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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디다스'''(Adidas)는 독일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다.
유럽 최대의 스포츠웨어 제조업체이며, 나이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스포츠웨어 제조 기업이다. 운동화를 비롯해 의류나 악세사리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트레이드 마크는 특유의 '''3선'''. 2013년에도 러닝 라인으로 부스트를 내놓는 등 새로운 기술과 신발 개발에도 열을 내고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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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자인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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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아돌프 다슬러(이하 아디)는 독일 바이에른 주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발 공장의 봉제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세탁소를 운영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아디 다슬러는 섬유 가공, 신발 세탁, 제단, 제본 등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당시 독일의 신발 산업은 하향세였기에 아버지는 아들이 제빵사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1920년 운동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자신 역시 운동 선수였던 아디 다슬러는 너무 쉽게 닳아버리는 운동화 대신 내구성이 강한 운동화를 만들고 싶어 스무 살 때부터 어머니의 세탁실에서 혼자 트레이닝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설립자인 아디 다슬러는 형 루돌프 다슬러(이하 루디)와 함께 1924년, 뉘른베르크 인근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위치한 자택에서 축구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디는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해 질 좋은 축구화를 만들어냈고, 외향적인 성격의 루디는 그런 동생이 만든 축구화를 팔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후 집에 돌아온 형 루디 다슬러는 동생의 신발 사업에 동참해 둘은 같은 해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Gebrüder Dassler Schuhfabrik)’을 설립했다. 훗날 아디다스의 전신이 된 이 회사는 아디 다슬러의 가족을 포함한 12명의 사람들이 매일 50켤레의 운동화를 제작하는 가내 수공업 형태였다. 아디는 조용하고 꼼꼼한 신발 개발자였고, 형 루디는 외향적인 성격의 세일즈맨이었기에 둘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 회사를 운영했다. 아디 다슬러는 자신이 만든 제품들을 선수들이 착용하기 전에 늘 테스트를 직접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좋은 제품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겠다던 그의 신조(Only The Best For The Athlete)는 지금도 아디다스 브랜드 철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인 역시 열정적인 운동 선수였던 아디는 선수들과 그들의 요구에 늘 귀 기울였다.
1924년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 공장 창업 후, 다슬러 형제는 운동 선수들을 위한 최적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아디 다슬러는 보다 더 가벼운 신발을 만들기 위해 저울을 들고 다니며 원단을 찾아 다녔고, 선수와 트레이너들을 직접 만나 자신이 만든 신발의 성능을 직접 테스트했다. 그 결과, 그는 딱딱한 가죽 대신 부드럽고 가벼운 고무 원단으로 대체해 운동화 제작에 사용했다. 이 고무 운동화는 아디다스 스포츠화의 효시였다. 1925년, 아디는 직접 손으로 스파이크를 박은 러닝화와 가죽 징을 박은 축구화를 개발해 특허권을 갖게 되었다. 이 신발들은 트랙과 필드에서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는데, 특히 아디의 스파이크 러닝화가 처음 빛을 본 것은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였다. 리나 라드케(Lina Radke) 선수가 이 신발을 신고 여자 800m 달리기에서 세계 최고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한 1932 LA 올림픽에서 아서 요나스(Arthur Jonath)도 이 신발을 신고 육상 100m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다슬러 형제가 만든 신발은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33년에 형제가 나치당 당원이 되면서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3] 나치는 유럽 정복을 위한 병역 자원을 마련하고자 젊은이들의 체력 및 협동심을 기를 스포츠를 장려했고, 스포츠 용품 업자인 다슬러 형제는 그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
다슬러 형제의 나치 경력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루디가 나치의 사상에 공감하고 있던 반면, 신발 밖에 관심이 없던 아디는 그저 신발장사의 수단으로 나치당에 가입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독일 국가 대표 선수들 대부분이 아디 다슬러가 만든 운동화를 신었고, 독일 올림픽 위원회는 다슬러 형제의 신발을 신겠다는 선수들의 요구에 따라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에서 스포츠화를 공급받았다. 아디는 이 당시 최고의 육상 스타이자 흑인 선수인 미국의 제시 오언스(Jesse Owens)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보여주기 위해 바이에른에서 베를린에 있는 선수촌까지 직접 차를 몰고 찾아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디 다슬러는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스파이크 러닝화를 보여주며 경기에서 신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다. 결국 제시 오언스는 이 스파이크 러닝화를 신고 100m, 200m, 400m 계주와 멀리뛰기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해 베를린 올림픽 최고의 스타가 됐다. 제시 오언스가 신었던 다슬러 형제의 신발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흑인이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을 싫어한 아돌프 히틀러를 엿먹인 제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신발을 제공함으로서 그 우승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를 신길 원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다슬러 형제는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이 길어지자 형제의 사업 여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형제는 회사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디는 아디의 아내가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루디는 군대에 끌려갔지만 아디는 징집되지 않았기에 루디는 아디랑 제수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를 썼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1945년 7월에 루디는 미군에게 잡혀 SS로 오해 받아 포로수용소에 1년 동안 감금된다. 루디의 소속 부대가 패전에 즈음하여 재편성되면서 SS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루디는 독일의 패전을 직감하고 탈영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 때문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다하우 수용소에 끌려가던 중 독일의 패전을 맞이하게 되고, SS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총살당할 뻔 하였지만 독일군 트럭 운전사의 기지로 미군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미군에게 다시 체포된다. 루디는 이 모든 일이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석방되자마자 아디를 나치 협력자로 밀고했지만 아디는 유대인계 시장(市長)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다.[4] 아디는 전쟁 말기 자신의 직원들을 향토방위군 훈련에서 열외시키기 위해 훈련시간마다 초과근무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결국 루디는 집에서 나와 강건너의 다슬러 공장을 차지했고, 그를 따르는 사원들을 데리고 독립했다. 아디는 자신의 이름과 성에서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를 만들었고, 루디는 푸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다슬러는 아디다스와 푸마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두 회사간의 화해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이루어지게 되었다.[5] 1974년 루디의 사망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아디가 형을 용서하겠다고 하며 형제간의 화해가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루디의 장례식 당시 아디 본인은 참석하지 않고 딸 한 명이 가족 대표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났다. 하지만 역사적으론 같은 가문이다.
여담으로 둘 다 본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있다.
참고로 ADIDAS의 뜻이 국내에선 'All day I Dream About Sports'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로 실제 의미는 창립자 아디 다슬러 별명인 “Adi(Adolf)”와 성인 Dassler의 앞글자 “Das”의 6글자를 합친 것이다. 미국의 유명 뉴메탈 밴드 Korn의 대표곡 중 'A.D.I.D.A.S.(All Day I Dream About Sex)'가 있어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브랜드명을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애초에 아디다스는 독일 기업인데 영어로 약어를 지었을 리가 없다.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루디와 달리, 아디는 기술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디다스 설립 후 아디의 부인인 캐테 다슬러가 아디다스의 경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멜버른 올림픽에서 수완을 발휘한 이후 아디다스 프랑스의 매니저를 맡게 되는데 그는 야심가로서 보수적인 경영을 추구하던 부모와 충돌이 잦았고 독일의 아디다스 본사와 프랑스의 지사는 독립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하여 사업상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6] 물론 가족회의를 통해 조정되고 최종적인 결정은 어머니 캐테를 거치긴 했다. 물론 호르스트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캐테는 종종 '''아들 때문에 힘들어요'''하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1949년, 프라이부르크(Freiburg) 제화 회사를 대신하여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납품업체가 된 아디다스는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또 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7] 현재까지도 아디다스가 독일 국가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서독 대표팀은 아디 다슬러가 만든 축구화를 신고 출전했다. 서독 대표팀은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헝가리 팀에게 3대 8로 대패했다. 터키와 플레이오프(Playoff)를 치르며 힘겹게 8강에 오른 뒤 서독은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헝가리팀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에 서독의 우승을 점치는 이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변수가 생겼다. 경기가 벌어진 베른(Bern)에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경기 시작 이후 연속 두 번의 골을 넣어 주도권을 잡은 팀은 헝가리였지만, 폭우로 인해 그라운드가 진흙탕으로 변해가면서 축구화 바닥의 스터드(Stud, 징)를 교체할 수 있는 축구화를 신은 서독 팀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전반이 끝나고 스터드를 교체한 서독의 경기력은 후반으로 갈수록 더 살아났다. 2대 2 동점이었던 후반 39분, 헬무트 란(Helmut Rahn)이 결승골을 넣으며 헝가리를 무너뜨렸다. 이 승리는 서독의 승리이자, 아디다스 기술의 승리였다. 패전국으로 의기소침하게 살아가던 독일 국민들에게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후에 이 일화는 『베른의 기적(The Miracle Of Bern)』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영화에는 아디 다슬러가 축구화의 스터드를 교체할 수 있다는 걸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월드컵을 통해 아디다스는 축구 전문 브랜드로 급성장하게 되었고 독일 대표팀이 신었던 아디다스의 징 박힌 축구화(Sports Shoe With Screw-In Studs)는 전 세계적으로 주문이 쇄도해 한 해 45만 켤레 넘게 생산됐다.
1960년대 중반부터 아디다스는 스포츠 의류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고, 1963년에는 축구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디다스의 텔스타(Telstar)가 공인구로 사용되면서 아디다스 축구공은 모든 FIFA 월드컵의 공인구로 채택됐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아디다스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선수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로 스포츠 용품 분야에서 독주했다. 1978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디 다슬러의 뒤를 이어 다슬러 가문의 경영이 시작됐다. 아디 다슬러의 사망 6년 후 아디 다슬러의 아내 카데 다슬러(Kathe Dasselr)의 사망으로 그녀의 경영이 막을 내렸다. 이후, 아디다스 CEO 자리에 아디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Horst Dassler)가 올랐다. 그는 스포츠 용품 전반으로 사업 범위를 무리하게 확장했고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아디다스 물품 독점 계약에 열을 올렸다. 아디 다슬러가 살아있었을 당시 아버지의 사업을 도왔던 호르스트 다슬러는 스포츠화 제작에 주력했던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토털 스포츠 용품 사업으로 진출하려는 욕심이 많아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그늘을 피해 프랑스 법인으로 도망가다시피 했는데 이 때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레나(Arena)라는 수영 전문 브랜드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마케팅으로 그는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가 되었다.[8] 호르스트는 스포츠 상업화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농구화[9] 당시 미국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석권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만들던 농구화의 재질은 천이었다. 지금도 컨버스 매장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의 캔버스화 맞다.
'''슈퍼스타'''[10] 의외로 수퍼스타가 농구화로 출시된 모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슬램덩크에서 안선생님이 강백호와 점프슛 대결을 할때 착용한 모델도 슈퍼스타 하이탑 제품인 Adidas Pro Model이다. 이는 훗날 2015년 2월에 퓨쳐스타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판이 나왔다.
는 농구선수들의 대호평을 받으며 아디다스는 미국 시장까지 석권했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은 어렸을 때 나이키보다 오히려 아디다스 농구화를 선호하였다고 한다.[11] 때문에 컨버스도 가죽으로 농구화를 만들어야 했다. 매직 존슨과 줄리어스 어빙의 시그네쳐화는 컨버스에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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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최고의 히트작, '영원한 스테디셀러'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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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로운 유행에 둔감한 채 전문적인 스포츠 용품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점[12] 조깅이 미국에서 유행이던 시절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아디다스가 조깅화의 출시를 망설이는 사이, 후발 주자 나이키는 조깅 열풍에 편승하여 아디다스를 추월하고 에어 조던을 출시해 농구화 시장을 평정한다.
과 결국에는 아디다스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게 된 호르스트가 무리하여 미국 총판의 영업권을 구입해버린 점 등으로 인해 회사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진 점 등으로 인하여 결국 아디다스는 혜성같이 등장한 나이키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아디다스는 '''마당의 잔디를 깎을 때 아저씨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될 정도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디다스는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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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옷을 입은 Run D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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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를 창립한 아디 다슬러 가문의 가족 경영 체제를 대체하고 큰 재정 문제에 빠진 아디다스를 살리기 위해 1990년 전문 경영인 베르나드 타피에(Bernard Tapie)가 새로운 CEO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창립자 아디 다슬러와 더불어 현재의 아디다스를 만든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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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Run DMC의 콘서트에서 팬들이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들고 열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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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는 이 시기 본업인 스포츠가 아닌 다른 곳에서 명성을 쌓는다. 바로 패션. 힙합의 시조격인 전설적인 그룹 Run DMC가 아디다스의 파이어버드 저지를 입고 슈퍼스타, 캠퍼스 등의 스니커즈를 신고 활동하면서 아디다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된다. Run DMC는 아디다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My Adidas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당연히 아디다스는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고 이 노래는 화면과 라디오를 타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었다. 당시 런 디엠시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중절모와 아디다스 운동화는 전 세계 힙합퍼(Hiphoper)들을 상징하는 아이템이 됐다. 아디다스가 제작한 런 디엠시 라인의 시그니처(Signature) 제품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나이키(Nike)에게 벌어다준 만큼의 수익을 아디다스에게 안겨주었다. 아디다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삼선 트레이닝 복을 비롯한 아디다스 의류의 시작은 베르나드 타피에의 노력의 결과라는 평을 받고 있다. 런 디엠시와 아디다스의 콜라보레이션은 선수들을 위한 스포츠 브랜드에 국한되어 있던 아디다스의 이미지를 대중적인 브랜드로 확장시켜 주었다.
사업이 점차 확장되자 아디다스는 1997년 동계 스포츠 용품 제조사인 살로몬(Salomon)을 인수했고 회사 이름을 아디다스 살로몬(adidas Salomon)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2005년 살로몬 사업 부문을 핀란드의 아머 스포츠(Amer Sports)에 매각하면서 회사명을 다시 아디다스로 변경했다. 아디다스는 이에 힘입어 차후 스트릿 패션에 주력하는 '''Adidas Originals''' 라인을 생산하게 되고, 많은 셀러브리티와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폴 매카트니의 딸인 여성복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라인이 특히나 유명하며, 2010년대에는 제레미 스캇이 내놓은 라인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오리지널스 라인은 대개 복고풍의 트렌디한 패션을 주도했고, 덕분에 아디다스는 패션 분야에서만큼은 점유율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이키를 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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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의 주력모델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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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동안 아디다스는 본업인 스포츠 분야에선 여전히 심각한 부진을 겪는다. 적어도 축구에서는 1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뒤늦게 축구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나이키가 'R9' 호나우두를 내세워 축구산업에 전념하면서 야금야금 점유율을 내주더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축구에서도 2인자로 밀리게 됐다가, 2010년대 들어와서 다시 1인자로 올라섰다. 아디다스가 신경을 쓰지 않던 골프 분야를 나이키가 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대박을 터트리면서 아디다스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에 절치부심하던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을 구상한 인재들을 영입하여, '''Equipment'''[13] 브랜드를 런칭하고 로고를 기존 불꽃 모양[14] 사실은 불꽃이 아니라 Trefoil이라는 식물의 잎을 심볼화한 것. 100개 이상의 안건 중에 채택되었으며 세 줄기가 각각 미주, 유럽-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를 상징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양이 불꽃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은데다가, 한국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만화인 피구왕 통키의 연상효과라도 작용한 것인지 불꽃 마크로도 많이 불린다.
의 트레포일에서 삼각형의 로고(바로 이 페이지 맨 위의 로고, 트레포일은 패션라인인 오리지널스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제한.)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써먹는 '''Impossible is Nothing'''도 이때 나온 것.
결국 아디다스는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거대한 미국 시장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나이키에게 밀려서 스포츠용품 업계의 콩라인이다.[15] 아디다스 그룹이 리복을 인수한 것도, 미국 시장에서 비교적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인 리복을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보려는 시도였다.
아디다스가 나이키를 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2014년 미국 매출액만 보더라도 나이키 118억달러, 언더 아머 26억달러, 아디다스 16억 달러로 아주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미국 점유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보였으나, 아디다스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2015년 등장한 울트라부스트를 시작으로 이지 부스트, NMD 등 부스트 중창을 장착한 신발들이 나오고 튜블라 라인도 히트를 치면서 2016년 3분기에는 언더아머를 다시 제쳤다.
사실 북미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밀려서 그렇지 아디다스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아직도 우세한 편이다. 아디다스는 나이키를 넘기 위해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영입으로 패션 분야의 지분을 점차 늘려가며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고, 축구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 올림피아코스 FC와의 대형계약을 맺어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의 최정상 클럽을 모두 스폰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만들었던, '''All in or nothing''' 캠페인에서 마침내 나이키를 이기면서 꿈도 희망도 없던 2000년대 중반에 비하면 미래가 긍정적인 상태다.
2006년, 리복을 인수해 북미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린 아디다스는 2011년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파이브텐(Five Ten)과도 합병했다. 2013년, 아디다스는 3년에 걸친 연구 개발 끝에 달리기에 가장 적합한 신소재인 부스트(Boost)를 개발해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고 쿠션감이 좋은 운동화 에너지 부스트(Energy Boost)를 런칭했고, 2014년에는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인 브라주카(Brazuca)와 함께 새로운 축구화 배틀팩(Battle Pack)을 선보였다.
2001년부터 CEO를 맡고 있던 헤르베르트 하이너가 물러난 이후, 2016년 카스퍼 로스테드[16] 덴마크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를 나온 그는 2016년 아디다스 최고경영자가 되기 전까지 스포츠와는 관련이 없었다. HP에서 일하다가 2005년 세제로 유명한 독일 기업 헨켈에 합류했고, 3년 만에 헨켈 최고경영자로 임명됐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소비재 수요도 급감하던 시기였다. 그는 과감한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가 경영하는 8년 동안 헨켈 시가총액은 3배 가까이 뛰었다. 이는 아디다스가 그를 영입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가 CEO로 부임한 이래 업계 1위 탈환을 목표로 아디다스는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들어갔고, 다시금 상승세를 타고 있다. 로스테드는 공장을 독일로 옮겨 전자동화를 도입, 인건비를 대폭 낮추었다. 아디다스는 2015년 3억100만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했고, 2020년까지 매년 3000만켤레씩 생산을 늘려 나갈 전망이다. 아시아의 인건비가 상승하고 로봇 생산비가 낮아짐에 따라, 유럽과 미국 등에 로봇 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패션 업계에서는 24시간 생산이 가능한 로봇 공장이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빠르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패스트 패션에 적합하다고 본다. 유럽과 미국 등 소비시장과 가까워 아시아에서 생산해 운송하는데 따른 비용과 시간,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경쟁사인 나이키 역시 로봇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브랜드 이미지 재고를 위해 스폰서십을 대폭 손보았으며, 셀러브리티와의 스폰서십을 강화하여 애슬레저 시장을 선점하였다.#
그 결과 아디다스는 북미 지역의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했으며, 2017년에는 중국 시장에서 29% 성장, 북미 지역에는 27%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 아디다스의 영업이익은 무려 219% 증가하는 등 경쟁사 나이키를 다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여전히 나이키의 어패럴 브랜드 순위가 1위지만, 나이키의 평가 가치가 몇몇 악재로 2018년 -12%를 기록한 반면, 아디다스는 무려 41%가 성장하여 4위를 기록한 상태이다.# 2019년에는 17% 성장하며 3위를 기록했다. #
2018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연매출 19억1000만 유로의 매출을 올린 아디다스는 전년 대비 매출이 3% 증가했다. 환율 변동의 영향을 없애면 매출 증가는 8%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시행한 재정개혁이 경제수지에 미치는 영향으로 같은 기간 45%나 급증한 17억 유로였다. 지역별로는 두 주요 시장에서 성장했다. 북미 매출은 46억 8000만 유로로 10% 증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은 71억 4000만 유로로 12% 증가했다. 특히 중국 내 매출 증가율은 23%에 달했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매출액이 1% 감소해 최대 58억8000만 유로, 중남미에서는 14%로 떨어져 16억3000만 유로에 머물렀다. 부문별로 보면 신발은 매출 1,278만 유로로 2017년 대비 3% 증가했다. 그러나 스포츠 장비는 6%로, 매출 822만 유로의 상승률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상품이었다.
2018년 아디다스는 온라인 매출을 늘리고 오프라인 매장을 줄여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카스퍼 로스테드 CEO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 매출을 오는 2020년까지 현재의 2배가 넘는 40억 유로까지 늘리기 위해 디지털 분야의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아디다스의 온라인 매출은 전년 대비 57% 증가한 16억 유로를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웹사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매장 중 하나다"라며 "직원을 고용하고, 회사 자원을 배분하고, 기반시설을 지을 때 가장 우선순위로 작용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로스테드 CEO는 2019년까지 오프라인 매장을 소폭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2018년 초 미국 애틀랜타에 세운 두 번째 스피드 팩토리에서도 운동화를 생산한다. 뉴욕과 같은 도심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운동화다. 아디다스는 2020년까지 독일과 미국에 있는 두 개의 스피드 팩토리에서 각각 연간 100만 켤레의 운동화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3. 라인과 활동
'''오리지널스''' 라인의 신발들이 2010년대 들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중 1980~90년대 스타들이 신고 다니던 모델을 현대적으로 복각한 '슈퍼스타', '가젤', '스탠스미스', '캠퍼스', 'EQT', 'ZX' 시리즈 같은 모델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블라 라인도 복각해서 역시 인기를 끈 이후,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내놓고 있다. 'Y-3'와 '이지' 라인의 디자인을 적절히 차용한 점이 주효한듯 하다. '''부스트 폼'''을 전격적으로 사용한 신설 NMD(노마드) 라인업도 대박을 치면서,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퍼포먼스''' 라인에서도 특유의 가벼움, 편안함을 가지는 부스트폼을 내세운 '울트라부스트', '퓨어부스트' 등이 대박을 치면서 러닝화 시장을 재편하고 있고, 농구화나 야구화, 축구화 등의 신발에도 점차 부스트폼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아디다스를 하드캐리하는 것은 부스트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17] 참고로 러닝화도 부스트폼 비율에 따라 당연히 서열(?)이 나뉜다. 2017년 기준 (매니아용 말고) 대중화 라인에선 울트라부스트가 가장 부스트폼 함량율이 많고, 그 다음 퓨어부스트, 에너지부스트 이런 순. 문제는 울트라부스트의 경우 동네 아디다스 매장에선 구경하기가 상당히 힘들고, 사려면 보통 큰 매장으로 가야 되지만 여기도 가격이 20만원대 초반으로 꽤나 비싸다.
서브캐리는 나이키의 플라이니트 격인 프라임니트 정도. 다만 부스트폼에 대한 리뷰들을 보면 편안함, 쿠션감은 대체로 호평하고 있으나 이런 편안함이 장기적으론 오히려 발에 무리를 주는 것 아니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침대나 모래사장에 서있을때 처음엔 편안하지만 장시간 서있을 경우 도리어 불편한 것처럼 말이다. 장거리보단 단거리 보행용에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부스트 몇년간 잘만 신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 개인차는 있을듯. 또 같은 이름의 신발이라도 개선된 버젼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아디다스는 운동화 뿐만 아니라 패션 라인에서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힙합 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래퍼들이 아디다스의 옷이나 신발을 애용한다거나,[18] 물론 다른 브랜드를 애용하는 래퍼들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예가 나이키의 에어포스원 매니아인 닥터 드레.
국내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아디다스가 협찬을 하는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옷 스타일들이 꽤나 힙합스럽다. 스트리트 패션에서 아디다스가 한가닥 하는 이유. 아예 오리지널스 라인은 이런 스트릿 위주로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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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das x Kany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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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리지널스 라인에서 선전하다가 대박을 친 예 중 하나가 바로 카녜 웨스트와의 협업인데, 나이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아디다스로 초대형 이적 후 출시한 '''이지 부스트''' 라인은 아디다스 협업의 레전드로 남으며,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카녜가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지 부스트를 신을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여전히 재판매는 소량에 그쳤다. 이지 부스트 시리즈가 성공하게 되면서 비슷한 색상들을 마구 찍어 내고 있지만, 나오는 족족 품절된다. 아디다스는 카녜와 공동으로 제작한 이지 라인으로 2019년 15억 달러, 한화로 약 1조 8,168억 원 정도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카녜는 매출액의 5%를 로열티로 받는데, 2019년에는 6,500만 달러, 한화로 약 753억 원 가량 벌 것으로 추측된다.
덕분에 비록 스포츠 분야에서는 콩라인 확정이지만, 패션 부문에서는 2010년대 기준 나이키보다 매출이 앞서고 있다. 미시 엘리엇은 2000년대 중반쯤 대박을 쳤고, 2010년부터 2~3년간은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이 핫했으며, 이후는 상기했다시피 카녜 웨스트와의 협업이 가장 뜨거운 관심사였다. 2018년에는 배우 겸 래퍼인 도널드 글로버와 아디다스 오리지널스가 파트너쉽을 체결했고 2019년 그가 디자인한 스니커즈가 발매됐다. 2019년에는 팝스타 비욘세와 파트너쉽을 체결했다. 비욘세는 자신의 의류 브랜드 ‘아이비 파크(IVY PARK)’를 아디다스와 손잡고 재론칭한다. 그녀는 앞으로 아디다스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새로운 시그니처 신발과 의류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외에 가장 유명한건 역시 1년마다 바뀌는 축구공. 해가 바뀌면 지난 축구공을 단종시키고 새 모델을 내놓는다. 세계 1위 리그인 라리가는 푸마, 2위 리그이자 시장성은 갑인 프리미어리그는 나이키가 하지만, 이 리그들의 상위팀 경쟁인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인구와 '''남/녀 월드컵''', 또 지나면 올림픽 축구와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해 바뀌면 컨페더레이션스컵 순으로 FIFA 파트너인 아디다스의 후원이 붙는 국제대회는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나이키가 파고 들기 쉽지 않다.
3.1. 국내 마케팅
아디다스가 1977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로 처음 선정된 스포츠용품사란 것은 생각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다만 지금처럼 거액을 축구협회에 주고 독점 스폰서십을 맺은 것은 아니고, 유니폼을 비롯한 용품들 협찬 수준으로 대략 1984년까지 당시 아식스, 위크엔드, 코오롱 스포츠, 프로스펙스 등과 함께 협찬을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나이키에게 국대 유니폼으로 아디다스를 고를까 말까 떡밥을 던져 유리한 국대 스폰서 계약 연장을 이끈 것도 알려진 사실.[19] 아디다스는 지금도 국대 유니폼 스폰서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디다스는 나이키랑 다르게 K리그 뿐만 아니라, 역도, 핸드볼, 유도, 태권도, 테니스, 양궁 등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대표팀들의 후원사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 편이다. 나이키가 2018년 3월 a매치부터 계약 종료일인 2019년 12월31일까지 입을 유니폼을 발표했는데, 아무 디자인도 없는 무디자인에다가 소재도 한단계 낮은 드라이핏 소재로 유니폼을 만들어줘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축구 팬들은 나이키와 계약이 끝나면 아디다스로 당장 갈아타야 한다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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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경우, 부산 대우 로얄즈, 천안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 등이 아디다스와 공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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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12년부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B레벨로 승격하여[20] 일본의 경우 내수용 자회사인 아디다스 재팬에서 자체 제작한다. 국대 유니폼도 마찬가지.
아디다스가 스폰서를 하고있는 유명 유럽 축구팀과 동급으로 되어 유니폼 제작을 본사에서 직접 제작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2012년 아디다스 본사의 첫 작품인 블루 피버 유니폼이 출시 하루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는 K리그 공식 스폰서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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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현재 리그 차원의 스폰서십 계약을 맺고 있지만 본사의 글로벌 마케팅 정책에 따라 201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수원 삼성, 울산 현대, 부산 아이파크와의 스폰서쉽이 종료되고 구단에 대한 공식 유니폼 및 용품 스폰서에서는 발을 뺀 상태다. 부산 아이파크는 2020시즌 아디다스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공식 스폰서십이 아니라 사서 입는 형태다.#
2020년부터 K리그 팀 후원에 다시 참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실제 기사도 났었는데 해당 유력팀이 전북 현대 모터스와 울산 현대다. 2021년 1월 9일자 서호정 기자의 유튜브 라이브에서 현대가 두 팀이 모두 험멜과 작별할 것이라는 언급을 하여 이 기사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야구에선 2010~13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용품 스폰서를 한 경험이 있다. 그 전에는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나 LG 트윈스와 스폰서 계약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유니폼 상의에 아디다스 로고가 들어간 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처음이다. 아디다스용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을 보면 오재원, 허경민, 강경학, 이진영, 김선빈, '''손아섭''' 김용의, 진갑용, 최경철, 야마이코 나바로, 김재호, 에릭 테임즈, SK이재원, 적토마 이병규, '''서건창'''[21] 좀 더 자세하게보면 2014년 시즌까지는 아디다스를 신었다. 그 후 2015년 전지훈련을 보면 나이키 야구화를 신고있었지만, 이후의 실전경기에서는 '아디제로프로메탈'을 쭉 신고있다. 2015년 부상복귀 이후 몇 경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미출시된 에너지부스트 아이콘시리즈를 신었다가 다시 프로메탈로 돌아갔다.
이 있고, 2015년 이전시기를 보면, '''이대호'''[22] 이 외에도, 롯데가 후원을 받던 시절에는 김사율, 최대성, 전준우등 대다수의 선수들이 신기도 했다.
, '''이승엽'''[23] 2014년 시즌에 신었던 야구화중에서 가장 많이 신었다. 아무래도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듯. 러닝화도 보면 2015년 초반까지는 에너지부스트를 신었지만, 언제 또 옮겼는지 나이키 러닝화를 신고있는 게 보였다.
, '''이재학'''[24]이 대표적이었다.[25]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에는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데 일조하겠다'''며 아디다스와의 계약연장을 포기하고 부산 지역 스포츠 기업인 하드스포츠와 계약을 맺었다.
2017년을 끝으로 축구도 철수하면서 여름 프로 스포츠와는 완전히 이별. 참고로, 많은 브랜드 들이 그렇지만 아디다스 역시 미국식 야구 제품 라인과 일본식 야구 제품 라인이 별도로 전개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스폰 선수들은 일본식 라인의 배팅 장갑을 사용하는 듯. 야구화의 경우도 역시 일본식 라인[26]이 강세였으나, 2015년도에는 부스트폼을 사용한 미국식 야구화를 착용하는 선수들도 많다. 암가드는 국내의 NINE 스포츠를 통해 OEM 방식으로 제작, 선수들에게 공급한다고 한다.[27]
KBL에서는 조성민이 모델로 활약하고 있고, 이승현도 여기에 포함되어있다.[28] 여담이지만 바로 전 시즌(13-14)과 다르게, 2014-15시즌부터 경기를 자세히 보면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3팀(서울 삼성, 부산 kt, 고양 오리온스)은 선수전원이 아디다스를,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팀 선수들은 거의 나이키를 신고있다.(서울 SK의 경우 선수 전원 나이키 착용.) 단, 전자랜드의 이현호와 울산모비스의 이대성은 각각 아디다스, 언더아머를 신고 있다.
아직까지 프로농구와 후원계약을 한 적은 없지만, 14-15시즌 초기에 경기장 바깥 라인에 있었던 바닥광고에 있었던,(그러니까 TV 중계화면 기준으로 왼쪽 윗 구석에 있었던) 나이키 로고를 치우고 아디다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니폼의 경우에는 여러 팀들에게 후원했거나 하는 중이다. 서울 삼성 썬더스는 2011년까지 후원하다 14-15시즌 다시 아스토레에서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했고, 안양 KGC인삼공사는 2011년까지 후원. 부산 kt 소닉붐는 과거에 후원하다 계약종료 후 13-14시즌부터 15-16시즌까지 다시 계약. 고양 오리온스는 13-14 시즌부터 후원 중. 오리온스는 팀 특유의 색깔을 버리고 보라색으로 변신했는데 유니폼들의 퀄리티가 영 안 좋다.또한 과거에는 허재가 뛰었던 시절의 원주 TG 삼보 엑서스(현 원주 동부 프로미)가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했었다. 따라서 한국 프로에서는 농구에서만 아디다스 유니폼을 볼 수 있다.
3.2. 해외에서의 마케팅
독일을 비롯하여 스페인, 러시아 , 일본 , 알제리, 스웨덴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스코틀랜드, 웨일스, 이집트, 벨기에,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모로코, 멕시코, 캐나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헝가리 등 국가의 축구대표팀이 아디다스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아디다스의 지배력도 크다. 예를 들어 펜싱에서는 이탈리아의 남자 사브르 슈퍼 스타인 알도 몬타노나 플뢰레 여제인 발렌티나 베찰리를 후원한다.그러나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 유니폼의 제조업체는 카파다. 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중국, 그리스, 헝가리 등의 국가대표팀에는 선수 전원에게 용품을 제공한다.[29]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남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전에서 최병철에 패한 일본의 오타 유키 선수의 팔쪽을 보면 아디다스 로고가 있기는 하나, 실제 일본 펜싱 국가대표팀은 아식스와 계약되어 있다.
한국의 펜싱 국가대표팀도 아디다스가 용품 후원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나이키가 타이거 우즈를 후원하면서 나이키 골프를 런칭해 재미를 보자, 이에 자극받았는지 아디다스는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내세워 골프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아디다스의 로고가 붙은 제품을 내놨으나 2000년대 초반에 테일러 메이드를 인수하여 골프 시장에서 나름 입지를 굳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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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후원사.''' [30] 아디다스는 바이에른 뮌헨의 지분을 갖고 있기도 하다. [31]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 아디다스 전 CEO였던 헤르베르트 하이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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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 후원사.'''[32] 아디다스에서 가장 신경쓰는 클럽이라 봐도 무방하며 2019년 재계약을 맺어 2028년까지 스폰싱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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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시즌부터 올림피아코스 후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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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1일부터 합류한 유벤투스.[33]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팀에도 불구하고 아디다스와의 계약은 이번이 처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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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1일부터 합류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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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시즌부터 합류한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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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이에른 뮌헨, 함부르크 SV,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C.F., 발렌시아 CF, 유벤투스 , 올랭피크 리옹, 벤피카, AFC 아약스, RSC 안데를레흐트, FC 바젤 등의 유럽 명문구단들이 아디다스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아디다스의 본고장 1. 분데스리가의 경우 FC 바이에른 뮌헨한 팀 뿐이다. 2부리그에는 함부르크 SV가 있다. 최근 독일의 뉘른베르크와 뒤셀도르프가 아디다스와 계약을 발표했는데 아디다스와의 직접 계약이 아닌 독일의 스포츠 중개업체 11teamsports를 통한 서드파티 계약이다. 이전에는 주로 나이키와 독일팀 간 계약을 담당했는데 두 팀을 시작으로 아디다스와의 계약도 늘릴 것으로 보인다.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VfL 볼프스부르크, FC 샬케 04가 과거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었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에는 풀럼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 FC 등이 있다. 몇 년 전까지 리버풀 FC와 뉴캐슬 유나이티드도 오랫동안 아디다스를 입기도 했다.
또한 2015-16시즌부터는 맨유와 10년간 약 1조 3000억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여 나이키를 밀어내고 다시 킷 서플라이어로 나섰고,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와 6년간 2000억 계약을 맺으면서 15-16시즌부터 후원사로 나섰다. 정확한 계약기간과 금액은 나오지 않았지만, 올림피아코스 FC도 2015-16시즌부터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19-20시즌부터 아스날 FC도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의 공인구도 제작하고 있다.
- NBA의 경우 2017년까지 후원하였고 17-18 시즌부터 나이키와 조던브랜드에게 넘겨주었다. 위안거리가 있다면, 2016-17시즌부터 NHL과 공식 계약을 맺어서 어느정도는 돌파구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표모델은 과거에 카림 압둘자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데릭 피셔, 케빈 가넷이 있었고 지금은 시그니쳐가 나오는 선수들 이외에 카일 라우리와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 존 월, 트레이 영, 앤드류 위긴스등 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계 코미디언 켄 정과의 아스트랄한 광고로 꽤나 주목받기도. 아디다스가 NBA를 후원하던 시절 관련 선수나 팬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아디다스와 대표급 모델로 계약 맺은 선수치고 평탄한 선수생활을 보내는 이가 워낙 드물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길버트 아레나스와 트레이시 맥그레디. 그리고 Crazy for Rose 캠페인까지 만들며 제2의 조던으로 만들려던 데릭 로즈도 이 전철을 밟는 거 아닌가 우려중이다.[34]
이건 사실 저주라기 보다는 당연한 수순인데, 하워드와 로즈 두 선수 모두 부상 이전부터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뛰어다녔다.(플레이 타임이 긴 것은 물론 비교적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본인들 스스로 더 많이 뛰어다녔던 것이 시즌아웃의 원인이었다. 로즈의 경우 PG로는 준수한 키였지만 팀의 에이스인데다 사실상 듀얼 가드를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뛰어야 했다.) 무게가 가벼우면 그만큼 발에 가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경량 농구화 최악의 단점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D 로즈5 부터 372g으로 다시 무거워졌다.
. 하지만, 다행히도 존 월라인과 데미안 릴라드[35] 릴라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공개전에 자신이 먼저 디자인을 공개했다.
라인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극복을 하고있다. [36] 나머지 선수들은 일 터지기 전에 다른 회사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었다. 당장 현 대표 모델인 로즈와 하워드도 11-12 시즌 나란히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그 중에는 팀 던컨도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경량 농구화를 만들기 위해 마루타시켰다가 선수 생활 평생을 족저근막염에 시달려야 했다. 루키 시즌 던컨이 베이스라인에서 원핸드 엘리웁을 찍어대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안습
2015년 여름에는 무려 제임스 하든이랑 계약을 하게되었다!
2019년 4월 개인 시그니처 농구화가 나오는 선수는 제임스 하든, 데미안 릴라드, 데릭 로즈[37] 데릭 로즈가 점차 인져리 프론이 되어감에 따라 시그니처가 없어진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50득점도 기록하고 쏠쏠한 활약을 이어가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D로즈1.5의 디자인을 계승하는 듯 한 D로즈 10의 유출샷도 등장했고 실제로 신고 경기를 뛰기도 하였다.
이며, 도노반 미첼의 시그니처도 발매를 코앞에 두고 있다. 존 월은 시그니처 2개를 낸 이후 계약 만료, 한동안 자유로이 신발을 신다가 아디다스와 재계악 했다. 새 시그니쳐가 나오지는 않고 아티스트 콜라보 모델을 내는 계약이라고 한다. 이미 은퇴한지 오래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의 모델도 꾸준하게 재발매하고 시대에 맞게 리파인 하고 있다.
아디다스가 스폰서하는 미국대학교들의 농구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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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NFL,
MLB 다음으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학스포츠계
NCAA에서도 아디다스가 여러 대학교들을 스폰서하며 확장하고 있다.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대학 스포츠팀의 장비를 후원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급한다. 이렇게 후원 받던 팀의 선수들이 프로로 진출할 경우, 장래 스타와의 개인 계약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나이키,
언더아머,
뉴발란스에 비해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이 밀리는 듯 한 상황이지만 미국 내, 대학야구에서는 강세를 보이고있고, 메이저리그에도 나름 이름 있는 선수들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를로스 코레아,
크리스 세일,
안드렐톤 시몬스,
J.D. 마르티네즈등이 있다. 특히
시카고 컵스의 슈퍼
루키 크리스 브라이언트를 위시로 한 마케팅을 전개 해오고 있다. 2018년 3월부로 뉴욕 양키스의 차세대 슈퍼스타 애런 저지와 계약에 성공했다! 저지는 시즌시작부터 아디다스 용품들을 사용중. 그 외에도 아롤디스 채프먼이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갈아타고 글러브마저 아디다스 로고가 떡하니 박힌 제품을 쓰는 등, 북미시장 2인자 자리를 석권하면서 야구 쪽에 투자가 전보다 활발해지는 중이다.
- MLS과 NHL의 경우에는 전구단이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과거 데상트가 아디다스 본사로 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대리점을 운영했지만, 1998년부터 아디다스 재팬이 설립되고 일본내 아디다스 용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일본 스포츠 시장이 매우 커서 본사에서도 아디다스 재팬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상황인지라 독자적인 브랜드 라인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참고로 국대 유니폼이나 리그 유니폼등 아디다스 본사에서 디자인 및 제품 공급을 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일본은 아디다스 재팬이 독자적으로 제작, 공급한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J리그 팀 마츠모토 야마가, 츠에겐 가나자와, 베갈타 센다이,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알비렉스 니가타의 킷 스폰서를 맡고 있다.
2006년부터 오랫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폰서를 맡았었다. 그러나 2014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측이 언더 아머와 손을 잡는다.
4. 스폰서 목록
유니폼 시장보다는 개인과의 계약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워낙 큰 회사이다보니 계약을 맺고 있는 팀들이 많아서 본사에서 전부 관리해주지 않고 대형 클럽들을 제외하면 아디다스 EU나 아디다스 UK 등의 내수 회사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본사에서 직접 관리해주며 따로 홍보를 해주는 일명 '엘리트 클럽'은 5팀이 있는데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이다. 브라질의 플라멩구도 10년대 후반까지는 엘리트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특수 제작된 4th유니폼도 발매되는 등 엘리트 클럽 대우를 받았지만, 아스날이 엘리트 클럽에 합류한 이후로 한 등급 내려간 대우를 받고 있다. 엘리트 클럽은 어센틱 유니폼 발매와 함께 고유의 디자인을 제공해주고 트레이닝의 종류도 다양하다.
다음 레벨에 속하는 팀들은 일명 B클럽으로 분류되는데 앞서 언급된 플라멩구와 브라질 1부 클럽들, 올란도 피레이츠, 올랭피크 리옹, 아약스, 벤피카, 셀틱, 리베르 플레이트, 보카 주니어스, 보르도, 함부르크, 베식타스, 페네르바체 등이 있다. 이 클럽들은 고유의 유니폼 디자인이 제공되지만, 트레이닝 의류의 종류가 엘리트 클럽보다는 상대적으로 적고 어센틱 유니폼이 출시되지 않는다.
다음 레벨은 일명 스탠다드 클럽으로 레스터, 울버햄튼, 카디프, 풀럼, 칼리아리, 멜버른, 우니온 베를린 등이 속해있다. 엘리트 클럽, B클럽보다 발매되는 트레이닝 의류도 적고 이전시즌 유니폼을 그대로 가져와 재탕해주는 경우가 많다.[38] 울버햄튼의 20-21유니폼은 스페인 국가대표 2018 유니폼을 그대로 가져왔다.
유니폼도 클럽의 공식 샵 등 그 국가 내에서만 구할 수 있다. 참고로 레스터와 우니온 베를린은 차후 B클럽으로 티어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다음 레벨은 3rd파티 클럽으로 아디다스와의 직접 계약이 아닌 중간 유통사를 한 번 거쳐 계약하는 방식이다. 나이키는 이전부터 이런 계약을 자주 맺었지만, 아디다스는 최근 들어 이런 계약을 맺고 있는데 독일 하부리그의 뉘른베르크와 뒤셀도르프가 이런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직접 구매를 해서 입는 팀들도 있는데, 이는 더 이상 스폰서가 아니다. 킷 서플라이어가 아니라 유니폼 메이커라고만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의 김해시청 축구단이 대표적인 예시.
엘리트 클럽 이외의 클럽 제품들도 대기업 제품이라 가격은 비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와 레알 베티스는 공개적으로 아디다스를 저격했었고 둘은 각각 마크론과 카파로 킷 서플라이를 바꾸게 된다. 발렌시아 CF는 아디다스가 엘리트 라인업에 포함시키기로 약속해서 계약금이 더 높았던 조마와의 계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아디다스로 옮겼으나, 매번 기본킷으로 출시되었고 100주년 유니폼마저 기본킷으로 내줬다. 2019-20 시즌부터 푸마로 바뀌었는데 규모가 더 작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환영하고 있을 정도.
그나마 이전에는 자국 클럽들인 함부르크 SV, FC 샬케 04, VfL 볼푸스부르크, 1.FC 뉘른베르크, TSV 바이어 04 레버쿠젠 등의 팀들에게는 바이에른 뮌헨 등의 상위 클럽들과 동일한 제품군을 만들어주고 디자인도 특색있게 해줬었으나 함부르크를 제외하면 죄다 재계약을 맺지 않았고 함부르크 역시 기본킷을 지급받고 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20주년을 기념하여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다른 회사 디자인 킷을 아디다스 코리아가 구단과 합작하여 레트로 킷으로 발매해줬다. 일본 J리그의 경우에는 아디다스 재팬에서 관리를 하다보니 디자인에 구단의 의사 반영이 꽤 되는 편이다. 이전 시즌 유럽 팀들이 사용했던 디자인을 재탕하는걸 2020년대에도 똑같이 하고있는 나이키 재팬보다는 나은 편.
이런 문제점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에서도 드러나는데, 아디다스는 이전에는 스폰서 계약을 맺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모두 어센틱과 보급형을 구분해서 제작해 선수단에게는 최신 기술을 적용한 어센틱 유니폼을 지급해줬으나,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독일,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일본,[39] 위에 일본 마케팅 관련 문단에서 보이듯 일본은 아디다스 재팬에서 관리하지만 아디다스 재팬의 규모가 넘사벽이고 시장성이 큰지라 본사의 팀들과 함께 대우를 받으며 홍보를 받았다.
콜롬비아, 러시아만이 현재까지 어센틱 유니폼을 그 나라 고유의 디자인을 적용해 지급받고있다.[40] 벨기에의 경우에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었는데, 벨기에 고유의 디자인을 지급받기는 하나, 재질은 보급형으로 지급받고있다.
나머지 국가들은 기본 탬플릿에 색깔만 바꾸고, 유니폼의 줄무늬만 조금 차이가 있는, 그 국가 고유의 특징은 없는 디자인으로 나오며, 선수단에게도 땀 배출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는 보급형 재질의 유니폼으로 지급된다.
다만 레플리카라고해서 선수들이 도저히 경기에 입고 못 뛸 정도의 재질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2010년대부터 축구 유니폼은 경량성과 통기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는데, 아디다스의 경우, 그것이 유니폼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땀배출이 용이해지게하는 adizero, climachill 등의 기술로 발전한 것이다. 아디다스의 보급형 재질인 climacool과 climalite의 경우, 앞서 언급된 기술들에 비해 통기성은 떨어지지만 마찬가지로 상당히 가볍고 시원한 재질로 만들어진다. 유로 2016에서 4강에 진출한 웨일스나,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각각 3위, 8강의 호성적을 기록했던 벨기에, 스웨덴이 보급형 스폰국가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좋은 재질의 디자인을 지급받는다고해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은 아닌 셈.
엘리트 클럽은 볼드체
- 리오넬 메시[46](개인 브랜드 존재)
- 지네딘 지단[47]
베컴과 함께 은퇴한 현재도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으며, 본인이 신던 축구화가 자신의 이름을 달고 리메이크 되는 등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다.
- 데이비드 베컴[48]
- 앙헬 디 마리아
- 모하메드 살라[49]
- 베이날둠
- 파울로 디발라[50]
- 손흥민[51]
X 시리즈의 모델이며, 한국 선수들 중 유일하게 아디다스 본사에서 후원받는다. 또한 본 문서 상단에 걸린 광고에 메시, 포그바, 무리뉴, 살라, 제주스, 델리 알리, 데헤아, 베컴, 지단, 외질, 린가드 , 피르미누, 아리아나 그란데, 퍼렐 윌리엄스등 아디다스와 함께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출연하는 광고에도 등장했다.
- 구자철
- 김승규
- 이범영
- 조현우
- 이강인
- 이승우
- 백승호
- 이케르 카시야스
- 제시 린가드
- 차비 에르난데스
- 다비드 비야
- 제이미 바디
- 케파 아리사발라가
- 페르난도 토레스
- 다비드 실바
- 티모 베르너
- 미랄렘 퍄니치
- 세르주 그나브리
- 후안 마타
-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 디에고 코스타
- 다비드 데헤아
- 코케
- 루카스 바스케스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루카스 포돌스키
- 마누엘 노이어
- 토니 크로스
- 토마스 뮐러
- 메수트 외질
- 마츠 훔멜스
-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 폴 포그바[52]
- 카림 벤제마
- 은골로 캉테
- 가레스 베일
- 하메스 로드리게스
- 가브리엘 제주스
- 마르셀루 비에이라
- 케일러 나바스
- 케파 아리사발라가
- 이반 라키티치
- 로렌조 인시녜
- 아르연 로번
- 데이비드 알라바
- 카가와 신지
- 아론 완비사카
- 베르나르두 실바
- 치차리토
- 미나미노 타쿠미
- 뱅자맹 파바르
- 카스퍼 슈마이켈
- 나세르 샤들리
- 토마 뫼니에
- 애슐리 영
- 호베르투 피르미누
- 세아드 콜라시나츠
- 델레 알리
- 마테이스 더리흐트
- 로드리고 벤탄쿠르
- 루카스 모우라
- 하라구치 겐키
- 무사 시소코
- 마테오 귀앵두지
- 주앙 펠릭스
- 웨스턴 매케니
- 다비드 오스피나
- 쿠보 타케후사
- 알레한드로 고메스
-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
-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 마일 예디낙
- 아민 하릿
5. 논란
5.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비하 의혹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아디다스 재팬#이 한 영상을 게재했는데 이게 한국 축구대표팀을 비하하는 것 아니냔 시각이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자면, 일본 축구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호랑이와 맞서는 모습이 묘사되고, 일본팀을 상징하는 푸른 유니폼과 한국팀을 상징하는 붉은 유니폼이 대비되는 모습이 나온다. 사족으로 한국팀에는 당시 대표팀 에이스 박지성의 등번호인 7번을 단 선수가 나온다. 그리고 일본팀이 이런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적수를 맞아 2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이어가지만 후반전에 연속 3골을 넣으며 역전한다는 내용. 한국 선수들로 보이는 상대의 얼굴이 영락없이 악마처럼 묘사됐다는 비판도 받았다.링크
이후 한 언론을 통해 아디다스재팬 공식 해명이 올라왔다. '일본에서 있었던 한국 축구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한국팀의 압도적인 승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라 대놓고 밝히며 '역전승을 거두는 내용은 일본 축구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하기를 기원하는 일본 국민들의 염원을 담아 제작된 것일 뿐'이라고만 답하며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아시아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우수한 팀이라고 생각한다'는 소리[53] 다만 초반부에 '아시아 최강의 적을 맞은 일본대표팀'이란 글귀까지 적어놓은걸 보면, '한국 축구=아시아 최강'이란 걸 일본조차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를 하면서도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은 아니고 오해'라고 거듭 주장했다. “오해를 지우기 위해 해당 애니메이션을 삭제했다”고도 했다.#
5.2. 욱일기 사용 논란
2018년 7월, 아디다스가 올린 1분 분량의 광고 영상 "Spain | Demand Greatness"에 욱일기가 등장하여 논란이 되었다.[54] 사실 욱일기 항목에도 있지만, 서양권에선 욱일기 자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비한 편이다.
영상 19초경에 한 여성이 휴대 전화를 들면서 "나는 상상력이 없는 플레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I will not tolerate unimaginative play)"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서 여성이 있는 방 뒤에 걸린 액자로 선명하게 욱일기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지금은 한국에서의 항의로 해당 유튜브 영상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열람할 수가 있는 상태.[55] 이 문서에서 저 사이트를 '공식 홈페이지'라고 적어놨었으나 해당 사이트 자체는 광고업계 언론으로 보인다. 다만 영상 하단에 제작자와 아디다스 광고임은 적혀있다.
6. 여담
- 과거 아디다스 코리아가 출범하기 전 아디다스 제품의 유통/라이선스 제작은 아디다스 코리아의 전신인 제우교역(주)이다. 아디다스글로벌에서 제우교역의 지분을 100% 취득하며 아디다스코리아로 직진출하게 되고, 이후 아디다스코리아의 태권도사업부가 아디다스 태권도 글로벌 라이선스권을 가지고 제우스포츠(주)로 분리된다. 제우스포츠는 이후 제우인터내셔날로 사명이 변경되어 아디다스 컴뱃스포츠 사업 등을 전개하는 스포츠사업부와 아디다스 ODM, 시슬리, 싹스탑, 해피삭스 등의 사업을 전개하는 패션사업부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 태권도, 유도, 복싱 대표팀 등의 공식후원 브랜드는 아디다스이지만, 모든 후원은 아디다스코리아가 아닌 제우인터내셔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 로고 외에 아디다스 제품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트레이드 마크인 3선이 있다. 아디다스 제품 중에 삼선 붙지 않은것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 매우 개성적이지만 매우 단순하여 유사품이 등장하기 쉽다. 예를 들자면 2선이라든지 4선이라든지 말이다. 그런 이유로 아디다스는 삼선을 지키기 위해서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법정투쟁을 벌이곤 한다. 이 때문에 동일한 시그네쳐인 3선을 선택했던 톰 브라운과도 법정 분쟁을 했었다. 아디다스가 승소해서 톰 브라운은 3선을 사용하지 않거나 선을 하나 추가해서 4선을 쓰고 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국민 쓰레빠라 불릴만한 삼선슬리퍼는 아직도 없어질 생각을 안한다. 게다가 얘내들은 4선도 아니요 2선도 아닌 3선을 대놓고 쓴다. 이것은 아디다스의 adilette의 마이너카피다. 자세한 것은 삼선슬리퍼 항목 참조. 문구점 따위에서 팔리는 다운그레이드 버전은 1년이 채 못가는 반면 이것은 5년이 넘어도 가수분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담으로 삼디다스는 삼천원이며 원조인 adilette의 가격은 39000원으로 정품가격이면 짝퉁을 13켤래나 살 수 있다.
- 2015년 8월, 피트니스 앱 개발사인 런타스틱을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2억3천900만 달러(2,800억원).
- 아디다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치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다스의 리즈시절 경영을 맡았던 호르스트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인연[56]
스포츠 마케팅의 초창기인 1950년대, 아디다스는 당시 젊은 선수들에게 무료로 고성능 운동화를 제공해주곤 했는데, 그 당시의 젊은 선수들이 각종 경기 단체의 임원으로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다.
으로 국제 스포츠계의 흑막이 되어 있었다.[57] 주앙 아벨란제의 FIFA 회장 당선,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IOC 위원장 당선, 현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의 FIFA 사무총장 취임,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 취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서울의 한국은 나고야가 속한 일본의 아식스, 미즈노에 해당하는 유력한 자국산 스포츠 브랜드가 없다[58] 물론 프로스펙스 등이 나름대로 있긴 했지만 아디다스가 주목할 정도는 아니었다.
는 점에 주목하여, 서울의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총동원하였다. 아디다스가 서울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 위치를 손쉽게 확보하고 스포츠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 쓰레빠 말고 추리닝(저지 혹은 트랙탑)도 유명하다. 특히 2010년대 중반 당시 일부 중고딩들은 가을~겨울철만 되면 노스페이스 리즈 시절 마냥 개나소나 아디다스 추리닝을 나이키나 아베크롬비 등과 함께 자주 입기도 했다.[59]
가격도 주로 10만원 전후를 유지하기 때문에, 노스페이스 리즈 시절에 제일 싼 바람막이가 13만원이었던걸 생각하면 상대적으론 싼 편이다.
다만 아디다스 추리닝 자체가 유행을 별로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긴 하고 학생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편하게 걸치고 다닐 수는 있다.
완전 무장을 한 병사들 옆에
아디다스 활동복을 입고 있는 1명의 독일 연방군 사진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때의 제목은 독일군
말년병장.
-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당시 스폰서를 하면서 선수들이 입은 아디다스 츄리닝이 공식적으로 처음 러시아에 들어오고 이 서양산 츄리닝의 멋에 매료된 러시아 청년들이 아디다스 특유의 삼선 (three stripes) 이 들어간 츄리닝이라면 짝퉁이라도 입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 되었는데 여기서 유래한 것이 고프닉 패션. 사샤, 빅토르 자카에프, 니코 벨릭을 생각하면 떠오를 것이다. 한편 당시 아디다스 운동화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한 소련 병사들이 산악지대에서 불편한 지급품 장화 대신 많이 신고 다녔다.#
- 수영복으로 유명한 아레나#s-6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 다슬러의 아들이자 그를 이어 아디다스를 경영하게 되는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디다스에서도 수영복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으나 아디 다슬러는 아디다스는 신발 회사이고, 수영을 할 때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호르스트는 부모 몰래 아레나를 설립하여 수영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 오리지널스 라인은 스포티브 캐쥬얼 라인으로, 평상복과 운동복을 넘나들고 있다. 굳이 비교하면 나이키의 Nike Sportswear 라인과 콘셉트이 유사하다. 각종 컬래버레이션이 몹시 활발하여, 카녜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리타 오라, 비욘세와 같은 유명인들과의 협업이 히트를 치고 있으며 BAPE, 마스터마인드, 베드윈, 네이버후드 등 전세계의 스트릿 브랜드들과 협력한 라인들도 꽤 호응을 얻고 있다.
- 디자이너 브랜드 등과의 컬래버레이션도 굉장히 활발한데, 스텔라 매카트니와의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 요지 야마모토와의 Y-3 등이 이에 속한다. 오리지널 라인에서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유명했다. 오리지널스의 공식 모델인 2NE1이 제레미 스캇의 뮤즈 중 하나라서 특별취급을 받았다.
- 러시아에서 매우 인기있는 브랜드다. 고프닉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상징이 아디다스 츄리닝이 됐을 정도.[60]
영상은 고프닉 콘셉트 채널 Life of Boris이다.
러시아를 배경으로하는 FPS 게임인 Escape from Tarkov에서도 Adik이라는 브랜드로 패러디되어 트랙슈트 상의를 입고 고프닉처럼 꾸밀 수 있는데 심지어 아디다스 삼선무늬가 새겨진 방탄모가 하나 존재하는 지경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생전에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의 매니아로 유명했다. 피델이 아디다스 빠라서 그런지 쿠바의 거의 전종목 국가대표팀의 키트 스폰서가 아디다스다.
- 지네딘 지단과 차범근 전 감독이 여기 제품만 고집하기로 유명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차범근 전 감독은 나이키를 디스한 적도 있었는데, 그의 지론에 따르면 나이키는 부상당하기 쉬운 운동화라고. 수원 감독 시절, 선수단에게 머큐리얼 베이퍼의 갑피가 너무 얇아 시합 도중에 상대팀 축구화에 밟히면 통증이 심하다고 다른 축구화를 신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후 아디다스도 아디제로 축구화가 머큐리얼 못지 않게 얇은 갑피로 나오긴 했다.
- 일본의 아이돌 HKT48의 멤버 무라카와 비비안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밝혔다. 그래서, 쇼룸 개인방송에서도 자주 아디다스 브랜드의 옷을 입고 나온다.
- 2005년, 스포츠 업계 1위인 나이키와 경쟁하기 위해 영국의 유명 스포츠 업체인 리복[61]
1895년에 설립된, 현존하는 스포츠 용품 메이커들 중에서 매우 오래되고 유서깊은 브랜드다.
측에 합병 요구를 하게 되고, 한화로 약 4조원에 리복을 인수해 서브 브랜드로 보유하고 있다. 한때, 매각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아디다스 경영진이 그럴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나이키는 영국의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를 인수해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후원을 넘겨받고, 다시 매각했다.
- 독일의 대테러부대인 GSG-9의 택티컬 부츠를 납품하는 업체이기도 하다.[62]
하지만 독일연방군은 제외다. 독일연방군에선 소방화/안전화/전술화 메이커인 HAIX사의 제품을 사용한다. 그리고 2010년대 중순 이후 독일연방군 연방기관 대테러조직에서는 LOWA 사의 제품을 더 애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스마트폰 케이스도 만든다. 오리지널스 라인으로 나오며 갤럭시 메인모델과 애플 모델이 주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파는 모델이 아니라면 브랜드 도용이다. 몬스터, 젠하이저 등과 연계하여 이어폰과 헤드폰도 만들기도 한다.
- 한국내 물류센터는 경기도 평택시 송탄IC 바로 앞 평택종합물류단지에 위치해 있다. 요금소 바로 옆에 보이는 긴 회색 건물이 그것이다. 한국 아디다스, 리복, 아디다스골프 제품 등을 취급하는 매장의 반품, 출고, AS 등을 담당한다.
- 한국의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는 아기용 트레이닝복이 인기다. 주로 돌 즈음의 아기 사이즈가 많이 팔리는 편.
- 2018년 9월 30일, 11월 23일 발매 예정이었던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350 V2 참깨가 2달 정도 먼저 아디다스 광주 용봉 대리점에서 선발매되는 해프닝이 발생, 아디다스코리아의 물류 시스템 오류 혹은 실수로 대리점에 발송되었고 대리점은 매장 이벤트라며 300여 족을 판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허나 이 이슈의 당사자인 아디다스코리아는 어떠한 코멘트도 남기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묻어가는 모양새. 허나 아디다스 이지 부스트 350 V2 참깨 선발매에 정리되어 있으며, 해외 스니커즈 웹진과 커뮤니티와 팟캐스트 스니커월드에서도 자세히 다루어졌다.
- 온라인 구매의 경우 A/S를 받으려고 하면 무조건 매장에서 접수를 해야한다고 강제한다. 온라인에서 구매를 하게되면 먼 매장에서 물건이 오게 될 수 있는데 집근처 매장에 가면 당연히 자기 매장에서 산게 아니라면서 접수를 거부하면서 짜증을 내며 진상 취급한다. 고객센터에 말해도 매장에 넘기라고만하니 어쩔수 없이 상황을 말하며 설득을 시도해야 겨우 접수를 받아 준다. 문제가 있는 제품이었다면 새 제품으로 보내준다.
- 아디다스 모터스포츠 라는 브랜드가 존재한다 특이하게도 모터스포츠분야는 영국 브랜드다. 모터스포츠 장비를 만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