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0
- T-10이 역번호인 역 : 야쿠시도역(미야기), 히가시야마역(교토), 니혼바시역
- Su-35의 개발 프로젝트 명칭 T-10M 프로젝트
1. 개요
1953년 12월 15일 제식 채용된 중전차로 시기를 잘못 타고난 서방의 M103, 컨커러와 함께 묻혀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993년 12월 26일'''이 돼서야 퇴역할 정도로 40년 가까이 소련군/러시아군에서 운용되었다. Т-10은 Тяжёлый танк-10의 약어로 직역하면 중전차 10형이다.
2. 개발사
2.1. 배경
1945년 2차대전 종전 당시 소련군의 중전차는 3개로 IS-2와 IS-3, 그리고 IS-4가 있었다. 그러나 IS-2는 이미 구식이었고 기존 IS-2의 약점 부위를 보완하고 새로운 장갑형상과 포탑 등을 사용하여 방어력을 끌어올린 IS-3은 강력했으나 전투 지속력이 부족했다. IS-4 또한 IS-3 이전부터 60톤급 중장갑을 두른 중전차로 개발되었고 1946년부터 51년까지 소량 양산되긴 하였으나 너무 무겁고 느려서 그냥 실패한 전차로 판명되었고, 2선급 전선인 극동에 배치되어 실질적으로 IS-2보다도 빠르게 퇴역하게 된다. 중전차의 종류는 3가지나 있었으나 하나같이 부족한 면이 있었기에 소련 군부는 앞으로 다가올 냉전기에 걸맞는 신형 주력 중전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2.2. 오비옉트 260
여러 중전차 설계안들이 제출되었으나 그 중 가장 유력했던 것은 키로프 공장에서 조제프 코틴 주도하에 신형 중전차 오비옉트 260로서 이 전차는 1945년 9월부터 개발이 진행됐다. 오비옉트 260은 68톤급 중전차로써 전측면의 경우 영거리에서 독일제 88mm 포와 128mm 포는 물론, 자신의 130mm 포를 완전히 방어해내어 최대속력이 60km까지 달하는 기동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무겁다는 문제가 있어 불안감을 느낀 소련은 48년 말부터 IS-4를 바탕으로 IS-3의 경사장갑과 포탑등을 도입하여 다이어트 시키는 개발안인 오비옉트 730. 즉, IS-5를 개발하기 시작했다.[1] 이와 별개로 오비옉트 260은 IS-5와 IS-6에 이은 제식명 IS-7로 명명되어 제식 채용이 검토되었으나, T-54 중형전차의 우선 양산 계획을 잡은 GABTU의 결정과 결정적인 중량 초과 문제로 1949년에 뒤엎어져 버렸다. 이와 더불어 신형 중전차에 대해 주포는 122mm 구경일 것이며, 중량이 50톤 미만으로 제한을 걸었다.
2.3. 오비옉트 730
오비옉트 260을 실패한 코친의 주도하에 1949년부터 BNII-100, SKB-2 공동으로 50톤급 중전차 IS-5의 개발이 진행됐고, 소련 장관회의(СМ СССР) No.701-270 결의안에 따라 GABTU는 시제명 오비옉트 730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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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9월에 등장한 오비옉트 730의 프로토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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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1월 28일 결의안 No.2860-1516에 따라 T-10으로 제식 채용된 오비옉트 730
1949년 4월에 최초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었고 총 10대의 프로토타입이 생산되어 1949년에 공장내 테스트를 받았다, 1950년 4~5월에는 쿠빈카에서 테스트를 통과해 7월부터 IS-5 10대가 생산되어 소련군에 배치됐다. 이 선행양산형은 1951년부터 1952년간 반복적으로 테스트되었고, 최종 채용 결정안이 1953년에 받아졌다. IS-5는 공장내 테스트 중 개량되어 설계안 자체를 새로 갈아엎었고 이 개량형은 IS-8로 새로 제식명을 받았다. 다만 스탈린 사후 격하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상황에 스탈린이란 이름을 사용한다는 명칭상 문제 때문에 244호 명령이 하달되면서 1953년 12월 15일 T-10(중전차 10형)으로 개명되어 채용됐다.[2] 이렇게 T-10 극초기형은 1953년부터 1956년 동안 ChTZ에서 생산됐다.
3. T-1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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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옉트 731(또는 오비옉트 730A)
주포가 D-25TA로 변경되었다. 이때부터 반자동장전장치와 수직 포신안정장치 PYOT-1 우라간이 설치됐으며 배연기로 포사격에 발생하는 포연의 내부 유입을 막을 수 있었다. 1956~57년 동안 ChTZ에서 70대가 생산되었다.
4. T-1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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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옉트 733(또는 오비옉트 730B)
T-10B가 와서야 주포가 122mm D-25TS로 변경되면서 스테빌라이저 PUOT-2 그롬과 주포와 독립된 방식의 포수 조준경 T2S-29-14이 탑재됐다. 그롬의 장착으로 기동간 사격이 어느정도 가능해졌으며, 잘 안 알려진 사실로는 OPVT(잠수도하장비)를 장착하면 잠수도하가 가능하다. 지휘차량인 T-10BK도 존재했다고 한다. 그외 T-10A와는 외형상 별 차이가 없다. 1957년 동안에만 ChTZ에서 110대만이 생산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T-10M이 등장했다.
5. 현대화 개량형 T-10M
조제프 코틴의 주도로 키로프 공장에서 1955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오비옉트 272로 지정된 T-10M은 이전 T-10B보다 더 발전한 형태로 사실상 IS-3 사골에 불과했던 기존 T-10 계열들과는 많은 차이가 보였다. 코친 외에도 설계팀에 A. S. 쉬니트만과 P. P. 미하일로프가 참여했으며, 1956년 말부터 1959년 2월까지 키로프 공장에서 처음으로 프로토타입 3대가 제작되어 그 해 8~9월에 테스트를 통과했고, GABTU의 양산 허가에 따라 1960년 봄까지 키로프 공장에서 20대가 선행 생산됐다.
동시에 1957년 12월 3일 ChTZ에서 오비옉트 734A의 최초 프로토타입이 제작됐는데, 오비옉트 734은 ChTZ에서 남아돌던 구형 T-10에 T-10M급으로 개선을 가한 형태로 그 해 9월 6일 소련 각료평의회 No.1083-488에 따라 T-10M으로 명명되어 1958~59년 동안 230대가 ChTZ에서 양산된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1960년 원래 T-10M인 오비옉트 272의 양산으로 넘어갔다. 오비옉트 272는 ChTZ에서 1958~62년 동안 304대, 키로프 공장에서 1958~65년 동안 555대가 양산됐고, 덤으로 T-10MK(오비옉트 272K)는 1959~64년 동안 키로프 공장에서 100대가 양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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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TZ의 오비옉트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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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프 공장의 오비옉트 272
암튼 이렇게 문서마다 집계가 다르지만 러시아측 서적에 따르면 1,139대가 ChTZ와 키로프 공장에서 1958~65년 사이에 생산됐다. 이는 T-10M(Object 272/734)과 지휘형 T-10MK(Object 272M)을 포함한 수치다. 1958~62년 동안 오비옉트 734 230대와 오비옉트 272 304대가 ChTZ에서 생산됐으며, 1958~65년 동안 오비옉트 272 555대와 T-10MK 100대가 키로프 공장에서 생산됐다. (출처: Техника и вооружение 2012 11 p.54)
사실상 T-10의 완전체로 봐도 무방비 할 정도로 기존 T-10 계열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주포가 122mm M-62T2로 기존 D-25T 계열보다 포신 구경장이 증대했고, 포반동을 70%까지 억제가 가능한 다공식 포구제퇴기로 변경됐다. 포탄 역시 신형 포탄을 사용하여 관통력이 증대했으며, 포탄이 전부 분리장약식으로 약실 입구에 반자동장전장치 있었다.[3] 좀 더 향상된 PUST-2S 리벤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되었다.[4] 더불어 1967년에 3BM11 분리철갑탄과 3BK9 대전차고폭탄이 지급되면서 기존 대보병지원 전선돌파 임무와 동시에 대전차전 수행이 가능해졌다. 포수조준경으로는 주간조준경 TSh-29-14 우다르(3.1/8배율)와 야간조준경 TPN-1-29-14 루나(5.5배율), 그리고 야간전용 L-2 루나 적외선탐조등을 갖췄다.
방어력의 경우 기존 T-10의 현대화 개량형이기 때문에 포탑을 제외한 차체 방어력의 증대는 거의 없었다. 다만 NBC 방호장치 때문에 포탑 상면에 존재했던 벤틸레이터(환기장치)가 제거됐다.[5] 그외 ChTZ에서 개발되어 터보차처가 달린 V-12-6B 액랭식 디젤 엔진이 창착되어 출력이 750hp로 50hp가 증가했다. 또한 OPVT(잠수도하장비)가 있어 장착 시 5m 깊이 강의 잠수 도하가 가능했다.
시험용으로 T-10M 포탑 후방에 9K11 말륫카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오비옉트 272M이 존재했었는데, 당시에는 전차에 미사일을 달고서 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시험에만 그쳤다. 또 현대화 계획 때는 심지어는 23mm 개틀링을 장착해서 세계 최초의 능동방어를 실현하기도 했다. 물론, 요즘 방식처럼 요격 목표를 정교하게 격추하는게 아니라 그냥 미사일이 발사된 쪽으로 무식하게 탄환을 뿌려서, 사수를 움츠러들게 해 시선유도를 방해하는 식이었다. 미사일을 맞춰서 하드킬을 하는게 '''어쩌다 운 좋게''' 일어나는게 된 신박한 능동방어장치다.
6. 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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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조약군의 다뉴브 작전 당시 프라하 거리에서 찍힌 소련군 T-10M 독립중전차대대, 1968년 8월 21일
1968년 체코 침공 당시 한차례 실전 기록이 존재한다. 시위대에 처참히 당한 T-54/55/62와 달리, 낙서 보복을 당한 것 빼고는 별 탈 없이 복귀했다. 다음 링크에서 사진을 좀 더 볼 수 있다. #
이 밖에도 1970년대 초에 시리아와 이집트에 최신예 전투기 MiG-25와 함께 수출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욤 키푸르 전쟁에서 화력지원용으로 T-55/62 후방에 투입되다가 별 다른 활약없이 이스라엘군에 노획되는 등의 수모를 겪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최신병기가 수출되는 자리라서 당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이 참관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련이 T-10을 타국에 수출했던 적이 없으며, 관련 기록이 전무하고 당시 이집트에 수출되거나 이스라엘에 노획된 건 T-10이 아니라 IS-3 현대화 개량형 IS-3M라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7. 말로
T-10M은 조향성을 제외한 나머지 기동성이나 화력면에서 비싼만큼 T-54나 T-55에 비하면 확실히 우수한 전차였다. 그러나 대전차화기 발달과 중형전차가 중전차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이 가능한 주력전차 개념이 확립되어 점차 중전차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덤으로 당시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열렬한 미사일 지지자로 미사일 기술에 치중해서 미사일과 우주사업이 크게 발전된 면도 있었지만, 이와 반대로 재래식 전력에 회의적이어서 중전차보다는 MBT로 완성되어가던 중형전차[6] 에 몰두했고 여기에 키로프 공장 전차설계주임 조제프 코틴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7] 까지 덧붙여져서 정치적으로도 T-10M의 추가적인 양산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중전차라는 한계때문에 발전하는 시대에 따라가지 못했다. 1961년에 등장한 T-62와의 시험에서 방어력은 동등하나 화력은 T-62가 더 우세하다는 평을 받았고, 1968년 등장한 T-64A라는 복합장갑을 단 38톤급 주력전차한테 신뢰성을 제외한 모든 성능면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또한 흐루쇼프의 결정으로 1965년 ChTZ에서 마지막 생산분을 끝으로 T-10M의 양산은 완전히 중지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 돌파 및 대보병 지원을 위해 독립중전차대대에 배치되어 1967년 대전차전을 염두한 신형 포탄(APDS, HEAT)이 도입되고 1968년엔 체코에 투입되는 등 1970년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있었다. 1972년 일부 T-10M(사실상 양산되지 못하고 남아돌았던 200대 남짓한 T-10 차체를 T-10M급으로 개량하여 양산된 오비옉트 734)을 퇴역하고서 나머지에 근대화 개수가 진행되었고, 1985년엔 독소전쟁 배경의 전쟁영화에도 출연했다.
이렇게 남은 T-10M들은 소련군이 해체되고도 러시아군에 인수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국방장관 명령 593호에 따라 1993년 12월 26일 정식으로 군에서 퇴역할 수 있었다. 나름 존재감 없이 일찍이 도태된 M103이나 컨커러 전차에 비하면 근 40년간을 소련군과 함께 동고동락해 나은 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음은 현재 보존된 차량들의 목록이다.
- 러시아
- 모스크바 중앙혁명박물관
- 모스크바 Vadim Zadorozhny
- 니즈니 노브고로드 오블래스트
- 니즈니 노브고로드 사티스
- 쿠빈카 전차 박물관
8. 파생형
문서 참고.
9. 매체에서의 등장
본국 소련에서조차 T-10의 대해서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에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는데 매우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밀덕들 사이에서도 IS-3와 흡사한 차체 때문에 IS-3와 혼동되기도 했지만 그나마 1985년작 소련 전쟁영화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넘어서 게임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에 등장해 인지도가 높아졌다.
9.1. 게임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에서 각각 극초기형 T-10과 현대화 개량형 T-10M으로 등장한다. 월탱에선 9.12 패치 이전까지 IS-8로 등장했다는 점과 게임 내 스탈린 전차 애칭(숙청, 숙삼, 숙사 등) 때문에 한국 유저 한정 애칭으로 '''숙팔''' 등이 존재했었고, 워 썬더 한국 유저 역시 소련 전차 애칭(떼삼사, 떼오사 등)의 영향을 받아 티텐엠 또는 떼십엠으로 불렀다. 월탱 유저도 T-10으로 개명되고 나서는 티텐이나 떼십으로 부르는 추세다.
원자력 시대의 첫 번째 중전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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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M(Object 272)가 소련 지상군 5랭크 중전차(BR 8.0)로 1.51 패치 때 등장했다. 1.63 패치 조준경 배율 확대와 함께 1.67 때는 스태빌라이저가 추가되어 고증대로 기동간 사격이 가능해졌다. 처음 나왔을 때는 Class Cannon이라느니 소뽕 받은 놈이라고 유저들에게 욕을 쳐먹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해지면서 지금은 그냥 무난히 좋은 중전차가 되어버렸다.
T-10M(Object 272)가 소련 지상군 5랭크 중전차(BR 8.0)로 1.51 패치 때 등장했다. 1.63 패치 조준경 배율 확대와 함께 1.67 때는 스태빌라이저가 추가되어 고증대로 기동간 사격이 가능해졌다. 처음 나왔을 때는 Class Cannon이라느니 소뽕 받은 놈이라고 유저들에게 욕을 쳐먹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해지면서 지금은 그냥 무난히 좋은 중전차가 되어버렸다.
다만 주포의 성능이 출중해서 마우스 나 비슷한 시기 타국의 M103이나 컨커러와도 대등하게 싸우며, 각종 죽창 포탄이 등장하기 전까지 공방에서 일부 약점인 포방패와 조종수 해치를 제외하고는 무적이었다. 포방패의 경우 250mm 장갑과 100mm 포방패, 15mm 구조용강으로 보호 받는다. 다만 포탄이 포탑 안으로 빨려 들어가 승무원 모두 저승길 동무가 되는 참사가 은근 자주 발생한다.[10] 기동력 역시 소련 특유의 거지같은 조향성을 빼면 좋다. 타국 중전차보다는 당연히 기동력이 좋으며, 가끔씩 중형전차를 추월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패치로 인해 장갑 매커니즘이 수정되면서 방어력 감소 및 포탄 작약 감소 등의 너프를 먹었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이후 2.0 업데이트로 t-10A가 추가되었다.
패치 1.69로 파생형 Object 268도 자주포 트리 5랭크로 등장했다.
이후 2.0 업데이트로 t-10A가 추가되었다.
패치 1.69로 파생형 Object 268도 자주포 트리 5랭크로 등장했다.
소련 중전차 기동형 트리에서 T-10[11] 으로 9티어에 등장한다. 고증까지 무시당하며 자신의 선조격인 IS-7과 배다른 형제 IS-4에게 10티어 자리를 넘겨줬다. 여기서도 레일건 소리를 듣는 10티어 122mm M62-T2 주포는 소련 답지 않은 명중률과 준수한 화력으로 좋은 성능을 발휘한다. 과거 IS-8 시절에는 88 mm 에도 뚫리는 부실한 상부장갑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었고 특히 전티어가 바로 그 IS-3여서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기동형 건캐리어로써 운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버프를 받고 제법 괜찮은 수준까지는 왔다.
또한, 클랜전 보상 전차로 위 T-10이 제식 채용되기 이전 IS-5가 등장한다. 성능은 스톡 T-10과 다를게 없지만 공방에서 운용하는 유저의 실력대를 생각하면 상대하는 입장에서 영 껄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같은 국가 10티어 화력형 구축전차로 Object 268이 존재한다. 높은 위장률과 152mm의 한방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전차였으나.. 갖은 너프를 얻어맞고 상기 원본 중전차를 능가하는 소련의 갓구축이 되어 돌아왔다. 월드 오브 탱크/소련 테크 트리/구축전차 참조.
또한, 클랜전 보상 전차로 위 T-10이 제식 채용되기 이전 IS-5가 등장한다. 성능은 스톡 T-10과 다를게 없지만 공방에서 운용하는 유저의 실력대를 생각하면 상대하는 입장에서 영 껄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같은 국가 10티어 화력형 구축전차로 Object 268이 존재한다. 높은 위장률과 152mm의 한방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전차였으나.. 갖은 너프를 얻어맞고 상기 원본 중전차를 능가하는 소련의 갓구축이 되어 돌아왔다. 월드 오브 탱크/소련 테크 트리/구축전차 참조.
9.2. 모형화
2015년 하반기에 같은 중국 모형사 멩과 트럼페터에서 '''T-10M'''이 1:35 스케일로 발매됐다. 또한 트럼페터는 T-10과 T-10A도 덤으로 발매했다. 업체에 따라 크기나 형체에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는데, 트럼페터가 멩보다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큰 편이라고 한다. 트럼페터가 오버스케일인지 멩이 언더스케일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확도나 디테일 면에서는 트럼페터가 좋은 편이고, 품질이나 조립성 면에서는 멩이 좋은 편이라고 하니 자기 입맛에 맞춰 사자. 여담으로 가성비 면에서는 트럼페터가 1만원 이상 더 저렴한 편이다.
위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T-55같은 여타 소련 주력전차들과는 달리 T-10의 자료가 덕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장 두 회사가 참조한 도면 역시 다르다고 할 정도니 할 말이 없다. 해외 모델 포럼에서는 두 키트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베이스로 한 T-10M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T-10M의 경우 키로프 공장에서 개발된 오비옉트 272와 ChTZ에서 개발된 오비옉트 734라는 두가지 형태로 같은 시기에 병행생산이 진행됐는데, 일설에서는 둘 다 호환되는 부품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많이 다른 편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월탱에서 등장하는 전차들로 재미를 본 트럼페터가 오비옉트 268의 차체 키트를 공개했다! 오비옉트 268은 T-10의 차대를 기반으로 제작된 고정형 자주포로 전투실 형상과 경사장갑을 보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잘 안 알려진 사실로 타미야와 러시아의 프라모델 업체 '''나비가똘'''에서 20년도 더 전에 T-10을 발매했다! 지금은 둘 다 구할 수 없는데, 발매 시기를 생각하면 품질은.. 타미야의 경우 T-10 ISIII이란 명칭으로 T-10A를 발매했는데, 아무래도 IS-3과 혼동한 모양인지 영 틀린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발매 시대가 냉전이었던 것과 당시 소련이 T-10을 철저히 기밀로 부쳐 서방도 T-10의 존재를 거의 몰랐던 걸 생각하면 뭐라 할 수는 없다. 언제 타미야가 다시 T-10을 발매할지 모른다.
T-10M으로 최대한 많은 가동성을 추구하는 Meng model 답게 궤도와 서스펜션 모두 가동식이다. 궤도 조립성이나 내구도는 괜찮은 편이나, 연결가동식 궤도를 하나하나 조립하는건 좀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초기 meng model의 가동식 궤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편이기 때문에 품질에 있어서 큰 지장은 없다. 전차장 큐폴라도 회전될 수 있으며 주포 부앙각도 조정가능하지만, 주포 연결부의 폴리캡이 좀 헐거워서 그런지 힘을 못받는 편이라, 결국 포신 각도를 적정 부앙각에 맞추도록 접착하게 되므로 좀 아쉬운점.
그 외는 meng model 답게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가격은 6만원 후반 대로 트럼페터에 비해 1만원 정도가 비싼편이다. 트럼페터 제에 비했을때, 가동식 서스펜션 의 장점이 있으므로, 어느쪽을 구입할지는 취사 선택에 달려 있겠다.
멩에 비하면 품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정확도는 더 높다고 한다. 게다가 무한궤도가 멩처럼 전부 연결식이지만 조립하기에는 더 간단한 편이다. 이로써 극초기형 T-10과 T-10A, T-10M까지 구현이 가능해졌다.
- 종이 모형
러시아 서버에서 2016년 만우절 특집으로 월(月) 탱워즈에서 나왔던 IS-8 BALL 의 도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링크.
9.3. 영화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1985년작 소련 영화로 2부 초반에 소련군 전차로 등장한다. 기동하는 것과 망치질하는것 말고는 딱히 주목할만한 건 없다.
10. 둘러보기
[1] https://worldoftanks.com/en/news/general-news/is-5-overview/[2] 코틴은 니키타 흐루쇼프의 이니셜을 따 NKh-1(흐루쇼프 전차 1형) 또는 NKh-10(흐루쇼프 전차 10형)으로 개명하자는 방안도 내놓았다고 한다.[3] 2S1 그보즈디카 자주포의 장전장치와 구조가 유사한 형태다. T-10M 역시 현대화 계획 때 이전 조상 IS-2가 했던 것처럼 포탄을 일체형으로 하는 시도가 있었다. 결과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으나, T-10M 현대화 계획이 취소되면서 없어져 버렸다..[4] 50년대 중반은 소련군에 스테빌라이저가 대거 도입되던 시기로 T-10과 함께 소련군의 양대 전차인 T-54는 55년형 개량부터 2축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된 D-10T2S를 장비하여 양산되고 있었다. 53년형 T-54A의 1축 스테빌라이저 D-10TG보다 훨신 발전한 형태였다.[5] 동시대 T-55 역시 NBC 방호장치가 존재하며, 벤틸레이터 유무만으로도 T-54나 59식 전차와 구분이 가능하다.[6] 이 시기에는 흐루쇼프가 좋아하는 중형전차와 미사일 양쪽을 믹스한 미사일 전차의 개발도 많이 진행됐다.[7] 2차대전 당시부터 스탈린 생전 코틴 기사의 정치적 후원자는 흐루쇼프의 정적 '''라브렌티 베리야였다.'''[8] 2대가 전시되어 있다.[9] 해당 문서의 최상단 이미지이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에 속한다.[10] 주로 시가전을 비롯한 근거리 교전에서 고관통 APCBC 포탄으로 포방패를 공략당해 격파되는 경우다. 가끔씩 운빨로 포방패에 트랩샷이 발생해 조종수 해치를 뚫고 들어가 격파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러기 전에 본인이 먼저 격파된다.[11] 9.12 패치로 IS-8에서 T-10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2] 링크된 유튜브 영상의 1:04:50부터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