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선공주

 



'''조선 장조의 왕녀
청선공주 | 淸璿公主
'''
'''조선 사도세자의 딸
청선군주 | 淸璿郡主
'''
'''출생'''
1756년(영조 32년) 윤9월
'''사망'''
1802년(순조 2년) 7월 20일
(향년 47세)
'''부왕'''
사도세자
'''모후'''
혜경궁 홍씨
'''부군'''
흥은위 정재화[1][2]
'''자녀'''
1남 2녀
(장남) 정의
(장녀) 민치성의 처
(차녀) 홍혁의 처
'''묘소'''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비룡리 산 53-1
1. 개요
2. 생애
2.1. 탄생
2.2. 아버지의 죽음
2.3. 혼인 생활
2.4. 죽음
3. 매체에서


1. 개요


조선 사도세자혜경궁 홍씨의 적차녀. 정조청연공주동복동생이다.
본래 작위는 세자의 적녀에게 주어지는 정2품 군주(郡主)였으며, 1899년(고종 36)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이 사도세자를 추존하면서 청선군주에서 청선공주로 추증되었다.

2. 생애



2.1. 탄생


1756년(영조 32) 윤9월 태어났다. 사실 청연은 세자 부부가 힘든 시기에 태어난 딸이었다. 지난해 혜경궁 홍씨의 어머니 한산부부인 이씨가 세상을 떠났는데, 《한중록》에 따르면 임신 상태에서 고기 반찬도 먹지 않고 채소로 연명하다가 몸이 상했다. 이에 영조의 명으로 홍봉한이 보약을 써서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엄청난 사고도 있었다. 혜경궁 홍씨의 임신 5~6개월경, 사도세자의 실수로 창경궁 낙선당에 불이 난 것이다. 그런데 낙선당은 원손이었던 정조가 있는 관의합과 '한 일(一)' 자로 매우 가까웠다. 이때문에 혜경궁 홍씨는 임신한 몸으로 바삐 뛰어서 잠든 자식을 구해야 했다. 게다가 영조는 일부러 불을 냈다고 생각하여 함인정에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사도세자에게 화를 냈고, 세자는 설움이 북받쳐 저승전 앞뜰 우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하마터면 청선은 유복자로 태어날 뻔 한 셈이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태도도 2년 전 태어난 청선 때와 달랐다.[3]

그해 윤9월에 내가 둘째 딸 청선을 낳으니, 경모궁께서 전 같으면 오죽 좋아하시리오마는 한번 들어와 보신 일이 없으니, 병환이 심하심을 가히 알지라.

《한중록》[4]


2.2. 아버지의 죽음


1757년(영조 33) 사도세자를 아껴준 인원왕후정성왕후가 불과 한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나마 사도세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이 일어났다.
혜경궁 홍씨와 자녀들은 모두 가마를 타고 본방[5]으로 나갔다. 이때 세손은 남여를 타고, 세손빈청연군주는 같이 가마를 탔다고 하였으므로 그녀도 가마를 타고 뒤를 따랐을 것으로 추측된다.

2.3. 혼인 생활


1766년(영조 42) 1월 25일 초간택, 1월 26일 재간택을 거쳐 2월 10일 삼간택에서 유학 정인환의 아들 정재화가 부마로 낙점받았다.[6]
정재화는 부마가 된 뒤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그
중에 정조의 세손 시절 일으킨 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766년 작은딸 청선의 남편 흥은부위(興恩副尉) 정재화가 부마가 되니, 용모와 행동이 아름다운지라. 세손이 매부를 예쁘게 보시더니, 1769년 사이 그 아이가 빗나가 별감들을 데리고 외입이 무궁하고, 세손 체면을 깎는 일도 많더라.

《한중록》[7]

당시 정재화는 궁성의 경호를 맡은 오위도총부의 총관으로 숙직을 설 때마다 세손이었던 정조를 만나서 어울렸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혜경궁에게 알린 사람이 바로 화완옹주다.
화완옹주는 "이번 잔치에 지방에서 올라온 기녀 얘기도 세손께 전하고, 잔칫날 자기가 가까이한 계집도 보시게 하고, 자기가 사귄 별감들도 소개한다"고 했는데, 이걸 보면 청선이 남편 때문에 속 꽤나 썩었을 듯.

2.4. 죽음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만난 이후로부터 의지하고 앙모하는 정이 더욱 깊었는데 어찌 오늘날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소자(小子)의 비통한 마음은 진실로 말할 것이 없지만 자궁(慈宮)의 늠철(凛綴)한 가운데의 정리(情理)는 장차 무슨 말로써 위로를 드릴 수가 있을 것인가?"

《조선왕조실록》 순조 2년 7월 20일

1790년(정조 14) 정재화가 먼저 사망하면서, 오랫동안 홀로 보냈다. 이에 혜경궁 홍씨는 "남편이 일찍 죽어 신세 그릇되니, 이는 어미 운명과 흡사하다"고 말했는데, 정조처럼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이 되고 말았다.

3. 매체에서


  • 이세영 - 1998년 MBC대왕의 길
  • 제니(BLACKPINK) - 2019년 파라다이스시티 CF[8]

[1] 본관은 연일이다. [2] 본래 흥은부위였으나 청연군주가 청연공주로 추증되면서 흥은위로 추증되었다. [3] 그동안 혜경궁 홍씨는 17세에 의소세손을 낳고 연이어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는데, 이때부터 더이상 임신 소식이 없다. 인원왕후와 정성왕후의 삼년상 때문일 수도 있으나 은전군청근옹주를 생각한다면(...) [4]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5] 혜경궁의 친정집이다. [6] 정재화는 송강 정철의 6대손이다. [7]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8] 여기서 고증오류가 있다. 청선공주는 1662년 정재화와 혼인하였는데 1771년이 배경임에도 머리를 올리지 않았고 당시에는 공주라고 불리지 않았지만 공주라고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