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노 갈베스
1. 괴팍한 성격
상당히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프로야구 용병 역사에서 손꼽히는 멘탈갑(부정적 의미)이다. 대만, 일본, 한국 가리지 않고 사고를 치고 다녔다(...). [11][12]
주자를 허용하면 신경질적으로 변하여 심판의 판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것이 심해서 미트를 땅바닥에 던진다든지, 혹은 공을 아무데나 던진다든지 해서[13] 벤치 클리어링 사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았다.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의 두통을 늘린 주요 원인 중 하나.[14] 심지어 상술했듯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 직구를 그대로 쎄게 던저서 흥분한 '''심판들과 벤치 클리어링'''을 하는 사건을 남기기도 했다.
주먹 실력도 상당했던 선수였다. 강타자 야마사키 타케시[15] 가 주니치 시절 갈베스에게 데드볼을 얻어맞고 마운드로 걸어올라가 기싸움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안면에 무자비한 펀치연타를 얻어맞고 본전도 못 챙긴 일도 있었다. 야마사키 타케시도 일본 선수 중에서는 꽤 터프하고 힘센 선수로 유명했지만 갈베스의 무쇠같은 주먹 앞에 그대로 당하고 말았다.
삼성에서도 그놈의 성깔 때문에 민폐를 많이 끼쳤다. 정규 시즌 때의 성적과 퍼포먼스 자체는 뛰어났지만, 역시 일본 시절부터 타고났던 성격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10승을 거둔 이후 돌연 귀국해버리는 등 그의 행보는 최악에 가까웠는데, 그 이유가 계약서에 적힌 옵션 조건이 10승이어서 딱 10승만 달성하고 그 이후로 태업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16] 그러나 나중에 김응용이 삼성 라이온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에서 김은식과 한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멘탈 문제로 속을 썩이긴 했지만 실제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은 시즌 막판에 당한 부상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응용이 10년 전의 용병에 대해 저렇게 말했다면 실드가 아니라 부상이 부진의 원인이 맞는 듯. 그리고 그 이후로 야구선수 생활을 하지 못한 걸 보면 생각보다 부상이 치명적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직 삼성 팬들에겐 시즌 막판 돌연 귀국을 한 기행과 한국시리즈 부진 때문에 태업이라는 이미지가 훨씬 강한 편이긴 하다.
삼성 시절의 대표적인 민폐 사례는 시즌 10승을 거둔 직후인 2001년 8월 20일, 모친의 병환을 이유로 고국에 돌아간 뒤 부상 등 갖가지 핑계를 대가며 '''무려 7번씩이나''' 한국 입국을 미루었던 사건.[17] 처음엔 모친의 입원수속 절차 문제로 미루다가, 마침 시의적절하게 터진 9.11 테러를 핑계로 또 미루고,[18] 이후에는 어깨에 부상이 있어 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다고 또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김재하 단장이 도미니카공화국까지 가서 수소문한 끝에 시즌이 다 끝난 10월 4일에야 입국했지만, 무려 45일이나 운동을 쉬었기 때문에 한국시리즈 전까지 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몸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는지,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 당시 포스는 죄다 사라지고 구위가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결정적인 건 4차전에서의 대량 실점. 삼성 라이온즈 입장에선 에이스라고 데려왔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뒤통수를 맞았으니... 이로 인해 삼성팬들 사이에선 최악의 용병 얘기가 나오면 톰 션, 에스마일린 카리대, 아놀드 레온과 함께 갈베스의 이름이 꼭 나온다.
한편 이렇게 제멋대로였던 갈베스에게 단단히 혼이 난(?) 삼성 프런트는, 이후 외국인 선수 영입 때 반드시 인성을 고려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9]
2. 관련 문서
[1] 대만프로야구 통산 2시즌 48경기 '''42선발 34완투''' 8완봉 26승 16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53.[2] 일본시리즈 우승은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가 활약하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차지가 된다.[3] 좋은 타격 실력을 가진 투수로도 유명한데, 투수가 한 시즌에 만루홈런을 2번 친 경우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99년의 갈베스가 유일하다.[4] 이 때 홈런을 때려낸 선수는 이 해에 데뷔한 츠보이 토모치카(坪井智哉; 現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1군 타격 코치)로 시즌 2호. 이 때 날린게 프로 통산 첫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었다고 한다(시즌 1호는 인사이드 파크 홈런).[5] 이때 갈베스를 말리던 포수 요시하라 코스케가 흥분한 갈베스의 팔꿈치에 입을 가격당해 코피를 흘리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6] 물론 명목상 발표한 금액만 20만 달러고, 갈베스가 직전 시즌 요미우리에서 연봉으로만 2억 5000만엔을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최소 150만~200만 달러는 줬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삼성이 갈베스와 2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발표하자 몇몇 팀에서 이면계약설을 주장하기도 했다.[7] 2001년 6월 28일 대전 한화전. 갈베스의 삼성 시절 최고구속은 이날 7회에 황우구를 상대로 던진 151km/h. 요미우리에서의 최고구속도 1996년의 151km/h이다.[8] 실제 나이는 이것보다 더 많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중남미 선수들의 경우 메이저리그 구단과 조금 저 좋은 조건에 계약하기 위해 나이를 낮춰서 등록하는 일이 잦았고, 거기에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행정 체계가 완전히 갖춰지지 않아 실제 생년월일과 등록상 생년월일이 다른 경우가 많고, 더 심할경우 실제 생년월일을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알폰소 소리아노와 훌리오 프랑코가 대표적인 사례.[9] 6월 16일 광주 해태전에서 완봉승(5-0)을 거뒀으며 이 과정에서 KBO 외국인투수 사상 최초로 완봉승을 기록했다.[10] 참고로 2001년 한국시리즈 4차전은 18:11로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였는데, 3회말에만 3:8로 뒤진 상황에서 갈베스, 김진웅, 박동희가 차례로 털리면서(…) 김동주의 한국시리즈 사상 2번째 만루홈런과 이후 안경현의 솔로 홈런 등 무려 '''12점'''을 뽑아내며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득점'''을 기록한 경기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사상 '''첫 선발타자 전원득점, 한 이닝 최다타석(15타석), 최다점수차 역전승''' 등 각종 한국시리즈 관련 기록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갈베스는 이러한 막장 상황을 만든 주범 중 하나인 셈.[11] 전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양자간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주먹 다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아예 격투기 시합을 방불케 하는 초대형 패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12]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는 점이 '''펠릭스 호세가 배영수를 상대로 참교육을 시전했던 경기'''(2001년 9월 18일 마산 삼성-롯데전) 당시에 갈베스는 삼성 덕아웃에 없었다. 아래에도 후술되지만 어머니의 병환 문제를 이유로 8월 20일 고국으로 돌아간 이후 귀국을 연기한 덕분에 정규시즌이 끝날 때까지 갈베스가 한국에 없었기 때문이다.[13] 주니치 시절 이종범도 한창 잘 나가던 도중, 갈베스의 빈볼에 헤드샷을 당한 적이 있다.[14]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중엔 의도적으로 일본 국내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 야구선수들의 평균 체격은 한국 선수들보다도 작은데, 아무래도 외국인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체격이 크다 보니 위협을 하기가 쉬운 편이다. 또 위협적인 행동을 해서 상대를 위축시킴과 동시에 자신의 플레이를 펼침에 있어서 지장을 받지 않기 위한 측면도 있다. 그걸 가장 잘 이용한 선수들 중 타이론 우즈가 있었다. 그리고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는 용병들의 경우 몸값이 높고 나름 수준이 있는데다 큰 선수들이 유난히 많아서 다혈질 용병이 드물지만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아예 영입한 이후 팀에서 외국인 선수에게 몸싸움 요원으로서의 역할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5] 기복이 많은 커리어였지만 어찌저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부활하여 40대의 나이에 홈런왕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인다.[16] 김은식 저, 한국프로야구 결정적 30장면 출처.[17] 옵션 조건이 10승 달성이라 해당 목표를 이루자마자 태업을 했다는 설, 포스트 시즌 출전에 따른 옵션이라는 설, 팀 동료 용병인 카를로스 바에르가와의 불화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갈베스는 같은 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에르가와는 같이 식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바에르가를 피해다닐 정도였다고 한다.[18] 당시 상황상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9.11 테러가 터진 직후 미국 영공을 비행 중인 여객기들을 강제로 착륙시켰을 정도로 미국 전역이 아비규환인 상황이었고, 테러 재발 방지를 위해 보안검색 및 미국 입출국심사 규정, 거기다 흑인, 아랍인 등 유색인종에 대한 보안검색 규정도 한층 강화되었기 때문이다.[19] 물론 이후에 인성을 고려하게 된 이유는 암묵적으로 인정받는 야마이코 나바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