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프 코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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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Жозеф Яковлевич Котин'''
'''Josef Yakovlevich Kotin'''
(1908년 3월 23일~1979년 10월 21일)[1]
1. 개요
2. 상세
2.1. 여담
2.2. 참고


1. 개요


조제프 코틴, 간혹 조제프 코친이라고도 한다. 전간기부터 냉전기에 이르기까지 '''소련 중전차 개발사의 아버지'''로 키로프 공장 SKB-2 수석 설계자 및 국방공업부 차관을 역임했다.

2. 상세


코틴은 1908년 러시아 제국령 파블로그라드(현재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태어났다. 1927년 하리코프 기술대학 졸업을 시작으로 1931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2년에 제르진스키 군사대학을 졸업했다. 그후 1937년 5월 키로프 공장 SKB-2(2번 특별설계국) 국장 및 수석 설계자로 임명되어 당시 키로프 공장에서 양산되던 T-28 개량 프로젝트 T-29(미국 프로토타입 중전차 T29와는 다르다) 개발을 진행했다.
1939년 무렵엔 SMK부터 역작 KV-1 중전차를 내놓았다. 1941년에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로 대피하여 대리설계수석으로 있으면서 니콜라이 듀호프 합작으로 IS-2IS-3 설계에 관여했다. IS-3 설계가 끝나고 키로프 공장(코친 설계팀)은 신형 전차인 IS-6을, 첼랴빈스크(듀호프 설계팀)는 기존 IS-2를 개량한 IS-4로 경쟁했고, 도중인 1944년에 다시 키로프 공장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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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계급이 달린 정복을 입은 말년의 코틴. 1968년까지 키로프 공장 SKB-2 국장으로 있다가 퇴임하고, 곧바로 소련 국방공업부(Министерство оборонной промышленности СССР) 차관을 72년까지 역임했으며, 79년 모스크바에서 71세로 타계했다.

2.1. 여담


SMKKV-5봐도 알 수 있듯이 다포탑 전차, 기관총 덕후로 '중전차라면 대전차화기와 대보병화기를 다로 구비해야만 한다'는 그의 강한 집착에서 기인했던 문제다. T-28T-35의 개발참여를 시작으로 정절에 이르러 1939년에 다포탑 전차 SMK를 내놓는 기행을 벌이다가 스탈린한테 백화점 드립으로 퇴짜를 맞았다. 이후 KV-1조차도 프로토타입에 76mm 주포와 45mm 부포를 달고 있었고(양산형에선 7.62mm 동축기관총으로 교체) KV-2에 중량 문제가 생기자, 이번엔 KV-2 포탑에 차체 크기도 늘리면서 기관총탑도 단 KV-5를 내놓았다. 1941년 레닌그라드 공방전으로 코친과 설계진들이 KV-5 같은 시제차를 다 버리고 첼랴빈스크 트랙터 공장으로 건너면서 그의 신념은 끝이 날 수 있었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라 IS-2에 KV-1처럼 후방기총을 달아 방어력 약화의 원인이 됐으며, 그나마 T-10M에 와서는 다른 전차처럼 KPVT 2정만 달고 끝냈다. 다만 위와 별개로 포탑후방 탄약 가대가 있는 IS-6처럼 의외로 승무원의 편의성도 중시했다고 한다. 물론 IS-6은 나치의 페르디난트 자주포를 참고한 하이브리드 엔진을 달아버려서 실제로 굴릴 생각이 없이 단지 기술자의 로망만을 실현하는 전차가 되어버렸고 IS-4는 너무 무거워서 수송이 안되어 극동에 버리다시피 박아놨다. 종합하자면 KV부터 T-10까지 분명 스펙은 높고 뭔가 있어는 보이지만 실제로는 쓸모가 전혀 없는 전차를 만들어서는 상급자가 기각하고 개선안을 내도록 해야만 괜찮은 전차를 만드는 개발자였다.[2]
또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조카(어떤 문서는 사위라고 함)여서 알게 모르게 이 분의 입지가 적용해 다른 설계자처럼 숙청당하지도 않았고, 유력했던 후원자 보로실로프가 뒷전으로 밀려날 때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후원자로 두어 근 20년간 키로프 공장에 머물며 전차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만 베리야를 후원자로 둔 것은 후에 베리야의 적인 니키타 흐루쇼프가 서기장으로 올라오면서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고 코친의 마지막작이던 T-10M의 양산 중지에 기인했다.

2.2. 참고




[1] 당시 율리우스력 기준으로 3월 10일생이다.[2] 상대적으로 소련에서 이와 반대되어 적당한 스펙에 대량생산 및 대량운용에 용이한 전차를 찍어내는 성향을 지닌 곳은 UVZ로서 더 나은 생산 및 운용을 위해 스펙을 낮추고 소프트스펙에 관련된 부품들을 빼버리는 일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물론 이쪽도 가끔은 양산 및 운용에 난감한 전차를 만들기도 했고 몇번은 윗선의 요구사항을 무시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최신기술을 덕지덕지 쳐발라서 다른 설계국의 비싸디 비싼 전차들보다 더 우수한, 공돌이의 로망을 실현한 전차를 만들어 자기들 기술을 뽐낸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