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리그

 

J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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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메이지 야스다 생명 J리그
영문명칭
J.League
창설년도
1993년 (J1리그)
1999년 (J2리그)
2014년 (J3리그)
참가 팀 수
18팀 (J1리그)
22팀 (J2리그)
15팀 (J3리그)
리그 구성
J1리그 (1부)
J2리그 (2부)
J3리그 (3부)
타이틀 스폰서
메이지 야스다 생명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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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지역별 클럽 현황
3. 역사
4. 로고
5. 리그 시스템
6. 인기
7. 경기장
8. 역대 우승팀
9. 국내에서의 인식
9.1. J리그 진출에 대한 인식
9.2. 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
10. 외국인 선수 제도
11.1. 각 구단 별 기업과의 관계
12. 인기 팀과 서포터즈
13. 킷 서플라이어 현황 (2021)
14. 클럽 명칭에 대한 고찰
15. 콜라보레이션
17. 관련 문서


메이지 야스다 생명 J리그 공식 인트로 영상

1. 소개


1993년에 출범한 일본의 프로 축구 리그로, 1965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최상위 리그이자 실업 리그인 일본 사커 리그(JSL)을 대체할 프로 리그로 창설됐다. 정식 명칭은 "일본 프로 축구 리그"이며 J리그는 약칭이다. 주로 J리그라 하면 1부 리그로 받아들이곤 하는데 정식 명칭에서도 알 수 있 듯이 J리그는 프로 축구 리그 전체를 통칭하는 명칭이며 1부 리그는 J1리그, 2부 리그는 J2리그, 3부 리그는 J3리그로 구분한다. 1993년 단일 리그로 출범하여 1999년 2부 리그인 J리그 디비전 2(현재의 J2리그)를 창설해 승강제를 도입했고, 2014년 J3리그를 출범시켜 3부리그 체제를 확립했다. J리그와 J3리그는 검은색, J1리그는 빨강색, J2리그는 녹색을 사용한다.
브라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외국인 선수도 브라질 선수가 대부분이었고 감독도 브라질 출신이 많았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후 가시마 고문 및 총감독을 거쳐 후에 일본 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은 바 있는 하얀 펠레 지쿠가 이 계열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적인 명장인 아스날 FC아르센 벵거도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을 지낸 바 있으며, 초창기에는 게리 리네커같은 왕년의 스타를 영입하기도 하는 등 일본의 부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외의 유명 선수들을 출범 초기부터 데려왔다.
2005년에서 2008년까지 4년간 일본에서 FIFA 클럽 월드컵을 개최함으로서 J리그 우승팀은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할 필요도 없이 바로 클럽 월드컵에 직행했다. 이는 개최국 어드벤티지로서 2009년과 10년 대회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렸는데 대륙 클럽 대항전 1위 팀 + UAE 리그 우승팀 알 알리가 출전했다.(포항 스틸러스는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자격으로 아시아 대표로 출전) 더욱이 2008년 감바 오사카와 2007년 우라와 레즈의 경우는 당당히 AFC 우승 자격으로 출전했고, 이 때문에 개최국 티켓 1장은 당해 AFC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팀들에게 돌아갔다.
자금력이 뛰어나 K리그나 여타 다른 아시아 리그에서 뛰던 특출난 선수들을 많이 사들여 보유하는데다가 풋볼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에서 집중 조명하는지라 유럽 클럽들의 스카우터들이 항상 주목하는 리그다. 정작 일본 선수들의 유럽 진출은 적은 편이었으나, 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일본 선수들의 유럽(특히 독일) 진출이 상당히 늘었다. 이는 J리그 사무국과 분데스리가 사무국이 선수 정보를 공유하기로 제휴 협약을 맺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이 스타 플레이어를 무분별하게 유출시키고 그런 스타플레이어들은 별 성과없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빅리그보다는 중소규모 유럽 리그에 주로 보내는 추세다.
J리그 득점왕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중동의 오일 머니를 쫓아 떠나버리는 상황도 꽤 있었다. 그래도 돈은 엄청 받고 판다.[1] 그러나 최근에 이런 경우는 잘 보이지 않는편.
시작부터 브라질 축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오밀조밀한 패스 플레이가 발달했고, 이를 바탕으로한 미들진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K리그보단 피지컬과 압박이 떨어져서 J리그에 있다가 K리그로 온 선수들은 K리그가 너무 거칠다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2] 특히 어린 나이에 J리그에 진출한 한국 유망주들은 C급 계약으로 박봉[3]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타향살이에 힘겨워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전혀 다른 리그 스타일에 적응 못해 헤매는 겪곤 한다.
선수 자원도 풍부하고, K리그 팀들에 비해 자금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그 돈을 충당하는건 스폰서 뿐만 아니라 입장료와 마케팅으로 버는 수입이다.[4] 인기나 규모 뿐만 아니라 실력으로 봐도 출중한 편.
FMFIFA 시리즈에 등장하지 않았던 리그. J리그와 코나미의 독점계약 때문에 J리그는 위닝일레븐[5] 외 타 게임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EA 스포츠FIFA 17부터 J1리그가 정식 수록되었다. PES 시리즈에는 모바일 버전에만 J1, J2리그가 등장한다.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리그가 한달 반동안 중단되었다. 이미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가시마 앤틀러스를 비롯한 팀들은 홈경기를 전면 연기했으며, 아예 가시마는 지진으로 경기장이 심하게 파손되어 복구공사에만 3달 가까이 걸린다는 결과에 약 3달동안의 임시 해산을 해버려 소속된 해외 선수 및 코치진들은 죄다 자국으로 귀국했다. 그 밖에 베갈타 센다이와 여러 팀들도 3, 4월 경기가 불투명해졌다. 또, 이것 때문에 원래 1999년 이후 12년만에 한 번 더 초청국 자격으로 코파 아메리카에 특별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이 기간동안 지진으로 연기된 경기를 치렀다.
2020 시즌부터 VAR 시스템을 공식 도입했다. 2021 시즌부터는 리그 공식 폰트를 도입해 J리그 소속 팀들은 전부 같은 폰트를 부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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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역별 클럽 현황


소속 리그는 2021년 기준이며 이 중 도도부현 전체를 홈타운으로 지정한 클럽은 ○로 표기.

3. 역사


1964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올림픽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코치로 영입된 데트마어 크라머[16]가 올림픽 8강이라는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고서 독일로 귀국하며 '대표팀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리그가 필요하다'라고 조언. 이에 1965년 일본 사커 리그(JSL)가 시작된다.
이후 올림픽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본이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일본 내에서 축구의 인기가 조금씩 싹트기 시작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서며 점차 열기가 식어가고, 이에 리그 관계자들이 다시금 축구 열기에 불을 붙여줄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 이와중에 FIFA월드컵 최초의 아시아 개최지로 일본이 어떻겠냐는 의향을 일본 협회에 전하고, 일본이 이를 받아들여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뛰어듬과 동시에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JSL을 프로 리그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일본 사커 리그가 1992년 프로 리그로 전환된 것이 일본 프로 사커 리그. 리그의 약칭으로는 계획 설립 과정에서 프로젝트의 가칭으로 사용되던 'J리그'가 정식으로 채용된다.

4.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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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재편된 J리그 로고의 바리에이션[17]. 허나 3년만에 현재의 로고로 리뉴얼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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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 출범 20주년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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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리그 디비전 1, J리그 디비전 2 로고

5. 리그 시스템


일본의 축구 리그
구분
명칭
1부
J1리그
2부
J2리그
3부
J3리그
4부
JFL
단계
구분
리그
1
프로
J1리그
18개 팀
2
프로
J2리그
22개 팀
3
프로
J3리그
16개 팀 + U-23팀 3개팀
4
세미프로
JFL
16개 팀
5/6
아마추어
9개의 지역리그
132개 팀
6/7이하
아마추어
도도부현 리그
최상위 리그는 보통 J리그라 불리는 J1리그로, 총 18개 팀이 소속되어 있다. 하위 리그로 J2리그(22팀)와 J3리그(16팀)를 포함하고 있다. 승강제는 이뤄지지 않지만 JFL 아래에는 일본 전국을 9개 지역으로 나눈 지역리그로 5~6부리그를 구성하며,[18] 그 아래에 수십개의 도도부현 리그가 존재한다.
출범후 2004년까지는(1996년 제외)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누어 각각에 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을 치루어 우승팀을 가렸다.(한팀이 전후기리그 모두 우승하면 종합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은 치루지 않음)
2005년 부터 총 34라운드 단일리그로 경기하며 별도에 플레이오프는 치루지 않으며 리그 1위가 곧 우승팀이다. 리그가 다 끝난 뒤 J1리그 최하위 두 팀은 J2리그로 강등되고 J2리그 최상위 두 팀은 J1리그로 승격된다. 2009년부터 폐지되었던 J1리그 16위와 J2리그 승격 플레이오프 우승팀의 승강 3위의 승강 플레이오프그 대신 2012년부터는 J2의 팀 숫자가 22개로 늘어난 관계로 잉글랜드의 챔피언십처럼 2부 리그 1, 2위팀은 승격 3위부터 6위팀까지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강 플레이오프 진출팀(2017년까지는 승격팀)을 가리게 된다.
J2리그 팀이 22팀까지 늘어나면서 J3 출범을 계획하고 있으며 2012년 22팀이 되자 최하위 강등, 21위는 강등 플레이오프를 도입 JFL과 승강제를 실시하고 있다.
2019시즌 현재 승강룰은 다음과 같다.
  • J1↔J2 : J2의 22팀중 리그 최종순위 1,2위는 자동으로 승격하며 J1의 17위 18위 팀들은 자동으로 강등된다. J2의 3~6위 팀들은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되며 우승팀은 J1의 16위팀과 승강결정전을 펼친다. J1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은 승격을 할 수 없고 승격 플레이오프에도 참여하지 못한다.[19]
  • J2↔J3 : J3의 18팀중 리그 최종순위 1,2위는 자동으로 승격하며 J2의 21위 22위 팀들은 자동으로 강등된다. J2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과 U-23팀은 승격을 할 수 없다. [20]
각 플레이오프 경기는 리그 일정 종료 후에 단판으로 리그순위가 높은 팀, 상위 리그 팀의 홈구장에서 개최되며, 무승부일 경우 연장전이나 승부차기 없이 리그 순위가 높은 팀, 상위 리그 팀의 승리로 취급한다.
2014년 부터 J3리그가 12팀으로 출범하였고, 기존 3부리그 역할을 하던 JFL은 자동적으로 4부리그가 되었다. 아직 J3에서 JFL로의 강등은 없다.
리그 이외에 대회로는 J1구단들만 참여하는 르방컵, 프로와 아마가 모두 참여 가능한 일본축구협회 관할의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리그 우승팀과 천황배 우승팀이 겨루는 후지 제록스 슈퍼컵, 남미의 코파 수다메리카나 우승팀을 초청해서 르방컵 우승팀과 겨루는 스루가 은행 챔피언십, 팬들의 투표로 팀을 편성해 대결하는 올스타전이 있다.
2015년부터 전·후기리그제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계획안에 따르면 2004년 전까지 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누적 승점이 가장 높은 팀과 전·후기 우승팀 및 준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하는 방식. J리그의 인기가 날로 시들해지자 흥행을 위해 포스트시즌 부활을 검토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팬들의 반발이 심했다. 그런데 결국 JFA 이사회에서 확정되었다.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사안이 통과됨에 따라 후폭풍이 예상되는 상황. 해당 기사(일어)
그러나 영국 회사인 DAZN에게 거액으로 중계권을 판매하면서 이러한 제도가 어렵다는 말이 많아 2017시즌부터 단일리그제로 복귀됐고 플레이오프또한 폐지되었다. 2016시즌 우승팀인 가시마 앤틀러스는 전기리그에서 우승했지만 후기리그에선 11위로 부진했고 종합 승점이 3위임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하며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되었다.
2020시즌은 코로나19사태로 리그가 잠시 중단되면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결국 승격제도는 유지하지만, 강등제도를 한시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덕분에 우승 경쟁이 힘든 팀들은 신인 선수를 대거 기용하는 등 실험적인 경기 운영을 해볼 수 있었다.
대신 2021시즌은 경기수가 늘어남은 물론 J1, J2리그 모두 4팀이 강등되는지라 2020시즌만큼 힘든 시즌이 될 예정이다. 그러나 J3리그는 U23팀의 참가가 중단되면서 유일하게 경기수가 줄어든다.

6. 인기


일본에서 프로야구 다음으로 인기있는 스포츠로, 연간 9백만명이 관람한다.(J1~J3리그 총합) 2015년 기준 아시아에서 평균관중수 6위 (경기당 17,803명) 2015 시즌 종료 후 평균관중을 보자면 인도 프리미어 리그(31,750명 / 크리켓), NPB(28,248명 / 야구), 인도 슈퍼 리그(27,11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에 이어 6위. 전세계 기준으로 J리그보다 상위 5개로는 리가멕시코(24,731명 / 축구), 중국 슈퍼 리그(22,193명 / 축구), 방글라데시 프리미어 리그(21,824명 / 크리켓), MLS(21,574명 / 축구), NBA(17,809명 / 농구)에 이어 17위.
1993년 출범 직후에는 일본의 국기(國技)라고까지 불리는 프로야구의 인기마저 누르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우리나라 언론에서조차 꽤 비중있게 다뤄질 정도였다. 그러나 1995년부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고 동시에 평균 관중수도 크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1998년 월드컵 진출로 반짝 특수를 얻기도 하지만 잠시 뿐. 급기야 1998 시즌 후에는 J리그 클럽 원년 멤버에 상위권이였던 요코하마 플뤼겔스가 경영난으로 인해 요코하마 마리노스에 흡수 합병되는 사태가 발생한다.(마지막 경기였던 천황배 결승에서 시미즈 에스펄스를 꺾고 우승)
이에 따라 J리그 연맹은 대대적인 리그 개편을 선언하고 선수들의 연봉, 리그 환경, 마케팅, 자금내역 등에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시작하고 1999년 J2(2부리그)를 발족하여 승강제를 만들어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의 결실은 2002년 월드컵으로 이어져 J리그는 매년 관중증가와 흑자구단 증가 등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축구 리그로 평가 받는다. 게다가 J2 역시 전부 유료 관중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만큼 지역이랑 잘 밀착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평균 관중은 1만 9천명정도로 전부 유료 관중이다. 현재 무료 관중은 거의 없으며 있어도 관중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21] 다만 일본이 워낙에 야구 인기가 높다보니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야구 못지 않게 관심 받고 있다.
하지만 관중은 2008년 평균관중 1만 9천명 돌파 이후로 조금씩 하락세다. 일단 일본은 축구보다 야구에 관심이 더 많은 나라고, 일본 국적의 선수들이 해외 유명 리그에 진출한 경우가 별로 없어 축구 자체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든 편. 거기에 경기 침체와 일본 대표팀의 부진도 한 몫을 했다. 때문에 관중 수는 아직 그대로여서, J리그 사무국측은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반전의 기회로 삼을려고 했으며 일본이 월드컵에서 예상 외에 활약을 하며 J리그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걸로 보였다. 하지만 가가와 신지를 포함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독일 분데스리가 등 유럽 진출, 그리고 도호쿠 대지진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결국 2011시즌 평균 관중수는 기존 연도에 비해 약 20% 정도가 감소했고, 이는 J2리그 역시 마찬가지였다.[22]
다르게 생각해보면 세계 프로축구 중 1만 9천명 이상 관중을 동원하는 리그는 열손가락 안에 든다는 걸 생각해 볼때 관중 동원력이 좋은 리그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꾸준하게 평균 관중이 들어온다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볼 순 없다.[23]
2012년에는 반전에 성공하며 1만 7천명에 평균 관중을 기록했다.
2013년 J리그 경기, 사업 총괄 본부장인 나카니시 다이스케가 한 인터뷰에 따르면 J리그가 2008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걸어왔고 특히 신규 유입되는 관중이 전혀 없어서 J리그에 큰 위기가 찾아왔다고 밝혔다. J리그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이 때문에 구단에 지급되는 배당금을 줄이는데 이로 인해 파산될 구단들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원문 번역본. 앞서 말한 '전·후기리그제의 부활'도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보인다.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일본 축구 국대의 충격의 16강 탈락으로 인해 관중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1만 7천명을 유지하고 있다.
2015년에는 전년보다 다소 상승한 1만 8천명 가까이 보면서 흥행몰이를 했다. J1, J2리그는 전년보다 3%씩 관중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J3(3부리그)는 나온지 1년 밖에 안됐는데 무려 8%나 증가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관련 기사
J리그는 2017시즌 이후 중계권과 관련해 영국의 디지털 스포츠 콘텐츠 유통 회사인 퍼폼그룹(Perform Group)과 10년간 약 2,100억엔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이 중계권 계약에는 인터넷 스트리밍 독점 중계만 가능하고 지상파, 공중파 TV로는 절대 중계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24]
2017시즌 평균 관중은 J1리그 18,883명, J2리그 6,970명, J3리그 2,613명을 기록했고, 2018시즌 평균 관중은 J1리그 19,064명, J2리그 7,049명, J3리그 2,491명을 기록했다.
2019 시즌에는 J1리그가 드디어 평균 관중 2만명을 돌파했다. J2리그는 7,176명을 기록하며 계속된 상승세를 보였다. J3리그는 계속해서 하락하는 상황. 그나마 관중수를 올려주던 기라반츠 기타큐슈의 승격으로 하락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7. 경기장


리그 운영 체제는 미국과 유럽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참조하면서 선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경기장 등의 하드웨어 인프라는 의외로 부실한 편이다.
경기장 시설 문제는 리그 창설 당시부터 발목을 잡아온 문제이다. J리그 초기에 1999년 FC 도쿄가 리그에 진입할 때까지 도쿄 연고 클럽이 없었던 것은 리그 당국이 참가 클럽 간의 과당경쟁을 피하려던 의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간토 일대에 그럴싸한 경기장이 모자란 탓이 컸다. 1950년대에 건설된 국립경기장을 제외하면, J리그가 요구한 관중석 1만 5천석과 조명탑 설치를 충족하는 경기장은 지금은 프로 경기장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낙후된 요코하마 미쓰자와공원 구기장이 전부였던 것이다. J리그의 출범에 맞춰 가시마 스타디움이 신설되고 가와사키 도도로키, 우라와 고마바, 이치하라 린카이, 히라쓰카 4개 경기장이 1만석을 밑도는 스탠드를 확장하여 간신히 J리그 초기 클럽들을 수용하게 된다.[25]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J리그는 낙후된 데다 접근성도 좋지 않은 경기장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장 시설은 한국이 1988 서울 올림픽2002 월드컵에 맞춰 건설된 경기장이 많은 것과 같이 1950년대 전후 재건기(+1964 도쿄 올림픽) 및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건설된 것이 많다. 감바 오사카같은 명문 구단도 신구장 건립 이전까지 1970년대 지어진 엑스포 종합운동장을 사용했으며 역시 리그 강호로 항상 만원에 가까운 흥행성을 기록하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또한 1962년 건설된 도도로키 육상경기장을 사용한다.[26] 2010년대 초중반 최강팀이었던 산프레체 히로시마 역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시야를 자랑하며 접근성도 안 좋은 종합운동장을 쓰다보니 평균관중은 리그내 하위권을 차지해왔고 현재는 2024년을 목표로 전용구장 건설이 확정된 상태다. 의외로 하부 리그로 눈을 돌리면 최근 건설된 전용구장을 쓰는 팀들이 보이는데 기타큐슈와 나가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5천석 규모의 작은 구장들이다.
또한 경기장의 위치가 외진 편으로, 대도시권을 벗어나면 아예 대중교통 접근이 거의 안되는 곳까지 있다. 사실 신설 경기장이 외곽으로 나가는 것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고[27] 한국의 월드컵 당시 건설된 경기장들도 수원이나 대전 정도를 제외하면 외진 데 위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히 일본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거대 경기장 다수가 시가 아니라 광역지방정부인 도도부현에서 건설한다는 것이다.[28] 현에서 건설하는 경우 원래 프로스포츠 유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입지를 특정 도시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시내 접근성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옆동네까지 가야 하는 곳이 생기게 된다.[29]
그래도 낡은 종합운동장을 쓰는 팀들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감바 오사카의 신구장인 시립 스이타 사커 스타디움이 2016년 개장한 이래 기라반츠 기타큐슈(2017), 교토 상가(2020)의 전용구장이 각각 개장하였으며 이외에도 FC 류큐, V-파렌 나가사키, 산프레체 히로시마, FC 이마바리가 2022~24년을 전후해 새 구장 이전이 확정되었으며 반포레 고후 등 건설이 추진되는 지역이 더 있다.
문제는 도쿄 23구내에 전용구장이 없다는 점인데 현재 FC 도쿄의 홈구장인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은 구내가 아닌 쵸후시에 위치해있으며 명목상 구기장이지만 트랙 줄만 그어놓지 않은 종합운동장급의 시야를 가지고 있다. 2020올림픽때 사용하는 도쿄 신국립 경기장이 올림픽이 끝난 후 축구 전용구장으로 개조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FC 도쿄가 생각만큼 인기가 있지 않고 아무래도 이쪽은 야구의 나라다보니 그 비싼 땅에서 수익이 충족이 되겠냐는 의견이 강해지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많다. 어차피 대표팀 전용 경기장은 사이타마 스타디움이 있고 종합운동장으로 놔두면 축구 이외에도 행사나 다른 경기들을 개최할 수 있으니 그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 클럽은 클럽들대로 신국립경기장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보고 다른 경기장 신축 계획을 찾고 있다.

8. 역대 우승팀




9. 국내에서의 인식


국내에서는 J리그의 시스템적인 부분이나 인프라는 인정해도, 실력에 있어서는 다소의 의문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A3 챔피언스컵 2006 대회에서 J리그 우승팀인 감바 오사카가 K리그 우승팀인 울산 현대에게 6:0으로 대패하는 바람에 이러한 인식은 더욱 커졌다. 다만 2010년대 후반에는 우라와 레즈와 가시마 앤틀러스가 연이어 우승하면서 구도가 상당히 바뀌어 있다.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2007년 우라와 레즈,[30] 2008년 감바 오사카가 우승을 차지하는 등 꽤나 주가를 올렸었지만 2008년 8월 2일에 도쿄에서 열린 조모컵에서 K리그 올스타에게 3:1로 크게 패하고 말았다. 사실 J리그 올스타가 더 짜임새 있는 축구를 구사했지만, 어찌됐건 골을 못 넣었기 때문에 J리그 팬들에게 욕만 줄창 먹었다. 그러나 1년 뒤인 2009년 인천에서 열린 2회 조모컵에서는 1-4로 스코어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31] K리그를 박살내버려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해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팀이 바로 K리그의 포항 스틸러스인데, K리그 올스타가 J리그 올스타를 압살했던 2008년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J리그에서 나왔고, 그 반대로 J리그 올스타가 K리그 올스타에 완승을 거둔 2009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K리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뭔가 아이러니한 부분.
2007년을 기점으로 K리그와에 상대 전적을 끌어올려 총전적은 35승 19무 31패. 물론 K리그 관점으로.(2012 시즌까지의 기록)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32]를 제외하곤 J리그 팀들이 모두 조별 1위로 통과했다.
하지만 이후 16강, 8강에서 팀킬로 감바 오사카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떨어지고, 스리위자야 FC고춧가루 덕에 턱걸이로 간신히 16강에 올라 원정길에 나선 FC 서울이 놀랍게도 원정 승부차기의 악조건 끝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승리. 최종적으로 나고야 그램퍼스가 4강에 올랐으나 "아시아의 깡패" 라 불리는 사우디의 알 이티하드에게 2:6(원정), 1:2(홈) 도합 3:8이라는 압도적 스코어로 자취를 감췄다. 나름대로 J리그 팀 중 하나는 결승에 올라올 것을 자신해서 도쿄 국립 경기장을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장소로 유치한 J리그 사무국과 일본축구협회는 결국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는 수모를 당한다.[33]
2010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조별예선에서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가와사키 프론탈레가 탈락하고 16강에서는 감바 오사카가 K리그성남 일화에게 0:3 대패, 또한 J리그 3년 연속 우승팀인 가시마 앤틀러스는 놀랍게도 3일전에 감독을 해고하고 코치가 팀을 맡은 포항 스틸러스에게 0:1로 패배 함으로서 전원 16강도 못 뚫고 광탈해버렸다.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도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걸 생각하면 일본 입장에서는 2년 연속 안방에서 남의 집 잔치를 열어주는 상황. 참고로 위의 2팀 외에 K리그 나머지 팀(수원, 전북)도 각각 중국과 호주 클럽을 꺾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K리그가 싹쓸이 했으며, 그리고 우승컵은 K리그의 성남 일화 천마가 공수해왔다.
2011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모처럼 일본 참가팀 4팀(가시마 안틀러스, 감바 오사카, 세레소 오사카, 나고야 그람퍼스)이 16강에 올랐지만 내실을 보면 좀 실망이었는데 나고야는 한국 구단인 FC서울 원정을 이기곤 약체급인 알 아인과 항저우 그린타운 원정에서 죄다 지는 통에 조 2위로 밀려났고 나머지 세레소 오사카와 가시마도 각자 전북과 수원에게 밀려 조 2위로 진출했다. 결국 16강전에서 일본 팀(감바 오사카와 격돌)끼리 맞붙어 8강에 오른 세레소 오사카를 빼고 나고야와 가시마는 각자 FC 서울과 수원 삼성 원정에서 완패하여 8강에선 한국은 3팀 모두가 올라온 반면, 일본은 겨우 1개팀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1개남은 세리소 오사카조차도 8강전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1승 1패를 주고받았으나 원정에선 이동국에게 4골을 헌납하며 무려 6:1로 참혹하게 탈락했다.[34] 3년전만 해도 ACL 연속 우승에 아시아 무대는 별 거 아니다고 큰 소리치던게 허무할 지경.
게다가 2012년 구정컵에서는 2011시즌 J리그 10위 시미즈 펄스와 성남 일화의 경기에서 주장 사샤가 빠진 성남이 시미즈를 5:1로 크게 이겼다.
그리고 K리그가 부진한 2012 시즌의 ACL에서마저 8강에 한팀도 올려보내지 못했다.[35]
2013 시즌은 ACL 우승을 노렸으나 가시와 레이솔 한팀만이 4강에 올랐다. 그마저도 알 샤바브(사우디아라비아)에게 2무 골득실 우위로 겨우 올라갔고 준결승에서 광저우 헝다에게 2패 그것도 8실점 1득점이라는 참패로 탈락해버리면서 J리그는 2008년 감바 오사카가 호주의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한 이후 5년 연속으로 ACL 결승 구경도 못 하고 있다.
2014 시즌에도 ACL 8강에 한 팀도 올라가지 못한 데다, 가와사키 프론탈레FC 서울에 패배하였다.
ACL에서 K리그가 전적이 비슷한 세 리그 중 하나다. 다른 둘은 우즈벡 리그와 이란 리그나 이들과 맞대결 경우는 토너먼트 경우 외엔 없어 전적 자체가 많지 않으나 J리그와는 61경기에서 25승 13무 23패를 기록중이다.[36]
2015 시즌은 그나마 2008년 이후 J리그가 가장 선전한 시즌인데 감바 오사카가 4강, 가시와 레이솔이 8강까지 진출하였다. 나머지 가시마 앤틀러스우라와 레즈는 조별리그 탈락.
2016년엔 우라와 레즈, FC 도쿄, 감바 오사카, 산프레체 히로시마가 참가했고 이중 우라와 레즈와 FC 도쿄가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두 팀 모두 각각 FC 서울상하이 상강에게 발목 잡히며 8강 진출에 실패하였다.
2017년엔 우라와 레즈가 제주, 가와사키, 상하이, 알힐랄을 차례로 꺾으며 10년만에 ACL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2018년엔 작년과는 달리 16강에 1팀만 보내고 3팀이 전부 다 탈락하는 평소의 흐름을 타게 되며 2019 ACL부터는 출전권 감소가 확정적이게 되었다. 그래도 가시마 앤틀러스가 상하이, 수원 등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2019년에 우라와 레즈가 결승전에 진출하며 3년 연속 결승 진출팀을 배출했다.
2020년에는 울산 현대와 비셀 고베가 준결승에서 만나 울산 현대가 승리, 결승에 진출했다.

9.1. J리그 진출에 대한 인식


과거 1990년대만 해도 정상급 한국 선수들이 실질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외 무대였다. 당시에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적 격차가 상당히 컸을 때였고, 그로 인해 K리그와 주는 돈의 격차가 너무나 컸다.[37] J리그 창립초에는 많은 돈을 들여 이름값 높은 황혼기 선수를 사왔지만 그게 전력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돈을 들여 30대에 막 들어선 아직은 쓸만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38]
이 당시 한국 선수들은 당연히 이런 스타플레이어들에 비하면 이름값도, 경력도 후달렸지만 황보관, 노정윤 등 초창기 J리그의 한국인 선수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고, 이후 팔팔한 현역이고 동양문화에 익숙해 적응이 빠른 한국의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 선수들이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등 세월이 많이 지난 현재에 와서도 당당히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급에 들만한 선수들이었으니.... 그 결과 90년대 각급 한국국대에서 성과를 낸 선수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J리그가 무조건 사갔다. 그리고 그렇게 사재기한 한국 정상급 선수들이 상당수가 기대에 걸맞게 맹활약을 해주면서 J리그의 한국국대 사랑은 2000년대 초기까지 계속 되었다.[39]
당시 한국 정상급 선수들도 사실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것은 실력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 등 여러가지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K리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면서 고국과도 가까운 J리그는 매력적인 리그였다. 그래서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 하석주, 최용수, 노정윤, 윤정환, 김도훈, 최성용, 고정운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90년대 한국 레전드들은 대부분 J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명성이 올라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등 한국 선수도 유럽 진출이 수월해졌고 무엇보다 박지성, 이영표 등의 활약이 더해져 위상이 올랐고 이청용, 기성용 등 K리그 출신도 맹활약하면서 K리그에서 잘하면 유럽에 갈 수 있는데 굳이 상위 리그도 아닌 J리그에 갈 이유가 없어져 옛날보다 진출이 줄어들었다.
상술한 1990~2000년대초는 K리그가 실력은 차치하더라도 인프라 측면에서나 연봉에서나 J리그보다 뒤쳐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술된 황선홍 감독의 기사에도 나타나지만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K리그가 발전을 거듭하여 J리그의 인프라와 차이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특히 K리그의 상위권 팀, 즉 포항, 서울, 수원, 전북 등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은 유럽에서도 인정하는 높은 수준이다. 이에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코치였던 이케다 세이고 코치는 아예 유망주들은 J리그를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홍명보 감독도 주전을 차지할 수준의 실력이 아니면 가지말라는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J리거였던 황선홍 감독조차도 2000년대 초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인프라 차이도 없는데 연봉 1, 2천만원 더 받으려고 J리그 가는게 이해가 안되며 일일이 지도를 받는 게 싫어서 가는거라면 멍청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왕서방이나 기름장사들의 돈질에 밀려서인지 J리그 붐이 주춤해졌다. 뭐 고등학교나 대학을 갓 졸업한 선수들이 뭣도 모르고 건너가는 경우는 여전하지만, 과거처럼 국가대표급 선수가 가는 경우는 유럽 진출이 어려운 포지션인 골키퍼를 제외하면 상당히 줄었다. 대부분 돈 더 많이 받고 중국이나 중동으로 가는 중. 김창수가 뜬금없이 J리그 가서 팬들 어이없게 만든것도 다 그 때문이다.[40]
또다른 함정을 찾아본다면 환경이 달라지고 명확한 각오가 없는 상황에서 대학생, 고등학생 선수가 갑자기 외국인 선수로 신분이 바뀌면서 겪는 문제점이다. 이 당시 유망주들은 EPL이 막 방송되기 시작하면서 꿈이 높아졌는데 K리그는 당시 존재했던 드래프트 제도 때문에 원하는 팀을 쉽게 선택하지 못했고, 또 제아무리 유망주라고는 해도 당시는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가 창설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팀 수가 비교적 적던 시절이다. 따라서 드래프트에서 확실히 선택받을지도 불확실한 면이 있었고, 설사 드래프트에서 선택받는다 하더라도 싫어하는 선배가 있거나 싫어하고 잘 뛰지 못할 것 같은 컬러의 팀에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또, 신인의 신분으로 당돌하게 입단 첫 해부터 연봉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두각을 드러내던 유망주들이 J리그로 엄청나게 진출했다. 실제로도 김보경, 김영권, 김진수, 장현수, 조영철, 한국영, 백성동 등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의 유망주들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J리그에서 데뷔했다.
J리그 역시 청소년 대표팀 유망주였던 박지성 영입의 신화와 더불어 그동안 유상철, 황선홍 등 한국 축구의 전설로 추앙받는 선수들이 쌓아놨던 좋은 인상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J리그는 용병이 아시아 쿼터까지 해서 4명이 아니라, 4명 출장 5명 보유이기 때문에 부상을 대비해 보험급으로 박지성 신화를 바라며 싼맛에 하나 구입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탓에 생각외로 엄청난 숫자의 팀에서 K리그 유망주 하나 혹은 그 이상이 뛰고 있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제대로 출장도 못했다. 즉, 얼마 전까지 프로도 아니고 또래끼리 하하호호 웃으며 운동하던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환경 다르고 음식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에 다른 나라 리그 소속의 프로 외국인 선수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고 도박성이 강한 일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소개 문단에서도 있듯이 C급이니 B급이니 5명 보유 4명 출장 등의 희한한 규정들에 막혀서 실력이 있어도 뛰기 어려웠고,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할 수 있는 한국이랑 달리 숙소에 밥값에, 개인훈련 비용도 철저하게 알아서 써야하다 보니 실질적인 급료도 K리그랑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않았으며, 규정경기수를 채우면 의무적으로 C급에서 B급으로 승격시켜서 급료를 올려야 되기 때문에 용병 어린애 나부랭이에게 그렇게 해주기 싫어서 경기에 뛰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즉 김보경처럼 그냥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건데 당연히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은 외국인 선수도 클럽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정이라는 이름하에 나름대로 챙겨주기도 하지만, 일본은 연습시간도 짧고 끝나면 다 헤어져서 개인 숙소에서 생활한다. 이 때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고, 코치들에게 훈련이 끝나고도 나름대로 알뜰살뜰 훈련과 챙김을 받던 한국 유망주들은 일본 선수들이 집단 훈련 끝나고 개인 훈련이나 피지컬 트레이닝을 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르고, 알고 나서도 훈련 장소나 방법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결국 외로움 속에 몸부림치면서 홀로 밥 지어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생활하기 일쑤다.
그러나 드래프트 제도가 폐지된 이후로도 J2리그에 입단하는 신인 선수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인지라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히 많은 편이다.[41] 에이전트는 선수 장사하려고, 선수나 학부모는 이런저런 조바심과 박지성, 김진수, 한국영, 김보경 등의 성공 사례를 생각하고 무작정 진출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만 하는 일이다. 일본 리그의 팀 수는 실업까지 치면 엄청나고, 성공하지 못해 어영부영 사라진 선수도 그만큼 엄청나게 많다. 기량을 키울 시간만 낭비하고 K리그로 돌아온 선수들은 그나마 재능이 확실한 선수들이고, 나름대로 살아난 선수들도 한결같이 생존비결로 정신력을 입에 달고 있다. 한 번 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42]
2017 시즌 J리그가 중계권료 대박을 치게되고 잠시 침체되어있던 리그의 인기가 부활하면서 또다시 한국 선수 영입에 불이 붙었다. 2017시즌에 윤석영, 권순태, 김보경, 정승현, 황의조 등이 건너갔으며 2018 시즌에도 정우영, 윤일록, 양동현, 이정협 등이 대거 이적했다. J2리그 역시 대학에서 주목받던 신예 선수들을 여러명 영입했다.
K리그 팬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는데 20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만해도 J리그로가면 위에 김창수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역적 취급을 했었다. 그러나 국가대항전이 아닌 클럽과 리그간의 문제도 국가의 문제로 보던 예전과는 다르게 '프로는 프로일뿐'이라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어가면서 이해는 해준다.[43][44]
사실 위에서 언급된 '일본가서 힘들게 사는 선수'는 대부분이 커리어가 없는 어린 선수들이며, 스타급 선수들은 팀에서 대우도 좋고 팬들도 잘 해주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특정 사건들로 인해서 경기력도 부진했었고 기사가 떴다하면 악플만 달려서 멘탈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황의조정성룡같은 선수들의 경우는 외국으로 떠나서 멘탈이 안정되고 실력도 다시 돌아온 케이스.
그러나 정우영과 윤석영은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나고 리그를 떠났고 2017~2018시즌 사이에 이적했던 선수들중에서 권순태, 장현수, 황석호, 정승현, 황의조 정도를 제외하면 부진에 시달리고 있어서 앞으로 한국 스타 선수들이 더 이적할지는 지켜봐야할 듯 싶다.
2018시즌이 끝나고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이정협은 이적하지 못하고 임대만료로 부산에 돌아왔고 시즌 후반기부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던 김민혁과 김보경, 윤일록은 각각 전북과 울산, 제주로 이적했다. J2리그에 있던 송주훈, 변준범, 김종필 등의 1990년대 초중반 태생 선수들도 한국에 왔다.
2019시즌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인 김영권과 나상호가 J1리그로 향했다. 그리고 국가대표에서 멀어진 선수들은 주로 J2리그로 이적했는데 일본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조영철이 8년만에 니가타로 복귀했고 울산에서 부상으로 신음하던 이종호와 기회를 전혀 받지 못하던 젊은 수비수 이상민이 나가사키로 임대를 갔다. FC 서울에서 완전히 밀린 골키퍼 유현은 도치기로 완전 이적을 했다.
그러나 아시아 쿼터가 없어지면서 영입만 해놓고 방치해놓는 상황이 늘어났고 실력과 별개로 벤치로 밀린 김승규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가대표 출신인 나상호도 출전 횟수가 극히 적으며 그 외의 한국 선수들이 상황이 좋지 않다.
사실 1990년대와는 다르게 현재 J리그의 연봉은 중국이나 중동처럼 국내와 큰 차이를 보이는건 아니다. 굳이 가던 이유를 꼽자면 경기장의 분위기 같은게 컸는데 K리그의 인기가 2010년대 중반의 침체기에 비해 대구 FC 붐등 여러 팀들의 선전으로 인해 증가했고, 2019년부터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닿고 있는 상황인지라 앞으로 J리그로 가는 선수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9 여름 이적시장때도 국내에 설 자리가 없던 선수들이 하부리그로 이적한 경우를 제외하고 스타 플레이어의 이적 사례는 없었다.
2020시즌을 앞두고 한국 선수들이 J리그로 많은 이적이 있을것이란 이적설이 나왔지만, 정작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김승규를 제외하면 일본으로의 이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승현은 친정팀 울산 현대로 복귀했고 토스의 레전드였던 김민우는 수원 잔류를 택했다. 양동현, 강수일, 유현, 등의 2부리거 베테랑 선수들도 일본을 떠났고 오랜기간 도쿄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던 유인수는 성남 이적을 택했다. 팀 동료였던 나상호 역시 성남 임대로 국내에 복귀했다. 구성윤은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2020년 5월 29일 대구로 이적했다.[45] 김진현, 김영권, 오재석, 박정수, 황석호, 김민태, 권순태, 정성룡처럼 입지가 탄탄한 선수들만 잔류한 상황.
2021 시즌을 앞두고 많은 한국인 선수들이 J리그에서 K리그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 사간 도스의 한국인 트리오가 모두 부진하면서 계약 만료될 가능성이 높고 권순태도 많은 나이에 주전에서 밀리며 리턴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감바 최장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며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오재석 역시 인천 이적이 확정적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한국인 선수들의 리턴 러시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인데, 당초 일본에서 프로생활을 하는 최대 장점은 해외 생활임에도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고 저렴한 비행기가 많아 가족들과 언제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이러한 것들이 매우 힘들어졌고 특히 일본의 입-출국은 거의 쇄국 수준으로 힘들어져 30대 선수들의 국내 복귀는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2021 시즌 K리그로 복귀하고 있다. 오이타의 문경건, 사간 도스의 안용우, 베갈타 센다이의 이윤오, 에히메 FC의 박성수가 대구 FC에 입단했고, 가시와와의 계약관계가 남아있던 윤석영도 길고 긴 임대생활을 끝내고 강원 FC로 완전이적했다. 수원 삼성은 파지아노 오카야마의 수비 유망주 최정원을 영입했고, FC 도쿄에서 고전하다 성남 임대 생활에서 에이스급 활약을 보인 나상호는 FC 서울로 완전이적하며 짧은 J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사간 도스의 박정수 또한 성남으로 이적했고, 감바와 나고야에서 활약하며 J리그 터줏대감이었던 오재석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근 10여년만에 K리그로 리턴했다. 승격팀 수원 FC도 프랑스 낭트 FC 유소년 출신인 정충근을 마치다에서 영입했다. K리그 2 팀으로도 한국인 J리거들이 리턴을 했다. 세레소가 야심차게 키워보려 했던 골키퍼 유망주 안준수는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자신의 첫 K리그 생활을 시작했고, 역시 쇼난 벨마레의 골키퍼 유망주였던 김민준은 경남에 입단했다.
이제 J리그에 남은 주전급 한국인 선수들은 J1리그 기준으로 김영권, 주세종, 김민태, 권순태, 정성룡, 김승규, 김진현, 황석호 정도가 다인 수준이다. 박일규, 이경태같은 재일교포 선수들, 신원호, 김민호 같은 유망주급 선수들을 제외하면 10명도 남지 않은 것이다. 한때 한국인 유망주로 가득 찼었던 J2리그에도 JEF 지바의 장민규, 파지아노 오카야마의 이용재를 제외하면 주전급은 없고 민성준, 고동민, 유용현, 정인권까지 합쳐도 총 6명에 불과하다.

9.2. 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




10. 외국인 선수 제도


2019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에 대한 규제를 풀었다. 그러나 출전 가능한 외국인 선수는 1부리그 5명, 2부와 3부리그는 4명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아시아 쿼터 선수는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팀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와 중동의 7개국 선수들은 자국 선수로 분류되어 출전에 제한이 없다.
자국 선수 육성에 방해가 되는게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지만 새롭게 홈그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2009년부터 도입된 아시아 쿼터제로 인해 한국인 선수 영입이 보다 활발해졌다. 당초에 동남아나 중동의 유망주를 발굴한다는 계획도 있었지만 대부분 구단들은 가성비가 좋은 한국 선수들을 선호하고 있다. 2009년 J1과 J2에 속해 있는 아시아 쿼터제 선수는 28명이다. 이 중에 2명만 호주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인이다.
2010년엔 한국인 선수 진출이 더욱 심화되어 한국인 35명이 J1, J2에서 뛰게 된다. 호주 선수는 고작 4명이다. 이 외에도 주로 아세안 쪽에서는 태국 출신 선수가 오는 경우가 많고 차나팁 송크라신같은 선수를 발굴해내기도 한다. 중앙아시아 쪽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선수들도 J리그에서 많이 뛰고 있으나 K리그의 제파로프알리바예프처럼 많은 득을 보진 못했다.
문제는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통한 일본 국내 선수의 실력 향상을 이루기보다, 결과적으로 자국 선수의 입지만 좁아지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과도한 외국인 의존이 리그의 경쟁력까지 갉아먹은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은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나서 "일본 국대 = 피지컬 안습 + 스트라이커 부재"라는 공식이 근 20년간 지배하다가 21세기 들어서야 나아졌다.[46]
예전에는 유상철, 황선홍, 홍명보같은 정상급 선수들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젊은 유망주들이 뭣 모르고 J리그 행을 택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다.[47] 이는 굉장히 위험한 행동으로 자칫 선수 개인의 인생까지 좀먹을 위험이 있다. J리그 진출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 지는 여기를 참조하자.# 홍명보 말마따나 K리그에서 정상급 아니면 J리그 가봐야 성공하기 힘들고 그렇다면야 한국에서 따뜻한 밥 먹고 지내는 게 낫다. 선수들의 무지와 에이전트, 부모들의 욕심과 무책임한 행동이 한국 축구와 선수 개인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엑소더스 때문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드래프트 점진적 폐지 발표와 함께 "데뷔를 K리그에서 하지 않는 선수는 최초 프로계약 이후 5년간 K리그 팀으로 이적하지 못 한다" 라는 룰까지 제정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긴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J리그보다 거지라며 K리그를 깐다.(...)[48]
2015 시즌 종료후 J리그의 몇몇 팀들이 실력있는 골키퍼들의 부재를 메꾸기 위해 외국인 골키퍼 영입에 나섰다. 한국의 국가대표 골키퍼들이 영입대상에 올랐는데, 김승규비셀 고베,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로의 이적을 했다. 2017시즌부터는 권순태가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뛰게 되었다.
2017시즌 이후 여러 이유로 또 한번 한국인 선수들의 J리그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 많이 늘어났지만 2017~2018년에 J리그로 이적한 한국인 선수들이 부진한 경우가 많았고 2019시즌부터는 외국인 보유제한이 완전히 폐지되고 출전 제한도 아시아 쿼터 구분없이 5명으로 제한되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뛰는 팀이 아니라면 아시아쿼터 메리트가 전혀 없어서 2019시즌부터는 J리그로 이적하는 한국 선수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10년대 초중반에 리그가 어려웠던 반면 새로운 중계권 계약으로 J리그 팀들에게 여유가 생겼고 비셀 고베처럼 성적보다는 마케팅에 열성을 쏟는 팀도 있어서 이니에스타처럼 이름값은 높지만 나이가 많아 전성기에서 한단계 물러난 선수들을 1990년대처럼 리그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11. 시민구단


구단명에 모기업명이 없기 때문에 전부 다 시민구단이라고 착각하고 기업명이 잔뜩 들어간 K리그[49]를 까는 혐한들이 많은데, 사실 J리그도 실업리그가 기반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 기업이 최대 주주인 팀들이 많다. 유럽에서도 흔하지는 않으나 독일 분데스리가바이어 레버쿠젠 (바이엘),[50] 네덜란드 에레디비시PSV 에인트호번 (필립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아스널 FC[51] 등 기업명을 포함하는 클럽은 여럿 존재한다.
예컨대 J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알려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경우 미쓰비시가 100% 출자하는 기업구단으로 레드 다이아몬즈라는 팀명 자체가 모기업의 로고에서 유래한 것이다. 팀 이름에 기업명이 들어가지 않는 건 실업축구에서 프로축구로 전환할 때 실업팀들에게 기업명을 금지하고 프로팀 같은 이름을 지어서 쓰라고 연맹에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단 법인명 등록시 기업명을 넣기도 하며 오미야, 이와타, 고베, 가시와가 이에 해당된다. 때문에 열받은 요미우리는 축구팀 스폰서를 포기했다.[52]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연고지 이름인 도쿄가 안 붙어 있는 지 생각하면 쉽다.[53] 요미우리는 스포츠 구단 운영에도 특유의 보수성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54]
오히려 J리그는 NPB에 밀리는 흥행에도 불구하고 NPB 못지 않은 그 탄탄한 자금력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리그다. 이는 초창기부터 NPB의 주류를 이루던 중견기업들이 대기업의 참여를 철저히 막았기 때문에 이 대기업들이 차선책으로 축구를 택한 결과다. # 일본 50대 기업 중에서 프로야구에 참여중인 기업은 소프트뱅크 하나 뿐이지만 J리그에는 토요타, NTT도코모, 닛산, 파나소닉, 미츠비시, 히타치 등의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리그 당국이 소수 대기업에 휘둘리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실업팀을 대부분 다수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여전히 리그 우승을 다투는 명문클럽[55]들은 대기업의 직접 영향하에 놓여 있다. 극단적으로는 연고지 규모에 비해 인기가 없고 여러번 강등당해도 모기업의 지원금으로 거대 예산을 유지하는 클럽(교토, 나고야, 지바 등)도 존재한다.

11.1. 각 구단 별 기업과의 관계



12. 인기 팀과 서포터즈


J리그 현지에서 인기팀을 뽑으라면 당연 우라와 레즈감바 오사카를 뽑을 것이다. J리그 5대 인기팀으로는 우라와 레즈, 감바 오사카, 요코하마 F. 마리노스, FC 도쿄, 알비렉스 니가타를 들 수 있다. 나고야 그램퍼스의 인기도 만만치 않은데 평균 관중만 놓고 본다면 탑3안에 드는 팀. 가시마 앤틀러스는 20개의 트로피를 자랑하는 팀으로 연고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멀리 도쿄에서도 응원올만큼 인기가 많은 팀이다. 마쓰모토 야마가는 현 전체가 아닌 마쓰모토시를 연고로 하고있고 1부리그 경험이 거의 없지만, JFL시절부터 인기가 많기로 유명했으며 현재도 꽤 많은 관중수를 자랑하고 있다.
현지에서 인정하는 대표적인 서포터즈로는 우라와 레즈의 서포터즈, 감바 오사카의 서포터즈, FC 도쿄 서포터즈이다.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서포터즈 역시 열정적이며, 마츠모토 야마가의 서포터즈는 말로만 듣던 전관중 서포팅을 하는 대표적인 구단이다.
2부리그에 주로 머물러있지만, 인기가 많은 팀으로는 오미야 아르디자, 제프 유나이티드 치바, 몬테디오 야마가타, 파지아노 오카야마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과 신구장 건설 예정 등으로 V-파렌 나가사키의 인기도 꽤 높은 편이다.
아비스파 후쿠오카는 큐슈의 최대도시를 연고지로 삼고있고 J리그 초창기부터 참여했던 팀이지만, 변변찮은 역사와 소프트뱅크의 존재로 인해서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다. 규슈를 대표하는 팀은 리그컵 1회 우승이 있는 오이타 트리니타가 있다. 한때 사간 도스가 1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토레스도 영입하면서 규슈에서 가장 유명한 구단이 되었었지만, 현재 엄청난 채무로 라이선스를 회수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반면 오이타 역시 한때 재정위기에 처했지만, 3부리그까지 강등되며 굴욕의 시간을 견뎌낸 끝에 현재는 1부리그의 안정적인 중위권 팀으로 올라와있다.

13. 킷 서플라이어 현황 (2021)



14. 클럽 명칭에 대한 고찰


J리그 구단들의 이름은 찬찬히 뜯어보면 세계의 수많은 축구 구단들의 단순한 이름[60]과는 달리 좀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실업구단이었던 팀들에게 연맹이 프로팀 같은 애칭을 지어서 쓰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지역 특색을 활용하거나 '가라오케'같은 합성어를 사용하여 일부러 멋을 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클럽수가 많아지면서 여러 언어에서 따온 요소를 억지로 합성했거나 발음이 어려운 애칭을 붙인 구단도 다수 생기게 되었으며, 상표권 문제로 이름이 꼬인 구단도 여럿 나왔다. 한편 과거의 TV 중계에서는 주로 애칭으로 호칭이 되는 반면 현재 중계를 맡고 있는 DAZN은 연고지에 복수 구단이 있는 경우(감바-세레소 오사카, 요코하마 마리노스 등)를 제외하면 연고지명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가시마 앤틀러스 - 앤틀러스(antlers)는 '사슴뿔'이란 뜻의 영어로, 사슴섬이라는 뜻을 가진 연고지 가시마에서 따왔다.
  • 가시와 레이솔 - 스페인어로 '왕'을 뜻하는 레이(rey)와 '해'를 뜻하는 솔(sol)을 합성하였다. 모기업인 히타치를 상징한다.
  • 가와사키 프론탈레 - 프론탈레(Frotale)는 '앞'이란 뜻의 이탈리아어이다.
  • 가이나레 돗토리 - 시마네 현 동부와 돗토리 현 서부에 걸쳐 쓰이는 방언에 '크다'는 뜻을 가진 가이나(がいな)와 이탈리아어로 '희망'을 뜻하는 스페라레(sperare)를 합성한 것이다.
  • 감바 오사카 - '힘내라'의 뜻을 가진 일본어 간바루(頑張る)와 이탈리아어로 '다리'를 뜻하는 감바(gamba)에서 따왔다. '축구의 힘은 다리에서 나온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같은 연고지의 세레소 오사카와 라이벌 관계이다.
  • 교토 상가 FC - 상가(サンガ)는 산스크리트어의 "sangha"에서 온 말로 동료라는 뜻이다. 불교 도시 교토를 상징한다.[61]
  • 기라반츠 기타큐슈 - 원래 이름은 뉴웨이브 기타큐슈(New Wave Kitakyushu)였으나 J2리그 승격시 저작권 문제로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기라반츠는' 해바라기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Girasole'와 전진하다를 뜻하는 'Avanzore'의 합성어로 기타큐슈 시의 시화인 해바라기를 상징힌다.
  • 나고야 그램퍼스 - 그램퍼스(grampus)는 영어로 '돌고래, 범고래'를 뜻하며, 에이트는 나고야 시 표장에 있는 숫자 8과 모기업 토요타의 브랜드를 상징한다. 현재는 에이트가 제외됐다.
  • 도쿄 베르디 - Verdy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을 뜻하는 verde를 변형한 것이다. 녹색은 도쿄 베르디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 도쿠시마 보르티스 - Vortis는 이탈리아어로 '소용돌이'란 뜻 Vortice와 도사 국,이요 국, 사누키 국의 앞글자를 합성한 것으로 나루토 해협의 소용돌이와 시코쿠를 대표하는 팀이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 로아소 구마모토 - 이탈리아어로 '붉다'를 뜻하는 Rosso와 '에이스'를 뜻하는 Asso의 합성어로 아소산을 상징한다. 과거 '로소'를 사용하다 상표권 문제로 변경하였다.
  • 마쓰모토 야마가 FC - 사회인 클럽 창설 시절 멤버들이 자주 모이던 카페 이름. 유일하게 클럽명이 온전히 한자로 표기된다.
  • 몬테디오 야마가타 - 이탈리아어로 '산'을 뜻하는 몬테(monte)와 '신'을 뜻하는 디오(dio)의 합성어로 '산들이 신처럼 수호한다'를 상징한다.
  • 미토 홀리호크 - 홀리호크(HollyHock)는 영어로 접시꽃이란 뜻이며,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상징이다.
  • 반포레 고후 - 프랑스어에서 바람을 뜻하는 반(Vent)과 숲을 뜻하는 포레(forêt)의 합성어이다. 이 말은 유명한 사자성어인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風林火山)에서 따왔다.
  • 베갈타 센다이 - 직녀성을 뜻하는 Vega와 견우성을 뜻하는 Altair의 합성어로 센다이 칠석제 중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상징한다.
  • 비셀 고베 - 비셀(Vissel)은 영어 'Victory'(승리)와 'Vessel'(배)의 합성어로 항구도시인 고베 시를 상징한다.
  • 사간 도스 - 일본어로 사암(砂岩)이란 뜻이며, 사가 현 방언으로 '사가 현의 도스'란 뜻도 갖고 있다. 일본어 기원 애칭은 도스가 처음이다.
  • 산프레체 히로시마 - 일본어에서 숫자 3을 뜻하는 산(三,サン)과 화살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프레체(frecce)의 합성어다. 이는 일본 센고쿠 시대 모략가였던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한 명언인 '셋 중에 조금이라도 불화가 있어 틈이 가게 되면, 곧바로 세 사람 다 멸망한다고 알아라'에서 따왔다.
  • 세레소 오사카 - 오사카의 시화(市花)인 벚꽃을 스페인어로 한 세레소(cerezo)를 그대로 팀명으로 사용했다.
  • 쇼난 벨마레 - 라틴어로 'bellium'(아름답다)과 'mare'(바다)의 합성어로 쇼난 지역을 상징한다.
  • 시미즈 에스펄스 - S는 시즈오카, 시미즈, 사커를 의미하고, 펄스(pulse)는 팀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의 심장고동을 뜻한다.
  • 아비스파 후쿠오카 - 스페인어로 꿀벌(avispa)이라는 뜻으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에서 따왔다.
  • 알비렉스 니가타 - 백조자리 베타성의 이름인 Albireo와 라틴어로 왕을 뜻하는 rex의 합성어다. 역시 알비레오를 쓰다가 상표권 문제로 변경되었다.
  • 오미야 아르디자 - 아르디자(Ardija)는 '다람쥐'를 뜻하는 스페인어 Ardilla를 일본인이 발음하기 쉽게 바꾼 것이다. 다람쥐는 오미야와 오미야 공원의 상징이다.
  • 오이타 트리니타 - 트리니타는 '삼위일체'를 뜻하는 영어 trinity에서 온 것으로, 상표권 분쟁 때문에 다시 오이타를 합성하여 바꾸었다. 팀을 이끄는 시민, 기업, 지방 자치 정부를 의미한다.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F.는 1999년에 흡수 합병한 '요코하마 플뤼겔스'를 뜻하고[62] 마리노스(marinos)는 '선원'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로 항구도시 요코하마를 상징한다.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미쓰비시의 로고에서 따왔다.
  • 자스파구사츠 군마 - 클럽의 초창기 연고지인 군마 현의 구사츠 온천을 상징한다. '자스파'는 영문으로 표기하면 The Spa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 제프(JEF)는 JR동일본(JR East), 후루카와 전기(Electric Furukawa)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 주빌로 이와타 - 주빌로(Júbilo)는 포르투갈어로 '환희'라는 뜻이다.
  • 카탈레 도야마 - '이기다'의 도야마 방언인 勝たれ 또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라는 뜻의 'Cantare'와 프랑스어로 '가다'를 뜻하는 aller의 합성어로 '서포터와 함께 나가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 파지아노 오카야마 FC - 파지아노(Fagiano)는 이탈리아어로 '꿩'을 뜻하며, 전설의 캐릭터인 모모타로에서 따왔다.
  •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 - 홋카이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의 한자 道産子(도산코)을 거꾸로 한 단어 '콘사도'와 스페인어 단어 'Ole'를 합성한 단어다. 원래 콘사도레 삿포로만 팀명이었으나 홋카이도는 나중에 붙었다.
  • FC 마치다 젤비아 - 시의 상징인 느티나무를 뜻하는 'zelkova'와 살비아를 뜻하는 'salvia'를 합성한 단어다.
  • V-파렌 나가사키 - V는 Victory의 앞글자, Varen은 '항해'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이다. 항구 도시 나가사키의 지역적 특색에 맞춰 '승리를 향해 항해한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15. 콜라보레이션


애니메이션의 국가(?)답게 여러 구단이 애니메이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맺고 있다.

16. J리그 백년구상 클럽


J리그 백년구상 클럽 항목 참조.

17. 관련 문서



[1] 중동으로 떠난 J리그 브라질 용병들의 이적료는 최대 5~10억엔에 달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2] 양 리그의 피지컬과 압박차이는 용병들이 빠지는 국대간 A매치에서 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3] 흔히 J리그에서 뛰면 K리그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다고 편견을 갖기 쉬운데,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격이다. C급 계약의 경우 연봉 480만엔 이하에 일정 이상 J리그 경기를 뛸 경우 B급 이상으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데, 사실 비용이 더 드는 것은 둘째치고 기존 비싼 용병들의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 J리그 용병들의 평균 연봉은 4000만엔대로, 만약 C급 계약을 한 유망주가 확실히 낫지 않다면 당연히 비싼 용병을 더 쓰게 된다(들인 돈이 아까워서라도.). 즉, 확실한 메리트가 없으면 그저 망했어요. 괜히 홍명보가 주전 못될거면 가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4] 사실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흑자 구단이 많지 않다. J리그가 돈빨이란 것 또한 2010년대 아시아 기준에서 보면 두드러지는 것도 아닌데, 199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거품을 빼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시기가 있었다.[5] 그것도 일본 내수판에서만 할 수 있다. 즉, 한국 정발판이나 PES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단 AFC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한 팀은 사용 가능.[6] 현청소재지인 우쓰노미야시만을 연고지로 잡고 있으며, 도치기시는 포함되지 않는다.[7] 2001년까지는 도쿄도의 일부 지역만을 명목상 연고 구역으로 지정하고 있었다. FC 도쿄는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이 위치한 조후시 등, 베르디는 클럽 시설이 위치한 이나가시.[8]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호쿠신에쓰 1부(5부)의 후쿠이 유나이티드와 사카이 피닉스.[9]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JFL(4부)의 페르틴 미에와 스즈카 포인트 겟터즈.[10]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JFL(4부)의 MIO비와코 시가.[11] 명칭은 오사카로 달고 있지만 오사카시는 연고 구역에 들어가지 않는다.[12]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JFL(4부)의 나라 클럽.[13]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간사이 1부(5부)의 아르테리보 와카야마.[14]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JFL(4부)의 마쓰에 시티.[15] 현내 최고등급 클럽은 JFL(4부)의 고치 유나이티드.[16] 일본 축구의 기틀을 다진 '일본 축구의 아버지'라 불린다.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2회 연속 우승 경력을 보유한 인물. 1991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 대한민국이 영입한 첫 외국인 감독이기도 했으나, 훈련방식을 놓고 한국 코칭 스탭들과 마찰을 빚은 끝에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17] 영문 로고는 한자로 된 스폰서 부분이 영어 MEIJI YASUDA로 바뀐다.[18] 9개 지역 중 혼슈 5개 지역은 2부로 구성된다.[19] 2014시즌 기라반츠 기타큐슈가 5위를 기록하고도 J1라이선스를 따지 못해서 승강 플레이오프에 참여하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현재는 경기장을 신축하며 J1라이선스를 획득했지만 팀은 J3에서 긴 세월을 보내다가 2020년에야 겨우 J2 복귀.[20] J3리그에는 J2라이선스를 보유하지 못한 팀들이 많다. 2017시즌에도 J3 우승팀인 블라우블리츠 아키타도 라이선스가 없어서 승격을 하지 못했으며 2위를 차지한 도치기SC만 승격했는데 이때의 최대 수혜자는 J2리그에서 21위를 차지했던 로아소 구마모토였다.[21] 다만 2010 시즌 말미에 오미야 아르디자의 간부들이 관중수 조작을 했다 적발되었다. 구단에 벌금 2000만엔이 부가되었으며, 관중수 조작을 주도한 간부 2명이 해임되고, 사장이 사임하는 여파가 있었다.[22] J리그 2011년 평균 관중은 15000명 후반[23] 일본을 존폐 위기로 몰고 왔던 도호쿠 대지진은 어쩔 수 없었다.[24] 바꿔 말하자면 굳이 라이트팬에게 구걸하다시피 인기 얻지 않아도 골수팬들 만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얘기다.[25] 1980년대 최고 호황기를 거친 일본이 한국보다도 운동장 시설을 갖추지 못한 데 의아함을 느낄 수 있겠으나, 한국은 국민체육진흥법과 체육시설법에 의하여 각 지방자치단체가 종합체육대회 개최 수준의 시설을 갖출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일본에도 스포츠기본법은 있으나, 스포츠 시설에 대해 명문화된 의무가 없는 데다 각지의 학교가 어느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전문 스포츠 시설은 오히려 부족했던 것.[26] 상기한 바와 같이 J리그 창설에 맞춰 1만석짜리 경기장을 2만석 후반대로 확장했다. 다만 팬들이 크게 불만은 없는지 신구장 건설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27] 건설하는 지방정부가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슬럼가나 공장지대를 큰맘먹고 재개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기장이 들어갈 큰 땅은 찾기도 어렵다. 한국의 경우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예시할 수 있다.[28] 2002 월드컵에 사용된 경기장 10개 중 시에서 건설한 것은 닛산 스타디움 등 4개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월드컵 유치에 맞춰 건설된 건 고베 미사키공원 구기장 뿐이다. 그리고 이들 시립 경기장은 접근성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29] 현재 J리그에서 주 경기장이 연고지 중심도시 밖에 위치한 팀이 나고야 그램퍼스를 포함해 8개나 된다. (시내에서 1시간 이상 걸리지만 어쨌든 명목상 '도쿄'에는 걸리는 FC 도쿄도쿄 베르디는 빼고) 극단적으로 시즈오카 스타디움 에코파미야기 스타디움 정도로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아예 입주하는 팀이 나오지 않게 된다.[30] 8강에서 전북, 4강에서 성남을 꺾고 우승했다..[31] 후반 유효슈팅수 0이였다 .1골도 PK로 넣었지만 PK 주기에는 애매한 판정이였다. 보고 있던 J리그 선수들도 그냥 준거라고 생각했는지 박수까지 치며 웃어버렸다.[32] 마지막 가와사키 홈경기에서 K리그 포항 스틸러스에게 2:0으로 실신당하면서 조2위로 내려앉았다. 가와사키 프론탈레는 북한의 정대세가 뛰던 적이 있다.[33] 유치할 때는 안달이었으면서 막상 결승은 남의 집 잔치-포항 스틸러스 vs 알 이티하드-가 되어버리자 일본 언론의 관심은 시큰둥해졌다. 그리고 나고야를 크게 이긴 알 이티하드를 포항 스틸러스가 2:1로 승리하고 우승컵을 한국으로 공수해갔다.[34] 다만 팀에 핵심이였던 김보경이 초반에 전북에 거친 수비로 큰 부상으로 교체된게 컸다. 조별리그 2경기나 홈경기에선 엇비슷했다. [35] 한편 부진했던 K리그에선 울산 현대 1팀만 8강에 올라갔는데, 그 울산 현대가 우승했다.[36] 최근 조별 리그에서는 거의 비슷하거나 J리그가 살짝 앞서는 전적을 보이지만 토너먼트에서 K리그 팀에게 자주 패하며 전적을 깎아먹고 있다.[37] J리그행의 1차 러시가 지나간 1999 시즌의 리그 최고 연봉은 2억 2천만원의 김병지였다. 이 해 J리그에 진출한 고정운, 홍명보 등의 한국 대표급 선수들은 7~9천만엔(IMF 시기 환율로 8~10억원)을 수령했다.[38] 둥가만 보더라도 98 브라질 월드컵 주장까지 할 당시 J리그 선수였고, 이렇게 나이는 조금 많아도 여전히 현역으로 손색이 없을 수준의 선수들도 많았다.[39] 사실 박지성의 경우는 당시 그렇게까지 큰 주목을 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허정무의 박지성 올대 발탁은 내막도 모르고 지레짐작한 이례적인 발탁으로 꼽혔고, 당시 올림픽 대표에서의 평도 당시 국대 수준으로서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그런 선수에게 연봉 5000만엔(당시 6억)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를 제안하고, 또한 그 이상의 선수로 자랐으니....이후 J리그 팀들이 대한민국의 유망주를 마구 빼간 이유 중 하나가 박지성같은 선수 하나 걸리길 바라며 복권 긁는 심정으로 데려가는거 아니냐는 말도 나올 정도다. 참고로 저 당시 박지성은 2부 리그 팀을 1부로 올리고 2부 리그 우승 제외 유일한 우승인 천황배에서 계약기간 종료 다음날 결승전이 열렸고 박지성은 무보수로 뛴다고 하였고 결승전에 나가서 동점골을 넣었고 역전골을 어시스트하게 된다. 물론 급료를 받고 덤으로 보너스까지 득, 교토에서는 박지성이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와도 받아준다도 했다.[40] 이 문단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1. K리그에서 데뷔하지 않고 해외 리그에서 데뷔 시 5년간 K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룰이 생겼고 2. 아시아 쿼터제가 시행된지 5년이 지난 현재 J리그에 진출한 유망주들 중 확실한 주전 이상급까지 올라온 선수가 지금까지 5명 정도로(박주호, 조영철, 김민우, 김진현, 김보경 정도.) 1년에 1명 꼴에 불과하다 보니 J리그 드림에 대한 환상도 많이 깨졌다. 김창수의 경우는 조광래 감독의 1군(이라 쓰고 해외파라고 봐도 좋은) 절대 우선 정책 때문에 국가대표 데뷔도 늦은 편이었고, 그 후에도 부상으로 부침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해외 진출을 서둘렀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 중국이나 중동으로 가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김창수보다 커리어가 좋은 편이다.[41] 이는 바로 위의 각주에서 설명된 K리그에서 데뷔하지 않고 해외 리그에서 데뷔 시 5년간 K리그 입단을 금지하는 룰과도 연관이 있다. J리그에 입단했다 하더라도, 거기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해외에서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42] 이렇게 J2 언저리에서 그저 그런 용병으로 살아가는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면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얻은 것이 많다 이런 얘기를 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인데, 본인들 나름대로 얻은 것이 있으니 그나마 살아남아서 인터뷰를 하는 선수까지 된 것이지 그나마도 안 되는 선수들은 이름없이 사라졌다. 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대개 나는 어떻게 뭣모르고 시간낭비를 하다가 시간낭비를 줄여가서 적응에 성공했나가 대부분이다. 즉 한국에 있었으면 선수 형들이나 코치들이 자연스럽게 챙겨줬을 부분인데 그걸 모르고 1, 2000만원 더 받으려고 경기 수준도 거기서 거기인 리그에서 중요한 1, 2년을 낭비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유망주 시절 무턱대고 일본에 가서 얻은 것도 있다고 말하는 건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승리를 하는 부류들이나 저기 2002 당시 노장급 선수였던 이들도 박지성을 무시한다는 불편한 진실도 포함한다.[43] 특히 리그팬들이 꽤나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락싸에서도 요새는 응원을 해주는 분위기다.[44] 인식 변화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K리그에서 계속 붙잡거나 유럽으로 가는 게 불가능하다면 돈은 많이 주지만 수준을 담보할 수 없고 구단주 눈치도 봐야되며 어지간히 잘하지 않으면 소식이 끊기는 것은 덤인 중동이나, 유망주들을 비싼 값에 데려갔지만 실력 성장도 만족스럽지 못한데다 아시아 쿼터제를 폐지해서 한국 선수들의 입지를 없애버린 중국보다는 일본행이 차라리 낫기 때문에 이해하는 면도 강하다.[45] 상무에서 뛰려면 최소 반 시즌은 K리그에서 뛰어야 하기 때문.[46] 외국인 선수 영입이 리그에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는 딱 잘라 말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대표팀도 황선홍과 박주영 사이 10년 가량이 좀 애매한 시기인데, 이는 아테네 올림픽 세대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때문이다. 반면 지동원 등은 유소년 축구교실 세대다. 이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지 외국인 선수 영입 하나만으로 속단하는 것은 위험하다.[47] K리그에서 자유계약제도가 사라지고 드래프트 제도가 부활한 것이 이를 부추겼다.[48] 참고로 전세계적으로 협회나 연맹 차원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곳은 거의 없다. MLS는 선수 협회가 발표하고 있으며, J리그는 닛칸스포츠에서 발간한 J리그 플레이어즈 명감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외국인 선수 연봉이 제외되어 있거나 수당 등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유럽 축구 리그의 선수 연봉 정보도 몇몇 초대형 스타 플레이어의 연봉을 구단에서 발표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언론이 발표한 수치로, 100% 정확도를 장담할 수는 없다.[49] 사실 잔뜩 들어갔다고 하기에는 K리그에서도 팀 이름에 기업 이름이 들어가는 팀은 몇 안 된다. 시민구단이 많이 창단되면서 기업구단 자체가 희소해진 이유도 있지만, 서울이나 제주, 전남, 포항처럼 기업구단임에도 모기업명을 붙이지 않는 팀들도 있다. K리그판에서 연고명이 아닌 기업명으로만 팀을 호칭하는 건 욕설과 비슷하게 통할 정도다.[50] 독일은 분데스리가 규정상 기업이 51% 이상의 지분을 갖지 못하는 등 규제가 심하지만, 레버쿠젠과 칼 차이스 예나 등 직장 축구팀을 원류로 인정받은 곳은 예외를 인정받기도 한다. 이하 네덜란드 등도 마찬가지이다.[51] Woolworth Arsenal. 이 쪽은 현재의 기업명이라기보다 전신에 가깝지만.[52] 사실 연맹 측에서도 요미우리를 축출하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가 요미우리의, 요미우리를 위한, 요미우리에 의한 기형적 리그였으니만큼 축구도 한 클럽에 심하게 표류하는 리그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결국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요미우리 신문을 축구에 발 붙이지 못하게 했으며, 기업명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도 요미우리를 내보내려는 것 중 하나였다. 만약 이러지 않았다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이상으로 요미우리와 아이들 신세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53] "도쿄"를 쓰는 야구팀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54] 요미우리가 스폰서를 해주던 축구팀은 現 도쿄 베르디다. 이 구단의 모체는 요미우리 FC. 요미우리의 그룹 산하 닛테레(NTV)가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손을 뗀 이후에는 재일동포 최창량이 운영하는 도쿄홀딩스가 최대 주주로 있다.[55] 기존 성적과 재정 규모를 볼 때 우승을 노리는 클럽은 현실적으로 가시마(신일철주금→메르카리), FC도쿄(도쿄가스), 우라와(미쓰비시중공업), 요코하마 F 마리노스(닛산자동차), 가와사키(후지쯔), G오사카(파나소닉), 고베(라쿠텐), 히로시마(마쓰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에 매각된 가시마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기업이 지배주주이다.[56] 스미토모금속은 2012년 독립계 기업 신일본제철에 합병되어 스미토모 그룹을 이탈했다.[57] 합병 전 각각 요코하마 마리노스,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스폰서였다. ANA는 합병 후에도 한동안 스폰서를 유지했다.[58] 이후 대표 오쿠데라 야스히코와 팬 회원의 분쟁을 거쳐 현 구단주인 오노데라 히로시가 인수하였다.[59] 1998년까지 시민주 10% 수준.[60] 지역명 + FC 같은.(또는 반대로) 주로 유럽이 많이 쓰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이런 팀명을 보기 힘들다.[61] 공교롭게도 이 팀에서 활약한 박지성도 불교다.[62] 플뤼겔스(Flügels)는 독일어로 날개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