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 뉴욕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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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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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뉴욕 엑스포 입장권.
1939년 4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1940년 5월 11일부터 11월 27일까지 '''한 곳에서 두 번 개최된''' 엑스포이다. 미국 뉴욕에서 개최하였다.
1939년 엑스포의 총 관람객 수는 4,493만 2,978명이다.
2. 개최 과정
1935년 세계 대공황의 절정을 막 통과한 미국에서는 엑스포 개최로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했다. 이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선전하려는 목적도 있고 해서 엑스포 시행을 타진하였다. 원래는 1937년에 개최하려 했으나, 1937 파리 엑스포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기에 당시 막 설립된 국제박람회기구에서는 개최 연도를 바꿀 것을 요청하였다. 그래서 1939년으로 연기하여 개최하게 되었다.
3.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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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세계 대공황에서 막 벗어나는 중이었기에 이 엑스포에 무지 신경을 많이 썼다. 게다가 부지도 맨하탄 한복판에 지정할 정도로 열성이었다.
원래는 1번만 하고 끝나야 정상이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이 때문에 1940년부터 예정되어 있던 모든 엑스포들이 줄줄이 다 취소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1939년 ~ 1940년까지는 중립국 위치였다. 때문에 국제박람회기구에 요청해서 '''1940년에 박람회를 한 번 더 개최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쯤 되면 1940 뉴욕 엑스포라는 문서가 생겨야 할 것 같지만, 1939년 뉴욕 엑스포 부지를 그대로 재활용했고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40년에는 미국 외에는 모든 국가가 참가를 포기했다. 그래서 국제박람회기구에서도 1940년 박람회를 따로 한 것으로 치지 않고 1939년 뉴욕 엑스포에 통합해서 처리하고 있다.
4. 기타
2019년 현재 1939년 뉴욕 엑스포 부지는 거의 대부분이 철거 후 재개발되어서 엑스포 박람회장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박람회 주제관과 미국 국가관이 있었던 곳만 2019년 현재 제이콥 K. 재비츠 컨벤션센터라는 전시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부 재개발되어서 사라졌다.
쥐(만화)의 작중 화자인 블라덱 슈피겔만의 손윗 처남인 헤르만과 헬렌 질버베르그 부부가 뉴욕 엑스포를 관람했었다. 전쟁이 터진 시점에서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홀로코스트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