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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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이자 감독. 선수 시절 미드필더를 뛰었으며, 지도자로는 주로 여자 축구 감독을 지냈으며, 2012년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일화 천마 축구단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선수이기도 하다. 그리고, K리그 역대 최다 우승 선수이기도 하다.[1][2]
2. 클럽 경력
2.1. 일화 천마/천안 일화 천마/성남 일화 천마
드래프트에 의해 1993년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된 박남열은 입단과 함께 주전 자리를 꿰찼다. 프로 데뷔 첫 해에 27경기 출전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도왔고, 신인상 후보에도 오르기도 하였다.[3] 1994년 27경기 4골 2도움, 1995년 24경기 2골 2도움을 기록하며 성남 왕조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996년, 박종환 감독이 팀을 떠나면서 팀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 박남열은 1996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상무에 입대한다. 1998년 박남열이 제대한 이후에도 성남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김대의, 김현수, 박강조, 김도훈 그리고 샤샤 등을 영입하며 2001, 2002, 2003 시즌 다시 3연패를 차지하였다.
박남열은 팀의 고참으로써 우승을 도왔다. 2003 시즌 중반 다쳐 독일에서 수술을 받고 온 오른쪽 무릎 연골을 다시 다치기도 했고, 그로 인해 구단과의 마찰을 빚기도 해서 박남열은 은퇴를 고려하기도 하였다.
2.2. 수원 삼성 블루윙즈
그러나 차범근 감독이 테스트 제의를 했다는 것을 이상윤에게 들은 박남열은 34세의 나이에 테스트를 보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6개월 단발성 계약을 맺었다. 6개월 간 단 3경기만 뛰고 우승컵을 얻게 되어 후배들에게 우승컵이 따라다닌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프로 데뷔 첫 해, 김호 감독에 의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다. 데뷔전은 1993년 3월 9일, 캐나다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였다. 이후 간간히 출전을 하다가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1차 예선에서의 바레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이자 마지막 골을 넣게 된다. 팀은 3 - 0으로 대승. 이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과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등의 팀과의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한정국의 부상으로 인해 10분 정도 뛸 수 있게 되고, 팀은 3-2로 아주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우즈베키스탄과의 4강전에서 20-2[4] 라는 엄청난 슈팅 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골을 내주며 0-1로 어이없게 탈락한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경기에 진 그 순간 모두 좌절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백양중학교 축구부의 감독을 맡다가 여자축구 고양 대교의 감독을 맡게 된다. 고양 대교 감독으로 팀에 3번의 WK리그 우승(2009, 2011, 2012)과 2번의 전국체전 우승(2010, 2011)을 안기며 WK리그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에는 잠시 동안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중국 4개국 친선 대회 및 키프러스컵에 참가하였다.
2013년에 남자축구계로 복귀해 안익수 감독이 이끈 성남 일화의 코치로 활동했으나 팀이 시민구단으로 재창단되는 과정에서 감독, 코치진이 모두 교체되어 물러났다. 2014년 다시 여자축구계로 돌아와 2016년까지 이천 대교의 감독을 맡았다. 2015년과 2016년 전국체전 우승을 차지했으나 WK리그에서는 최인철 감독의 지도아래 절대1강이 된 인천현대제철로부터 왕좌를 탈환하는데 실패했다.
2018 시즌 중반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로 부임하였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한채 반년만에 팀을 떠났고, 2019년 김해시청 축구단의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5. 여담
- 대학교로 진학을 할 때, 경희대학교를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 팀 창단이 2년 밖에 되지 않은 대구대학교를 택했는데, 그 이유는 엄청나게 뛰어다니는 경희대의 스타일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렇게 들어간 대구대는 그 때 당시 교문도 존재하지 않았고, 심지어 학교 안에 사과밭과 포도밭이 있었다고.
- 일화 시절 신태용과 영혼의 단짝이자 황금 콤비로 유명했었고, 어시스트-득점으로 17골 타이기록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데얀-몰리나의 데몰리션 콤비가 기록한 18번째 골로 갱신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