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1007 알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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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Z.1007 알치오네(CANT Z.1007 Alcione)'''
1. 제원(Z.1007bis)
승무원 : 5명
전장 : 18.35 m . 전폭 : 24.80 m / 전고 : 5.22 m
익면적 : 70 m²
공허중량 : 9,396 kg / 최대이륙중량 : 13,621 kg
동력 : Piaggio P.XI RC.40 공랭식 엔진(990 hp) 3기
최대속도 : 458 km/h
순항속도 : 338 km/h
항속거리 : 1,795 km
상승한도 : 7,500 m
방어무장 : 12.7mm 스코티 중기관총 2정 / 7.7mm 브레다-SAFAT 기관총 2정
폭장 : 1,200 kg (폭탄창) / 1,000 kg (하드포인트) 합계 2,200 kg / 또는 450mm 항공어뢰 2발
2. 조선회사에서 만든 폭격기
이탈리아의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자리잡은 조선소 겸 항공기 제작사인 칸트(Cantieri Aeronautici e Navali Triestini)[1] 사에서 3기의 엔진을 장착시켜 개발한 폭격기가 곧 Z.1007 알치오네(Alcione)였는데, "물총새"를 의미하는 이름이었다. 프로토타입에 해당되는 Z.1011은 1937년 3월에 첫 비행을 시작했다. 연이은 시험비행에서 다발기답지 않은 기민한 조작성과 뛰어난 기동성을 보여주어 제식으로 채택되었고, 이듬해인 1938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Z.1007에서 'Z'는는 CANT사의 설계가였던 필리포 자파타(Filippo Zappata)의 이니셜에서 따왔다.
3. 이탈리아 최고의 폭격기
1938년 10월에 이탈리아 왕립공군이 발칸 반도의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처음 공개된 이 폭격기는 1940년 9월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도 사용되었다. 칸트 Z.1007의 개발은 자타가 공인하는 천재 설계자로 불리는 필리포 자파타(Filippo Zappata)에 의해 1935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원형 1호기는 1937년 3월 보여준 첫 비행 이래 최고 속도 430 km/h에 항속거리 2,800 km의 고성능을 보여주었고, 이에 만족한 이탈리아 공군은 생산과 배치를 서두르게 된다. 8대의 극초기형이 귀도니아(Guidonia) 시험센터로 보내져 각종 테스트에 임하게 된다.
시험 결과, 장착된 이소타-프라스키니 아소 10RC15 액랭 엔진(840마력)이 다소 파워가 딸린다는 결점을 지적당한 개발진들은 엔진을 훨씬 더 강력한 피아지오 P.XI RC.40(990마력)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이 형식이 Z.1007bis로 불리며, 상당한 성능 향상을 보이자 1939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갓 완성된 알치오네의 초기형들은 이탈리아 북동부의 비첸차(Vicenza)에 전개하고 있던 제16항공단에 처음 배치되었다.
Z.1007bis는 알치오네의 주력 생산형이 되었다. 칸트 Z.1007은 중익 배치된 단엽날개에 인입식 랜딩기어를 갖추고 있으며 이탈리아 공군의 다른 주력 폭격기인 SM.79나 피아트 BR.20에 비해 세련된 실루엣을 가진 더 현대적인 기체였다. 그 속도와 항속거리는 SM.79를 앞질렀고, 무장 탑재능력과 기체의 안정성은 BR.20 보다 더 뛰어났다. 그러나 프레임과 주익 스파를 제외한 전체 골조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전투 피해에 약하고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굴리기에는 알맞지 않았던 탓에 결점이 없는 기종이라곤 말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단점은 훗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폭격기의 방어화력은 상부 터렛에 중기관총 1정, 동체 하부에 중기관총좌 1개소, 그리고 동체 측면의 관측창으로 사격하는 7.7mm 기관총으로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동급 이탈리아제 폭격기에 비하면 잘 무장된 편이었다. 특히 동체상부 터렛은 큰 호평을 받았다. 알치오네에는 기수쪽의 조종실에 기장과 부기장이 나란히 타고 폭격수는 항법사를 겸하게 된다. 그리고 동체 측면의 기총 사수가 2명 동승하는 형태로 운용되었다.
4. 다양한 전선에서
알치오네에도 H형 꼬리날개를 가진 파생형이 있긴 하지만 성능면에서 큰 변화는 없다.[2] 몰타 항공전에 참가한 알치오네는 RAF의 스핏파이어 Mk.VC에게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1940년 9월부터는 Z.1007bis가 벨기에에 파견되어 영국 본토 항공전에 참가하였다. 이때쯤이면 16항공단 외에도 47, 106, 그리고 제107항공단에도 배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폭격 작전의 주력은 구형기인 BR.20이었고 알치오네는 투입 댓수도 적었을 뿐더러 주로 강행정찰 임무를 맡거나 영국 공군 전투기들을 이끌어내는 미끼로 쓰였다. 이후에는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 전선, 시칠리아, 사르데냐를 기지로 삼고 지중해 전선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전선이 확대됨에 따라, 일부 기체는 북아프리카와 소련의 동부전선에서 이용되기도 했다. 1943년에는 더 강력한 엔진으로 보강한 Z.1007ter 형식이 출현했다. 이 형식은 폭탄 탑재량이 약간 줄어든 대신 최고 속도는 500 km/h로 빨라졌으며 항속거리는 2,250 km까지 늘어났다. 알치오네의 합계 생산수는 540대쯤 되는데, 초기형인 Z.1007이 35대, Z.1007bis가 476대, 그리고 나머지가 기타 형식이었다. 알치오네는 항상 전선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으며,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성능을 보였지만 생산량이 더 많은 사보이아-마르케티 SM. 79와 함께 사용되었다.
독일이 이탈리아의 항복을 눈치채고 강제로 무장 해제시켰을 때, 알치오네 폭격기 30대가 루프트바페의 손에 넘어갔다. 그렇지만 독일 공군이 이 노획 기체들을 전투임무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CANT사가 알치오네를 기반으로 개발한 쌍발 폭격기가 있는데, 바로 Z.1018 레오네(Leone)이다. 레오네는 알치오네보다 훨씬 우수한 폭격기였지만, 1943년, 종전으로 15대만 생산되고 끝이난다.
5. 기타
항공 시뮬레이션 게임 워 썬더 이탈리아 항공트리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