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드래프트/1993년
1. 개요
1992년 11월 28일 시행된 K리그 드래프트. 3년 연속 드래프트에서 대형 사건이 터지면서 뜨거운 드래프트가 되었다.
2. 진행방식
- 신생팀 완산 푸마가 다음 해 K리그 참가가 예정되어 있어 신생팀 우대의 보충 드래프트 성격을 띈 드래프트다. 완산 푸마는 드래프트 1순위와 동시에 연고지인 전라도 지역의 대학 선수를 6명 더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 일반 드래프트 지명이 6차 지명으로 축소되고 대신 번외지명이 부활했다. 번외지명은 제한없이 여러명 뽑을 수 있고, 일반 드래프트 지명은 1라운드에 1명만 지명 가능하다.
- 과거 존재했던 연고지명이 일정부분 부활했다. 4라운드 지명이 연고지명으로써 각 구단이 후원하는 대학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라운드화가 되었다.
- 1992년 리그 성적의 역순으로 순번이 부여됐고, 신생팀 우대가 적용되어 다음과 같이 지명권 순번이 정해졌다.
3. 지명결과
- 신생팀 우선지명
1992년 드래프트를 거부했던 정광석, 그리고 그 이전 1991 드래프트를 거부했던 황선홍이 모두 참가한 드래프트다. 특히 리그 신생팀으로 참가 예정이었던 완산 푸마는 '''당연히''' 그들이 부여받은 권한으로 가장 대어인 황선홍을 지명하며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고, 정광석 또한 대우로 가면서 조용하게 드래프트가 일단락되는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포항제철 아톰즈는 그동안 공을 들였던 황선홍을 포기할 마음이 1도 없었고, 작년 홍명보를 데려올 때 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완산 푸마에게 드래프트 직후 트레이드를 제의한다. 신생팀으로써 당장의 선수단 확보가 급했던 완산은 황선홍을 적극적으로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했고, 결국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1대8 트레이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또한 현재 K리그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인 김성호 심판이 선수로 지명받은 드래프트기도 하다. 완산 푸마에 지명되어 1993년 K리그에 데뷔할 뻔 했으나, 팀이 와해되고, 1년 뒤 다시 전북 버팔로의 지명을 받아 프로축구 선수로 데뷔하게 된다.
4. 특이사항
앞선 2년간의 드래프트보단 덜했지만 이번 드래프트에도 꽤 많은 유망주들이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고 실업 구단에 입단해버리거나 해외로 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노정윤은 J리그로, 정재권과 김태영은 실업무대로 입단하는데, 이들 모두 재정이 불안하기로 소문난 신생팀 '''완산 푸마'''의 지명을 피하기 위해 이런 고육지책을 쓴 것. 이는 결국 옳은 판단이 되어 완산이 K리그 참가도 못해보고 팀이 해체되는 일을 이 선수들은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