타의 대체 선수로는 팀 동료인 유격수 이마미야 켄타가 선발되었다.[11] 이전 파리그 기록은 1951년 니시테츠 라이온즈의 타베 테루오라는 선수가 달성한 15경기 연속 볼넷 출루이다. 일본프로야구 전체 기록은 1970년 오 사다하루가 달성한 18경기 연속 볼넷 출루.[12] 해당 방송에서의 데이터에 따르면, 의외로 2016년까지 야나기타의 FB/GB 비율은 꾸준히 NPB 평균을 밑돌았다.[13] 가와사키가 토론토 블루제이스나 시카고 컵스 시절 본 팀메이트들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14] 네 번째 타석에서 또 단타에 그치면서 달성하지 못할 뻔 했으나 마지막 타석 3루타를 치면서 달성했다. 퍼시픽 리그에서는 2007년 훌리오 술레타 이후 약 11년만.[15] 종전 최고 대우는 5억엔으로 야나기타를 비롯해 데니스 사파테, 조지마 겐지, 마쓰나카 노부히코 등이 받았다.[16] 단 UZR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지표상으로는 중견수 수비가 그렇게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한다.[17] 과거 모노노후로서(?!) 다나카 마사히로 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안무라면 본인이 더 자신 있다고...[18] 사실 야나기타는 2013년 초에 다나카, 마에켄, 사카모토의 주도 하에 있었던 88년생들의 동일본대지진 부흥 이벤트에도 사퇴한 바 있다. 당시 사퇴 이유는 이 선수들과 아직 같이 설만한 정도의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 이미 NPB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면 당시 야나기타는 아직 1군 준주전급에 불과한 상태이긴 했다. [19] 무엇보다 야나기타는 소프트뱅크의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5개나 안겨준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이다. 특히 2018년 일본시리즈 5차전 끝내기 홈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