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J 새비지
'''노스 아메리칸 AJ 새비지(North American AJ Savage)'''
1. 제원
형식 : 쌍발 함상 중(重)공격기
초도 비행 : 1948년 7월 3일
운용 시기 : 1950년~1960년
승무원 : 3명
전장 : 19.2 m / 전폭 : 21.8 m / 전고 : 6.2 m / 익면적 : 78.0 m2
중량 : 12,500 kg~23,160 kg
동력 : R-2800-44W 공랭식 성형 엔진 2기(각2,400hp) / 앨리슨 J33-A-1 터보제트 엔진 1기 (4,600lb)
최대속도 : 758 km/h
항속거리 : 2,767 km
상승한도 : 13,100 m
무장 : 자유낙하식 Mark 4 핵폭탄(중량 4.93톤) 1발 또는 일반 폭장 5,400 kg
생산수 : 143대
2. 전술군으로 강등된 미 해군
노스 아메리칸(North American) 사가 핵무기 투사 능력을 얻기 위해서 혈안이 된 미 해군이 구상한 대형 함상공격기로 개발해낸 기종이 AJ 새비지였다.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처음 실전에 투입된 원자폭탄은 곧 양산 체재에 들어갔지만 5톤에 가까운 무게와 크기 때문에 함재기 중에는 이걸 실을 수 있는 기종을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미 해군은 새로운 전략병기로 각광받게 된 핵무기 운용 능력을 가질 수 없었고, 마찬가지 사정이었던 미 육군과 해군은 2류 전술군 취급받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육군과 해군은 신무기를 갖추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막후에서 협정을 맺었고, 육군은 독일에서 노획한 V2 로켓을 해군에 넘겨주는 뜻밖의 도움을 제공했다. 그 무렵 해군은 V2 사이즈의 로켓에 핵탄두를 탑재하여 항공모함의 갑판에서 발사하는 방안을 실험했는데, 사실 그보다 전에는 아예 함선에다 핵무기를 싣고 적국의 항구에 돌진해 자폭하는 핵탄두 무인 자폭함이나, 둘리틀 특공대처럼 육상 기지에서 운용되던 대잠초계기 P-2 넵튠의 폭탄창에 핵폭탄을 싣고 항모에서 날려 공습을 가한 다음 공해상으로 되돌아와 승무원은 기체를 버리고 탈출하는 1회용 핵공격기 방안까지 실험했을 정도로 핵공격 능력에 목을 매고 있던 상황이었다.
3. 특징
이에 따라 AJ 새비지는 중량 5톤에 31킬로톤 위력의 Mark 4 핵폭탄 1발을 싣고 항모에서 발진해 적국의 심장부까지 날아가 핵공격을 가하고 돌아오는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함상 운용의 편리함이나 유지비 같은 다른 부차적인 기능은 전부 설계 우선순위에서 뒤로 돌려졌다. 그렇게 태어난 이 핵공격기는 그때까지 만들어진 모든 함재기 중에서 가장 커지게 된다. 그나마 새비지 공격기에게 있어 다행인 것은, 그런 커다란 덩치를 비좁은 항모의 비행갑판에서 띄우기 위해 새로 등장한 제트 엔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새비지의 도입 시기는 미 해군이 막 제트 시대에 발을 내딛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개발 초기 기술적으로 덜 성숙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터보제트 엔진들은 하나같이 추력이 충분하지 않은데다 조작 반응도 느리고 저공에서의 연비는 아주 나빴다. 그래도 무거운 기체를 발함시키기 위한 추진력 하나 만큼은 기존의 레시프로 엔진보다 좋았기 때문에 이함시나 목표 근처에서 핵투발 지점을 향해 고속으로 돌진하는 상황에서만 제트 엔진을 피스톤 엔진과 함께 작동했다.
AJ 새비지의 경우, R-2800 공랭 피스톤 엔진 2기와 동체 후방에 앨리슨 J33 터보제트 엔진 1기가 함께 장비되었다. 두 가지 엔진은 연료로 같은 항공 가솔린을 쓰게 되어 있어 연료탱크는 공유하고 있었다. 캐터펄트의 도움을 받고 왕복 엔진과 제트 엔진의 조합으로 인해 최대 23톤에 달할 만큼 육중한 새비지는 항모 갑판에서 뜨는 것이 가능해졌고, 758 km/h라는 그 무렵의 재래식 폭격기치고는 꽤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4. 생산과 배치
새비지의 초기 생산형인 AJ-1는 각각 2,400 hp을 내는 R-2800-44W 엔진 2기와 추력 4,600 lbf의 앨리슨 J33-A-10 엔진을 장비하여 55대가 생산되었다. 이 형식은 1949년 5월에 첫 비행을 마치고 이듬해인 1950년 8월 31일부터 미드웨이급 항공모함 USS 코럴시(CV-43)에 사상 최초의 함상 핵공격기로 배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새비지의 작전운용 태세를 먼저 갖춘 함선은 항해 도중에 이함과 착함을 모두 성공시킨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USS 컨스텔레이션으로, 여기에 배속된 VC-5가 더 빨랐다. 처음 배치된 새비지를 보는 함상 요원들은 늘 불안한 눈으로 아슬아슬하게 발함하는 기체를 지켜보곤 했는데, 얼마 안가 첫 사고가 터지고 만다.
1950년 10월 27일 USS 프랭클린 D.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에서 발진하던 VC-5 소속 새비지 124163호기는 갑자기 갑판 뒷쪽에서 불어온 돌풍에 휘말려 양력을 잃었는데 하필이면 비행갑판을 막 벗어나려던 때였다. 속도가 느려지면서 발함 데크 앞쪽으로 뚝 떨어진 기체는 끝내 다시 상승하지 못하고 바다에 처박히고 말았다. 대기하고 있던 구조 헬기가 재빨리 접근했지만, 기체에 타고 있던 기장 Dave Purdon 중위와 항법사 Edward R. Barrett 하사는 건져내지 못했고 부기장 Ed Decker 중위만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러 대의 새비지가 이착함 사고로 대파되거나 바다에 가라앉았고, 적지 않은 수의 승무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이하게도 항공모함에서는 착함 사고가 흔히 일어나지만 무겁고 둔한 새비지의 경우는 이함 중에 사고가 잦았던 점이 특이하다.
이 기체는 함상기 카테고리에 속해 있긴 했지만 당시 항모 요원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일단 그 무렵 주력 항모이던 에식스급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이 견딜 수 있는 착함 충격이 28,000파운드였는데, AJ 새비지는 연료 한 방울 채우지 않고 무장과 승무원을 싣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27,558파운드였다. 수직 미익은 함내 격납고의 높이와 거의 맞먹어 꼬리 끝이 천장 구조물에 닿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 격납고 설비의 개수가 필요했을 정도였다.[1] 비행갑판에서도 새비지가 한번 움직이려면 갑판 요원들은 길을 터주기 위해 매우 분주해졌다.
5. 용도 변경
배치된 얼마 동안 새비지는 미 해군의 유일한 핵투발 수단으로 애지중지 이용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새롭고 더 강력한 무기인 수소폭탄이 개발[2] 되었고 항공기용 핵폭탄은 작게, 더 작게 소형화되었다. 함재기 쪽도 제트화되면서 무장 탑재 능력도 늘어나 전폭기급에서도 B43 같은 전술 핵폭탄 투하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동안 해군에서 유일무이한 핵무기 플랫폼으로 귀하신 몸 대접을 받았지만 크고 거추장스럽기만 한데다가 임무 성공율마저 의심스러운 새비지는 순식간에 그 빛이 바래졌다. 찬밥 신세로 떨어져 함내 공간만 차지하고 있던 이 골칫덩이들을 처리할 방안을 찾던 미 해군항공국은 항속거리가 긴 AJ를 사진 정찰기로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시켰는데, 임무 반경이 2,700 km에 달하고 대형 고감도 카메라를 실을 공간이 넉넉했던 덕분에 이런 임무에는 그런 대로 쓸만했다. 또 새비지는 기내 연료탱크 용량이 1,640갤런(6,200리터)이나 될만큼 커서 폭탄창 내부에 버디 포드만 달아주면 공중급유기 역할을 맡기기에도 알맞았다.
6. 쓸쓸한 퇴역
새비지가 원래의 목적인 핵공격기로 배치된 기간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단 6년 동안이었고, 1960년에 퇴역할 때까지는 정찰기와 급유기로 활용되었다. 즉, 바뀐 용도로 이용하기에도 적합했다기보다는 잉여기 신세가 된 새비지를 잠시 활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노스 아메리칸 AJ 새비지는 1960년에 항모에서 내려진 후에는 육상 기지에서 하릴없이 머물러 있었는데, 1962년에 펜타곤이 미군기 명명법을 대폭 손을 보면서 AJ-1은 A-2A로, AJ-2는 A-2B로 이름이 바뀌었다. 군에서 퇴역한 새비지 중에서 3대가 NASA로 이관되어 1964년까지 무중력 실험기 용도로 쓰였는데, 동체 폭탄창이 넓어서 그런 미션을 맡길 수 있었다. 또 다른 3대는 후미의 제트 엔진을 떼어낸 다음 7,600리터 용량의 물탱크를 설치하여 소방기 용도로 개조되어 산불을 끄러 날아다니다가 2대는 추락하고 1대는 1969년에 스크랩되었다.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날아다닌 기체인 130418호기는 라이커밍 사에서 새로 개발한 YF102 터보팬 엔진을 달고 엔진 실험기로 1980년대 초까지 쓰였다. 1984년 실시된 신년 정기 점검에서 주익 스파와 골조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발견된 이 기체는 곧바로 폐기 처분될 위기에 빠졌으나 라이커밍 관계자들은 곧 이 기체야말로 143대가 만들어진 AJ 새비지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겨진 항공 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5월 9일에 418호기는 플로리다주 펜사콜라 해군기지의 국립 해군항공박물관(National Naval Aviation Museum)에 옮겨져 지친 날개를 영원히 쉬게 되었다.
7. 파생형
XAJ-1 (NA-146) : 프로토타입으로 R-2800-44(2,300 hp) 엔진과 J33-A-10 엔진을 혼합 장비해서 3대가 제작.
AJ-1 (A-2A) : 초기 생산형으로 R-2800-44W(2,400 hp) 엔진과 J33-A-10 엔진을 장비하고 55대 생산.
AJ-2 (A-2B) : 피스톤 엔진을 R-2800-48(2,500 hp)으로 강화하고 동체를 약간 연장시켜 연료 탑재량을 늘리고 수직미익을 확대시킨 개량형으로 55대 생산.
AJ-2P : 파노라믹 항공 카메라 18대를 장착시켜 30대가 생산된 사진 정찰형.
XSSM-N-4 Taurus : 무인 자폭 공격기로 개조된 형식으로 개조 도중인 1948년에 취소.
XA2J Super Savage : 제트 엔진을 제거하고 앨리슨 T40-A-6 터보프롭 엔진(5,035 shp) 2기를 장착한 함상 공격기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