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권 지폐

 


[image] [image]
[image] [image]
최초의 1,000원권 지폐(가 천 원, 1975~1983)
구권 1,000원권 지폐(나 천 원, 1983~2007)[1][2][3]
[image]
현행 1,000원권 지폐 (다 천 원, 2007[4]~현재)
[image]
1,000원 전지은행권(5X9. 45매. 판매가 59,500원)[5]
1. 개요
2. 특징
3. 쓰임새
4.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에서 발행한 1,000원권 지폐.

2. 특징


초상화 인물은 퇴계 이황으로, 이유태 화백이 그린 표준영정 도안을 적용했다.[6] 의외의 사실일 수도 있는데, 천 원권(가)은 오천 원권(가)이나 만 원권(가) 지폐보다도 '''2년 넘게 늦게 나왔다.'''[7]
현재 발행되는 신권은 다른 신권들과 마찬가지로 구권보다 크기가 작아지고 디자인에 이런저런 수정이 가해졌다. 첫 등장 이후부터 구권은 적색이었으나, 신권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다른 지폐들이 원안의 색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홀로 색이 바뀐 것이다.
천 원권 지폐는 우리나라 현행권 중 가장 위조에 취약하다. 홀로그램에 그저 "BOK"만 적혀있고 숨은 그림을 따로 찍어 집어넣거나 홀로그램을 붙여서 유통시킬 수 있다.
이 지폐에는 한국에서 가장 늦은 번호인 9999999가 11장 존재한다. 1983년~2007년 발행된 구권에서 3장, 2007년부터 발행 중인 신권에서 2019년 6월 현재, 8장이 발행되었고, 가치는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서 구권이 300만 원 이상, 신권이 100만 원 이상의 시세를 자랑한다.

[image]
이 지폐의 퇴계 이황을 그린 사람은 현초 이유태 화백(1916~1999)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대 학장을 역임했다.
앞면의 퇴계 이황 왼쪽의 꽃은 매화다. 이황은 살아생전 매화를 많이 좋아했다. 죽기 직전에 "저 매화에 물을 주라"라고 했던 일화도 매우 유명. 건물은 성균관 명륜당. 이황은 대학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다.
지폐의 색깔은 초창기부터 계속 같은 색깔을 유지해오는 다른 권종[8]과는 달리 줄곧 '''적색'''을 유지해오다가 현행 1,000원권 지폐로 갈아타면서 뜬금포 '''청색'''으로 지폐의 색상을 변경했다.
뒷면은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 이황이 강학하고 배향된 도산서원의 초창기 묘사다.
지폐이면서도 가장 가격이 낮기 때문인지 취급해 주는 곳이 굉장히 많다. 계산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스름돈으로 쓸 일이 많기 때문에 손님이 1,000원으로 계산해 주면 좋아한다.
현 대한민국 내 대부분 자판기는 천 원권 지폐만 취급한다. 지폐 투입부가 천 원권 지폐만 인식하도록 되어 있다. 그 외의 지폐는 인식하지 못한다.[9]
단, 법원이나 시청의 등본발급기는 오천 원권, 만 원권도 인식한다. 또한, 기차역의 자동발매기, 지하철역의 교통카드 충전기나 승차권 발매기의 대부분이 요즘에는 만 원권까지 사용 가능하다. 한국철도공사 전철역의 MS식 승차권 발매기를 개조한 구형 발매기는 여전히 천 원권만 받고, 최근의 지하철 교통카드 충전기/일회용 교통카드 발급기 겸용 기기는 오만 원권도 사용 가능하다.
그 때문인지 때가 많이 타서 너덜너덜해진 지폐가 '''물량 면에서''' 많이 나오는 지폐이기도 하다. 신권도 자주 생산하기 때문에 의외로 더러운 게 많다는 걸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거래의 주역은 안 되어 잔돈 취급을 당하는 1,000원권의 특성상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 쓰는 경우가 잦고, 낙서를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전화번호나 이름이 적혀있기도 하고... 참 이래저래 험한 꼴 많이 보는 지폐이다.

3. 쓰임새


'''자동판매기, 대중교통 이용''' 등 예전 백원 주화, 오백원 주화로 했던 일들을 물가 상승으로 인해 2000년대부터 천 원짜리 지폐가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1000원권이 처음 나왔을 때는 값어치가 상당했고 시간이 갈수록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지기는 했다만[10][11] 그럼에도 1980년대에는 세뱃돈을 1000원권 내지 5000원권으로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90년대에는 소득수준과 물가가 크게 상승하여 세뱃돈을 만 원권으로 받게 되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만 1000원권 자체의 가치는 아직까지는 상당했기 때문에 1,000원 1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은 은근히 많았다. 1,000원 짜장면을 판매하는 중국집도 있었고, 1,000원짜리 생필품들을 판매하는 곳들도 많았다. 과자는 1,000원이면 2~3개는 사 먹을 수 있었으며, 누구나 잘 아는 '''김밥천국'''에서 판매하는 김밥도 1줄에 1,000원이어서 '천김'이라 불렸다.[12] 하지만 IMF에 한 번 휘청이고 나서는 물가가 한번 올라가면 함흥차사가 되어서 돌아올 생각을 안 하는지라 단돈 1,000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2000년대까지 1,000원은 버스나 지하철을 한 번 타거나 컵라면이나 기본 김밥, PC방 등으로 간단한 식사를 때우는 등의 기본적인 한 가지 간단한 행위를 할 수 있거나 무언가를 사고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는 돈이었다. 또한, 이때까지만 해도 노량진 학원가를 들어선 노점상에서 1,000원 한 장으로 토스트+음료 한 잔, 미니 피자+음료 한 잔 등의 간단한 식사가 가능했다.[13]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물가가 미친 듯이 올라서 천김[14]마저도 사실상 멸종되어 이후로는 기본 2,000원은 한다. 한 장이 아닌 두 장으로 사 먹을 수 있다... 아직도 편의점 등에 1,000원짜리 김밥이 일부 명맥을 잇고는 있지만 밥 조금에 반찬 한두 가지가 실처럼 올라간 거의 손가락 굵기의 김밥이나 1,000원이고 이것도 거의 없어서 1,000원으로는 삼각김밥 하나 정도밖에 못 산다. 역시 같은 해에 노량진 노점상에서 천 원짜리 메뉴가 사라졌다. 1,000원 생필품 상점도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 막상 가서 보면 1,000원 가지고는 안 되는 물건이 더 많다. 게다가 과자마저도 1,000원 '''따위'''는 가볍게 넘는 과자들만이 주를 이루고 있어, 옛날의 1,000원권 지폐의 역할 및 가치를 5,000원이 대신 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비마저도 버스나 지하철 한 번 탈 때 어지간해선 기본이 1,100원에서 1,200원 사이이다. 이쪽은 그나마 다행히도 2000년대 후반부터 환승할인이 널리 퍼졌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아주 가끔 1,000원짜리 '''동전'''을 만들 때가 되었다느니 '''2,000원권 지폐'''를 만들 때가 되었다는 의견도 나오나 시기상조 혹은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며 무시당하는 중이다. 적어도 2천 원권 지폐는 물 건너갔다. 미국의 2달러 지폐나 일본의 2000엔권 지폐처럼 기껏 만들어도 통용이 잘 안되기도 하니. 그래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지폐로 2000원권이 발행되기는 했다.
2020년 현재 1,000원짜리 하나로 여러 개를 살 수 있는 물건은 붕어빵 정도? 그것도 1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인 3개 정도 살 수 있다. 계란빵, 호떡 등도 살 수는 있으나, 싼 곳도 하나에 700~800원 정도 하는지라 2개 이상은 못 산다. 만약 호떡에 씨앗이나 야채 등이 들어가면 1개에 1,000원도 한다. 그리고 과자는 한 봉지 사는 것도 버거워졌다.[15] 초코바나 초콜릿은 편의점 기준 아직 1,000원의 가격은 유지 중이다. 그나마 봉지라면은 아직 한 개에 700원, 800원 정도라서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구입 가능한 몇 안 되는 식료품이 되겠다.
대개 이런 소액권의 경우 사용량이 많아 수명이 짧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이나 고소득 국가들은 파운드 스털링[16], 일본 엔[17], 싱가포르 달러[18], 캐나다 달러[19], 호주 달러[20], 이스라엘 셰켈[21]처럼 동전으로 교체했던 반면 천 원짜리 지폐는 국내외에서 여러가지 반대으로 동전으로 바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22][23][24] 다만, 최근에 한은에서 10원 주화 폐지 논의가 처음 나온 것과 맞물려 천원 주화의 도입 가능성도 암시했다. #
실제로 소액권을 동전으로 교체하려다 실패한 사례도 많아서 교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1달러권이 있다. 이쪽도 1달러권의 수명이 짧고 교체 비용이 많이 나가다 보니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차원에서 수차례 동전으로 교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도 무겁고 지갑에 넣기도 번거로운 이유 때문에[25] 일상생활에서는 계속 지폐를 선호하게 되고 서서히 동전도 기념주화용으로 소량 발행하다가 발행 중단하는 수순을 매번 반복하고 있다. 홍콩도 1994년에 10달러권을 동전으로 교체하려다 실패하여 2002년부터 다시 지폐로 회귀하였다.[26] 말레이시아의 1링깃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온 국민이 지폐를 사랑한 나머지 2010년부터 모든 권종의 동전 발행을 중단하였다.[27] 한국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전으로 교체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고, 동전의 유통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국은행 측에서도 동전 발행으로 얻는 이득보다 현행 유지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판단하여 시도하지 않는 듯하다. 현금보다 카드를 많이 쓰는 현 상황에 지폐의 수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보니 더더욱 교체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해외에서 환전동남아를 제외하면 구권 지폐[28]는 환전이 얼마든지 가능하다.[29][30]
단, 일부 국가이나 동남아 국가에서는 천 원권은 미국 1달러보다 더 낮은 환율을 적용하는 곳이 있다.
일부 태국 사설환전소 사이트를 보면 천원권 환율 격차와 미국 1달러 지폐의 환율 격차는 태국 현지 경제, 정치 상황에 따라 틀리지만 일반적 상황에서는 천원권 격차가 큰 반면 미국 1달러 격차가 적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2020년 10월 19일 기준 태국 슈퍼리치 환전소 사이트 기준으로 미국 1달러의 살때와 팔때의 격차는 23사탕(0.23)이며[31]
천원권을 살때와 팔때의 격차는 1바트 90사탕(1.9)이다.[32]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는 급한 상황이 아니면 미국 1달러 지폐로 환전하는 것이 절약하는 것이다.

4. 기타


[image]
지폐의 모델인 퇴계 이황배우 소지섭을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image]
터번을 두른 사람의 모습도 접을 수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터번을 쓴 사람 중 잘 알려진 자가 하필이면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었기에 '빈 라덴 접는 법'과 같이 불리며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물론 구권 지폐가 통용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신권으로도 가능하다. 참고로 옆의 만 원권 지폐로 접은 모습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천 원권 접기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신권의 색이 파란색으로 변경되면서 만 원권과 색상이 비슷해서 헷갈린다는 불만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천 원권과 오천 원권이 혼동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색을 바꾼 거라고 설명하는데,# 숫자가 똑같이 1로 시작되는 만 원권과 5로 시작되는 5천 원권 중 어느 쪽이 혼동될 가능성이 더 높은지를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신권으로 교체되면서 오천 원권 지폐, 만 원권 지폐와 마찬가지로 일련번호 글자가 한글에서 로마자로 변경되었다. 이 때문에 "이제 지폐까지도 영어 우월주의가 팽배했느냐?"라는 식의 반발이 컸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구권이 처음 발행되던 때(1983년)에 비해,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더욱 커져 지폐가 외국에서 많이 통용되는데, 그에따라 해외에서 발행된 위조지폐도 급증하였다. 그렇다 보니 외국 경찰과 함께 수사를 해야 하는데, 정작 외국에서는 '''일련번호가 한글로 되어있어 읽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로마자(라틴문자) 알파벳으로 바꾸게 되었다. 애초 지폐 일련번호의 한글 표기 포기를 비판하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더라도, 그것을 '영어 우월주의' 타령하는 것은 상당히 무지의 소산이다. 로마자는 유럽에서 유래한 것은 사실이지만 효율적인 표기 방식으로 유럽을 제외한 수많은 나라에서도 쓰이는 국제 문자다.[33]
[image]
[image]
구권이던 시절(1983년~2007년)에는 한글 일련번호다 보니 3글자가 합쳐져서 오묘하게 뜻이 있는 글자가 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처머거(처먹어)''', 머거서(먹었어), 머머거(뭐 먹어), 더머거(더 먹어), 처너어(처넣어), 너어서(넣었어), 더처너(더 처넣어), 너어저(넣어줘), 머너어(뭐 넣어), 바나나, 어머머, 사바나, 차나라(車國), 자바가(잡아가), 자바라(잡아라), 차사자([자동]차 사자), 다사자, 다사라, 아바나, 사가자, 사자가, 라라라, 마마마, 버서서(벗었어), 나가라, 나가자, 바바바, 자다가, 마아마, 마마아, 바아마, 차마라, 차차차 등 은근히 애니와 연관된 글자도 있다. 가아라, 마마마, 다다다 등.
연결형 은행권으로 가장 많이 발행된 화폐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대구광역시 케이블의 감사관실 지역광고 중에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데 뇌물을 건네지 말자는 뜻으로 '율곡 이이 화냅니다, 세종대왕 화냅니다, 신사임당 화냅니다'# 하는 광고가 있었는데, 어째선지 지폐 중에 천 원짜리에 관한 내용(퇴계 이황)만 없다. 아마 천 원권의 액수는 뇌물로 쓰이는 경우가 없기에 굳이 적지 않는 모양이다.
천 원에 인쇄된 인물인 퇴계 이황 선생은 정말 골수 성리학자였기에 현대의 탐욕과 편리함을 양면적으로 상징하는 화폐에 먼 훗날 자신이 새겨진 것을 알면 참 씁쓸해하거나 매우 싫어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이는 화폐에 새겨진 조선시대 인물 전원이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퇴계 이황의 표준 영정 자체는 고증 오류가 큰 상상의 그림이다.

[1] 구권을 지금도 쓸 수 있긴 하다. 자판기는 잘 안 먹긴 하지만. 대신 은행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바깥 구경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우체국 및 별정우체국 금융창구를 비롯하여 상호저축은행, 농·축협, 지역단위수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기관, 금융투자회사로 분류되는 증권사, 종금사 등의 제2금융권 등지를 통해서 들어가도 두 번 다시 바깥 구경을 할 수가 없게 되긴 마찬가지다. [2] 우리나라 주화의 초상화 주인공은 신사임당 빼고는 싹~다 씨들이다. , 100원의 이순신, 1,000원권의 이황, 5,000원권의 이이, 10,000원권의 이도. 게다가 5천 원권과 5만 원권은 관계.[3] 여담으로 발행 초기에 나온 천 원권은 천 원권 발행 시 사용되는 잉크로 인해 냄새가 심하게 나서 똥돈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4] 2007년에는 신권과 구권이 같이 통용되었는데, 2008년부터 시중에서 뿐만 아니라 방송 등지에서도 신권이 보이게 되었다. 방송에서의 경우는 대표적으로 가족오락관 스피드게임에서 돈 세기를 하는 경우이다.[5] 화폐 수집가 등에 의해 온라인에서 90,000~150,000원 대로 거래되고 있다. [6] 정작 퇴계는 영정에서 쓰고 있는 복건을, "중이 쓰는 고깔 같은 모양새"라고 해서 누가 복건을 선물로 보내줘도 절대 쓰고 다니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안 자체가 고증 오류인 셈.[7] 가 천 원(1975년 8월 14일), 가 오천 원(1972년 7월 1일), 가 만 원(1973년 6월 12일).[8] 오천 원권 지폐: '''주황색''', 만 원권 지폐: '''녹색'''[9] 지폐 반환구가 있는 자판기는 그걸 막지 않으면 만 원, 오천 원권도 인식하나, 거스름돈을 줄 때 지폐 단위가 걸리면 천 원권 지폐로 준다.[10] 천 원권 지폐가 처음 나왔던 1975년 08월 당시의 천 원 가치는 2019년 1월 기준으로 '''10,083원'''에 해당한다. 화폐가치 계산[11] 1975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천 원권 지폐가 오천 원권 지폐와 더불어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낼 때 많이 사용되었었다. 그 이후로는 물가가 올라감으로 인하여 그 역할을 만 원권 지폐가 하게 된다.[12] 오히려 천 원 김밥의 전성시대는 90년대보다는 2000년대였다. 김밥천국을 위시한 각종 김밥 체인점에서 기본 김밥 저가 판매 정책으로 2~3천 원 하던 김밥 한 줄이 내용물도 간소화고 가격도 저렴해진 것.[13] 사실 이 시기면 노점상이라도 1,0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2020년 지금도 그렇지만 노량진 노점상 물가는 인근 영등포 등과 비교해 봐도 훨씬 쌌다.[14] 천 원 김밥의 줄임말[15] 편의점 기준 가격으로 환산하면 빼빼로 1,500원, 새우깡 1,300원, 양파링 1,500원 등등... 뿌셔뿌셔는 900원이라서 천 원권 지폐 한 장으로 사 먹는 것은 가능하다.[16] 1파운드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 1997년부터는 2파운드 동전 발행.[17] 50, 100, 500엔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18] 1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19] 1, 2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20] 1, 2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21] 1, 5, 10셰켈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22] 동전 없는 사회를 꿈꾸는 한국은행의 의지가 가장 큰 이유다. 동전을 만들어도 유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생산비용이 늘게 된다는 것이다.[23] 또한, 한국인들이 상대적으로 동전보다 지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이유도 있다. 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의 지폐 선호 경향 때문인지 다른 선진국 및 고소득 국가에서 동전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대한민국미국에서는 천 원권 지폐와 1달러 지폐가 도맡아 한다.[24] 사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차원에서 1 미국 달러 지폐를 동전으로 교체하려고 시도했으나 제1의 기축통화이라는 명분에다가 국내외 반대가 세서 실패하기도 했다.[25] 한국에서 지폐를 선호하는 경향과 비슷한 맥락이다.[26] 10달러권을 홍콩 정부에서 발행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자세한 내용은 홍콩 달러 문서 참조.[27] 200, 500, 1000, 2000, 5000동권이 동전이었으며, 해당 액면은 80년대 후반부터 발행한 구권 지폐로 해결하고 있다.[28] 한국은행 홈페이지 기준으로 1975년 8월 14일 ~ 2016년 6월 1일까지 발행된 지폐를 말한다.[29] 첫번째 천원권으로 물건 구매한 외국인 이야기가 있다.[30] 떠도는 이야기로는 미국의 다우지수에 편입된 대형은행의 플로리다 주의 한 지점에서 환전된 돈이라고...[31] 당시 가격은 30.94-30.71[32] 당시 가격은 천원 곱하기이므로 26.7-24.8[33] 유럽 국가의 언어인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독일어네덜란드어 등은 물론 우즈베크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타갈로그와 중국의 한어병음 등등까지 로마자로 표기한다. 일본어 자판이 로마자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사실상 사어(死語)인 만주어까지도 오늘날 만주 문자 대신 발음 기호로서 로마자로 표기되는 일이 잦다. 물론 로마자를 사용하는 서구권 국가들의 국력과 과거사의 영향으로 로마자가 퍼진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상당한 국제 문자가 어떤 식으로 확산되었는지 생각하면 새삼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한글 자판과 한글의 편리한 이용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에는 역설적으로 이미 로마자와 키릴 문자, 아랍 문자, 한자데바나가리 문자를 비롯한 소수의 국제 문자들과 그 변형이 수없이 많은 민족 언어들의 보편적인 표기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