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장양문록
1. 개요
작자 미상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글로 쓰인 국문소설이면서, 곽씨와 장씨 두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가문소설이기도 하다. 전 10권 10책에 달하는 장편소설이다. 깨끗한 궁체로 쓰였다.
2. 필사본
'''필사 시기가 알려진 소설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필사 소설'''
1773년(영조 49년) 봄, 정조의 여동생 청연공주(당시 20세), 청선공주(당시 18세), 궁녀 덕임(당시 21세, 훗날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 영희, 경희, 복연 등 궁중 여인 6명이 《곽장양문록》(전 10권 10책)을 필사했다.
덕임은 혜경궁 홍씨가 딸처럼 아끼는 궁녀였다. 때문에 혜경궁의 딸들인 청연공주, 청선공주와 친분이 있었고 필사를 함께 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희, 경희, 복연이라는 궁녀들[1] 도 혜경궁의 처소 궁녀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빈 성씨가 필사한 부분의 하단에는 '의빈 글시'라고 씌었다.
이 책은 본래 낙선재 혹은 규장각 소장이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교수의 호가 적힌 것으로 보아, 6.25 전쟁 전에는 서울대학교에 있었다고 추정한다. 6.25 전쟁 중에 민간에 유출되어 부산으로 흘러들어간 모양인데, 1968년 ~ 1969년에 부산의 한 고물상이 그 가치를 모르고 병풍(...)으로 쓰려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고서 수집가 홍두선이 발견하여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서울역사박물관 바로 옆에는 정조가 즉위식을 한 경희궁이 있는데, 정조의 후궁과 여동생들이 필사한 소설이 정조가 거처했던 경희궁 옆 박물관에 전시되었음이 흥미롭다.
1997년에 지연숙 교수가 이 책에 대해 연구하여 고려대 석사 논문을 썼다.# 공주들과 궁녀들[2] 을 포함해서궁중 여인 6명이 소설을 필사한 사실이 밝혀진 것은 문학사적으로 획기적인 일이라고. 관련기사
3. 의문점
1773년이면, 필사를 주도했다는 청연공주와 청선공주 모두 혼인하여 사가에서 살던 시기이다. 그런데 어떻게 궁녀들과 10책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필사했는가는 의문점으로 남는다.
4. 여담
- 정조가 직접 쓴 《어제의빈묘지명》에 의하면 1766년, 정조는 의빈 성씨에게 차였다(...). 그로부터 약 7년 뒤인 1773년, 의빈 성씨가 청연공주, 청선공주와 함께 《곽장양문록》 을 필사한 걸 보면, 정조를 차고 나서도 정조의 두 여동생들과 사이가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