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금도

 



1. 개요
2. 역사
3. 관광
3.1. 목장성
3.2. 김일 기념관
3.3. 적대봉 (592.2m)
3.4. 해수욕장
4. 여담


1. 개요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 반도 남쪽에 위치한 섬. 면적이 63.57km2, 해안선 길이 54km로, 대한민국에서 10번째로 큰 섬이다.[1]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7번째로 큰 섬이었다고. 행정구역상으로는 고흥군 금산면에 해당한다. 섬이 낙타 모양으로 생겼다는 말이 많으며 큰 금맥이 있다는 명칭과는 달리 아직까지 금이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2011년에 완공된 거금대교를 통해 고흥군 도양읍과 연결되어 있다. 그 전까지 섬과 육지와의 교류는 녹동항을 통해 이루어졌다. 연륙교 중간에 한센병 환자 보호소가 위치한 소록도가 위치하여 았다. 거금도는 한국 프로 레슬링의 전설 김일[2], 판소리 명창이자 동초제의 창시자인 김연수,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정치인이자 현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인 오승록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국도 27번의 종점이며, 톳과 미역, 다시마 등이 특산물로서 유명하다.

2. 역사


거금도는 고흥반도 서남단 도양읍에서 2.3km 가량 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절리도라 불렀으며, 거억금도라고도 기록되어 있고 목장으로 쓰였다. 강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897년에는 돌산군에, 1914년에는 고흥군에 속하게 되었다.
1643년에 고산 윤선도 선생이 거금도의 풍광에 대한 소문을 듣고 1643년에 방문하였다고 한다. 그는 적대봉 기슭의 홍리 (현재의 홍련 마을)에서 여러 날 머물면서 ‘산중신곡’을 집필하였다. 그를 기념하기 위한 느티나무가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이 거금도와 고흥 반도 사이의 해협에서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전투가 절이도 해전이다.
홍연마을 인근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월포재라는 고개를 넘으면 월포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 포구가 반달형으로 생겨 달개라 부르다가 한자화시켜 월포(月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월포문굿농악으로 유명하다. 월포문굿은 임진왜란 때 아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 승전악으로 유래했다 전하며, 문화재청에 의하면 움직임이 민첩하고 활기가 넘치는 특징을 가졌다고 한다. 마을 앞의 농지는 간척지이다.
거금도는 1903년에 선교사에 의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는데 그중 남쪽 바다를 끼고 있는 오천교회는 1914년 설립되었다고 한다.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 한때 섬에는 2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7천 명이 살고 있다.

3. 관광


나름 큰 섬인 만큼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그런데도 인근 소록도에 대한 사람들의 기피적인 태도와 인프라의 결핍성[3] 때문에 세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숨은 여행지이다. 따라서 남들이 모르는 여행지를 선호하는 여행 마니아들의 성지이며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주요 촬영지이기도 하다.[4]
최근에 장장 42km에 달하는 섬 둘레길이 7개 구간으로 나뉘어 개통하였다. 교통 조건과 관광지 조성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 숨은 명소에서 유명한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예상된다.

3.1. 목장성


조선 시대에는 제주도 다음가는 남해안의 대표적인 목장섬으로 기능하였으며[5] 따라서 현재까지 마을과 목장을 구분하던 목장성 유적이 남아 있다. 성벽은 세조 12년인 1466년에 수군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1470년도 기준 364 필의 말이 방목되고 있었다고 한다.

3.2. 김일 기념관


전국의 섬 중 거금도에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오게 한 은인. 면사무소 근처 평지 마을에는 60 ~ 70년대에 박치기로 유명하였던 레슬링 선수인 김일의 기념관과 체육관이 자리하고 있다. 박치기 왕으로 국내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1929년 거금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84cm의 거구였던 김일은 어렸을 때부터 각종 씨름대회를 휩쓸었을 만큼 이름난 장사였다고 한다.
씨름에서 레슬링으로 진출한 김일은 전국 대회를 휩쓸었고, 부동의 챔피언이 되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그의 팬이었다고 하는데, 경기가 끝나면 그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식사를 했다고. 어느 날, 박정희는 그를 불러서 "임자의 희망이 뭐냐"라고 묻자 김일 선수는 "제 고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이후 청와대 지시로 거금도에 전기 시설이 일찍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고향에 크나큰 선물을 해준 김일에 대해서 거금도 사람들은 지금도 그에 대한 큰 애정을 가지고 있다. 김일 기념체육관 앞에는 김일의 생가와 묘역, 기념비 등이 세워져 있다. 거금도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시설이다.

3.3. 적대봉 (592.2m)


積臺峰. 조망권이 보장되어 있다. 고흥에서 팔영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고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봉수대가 놀랄만큼 잘 보존되어 있다. 다도해의 수려한 경치는 덤. 다만 초보 등산객에게는 급한 경사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방문한다면 쉬엄 쉬엄 가도록 하자.

3.4. 해수욕장


'''해수욕장의 천국'''

  • 연소 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약 400m 정도로 길지는 않지만 썰물 때 폭이 넓고 경사도가 거금도 내 해수욕장 가운데 가장 완만하다. 특히 100년을 넘은 송림이 우거져 있고 부드러운 모래질이 돋보이는 해수욕장이다.
  • 익금 해수욕장
햇빛이 비추면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변이라고 한다.
  • 오천 해수욕장
공룡알 해변. 한국의 몽돌 해변 중 돌의 크기가 가장 큰 곳이다. 호박만한 돌둘도 많다. 몽돌 해변의 너비가 매우 높아 장관이다.

4. 여담


거금도와 소록도, 그리고 소록도와 고흥군 도양읍을 이어주는 연륙교인 거금 대교는 2.3km에 이르는 긴 교량이다. 중앙의 마름모 모양의 주탑 두 개를 케이블로 연결한 사장교이다. 주탑간 거리는 480m로 긴편인데, 인근에 위치한 거금도의 주 항구인 녹동항의 배들이 안전히 운행하도록 배려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대교는 복층 형태로 되어 있어 상층에는 자동차, 하층에는 보행자와 자전거 전용의 형태로 되어 있다.

[1] 한국의 도서를 25위까지 크기 순으로 나열해 보면 제주도, 거제도, 진도, 강화도, 남해도, 안면도, 완도, 울릉도, 돌산도, '''거금도''', 창선도, 신미도, 백령도, 자은도, 압해도, 교동도, 영종도, 고금도, 대부도, 보길도, 금오도, 영흥도, 가덕도, 덕적도, 대흑산도의 순서이다.[2] 청와대 초청받은 김일은 박정희 대통령과 오찬이 있었는데 오찬 도중 박정희 대통령이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얘기하자 거금도에 김 작업을 하는데 전기가 없어서 밤에 작업을 못한다고 전기 좀 들어오게 해달라고 하자 박정희대통령은 그 소원을 들어줘 거금도에 전기를 놓게 되었다[3] 전남 중부 해안은 도로 접근성이 부족하며 연륙교도 2011년이 되어서야 개통하였다.[4] 세트장은 명천바다마을 목장 일대였는데 2012년에 철거하여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5] 말의 도주를 막기 위해 주로 섬에 목장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