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왕(주)
1. 개요
주나라의 제16대 왕. 장왕의 아들이며, 혜왕의 아버지다. 그는 아버지가 바로 그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했기 때문에 희왕 대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사기에서는 이왕(釐王)으로 나오는데, 그 까닭은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 자신의 할아버지인 사마희(司馬僖)를 피휘한 까닭이다. 원래 피휘를 실행하면 비슷한 뜻이나 통하는 글자로 대신하게 마련인데, 전한 무제 대에는 행복이라는 의미로 뜻이 통했기 때문에, 원래 희라는 시호를 얻은 인물이 리라는 시호를 받은 군주들이 많다.
2. 치세
희왕 원년(기원전 681년), 제 환공(齊桓公)은 명재상 관중(管仲)을 얻어 그를 상방으로 삼아 자신을 보좌하게 했다. 그리하여 제나라는 관중의 능력에 힘입어 부국 강병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 환공은 존왕양이의 구호를 내걸며, 주 희왕을 받들었다. 그렇게 되니 송나라는 비록 공작이 다스리는 나라였으나, 송나라의 공작인 송 환공(宋桓公)은 후작의 나라인 제나라에게 맹주 자리를 양보하였다. 그래서 제나라는 북행에서 회맹을 하였다.
희왕 2년(기원전 680년) 봄, 제나라, 진(陳)나라, 조(曹)나라가 연합하여 송나라를 쳤다. 제 환공의 요청을 받아들여 희왕도 같이 출정했다. 같은 해 여름 희왕이 선백(單伯) 대(帶)에게 병사를 주어 파견시켜 제후들과 만나서 송나라와 강화하고 돌아갔다.
2.1. 곡옥의 백작이 진후가 되다
희왕 4년(기원전 678년) 겨울, 진(晉)나라의 곡옥무공(曲沃武公)은 진후 민(晉侯緡)을 살해하고 진(晉)나라의 땅을 전부 차지했다. 곡옥무공은 진나라의 보물들을 뇌물로 주 희왕에게 바치니 주 희왕은 곡옥무공을 진후로 봉했다. 그리고 곡옥무공은 1군을 편성하였다. 그리하여 곡옥무공은 진 무공(晉武公)이 되었다.
2.2. 최후
희왕 5년(기언전 677년) 봄, 왕이 붕어하니 시호는 희였다. 희왕 사후 아들인 희랑이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혜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