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엔 주화

 


百円硬貨 (ひゃくえんこうか)
百円玉 (ひゃくえんだま)
1. 개요
2. 역사
2.1. 은화
2.2. 백동화
2.3. 기념 주화
2.3.1. 500엔 주화 등장 이전(1964 ~ 1976)
2.3.2. 백동 도금(클래드) 구리 기념주화
3. 쓰임새
4. 그 외


1. 개요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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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쇼와 32년) ~ 1958년(쇼와 33년)
1959년(쇼와 34년) ~ 1966년(쇼와 41년)
1967년(쇼와 42년) ~
앞면 : 봉황 / 뒷면 :
앞면 : / 뒷면 :
앞면 : 벚꽃 / 뒷면 :
지름 : 22.6mm, 무게 : 4.8g[1]

2. 역사



2.1. 은화


100엔이 첫 선을 보인 해는 1957년(쇼와 32년)으로 당시에는 은화로 발행하였다. 일제 패망 이후 처음으로 만든 은화였다. 당시에는 왼쪽처럼 봉황 도안으로 나왔었다. 100엔 지폐를 대체할 목적으로 도입한 듯 하나 은화의 발행량 자체가 많지 않은 편이라 완전 대체하진 못하였다. 결국 은화와 지폐를 병행해서 사용하였다.[2] 100엔 지폐는 현재의 백동 100엔이 등장하고 나서야 유통정지되었다.
특이사항으로는 은화에 아연을 첨가했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통용 은화에는 구리만 섞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본에서는 아연까지 섞어 발행하였다.[3]
100엔 은화가 등장하면서 10엔50엔 주화와 구별이 어려운 혼돈의 카오스가 열리게 되었다. 10엔과는 크기+톱니때문에 촉감상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50엔은 색상이 은빛이라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웠다. 결국 100엔 은화가 등장한지 2년만에 10엔은 톱니를 없앴으며, 50엔에는 구멍을 뚫었다. 정작 원인제공의 원흉 100엔은 스펙상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100엔도 디자인을 변경하였다. 100엔의 디자인을 변경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구멍뚫린 50엔과 더불어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
결국 1959년(쇼와 34년)에 벼가 그려진 100엔 은화가 탄생하였다. 1966년까지 계속 벼도안으로 발행하였다. 1964년(쇼와 39년)에는 도쿄 올림픽 개최 기념 100엔주화를 만들기도 했다. 일본 최초의 기념주화로 봉황, 벼도안의 100엔과 동일한 무게와 크기, 재질로 발행하였다. 뒷면(숫자 부분)도 벼도안과 위화감이 적게 디자인하여 시중에서도 많이 사용하였다. 다만, 당시에 올림픽 기념주화에 몰두한 나머지 일반 벼도안 100엔의 발행량이 줄어들었다. 따라서 쇼와 39년 벼도안 100엔 주화는 특년이[4] 되었다.
10년동안 발행하였던 은화는 결국 1967년(쇼와 42년)에 지금 쓰이는 100엔 백동화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은화를 포기하고 백동화로 바꾼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당시 제조업계의 은 수요가 급증하면서 은값이 폭등했었다. 또한 미국, 네덜란드 등 통용 은화를 사용하던 나라들도 전부 니켈화, 백동화, 백동 도금 구리 주화 등으로 바꾸면서 은화를 포기하던 분위기였다. 일본의 자판기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은화를 양산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2.2. 백동화


지금 사용하는 벚꽃 100엔은 1967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전에 발행했던 은화와 재질, 디자인만 다를 뿐 무게와 크기를 똑같이 유지한 채 발행했다. 50엔은 여러차례 규격이 바뀐 것을 감안하면 100엔의 스펙을 어떻게든 비슷하게 유지하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백동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은화와 함께 통용되었다. 자판기도 무게와 크기만으로 감별하던 시절이다보니 은화를 사용해도 똑같이 인식하였다.[5] 지금도 동전계수기에서 함께 롤로 묶여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로 억단위로 뽑아내 발행하였다. 천만단위 이하로 발행한 연도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던 100엔도 예외적으로 2001, 2002년(헤이세이 13, 14년)에 엄청 적게 발행한 적이 있었다. 각각 8백만, 천만 장으로 100엔 1000개 중에서 하나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귀하다. 당시 발행량이 급감했던 이유는 니켈황동 500엔 주화의 등장 때문이다. 한국의 오백원 주화때문에 몸살을 앓던 일본 정부가 기존의 백동 500엔을 빠른속도로 도태시키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양의 신형 500엔을 찍어냈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500엔에 집중한 나머지 100엔의 발행량을 일시적으로 줄였던 것이다. 2003년 이후부터는 평년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2000년대까지 주춤했던 100엔의 발행량이 갑자기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연간 4억매 이상으로 늘어났었다. 일본 주화 중 가장 많은 양을 뽑아냈었다. 수요가 늘은 탓도 있지만 100엔의 위조 방지를 위한 목적도 있다. 100엔 백동화가 처음 나온지 40년도 넘은 상황에 톱니가 마모되면서 뭉개진 경우가 많았다. 톱니가 무뎌진 100엔 동전은 위조에 취약하다보니 시중에서 도태시키고 이를 대체할 목적으로 발행하게 된 것이다.

2.3. 기념 주화



2.3.1. 500엔 주화 등장 이전(1964 ~ 1976)


100엔의 기념주화는 500엔 주화가 등장하기 전인 1976년까지 총 5종류가 발행되었다. 그 중 2종은 시중의 100엔 동전과 똑같은 크기, 재질로 발행하여 섞여다니곤 했었다. 당시에 100엔으로 기념 주화를 만들었던 이유는 시중에 유통중인 최고액 주화가 100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500엔 주화가 등장한 이후에는 한동안 1000엔 미만의 액면에서는 500엔으로만 기념주화를 만들었다.
  • 1964 도쿄 올림픽 기념 주화(1964년 | 쇼와 39년)
    • 은화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일본 최초의 기념 주화였다. 당시 통용중인 100엔 은화와 동일한 스펙으로 발행하여 시중에도 다수 유통되었다.
  • 1970 오사카 엑스포 기념 주화(1970년 | 쇼와 45년)
    • 100엔의 재질이 백동으로 바뀌고 나서 발행된 기념 주화다. 재질은 백동이었으나, 지름이 28mm라서 시중의 100엔보다 크기가 컸다.
  •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 기념 주화(1972년 | 쇼와 47년)
    • 백동으로 발행되었으나, 이전의 오사카 엑스포보다 더 큰 30mm로 발행되었다.
  • 1975 오키나와 엑스포 기념 주화(1975년 | 쇼와 50년)
    • 현재까지 유일하게 백동 100엔과 동일한 스펙으로 발행한 기념주화이며, 자판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 쇼와 덴노 재위 50주년 기념 주화(1976년 | 쇼와 51년)
    • 이전의 삿포로 동계올림픽 기념주화와 같은 크기로 발행되었으며, 마찬가지로 백동으로 발행하였다.

2.3.2. 백동 도금(클래드) 구리 기념주화


500엔에 최고액 주화 지위를 물려주고 한동안 기념주화 소식이 없다가 약 40여년 만에 100엔 기념주화를 다시 발행하기 시작했다.
2015년 신칸센 개업 50주년 기념 주화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기념주화다. 기존의 100엔 주화와 '''크기와 무게는 동일'''하나 재질이 다르다. 이정도면 도금 주화로 바꿈에도 무게와 크기를 유지한 조폐국이 대단할 지경이다.
톱니는 500엔 주화에 있던 사선톱니와 그보다 간격이 넓은 사선톱니 두 종류를 병행해서 사용하고 있다. 신칸센 기념주화는 전부 넓은 톱니를 사용하였다. 올림픽 기념주화의 경우는 올림픽에는 촘촘한 사선톱니, 패럴림픽에는 신칸센과 동일한 넓은 사선톱니를 넣었다.

3. 쓰임새


사실상 일본 엔화 동전중에서는 10엔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으로 쓰이는 편이다.
특히나 100엔숍이나 100엔 자판기등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1000원의 위상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게임센터에서도 주로 쓰이기도 한다. 게임 한번하는데 100엔이 필요하다.[6]
또한 물품보관함에서도 100엔 동전이 가장 많이 쓰인다. 간혹 지폐나 500엔 주화를 지불하여 거슬러받는 기기도 있으나, 대부분의 물품보관함은 100엔만 사용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 경우에는 옆에 동전교환기를 함께 설치해놓은 경우가 있으나 없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도로 갓길에 설치된 주차요금 정산기 역시 100엔 동전밖에 받지 않는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통화인 만큼 코믹 마켓에서도 역시 주력으로 쓰이는 동전이다. 대부분의 물품이 100엔단위로 끊어지기 때문에 행사중에 가장 많이 쓰인다. 위의 게임센터와 더불어 덕질 하는 입장에선 가장 친근한 동전이 아닐 수 없다. 500엔도 환전하면 금상첨화다.

4. 그 외


일본 여행시 100엔 주화의 생김새가 흡사 우리나라의 100원 동전의 이미지와 비슷해서 소홀히 대하다가는 여행비가 조기에 떨어질 수 있는 리스크가 생길 수도 있다. 알 사람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00원 동전이랑 비슷하게 생겼어도 실제 가치는 1000원 지폐 한 장 정도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락실에서는 500원 쓰듯이 사용하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자세히 보지않으면 탐지하기 어려울수 있는 점을 악용, 지불할때 100엔 사이에 은근슬쩍 100원짜리 동전을 끼워넣는 몰지각한 관광객들 때문에 현지에서 논란이 된적이 있었다. 누가 그랬던 간에 돈 가지고 장난치는 어리석은 짓은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 놀랍게도 재질을 바꾸었어도 무게와 지름은 그대로 유지했다.[2] 홍콩에서 10달러 지폐와 동전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3] 호주처럼 니켈까지 섞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케이스였다.[4] 천만 장밖에 발행되지 않았다.[5] 이것을 악용하여 한국의 십원 주화를 잔뜩 가져다 일본 자판기에서 100엔으로 인식하는 것을 악용한 미국인이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100엔과 구 10원 동전의 무게와 크기가 비슷한 편이다.[6] 꼭 100엔 동전을 넣지 않고도 교통카드(스이카, 파스모 같은)를 이용하여 크레디트 입력 후 게임 시작 할 수 있다. 다만 이건 타이토,세가,남코 등 큰매장 한정으로 시골 변두리 오락실은 아예 안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