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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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의 기갑부대 지휘관. 최종계급은 상급대장. 종전 후 전범재판에서 유죄가 인정, 15년형을 받았다.
2. 생애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여했었던 라인하르트는 군에 남아 제2차 세계 대전의 서막을 알렸던 폴란드 침공에서 4기갑사단을 이끌었다. 폴란드 침공의 성공 이후 프랑스 침공에서는 41차량화부대를 재편한 41기갑군단의 초대 군단장으로써 전역에서 활약하였다. 라인하르트가 이끌었던 41기갑군단은 아르덴 숲을 통과했던 부대로써 현재 프랑스의 오드프랑스의 애비빌까지 진격하였다.
프랑스 전역이 끝나고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이 전개되면서 라인하르트는 동부 전선으로 이동되었다. 중부집단군 지휘 아래의 3기갑군(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에 예속되어진 41기갑군단을 이끌었고 레닌그라드 교외 지역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하였다.
점령지에서 라인하르트는 수뇌부에서 내려진 정치장교 명령(Kommissarbefehl)─소련 정치장교에 대한 즉결 처형─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또한 나치 독일의 장애인 정책에 따라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정신질환자들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3기갑군의 사령관으로 승진하여 태풍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겨울이 되는 바람에 라인하르트의 부대를 포함, 작전에 투입된 대부분의 부대들이 퇴각한다.
전선을 뒤로 물려놓았을 시점에 라인하르트가 이끌었던 3기갑군은 비텝스크와 스몰렌스크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끌던 보안방첩국(Sicherheitsdienst)과 협업하여 유대인 사회의 붕괴를 위한 유대인 이송 및 학살에 동참하였다.
이후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이 전개되면서 대대적인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중부집단군이 거의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긴급히 투입된 발터 모델 원수가 기존의 북 우크라이나 집단군 사령관과 중부 집단군 사령관을 겸임하며 동부전선을 어느 정도 재건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서부 전선 또한 전선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에, 모델 원수는 서부전선 총사령관 겸 B집단군 사령관으로 전임되었고 모델의 후임으로 라인하르트가 중부집단군을 지휘하게 된다. 하지만 소련의 공세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동부전선은 슐레지안 지역까지 몰리게 된다.
1945년 1월에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종전 후 미군에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최고사령부 재판에 회부, 동부전선에서의 유대인 학살 등의 전쟁범죄의 책임을 물어 15년형을 선고받는다. 몇 번의 감형에 대한 논의 끝에 1952년에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서독에서 군사·안보 등의 분야에서 일하였고 1962년 독일 연방 공화국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듬해인 1963년에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