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A3 콘덴사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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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А3 콘덴사토르 (2А3 Конденсатор-2П)
전장 : 20 m
차폭 : 3.08 m
차고 : 5.75 m
중량 : 64톤
승무원 : 8명
무장 : 406 mm SM-54 주포
연사속도 : 1발/5분
동력 : V-12-6B (В-12-6Б) 디젤 엔진 (750마력)
냉전 초기 소비에트 연방에서 개발된 406mm 자주포로, 2A3는 GRAU 코드명이며 콘덴사토르(Конденсато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55년 11월 18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각료회의(Постановление ЦК КПСС и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의 결의에 따라 자주식 박격포 2B1 오카와 중자주포인 '''2А3 콘덴사토르(2А3 Конденсатор-2П)'''에 대한 병행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두 종류 포들의 주요 목적은 적의 산업 및 군사 시설의 파괴로,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2А3 콘덴사토르는 핵시대를 맞은 미군이 새로 짠 전술교리에 따라 핵 포병부대를 포함한 핵무기를 중점적으로 운용하는 새로운 편제인 펜토믹 사단(Pentomic Division)의 창설에 대한 대응책으로 서둘러 만들어진 무기였다. 히로시마 원폭과 맞먹는 15킬로톤 위력의 핵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M65 280mm 아토믹 애니'''는 1952년에 개발되어 1953년에 동독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서독군에 전진 배치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련 당국은 아토믹 애니와 마찬가지로 핵포탄을 발사하는 기능이 있는 406mm 자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1] 이 프로젝트에 의해 개발된 대구경 자주포를 올릴 플랫폼은 오비예끄뜨 271(Объект 271)이라는 계획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전함의 16인치 주포와 맞먹는 406mm SM-54 대포(406-мм пушка СМ-54)가 이 자주포의 유일무이한 무장이었다. 무겁고 장대한 포신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전용 유압 모터를 이용했다. 이 포신은 좌우로 선회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길고 무거워 일정 각도 이상 옆으로 돌리게 되면 차체가 뒤집어지므로 포신 선회는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차체를 돌려 좌우 조준편차를 수정하는 것은 너무 느리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몇 도의 여유는 있었는데, 특수한 전동 모터를 이용해 포신을 좌우로 약간씩 움직일 수 있었다.
대구경 포와 장전 및 폐쇄장치, 그리고 작동 메커니즘은 제34중앙실험설계국(ЦКБ-34)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Иван Иванович Иванов : 1904~1976) 국장이 지휘하에 바실리 G. 그라빈(Василий Гаврилович Грабин : 1900~1980)이 이끄는 그라빈 설계국의 주도로 1955년에 완성시켰다. 여기에 T-10M 중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된 오비예끄뜨 271이 레닌그라드의 코틴 설계국에 의해 완성되었다. 설계국장 조제프 코틴(Жозеф Яковлевич Котин : 1908~1979)의 감독 하에 키로프 공장(Кировский Завод)으로 옮겨온 SM-54 포를 차체에 결합해 1호차가 완성된 것은 1956년으로, 군 당국은 2A3라는 분류기호를 붙이고 배치를 서둘렀지만 실제로 완성된 것은 불과 4대에 지나지 않았다.
서방측은 첩보 활동을 통해 1957년에 붉은 광장에서 개최된 군사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이 신무기를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다. 당시 서방의 정보 분석가들은 실물을 직접 보지를 못해 흑백사진으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 탓에 이 자주포는 미국에 대한 핵억제력을 얻기 위해서 기존 전차를 이용해 급히 굴러만 갈 수 있게 만든 모형이라고 추측했었지만, 사실 콘덴사토르 자주포는 1956년부터 실탄 사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콘덴사토르는 1956년부터 레닌그라드 부근에 있는 루즈스키 포병사격장(Лужский артиллерийский полигон)에서 야전 조건을 재현해 시험이 시작되었으나,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 실제로 운용된 기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중자주포는 다음과 같은 주된 문제점들이 지적받았지만, 당대의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4대의 콘덴사토르 자주포는 1960년에 퇴역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중에 1대는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 무기군사박물관(Музей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에 옥외 전시되어있다.
2А3 콘덴사토르 (2А3 Конденсатор-2П)
1. 제원
전장 : 20 m
차폭 : 3.08 m
차고 : 5.75 m
중량 : 64톤
승무원 : 8명
무장 : 406 mm SM-54 주포
연사속도 : 1발/5분
동력 : V-12-6B (В-12-6Б) 디젤 엔진 (750마력)
2. 개발 배경
냉전 초기 소비에트 연방에서 개발된 406mm 자주포로, 2A3는 GRAU 코드명이며 콘덴사토르(Конденсато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55년 11월 18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각료회의(Постановление ЦК КПСС и Совета Министров СССР)의 결의에 따라 자주식 박격포 2B1 오카와 중자주포인 '''2А3 콘덴사토르(2А3 Конденсатор-2П)'''에 대한 병행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 두 종류 포들의 주요 목적은 적의 산업 및 군사 시설의 파괴로, 재래식 탄두와 핵탄두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2А3 콘덴사토르는 핵시대를 맞은 미군이 새로 짠 전술교리에 따라 핵 포병부대를 포함한 핵무기를 중점적으로 운용하는 새로운 편제인 펜토믹 사단(Pentomic Division)의 창설에 대한 대응책으로 서둘러 만들어진 무기였다. 히로시마 원폭과 맞먹는 15킬로톤 위력의 핵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M65 280mm 아토믹 애니'''는 1952년에 개발되어 1953년에 동독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서독군에 전진 배치되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련 당국은 아토믹 애니와 마찬가지로 핵포탄을 발사하는 기능이 있는 406mm 자주포의 개발에 착수했다.[1] 이 프로젝트에 의해 개발된 대구경 자주포를 올릴 플랫폼은 오비예끄뜨 271(Объект 271)이라는 계획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3. 전함의 주포와 동급
전함의 16인치 주포와 맞먹는 406mm SM-54 대포(406-мм пушка СМ-54)가 이 자주포의 유일무이한 무장이었다. 무겁고 장대한 포신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전용 유압 모터를 이용했다. 이 포신은 좌우로 선회할 수는 있었지만 너무 길고 무거워 일정 각도 이상 옆으로 돌리게 되면 차체가 뒤집어지므로 포신 선회는 금지되었다. 그렇다고 차체를 돌려 좌우 조준편차를 수정하는 것은 너무 느리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몇 도의 여유는 있었는데, 특수한 전동 모터를 이용해 포신을 좌우로 약간씩 움직일 수 있었다.
4. 극소수만 생산
대구경 포와 장전 및 폐쇄장치, 그리고 작동 메커니즘은 제34중앙실험설계국(ЦКБ-34)의 이반 이바노비치 이바노프(Иван Иванович Иванов : 1904~1976) 국장이 지휘하에 바실리 G. 그라빈(Василий Гаврилович Грабин : 1900~1980)이 이끄는 그라빈 설계국의 주도로 1955년에 완성시켰다. 여기에 T-10M 중전차의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된 오비예끄뜨 271이 레닌그라드의 코틴 설계국에 의해 완성되었다. 설계국장 조제프 코틴(Жозеф Яковлевич Котин : 1908~1979)의 감독 하에 키로프 공장(Кировский Завод)으로 옮겨온 SM-54 포를 차체에 결합해 1호차가 완성된 것은 1956년으로, 군 당국은 2A3라는 분류기호를 붙이고 배치를 서둘렀지만 실제로 완성된 것은 불과 4대에 지나지 않았다.
서방측은 첩보 활동을 통해 1957년에 붉은 광장에서 개최된 군사 퍼레이드에서 행진하는 이 신무기를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다. 당시 서방의 정보 분석가들은 실물을 직접 보지를 못해 흑백사진으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된 탓에 이 자주포는 미국에 대한 핵억제력을 얻기 위해서 기존 전차를 이용해 급히 굴러만 갈 수 있게 만든 모형이라고 추측했었지만, 사실 콘덴사토르 자주포는 1956년부터 실탄 사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5. 짧은 운용
콘덴사토르는 1956년부터 레닌그라드 부근에 있는 루즈스키 포병사격장(Лужский артиллерийский полигон)에서 야전 조건을 재현해 시험이 시작되었으나,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 실제로 운용된 기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 중자주포는 다음과 같은 주된 문제점들이 지적받았지만, 당대의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차체가 과도하게 무거워 변속기 기어박스의 마모율이 지나치게 높다.
- 사격시 일어난 강력한 반동으로 차체가 뒤로 몇 미터씩 밀려나 차탄 명중률이 낮다. [2]
- 발사 충격으로 인해 각종 차내 설비들이 파손이 잦다.
- 모의 실험 결과 핵탄두 발사시 차량 자체의 파손은 더 클 것으로 판단됨.
4대의 콘덴사토르 자주포는 1960년에 퇴역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중에 1대는 모스크바에 있는 중앙 무기군사박물관(Музей Вооруженных сил)에 옥외 전시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