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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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 섬 지도. 북쪽 해협(보니파시오 해협) 건너편에 살짝 보이는 땅이 코르시카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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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데냐의 깃발. 4명의 무어인(I quattro mori)이라고 불린다.[1]
1. 개요
이탈리아의 섬이자 레조네. 이탈리아 서쪽의 지중해 서부에 위치해있다. 인구는 1,661,000명, 면적은 24,090km²다. 섬이 마치 포르투갈을 두동강낸 것 중 한쪽 같이 생겼다.
바로 북쪽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고향인 코르시카 섬이 있다. 코르시카 섬은 이탈리아 본토에 더 가깝지만 이탈리아의 섬이 아닌 프랑스의 섬이다. 가깝기는 하지만 사르데냐-코르시카 사이의 해협은 암초가 많아서 항해하기에 별로 안 좋다고 한다. 묘하게도 이탈리아 영토인 사르데냐와 달리 프랑스령인 코르시카 섬의 언어는 이탈리아어와 흡사하다고 한다.[2]
일단 서지중해에서는 가장 큰 섬이다. 2위는 코르시카 섬, 3위는 마요르카 섬이다. 시칠리아 섬이 더 크기는 하지만 이 섬은 엄밀히 말해서는 서지중해와 동지중해 사이에 낀 섬인데다가 좁은 해협만 건너면 이탈리아 반도로 나아갈 수 있기에 고대부터 사실상 이탈리아 반도의 연장선으로 취급받은 곳이다. 실제로 뒤에 나오는 사르데냐 왕국도 시칠리아와 교환해버린 것이다.
사르데냐 섬에서 지중해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프리카 대륙의 마그레브 지역, 정확하게는 알제리, 튀니지가 나오며, 이 두 국가와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다.
먼 지역에서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로마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대개 KLM이 많이 이용된다. 로마에서 사르데냐 최대 도시인 칼리아리까지는 알리탈리아 항공기를 이용하며, KLM과 에어 프랑스가 코드셰어를 걸어놓았다.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외부와의 교류가 적었기 때문에 언어가 4세기 이후 거의 변화하지 않고 라틴어와 유사하게 남았다.
지역 음식으로는 치즈계의 최고 괴식 '''카수 마르주'''로 유명하다. 물론 샤르데냐 사람들 전부 이런 것만 먹는 건 아니고, 고대 로마 시절 로마 지역의 전통 치즈인 페코리노 로마노도 현재는 샤르데냐에서 생산되고 있다.
정어리가 많이 잡혔던 시절이 있던지, 영어 단어 sardine(정어리)의 어원이 되는 지명이기도 하다.
2. 언어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쓰지만 시칠리아와 마찬가지로 사르데냐어라는 고유어가 있다. 참고로 사르데냐어는 이탈리아어의 방언, 사투리가 아닌 별개의 언어이다. 언어 관련 정보의 인도유럽어족 부분의 로망스어군 부분, 또는 로망스어군 항목을 잘 살펴보면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 심지어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보다도 계통상 거리가 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사르데냐 섬의 일부지역에서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사용되는 카탈루냐어를 쓰기도 한다. 단, 사르데냐에서 쓰이는 카탈루냐어는 알게로 방언에 속하고 카탈루냐 본토와는 차이가 매우 큰 편이다.
3. 역사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석기시대로부터 살아온 선주민들 고유의 문화나 외부로부터 유입된 이주민들의 문화가 서로 섞이고 대립하곤 했다. 기원전 10세기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섬에 방문하며 식민도시를 세우기 시작했으며, 카르타고가 섬에 원정대를 보내 섬 남부를 점령하였으나 선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용병 반란 시점에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이후로는 로마 제국의 밀셔틀로 활약했다. 다만 스트라보의 기록에 따르면 제정 시기까지도 내륙지역에는 섬 고유 문화인 누라게 문화가 일부 남아있었다고 한다.
중세에는 동로마 제국 라벤나 총독부 영역으로 편입되었다가 바르바리 해적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고, 이탈리아 본토와의 연락은 별로 없었던 상태가 지속되었다. 한 때는 섬의 일부가 제노바, 피사 등 이탈리아 본토 해양국가들의 각축장이 되어 그들에 의해 지배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노바 공화국의 세력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경쟁에서 불리해짐에 따라 1325년에 통제를 잃었으나 사사리 등 일부 도시는 친제노바계 정권이 유지되었다.
한편 토착 세력간에는 13세기까지 갈루라 왕국,[3] 로구도로 왕국, 아르보레아 왕국, 칼리아리 왕국 등 네 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사국지를 찍고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아르보레아 왕국이 나머지 세 왕국을 병탄하고 거진 통일하는...듯 보였으나 사사리는 상술하다시피 독립된 도시국가가 들어섰고 칼리아리는 아라곤 왕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원래 시칠리아 왕국령이었는데 시칠리아의 만종으로 시칠리아 섬이 독립하자 남은 나폴리 왕국의 샤를 2세가 아라곤 측에 시칠리아 지원 중단 대가로 그들이 원하던 시칠리아 대신 사르데냐를 준 것.
1420년대에 들어서는 아라곤 왕국의 전면적인 침략에 의해 아르보레아가 멸망함에 따라 시칠리아와 함께 아라곤 연합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근대 무렵에는 사보이 공작에 의해서 피에몬테와 합병된 뒤 사르데냐 왕국을 형성하였다. 이후에는 이 사르데냐 왕국이 중심이 되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하고,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한 가리발디군의 협조를 받아 이탈리아 왕국을 형성하게 된다. 다만 여기서의 사르데냐 왕국은 사보이아 공국의 후신이자 토리노를 중심으로 한 왕국으로 사르데냐 섬과는 영토 외에는 크게 관계가 없다. 딱 한번, 나폴레옹 전쟁때 국토가 점령당하여 사르데냐의 칼리아리로 수도를 옮겼던 정도였고, 그나마도 끝나고 복귀했다. 이후 사르데냐 왕국으로 개칭했다가 통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근해 앞바다에서 영국 해군과 추축국 해군이 박터지게 싸웠고, 연합군의 이탈리아 상륙시 그 전초기지로 사르데냐 섬이 사용되었다. 추축국 이탈리아 영토였음에도, 사르데냐 섬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탈리아 본토와 공동체적 유대감은 없었다.[4]
아무래도 이탈리아하고 이질적인 지역이라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가끔씩 독립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4. 창작물에서의 사르데냐
4.1. 죠죠의 기묘한 모험
디아볼로(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고향이다.
4.2. 캄피오네!
작중 주인공 쿠사나기 고도가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가게 되는 섬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쿠사나기 고도가 승리의 신 베레트라그나를 살해했다.
4.3. 파드레 파드로네
타비아니 형제의 대표작 파드레 파드로네의 배경이기도 하다. 언어학자 가비노 레다의 자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샤르데나의 거친 문화를 잘 알 수 있다.
[1] 참고로 저 무어인 그림은 사르데냐 바로 위인 코르시카 깃발에도 그려져 있다. 덤으로 깃발에 대해서 비판도 있는데 이 인종차별 논란은 둘째치고 아라곤의 지배시절이 유래이기 때문.[2] 코르시카는 오랫동안 북이탈리아 공화국들의 영토였지만 그에 반해 사르데냐는 동로마의 철수 이후 이슬람, 이베리아 국가들의 영토로 오랫동안 존속했다.[3] giudicati; 구 로마 제국의 총독 직위인 judex provinciae에서 어원을 두며 의미는 법관(judge)의 뜻을 가지나 세습 군주의 형태를 보였으며 실제로 인정되는 지위 또한 왕 혹은 공작과 동등한 지위로 간주되었으므로 왕국으로 표기한다.[4] 이탈리아 본국부터가 아직도 하나의 이탈리아인이라는 인식이 그렇게 강하지 않은 판에 한참 동떨어진 사르데냐가 이러는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이탈리아 본토보다 프랑스(령 코르시카)가 훨씬 가까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