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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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고담룡(高湛龍)
일본식 성명
高田湧淸
이명
고응룡(高應龍)

동일(東日)
본관
제주 고씨
생몰
1915년 11월 17일 ~ 1989년 12월 5일
출생지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5년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서 고남곤(高南崑)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천공립보통학교(현 조천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이던 1931년 1월 학교 신년식 행사의 불참을 주동한 주모자로 지목되어 졸업 사정회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항일 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목포부 호남정(현 호남동)으로 이주했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중학교,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주오대학 재학 중이던 1938년 9월 초부터 1942년 5월 중순 학우 김운봉(金雲鳳)·신기현(申琪鉉)·오호림(吳浩林) 등 5명과 함께 동문회를 가장한 항일 비밀 결사인 '고문(高文)클럽'을 조직하여 비밀리에 20여차례 회합을 가지며 회원들 간에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 주오 대학 재학 당시의 비밀 결사 사건이 발각되어 1943년 체포되었다.
1944년 2월 29일 대구지검의 예심에서 공판에 회부되어 그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의 1심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육군형법 위반·해군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고, 옥중에서 해방을 맞아 곧 출옥하였다.
8.15 광복 이후 성균관대학교 교수 겸 학생과장, 국민대학교 교수 겸 교무과장 등을 지냈다. 그리고 제주도에 돌아와 오현고등학교 교감, 제주대학교 강사 및 교수 등을 지내는 등 근 10년간 교육계에 종사하였다.
1955년 9월 민주당이 창당될 때 참여하여 민주당 제주시당·제주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5대 국회 시절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에 노력하였으며, 국회내무위원회 간사 및 지방자치법개정안기초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겸하였다. 1960년 민주당 구파·신파 간의 갈등 속에서 금전왕래설을 유포하여 제명 수순을 밟았으며, 그해 12월 민주당 구파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북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임병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건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정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으며,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