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행

 

고지행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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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KBO 퓨처스 남부리그 타격왕

한화 이글스 등번호 32번
신경현(1999~2001)

고지행(2003~2003.4.25)

임재철(200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김승권(2003)

고지행(2003~2004)

김재걸(2005~2009)
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조규수(2003~2004)

고지행(2005)

조성민(2006~2007)


[image]
한화 이글스 시절. [1]
[image]
삼성 라이온즈 시절.
이름
고지행(高智行)
高山 智行(다카야마 도모유키)
생년월일
1978년 5월 3일
출신지
일본 오사카
학력
마노시마고
포지션
내야수(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 드래프트 한신 타이거즈 8순위 지명
소속팀
Grays Harber Gulls[2](1997)
한신 타이거즈(2000~2001)
한화 이글스(2003)
삼성 라이온즈(2003~2004)
한화 이글스(2005)
1. 소개
2. 선수 경력
2.1. 미국 독립리그, 한신 타이거스 시절
2.2. 한화 이글스 1기 시절
2.4. 한화 이글스 2기 시절
2.5. 이후
3. 여담
4.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전 야구선수. 재일교포 3세로 한신 타이거스,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동했다.

2. 선수 경력



2.1. 미국 독립리그, 한신 타이거스 시절


고교 졸업 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미국 독립리그에서 1년간 활동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1998년 가을 캠프 때 한신 타이거스에 테스트를 받아 합격했지만 그해 드래프트 때 지명받지 못하고 1999년 드래프트 8순위로 한신에 지명, 입단했다. 그러나 1군 출장은 못하고 2001년 말 방출되었다.
2002년 12구단 합동 트라이아웃과 미국 야구계에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모두 통과하지 못했다. 그런 고지행에게 손을 내민 건 한화 이글스.

2.2. 한화 이글스 1기 시절


2002년 말 한화 2군에 합류해 훈련하다 2003년 공식적으로 입단했다. 빠른 발[3]에 타격 재능이 뛰어나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당시 유승안 감독이 2003 시즌 주전 2루수로 점찍어둔 상태였으나, 문제는 수비에서의 집중력이 부족했고,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들과의 융화에 실패한 것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2003년 초 정규시즌이 개막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에서 더이상 뛰지 않겠다는 통보를 일방적으로 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화는 고지행을 임의탈퇴 공시하겠다고 밝혔고, 정경배 이후 마땅한 2루수가 없어 고민하던 삼성 라이온즈[4] 그런 고지행을 잡겠다고 나서며 당시 2군 감독을 역임하던 재일교포 신용균을 일본으로 급파하여 고지행을 설득하는데 성공, 2대2 트레이드(고지행+지승민↔김승권+임재철)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2.3. 삼성 라이온즈 시절


우여곡절 끝에 삼성에 둥지를 틀게 된 고지행은 곧바로 수비형 2루수였던 박정환을 벤치로 밀어버리고 주전 2루수로 기용되며 나름대로 괜찮은 활약을 보였다. 1번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루며 당시 공포의 클린업 트리오였던 이마양의 밥상을 제대로 차려주는 등 좋은 활약을 하였고, 김응룡 감독이 특히 편애하였다.[5][6]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침묵에 빠진 타선에서 그나마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팀은 당시 신생팀이나 다름없었던 SK 와이번스에게 2연패로 광속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2004 시즌에도 주전 2루수 자리를 지키는가 했지만...2004 시즌을 앞두고 골든글러브 경력이 있는 현대 박종호가 FA 자격을 얻어 삼성으로 오고, 2004 시즌 중 심야에 숙소를 이탈해 노장진과 술을 마신 것이 김응룡 감독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신용을 잃어 2004 시즌 후 삼성에서 방출되었다.

2.4. 한화 이글스 2기 시절


2004년 말에 터진 병풍 사건 때문에 내야수가 부족해진 한화에 다시 복귀했지만, 또 한화에서 문제를 일으키며 2005 시즌 후 방출되었다.

2.5. 이후


현재는 관서 지방 사회인 야구팀에서 활동하는 듯.

3. 여담


  • 박석민의 별명 중 하나인 "박속닌"을 붙여준 장본인. 박석민의 이름 '석민' 발음이 잘 안 돼 '속닌'으로 부른 것이 그 유래.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한화 이글스
4
11
.091
1
0
0
0
0
0
0
1
.091
.16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삼성 라이온즈
88
242
.289
70
9
0
4
27
38
9
21
.376
.343
2004
2
2
.000
0
0
0
0
0
0
0
0
.000
.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한화 이글스
25
65
.231
15
0
0
2
8
5
0
2
.323
.254
<color=#373a3c> KBO 통산
(4시즌)
<color=#373a3c> 119
<color=#373a3c> 320
<color=#373a3c> .269
<color=#373a3c> 86
<color=#373a3c> 9
<color=#373a3c> 0
<color=#373a3c> 6
<color=#373a3c> 35
<color=#373a3c> 43
<color=#373a3c> 9
<color=#373a3c> 24
<color=#373a3c> .353
<color=#373a3c> .318
[1] 2003년 시범경기의 모습으로, 사진 속 두산 선수는 2007년 작고한 마이크 쿨바.[2] 미국 독립리그 팀[3] 50미터를 무려 6초대에 돌파할 정도였다고 한다.[4] 당시 삼성의 주전 2루수는 박정환.[5] 김 감독은 발비노 갈베스를 비롯해 일본물 먹은 선수를 아주 좋아했었다. 사실 지금도 일본리그가 훨씬 수준이 높은데, 당시는 한일간 야구 격차가 훨씬 큰 수준이니 상위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인지라 일본파를 감독 막론하고 좋아했다.[6] 다만 시즌 초 한화에서 팀 이탈 파문을 일으켜서인지 경기 중 실책 하나만 저질러도 바로 칼같이 교체해 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