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테와 태권도의 관련성
1. 개요
가라테가 태권도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는 문서.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WT)은 공식적으로 태권도가 택견을 계승한 무술이고, 가라테의 영향을 받은 것은 형식적인 것에 그친다고 발언하였다.
2. 태권도와 가라테의 공통점
태권도를 해봤던 사람은 어디서 많이 본 품새 같지 않은가? 우리가 아는 그 태권도의 태극 품새는 쇼토칸 카라테가 원조이다. 태권도의 품새는 대부분 쇼토칸 가라테의 가타를 재조립한 수준에 그친다.
태권도 도장 가면 주춤 서기와 함께 가장 먼저 배우는 정권지르기. 역시 쇼토칸 가라테의 기본 수련법이다. 정권 쥐고 좌우 번갈아 가며 지르는 것 까지 똑같다.
3. 태권도 원로들의 증언
태권도계 원로, 중진 중에서도 가라테와 관련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진 않다. 대표적으로 미국 태권도의 대부인 이준구는 딱 잘라서 가라테에서 태권도가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75세에 송판 깨는 美 태권도 황제 이준구
국내파 지도자 중에서도 전 지도관 관장이자 전 국기원 부원장인 이종우 같은 인물은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이는데, 2002년 신동아와 인터뷰에서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형이며 모든 기본기가 가라테에서 온 것이라는 발언으로 일대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9개 관에서 가르치는 기술은 다 비슷했습니까.
“그럼요. '''다 가라테를 기본으로 한 것인데.'''”
▶관마다 특징이 있지 않았나요.
“굳이 말하자면, 청도관이 옆차기로 유명했고, 무덕관은 앞차기를 잘했다는 정도죠.”
▶가라테 기술과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까.
'''“가라테를 가르친 거니까. 당수니 공수니 다 같은 거예요.”'''
▶발차기에서 차이가 없었나요.
“태권도의 발차기 기술이 가라테보다 더 발전했지. 일본은 전통을 따지기 때문에 지금도 옛날 것 거의 그대로 가르쳐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의식이 없어 뒤돌려차기니 뭐니 해서 제멋대로 만들어냈어요. 그게 뒷날 다 복이 된 거요.”
▶당시엔 뒤돌려차기가 없었습니까.
“그랬지. 나도 그때 뒤돌려차기는 못 배웠어요. 기본 동작만 배웠지. 지금은 뛰어앞차기 등 기술이 얼마나 화려해요. 가라테보다 훨씬 앞서 있지. 상대가 안 되죠. 쿵푸도 그렇고. 그러니 올림픽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대중이 좋아하니까.”
▶태권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 ‘시초는 가라테이지만, 이후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것’이라고.
“다른 도장은 몰라도 청도관만큼은 분명해요. '''품세도 가라테의 평안이니 철기니 하는 것을 그대로 배웠으니. 태극형도 마찬가지고요. 거짓말하면 안 되지.'''”
물론 태권도계 주류에서는 해당 인터뷰 내용을 부인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댄다.
- 이종우 자신이 발언을 번복했다.
- 문제 기사를 작성한 신동아 기자가 퇴사한 상태라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다.
- 신동아는 태권도계를 비방하는 기사를 여러 번 냈기 때문에 해당 기사도 믿을 수 없다.
―부원장께서 무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입니까.
“해방 직후죠. 사춘기의 꿈이라고 할까. 17세 무렵 막연하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공동에 가면 18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죠. 그곳이 바로 일제시대 유도 도장이었는데, 그때는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운 거죠. 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거든요. 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당시 가라테는 당수(唐手)로 불렸죠.
“당수(唐手)로 쓰는 사람도 있고 공수(空手)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죠. '''당수나 공수를 일본말로 옮기면 가라테가 되거든. 모두 같은 내용인데 도장별로 특색 있게 보이기 위해 권법이다 당수도다 공수도다 그렇게 불렀어요.'''”
―태권도 이전에는 태수도(跆手道)로 불렸습니다. 태수도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까.
“내가 한남동 외무부장관 공관 위에 살 때 최홍희 집은 그 건너 이슬람교회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죠. 5·16이 나고 얼마 안됐는데, 최홍희가 태권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태권이 뭐냐? 가라테의 변형인데’'''라고 대꾸했어요. 그러다가 가라테(당수·공수) 하고 태권도를 합해서 태수도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끼리 펴면 수(手)고 쥐면 권(拳)이니까, 쥔 거나 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했어요. 그때 최홍희가 6군단장이었는데 권총을 차고 막 출근하려다 말고 나하고 얘기한 기억이 나요.”
발언을 '번복'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종우는 다른 기사에서도 신동아 인터뷰에서 말한 바를 반복한다. 태권도의 산증인을 찾아서 (1)―많은 태권도 교본들이 태권도의 뿌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하더라도 좀 무리가 따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책을 쓴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가 내세울 게 없었잖아요. 초창기에는 태권도를 해외에 보급하는 과정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한국의 전통무술이라고 하면 명분도 서고 잘 먹혀들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유사성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겁니다.''' 역사적 원류로 본다면 중국 것이 일본으로 들어갔고 일본 것이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해야 설득력이 있죠. 일본 사람들이 중국 무술을 많이 개량해서 과학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가지 문제가 뭐냐 하면 일본 사람들은 유연성보다 근육성에 바탕을 두고 운동을 만들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이 굳을 수밖에 없죠.
우리는 이걸 가지고 스포츠로 경기화하기 위해서 겨루기를 시킨 겁니다. 반면 일본 사람들은 겨루기를 안하고 혼자 하는 운동으로 놔두었고, 중국에서는 손 맞춰서 하는 유연한 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태권도는 중간 입장에서 어느 쪽도 아니에요. 쉽게 얘기하면 우지좌지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거죠. 그런데 우리는 겨루기를 했기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중국과 일본이 역으로 우리 걸 배우게 된 겁니다. 자기들 무술은 보급이 잘 안되는 데다 젊은 아이들이 자기와의 싸움보다 치고 받는 걸 좋아하잖아요.”
―광복이 되고 도장을 연 사람들은 모두 가라테를 했나요.
“기본기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막는다 저렇게 때린다 하는 건 모두 가라테와 똑같아요.'''”
―그렇다면 '''우리 전통무예와의 유사성은 없다는 얘기입니까.'''
“언뜻 보기에는 있는 것 같지만, '''기본기가 완전히 달라요. 그래서 사실상 유사성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택견도 현대에 와서 많이 변질됐어요. 태권도 하던 사람들이 택견을 배우니까 발차기가 태권도 스타일로 나오는 거죠.”
―광복 이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영향을 끼친 무술은 가라테 뿐입니까.''' 다른 것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나요.
“'''그게 솔직한 대답입니다.''' 나도 별의별 것을 다 끌어들여서 책을 쓴 사람이지만, 이제는 밝힐 때가 됐어요. '''가라테를 가르치는 관장들이 모여서 태권도의 형틀을 만들었고,''' 그 실무작업을 제가 했잖아요. 지금은 우리가 세계 정상에 있으니까 밝혀도 큰 문제가 없어요.”
보다시피 국기원의 '정론'인 택견 유래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부분적이나마"라는 단서를 붙여서 태권도의 가라테 변용설을 반복하고 있다. 전통적인 것이건 외래적인 것이건 태권도를 창출한 가라테 외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전혀 지적이 없다.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종주국'에 대한 이종우의 철학인데, 이종우가 진정으로 태권도가 한국의 전통무술에서 유래되었다고 믿었다면, 그것을 대단치 않게 볼지언정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한심하다는 듯 비웃을 필요까지는 없다. 여러 모로 태권도의 유래가 길지 않음을 인지하는 사람의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고, 기존의 신동아 인터뷰와 상충되기보다는 보론에 가까운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문화는 역사를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태권도는 아직도 사관이 정립되어지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태권도의 1세대의 산증인으로써 어떻게 생각 하는가?
"지금의 '''태권도는 부분적이나마 가라데에서 유래해 왔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가라데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냐가 중요하다. 일본의 가라데가 일본이 독창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동양 문화권은 중국으로부터 많이 나왔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조상들이 무조건 외국의 무술만 모방한 게 아니다. 손발을 움직이면서 하나의 무술을 완성시킨 것이 일본가라데 인데, 또 이전에 중국의 우슈가 나오기 이전에 우리나라에도 고유의 무술이 많이 있었다. 고구려시대 무덤의 벽화에서도 무술화가 있지 않으냐? (중략) 아주 아득한 옛날에 우리가 기록이 없었을 때에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을 해하려고 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손발을 움직여 자기 방어를 해 왔다. 그렇다고 체계적인 것을 따져서 우리가 기록되어 있는 그 사실을 봐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부인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이전에도 여러 나라에 독특한 무술이 있었다는 점이다."
- 그렇다면 태권도가 가라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일부의 태도가 오히려 태권도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한 탓이란 말씀인데, 부총재께서는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받았을 뿐, 오히려 가라데와 우슈를 한 중국과 일본이 태권도를 배울 만큼 집대성한 태권도의 진수를 언급해달라?
"좋은 질문이다. 중국의 우슈가 많은 발전을 했다. 그리고 많은 인구가 또 그것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태권도를 수입해 가지고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월드컵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해서 금메달을 따는 영광도 있었다. 또 우슈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태권도가 많은 발전을 하고 있다. 또 일본도 가라데의 본고장이다. 일본도 나날히 태권도가 발전되어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태권도를 선호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이 일본의 가라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우리가 과학화하고 실질적으로 과거에 자기들이 하던 것 보다도 더 훌륭한 투기경기라고 생각 했으니까 받아 들이는 것이다. (중략) '''나는 어딜 가든지 종주국을 부인하는사람이다.''' 종주국이라는 것은 처음 시작을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지 우리는 한 없이 앞으로도 백년 이백년 천년 앞을 내다 보고서 우리는 더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시작해야지 먼저 시작 했다는 것만 가지고 안주한다면 멸망한다. 나는 이것을 주장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태권도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웃는다.''' 종주국이라는 것은 소용이 없다. 예를 들어서 축구가 영국에서 나왔으니 축구의 종주국이 영국이다. 그러나 영국의 존재라는 것은 무의미 하다. 현실적으로 봐서 월드컵에서 우승한 불란서라든가 과거에 우승한 브라질을 더 의미있게 보지 않나, 우리가 우리 후대에게 뭘 남겨 주느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종주국은 소용이 없다. 어떻게 보면 강국으로써 어떻게 계속 유지 되느냐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내가 여기에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우리가 종주국인 것을 빼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세계 최강국으로 남느냐에 심혈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한다"
4. 태권도는 가라테의 변용이다
태권도는 한국의 무술이며 그 이름 또한 택견에서 유래되었지만, 실질적인 형태에서 택견의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한국 고유의 전통 무술이라고 보긴 어렵다. 족구가 현대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외국에서 유래된 축구와 배구를 혼합해 만든 스포츠이지, 전통 민속놀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태권도는 일본의 가라테 영향을 받아 현대에 창작된 무술이다.
물론 현재의 태권도는 가라테와 많이 '''다르다'''. 애초에 가라테부터가 중국 남권을 차용한 오키나와 무술에서 영향을 받은 거기도 하고, 가라테가 일본열도에 보급되기 시작한 당시 오키나와는 일본제국에 병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본토의 일부라기보다는 식민지에 가까운 상태였고 류큐인들도 2등국민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가라테 자체도 당연히 당시 일본에선 비주류 무술이었다. 역으로 태권도가 가라테에 영향을 준 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권도가 가라테에서 유래된 무술이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브라질리언 주짓수는 유도하고 차이가 상당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유도가 브라질에 유입되어 탄생한 무술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대다수의 태권도 원로 사범들은 일본에서 가라테를 배웠지 택견이나 수박을 배우지는 않았다. 기간도장 9대관 관장들은 대부분 가라테를 배운 사람들이었으며 도장의 이름도 '○○관'이라는 식으로 가라테, 유도와 유사했다. 황기와 같이 전통무술과 접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인물은 후일의 기간도장 통합 과정에서 배제되었고, 뼛속까지 가라테인이었던 이종우와 같은 인물이 통합 작업과 태권도의 체계화를 이끌었다. 결국 태권도를 만든 주 재료는 쇼토칸 가라테였고 중국 북권이 약간 혼합되었을 뿐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도, 태권도는 '''단급제도 및 띠 체계, 도복''' 등에서 가라테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했다.
태권도가 가라테의 변용이라는 것은, 단순히 초창기의 모방에 그치지 않는다. 다만, 태권도인들은 여전히 공식적으로 택견 유래설을 주장하지만, 택견의 특색인 유술적 요소나 품밟기, 아래발질 등을 2020년대에 이르도록 전혀 도입하고 있지 않는 반면, 가라테에서 유래된 '''도복 착용, 정권지르기, 약속 겨루기, 품새 수련''' 등의 전통은 매우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특히 품새는 태권도계에서 우슈를 모방하여 1990년대부터 경기화를 단행했고, 이를 협회 주도로 적극 보급한 결과 현재는 기존의 겨루기와 맞먹는 경기 태권도의 주축이 되었다.
5. 가라테와 구분되는 태권도의 특색
19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발차기 기술 중심의 '''대련'''을 통한 경기가 태권도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다만, 일부 태권도 옹호자들의 말처럼 일본 가라테에 대련(겨루기)가 없다는 뉘앙스는 사실이 아니다. 가라테도 슨도메라는 타격 직후 바로 멈추는 "라이트컨택트"룰의 대련은 존재해 왔다. 태권도가 가라테와 차별을 주기위해 호구를 적극 채용 후 풀컨택트로 개량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쇼토칸 외의 가라테 유파에서는 유술기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풀컨텍트랑 별차이 없는 대련방식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유파도 존재하며, 그것마져도 실전감이 없다고 극진 계열이 탄생했다. 그런 까닭에 대련이 가라테와 차별되는 태권도 만의 특색인냥 서술하는 것은 상당히 우스운 일이다.
대나무를 쪼개 만든 호구를 사용할 때는 발차기뿐 아니라 주먹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나, 호구가 개량되며 겨루기 양상이 발차기 위주가 되어 가라테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태권도의 시그니처 기술인 '''찍기(내려차기), 뒤차기, 뒤후리기, 나래차기'''와 같은 발차기다. 지금이야 각 무술의 장단점 분석이 이미 끝난 종합격투기의 시대인지라 인지하기 어렵지만 그런 기술들은 1990년대 이전엔 허를 찌르는 비기로 취급받았다. 1980년대 일본 쇼토칸 가라테 발차기에 찍기, 뒤차기 등이 나온다고는 하나 이는 태권도의 영향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가라테는 과거부터 해외 무술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일본 가라테 사범들도 찍기나 뒤후리기 등의 발차기는 태권도 기원이라고 말한다.
ITF에 한정 짓는다면, 직선적인 공격 위주로 발전한 가라테와 달리, 체중을 실어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사인웨이브 이론에서 일부 동작들이 파생되는 등 기술의 원리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
사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태권도가 결코 손해볼 건 없는 장사였는데, 발차기로 특화된 태권도가 보여주는 각종 묘기들은 속된 말로 폼나고 멋있어보였고, 학부모들이 보기에도 무지막지한 격파를 해대는 가라데보다 덜 위험해보였기에 역사도 훨씬 짧은 태권도가 글로벌하게 전파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1] 그 결과 현재 올림픽 정식 종목에 태권도는 가라데를 제치고 일찍이 먼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