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족예술단
한자: 國立民族藝術團
영어: State National Art Troupe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북한의 종합예술단. 명칭대로 민족예술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다.
직계 모체는 1947년 창단된 평양예술단으로, 1년 전 창단된 북조선가극단(현 피바다가극단)이 서양식 가극(오페라)을 위주로 활동하던데 반해, 이 단체는 북한 지방 출신 혹은 남쪽에서 좌익 탄압을 피해 월북한 판소리 명창들이나 전통악기 명인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다. 공연 곡목도 주로 민요나 민요풍 노래 혹은 기악 작품, 심청전이나 장화홍련전 등 고전 소설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극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김정일이 북한 문화예술계 지도자로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뒤인 1972년에 평양예술극단으로 개칭되었는데, 피바다가극단의 선례를 따라 '밀림아 이야기하라' 와 '금강산의 노래' 를 마찬가지로 혁명가극으로 각색해 상연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두 작품은 이후 5대 혁명가극[1] 반열에 들어 상설 상연작이 되었다.
1973년에는 혁명가극 창작과 상연에 대한 공로로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2년 뒤에는 다시 모란봉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혁명가극 위주의 공연 형태에서 탈피해 민족가극을 표방했고, 1987년 평양예술단으로 재차 개칭된 뒤 1988년에 첫 민족가극 작품인 춘향전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혁명가극의 뒤를 잇는 새로운 형태의 가극으로 북한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고, 이듬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과 1991년 창단 이래 최초로 일본에 순회 공연을 갔을 때도 상연되었다.
1992년에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최종 개칭된 뒤에도 계속 심청전과 박씨부인전 등 후속 민족가극이 창작/공연되었지만, 혁명가극보다 약빨이 딸렸는지 얼마 가지 않아 버로우하고 1997년에 민속무용조곡 '평양성 사람들' 을 발표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예술단체에 비하면 주목받는 정도가 좀 덜한 편이다.
남한 음악학자 노동은이 1990년과 1998년 두 차례 정부의 승인을 받아 방북했을 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 예술단 중 가장 단원 수가 많은 단체였다고 한다. 총 480여 명이었다고 하는데, 물론 여기에는 독창자, 독주자,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기악중주단, 연출가, 작곡가, 지휘자, 창작가, 의상 담당, 무대 기술 담당 등 종합 공연에 필요한 모든 인원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주요 상연작은 민요 독창/중창이나 민족기악 독주/중주, 민족무용, 가야금병창에서부터 위에 언급한 민족가극이나 민속무용조곡 같은 대규모 작품까지 아우르고 있다.
민족예술 상연을 주로 한다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가 민족보다는 당과 최고 지도자 등 높으신 분들의 의향과 취향에 따라가는 나라라서 그 영향을 받을래야 안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민요 혹은 거기에 기초한 작품이라도 가사에서 혹부리우스와 뽀그리우스에 대한 진한 후빨을 느낄 수 있다던가, 고전 작품을 가극 등으로 각색할 때 신분제의 폐단 등을 비판하는 장면이 많아진다던가 하는 등의 정치사상 노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초기에 이 단체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많은 전통예술인들이 한국전쟁 후 김일성의 주도로 진행된 판소리의 발성법 비판이나 전통악기의 기술적 한계 극복을 위한 개량 사업에 반대 혹은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했다가 숙청 혹은 실각당했기 때문에, 단체의 이름답잖게 민족예술의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
실제로 이 단체에는 민요 가수나 민족악기 연주자 외에 서양악기 연주자나 서양식 발성을 쓰는 성악가들도 많이 소속되어 있으며, 혁명가극이나 민족가극, 민속무용조곡 등 무대 작품의 공연 때 반주하는 관현악단의 경우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혼합 편성하는 배합관현악 체제를 취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언론에서 언급되는 비중이 줄어들어 안습이지만, 한창 잘 나가던 1970~80년대 리즈시절에는 중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정기적으로 공연도 나가고 했었다. 민족가극으로 각색된 춘향전만 해도 원작이 원작인지라 북한 정권과 지도자에 대한 후빨이 없어서 남한에서도 꽤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남한에서 창작된 춘향전 기반 창극이나 오페라, 뮤지컬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상주 공연장은 봉화예술극장으로, 2011년 여름에 리모델링 공사가 완공되었다. 이외에도 청년중앙회관이나 평양 시내 여타 공연 시설을 빌려 공연하기도 하고, 기업소나 공장, 농촌 등에서 진행하는 경제선동 공연도 종종 하고 있다.
영어: State National Art Troupe of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북한의 종합예술단. 명칭대로 민족예술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다.
1. 약력
직계 모체는 1947년 창단된 평양예술단으로, 1년 전 창단된 북조선가극단(현 피바다가극단)이 서양식 가극(오페라)을 위주로 활동하던데 반해, 이 단체는 북한 지방 출신 혹은 남쪽에서 좌익 탄압을 피해 월북한 판소리 명창들이나 전통악기 명인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다. 공연 곡목도 주로 민요나 민요풍 노래 혹은 기악 작품, 심청전이나 장화홍련전 등 고전 소설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창극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김정일이 북한 문화예술계 지도자로서 정치 활동을 시작한 뒤인 1972년에 평양예술극단으로 개칭되었는데, 피바다가극단의 선례를 따라 '밀림아 이야기하라' 와 '금강산의 노래' 를 마찬가지로 혁명가극으로 각색해 상연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두 작품은 이후 5대 혁명가극[1] 반열에 들어 상설 상연작이 되었다.
1973년에는 혁명가극 창작과 상연에 대한 공로로 북한 최고의 훈장인 김일성훈장을 받았고, 2년 뒤에는 다시 모란봉예술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0년대 후반 들어서는 혁명가극 위주의 공연 형태에서 탈피해 민족가극을 표방했고, 1987년 평양예술단으로 재차 개칭된 뒤 1988년에 첫 민족가극 작품인 춘향전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혁명가극의 뒤를 잇는 새로운 형태의 가극으로 북한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선전되었고, 이듬해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과 1991년 창단 이래 최초로 일본에 순회 공연을 갔을 때도 상연되었다.
1992년에 국립민족예술단으로 최종 개칭된 뒤에도 계속 심청전과 박씨부인전 등 후속 민족가극이 창작/공연되었지만, 혁명가극보다 약빨이 딸렸는지 얼마 가지 않아 버로우하고 1997년에 민속무용조곡 '평양성 사람들' 을 발표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다른 예술단체에 비하면 주목받는 정도가 좀 덜한 편이다.
2. 편성과 활동 양상
남한 음악학자 노동은이 1990년과 1998년 두 차례 정부의 승인을 받아 방북했을 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 예술단 중 가장 단원 수가 많은 단체였다고 한다. 총 480여 명이었다고 하는데, 물론 여기에는 독창자, 독주자,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기악중주단, 연출가, 작곡가, 지휘자, 창작가, 의상 담당, 무대 기술 담당 등 종합 공연에 필요한 모든 인원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주요 상연작은 민요 독창/중창이나 민족기악 독주/중주, 민족무용, 가야금병창에서부터 위에 언급한 민족가극이나 민속무용조곡 같은 대규모 작품까지 아우르고 있다.
민족예술 상연을 주로 한다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라는 나라가 민족보다는 당과 최고 지도자 등 높으신 분들의 의향과 취향에 따라가는 나라라서 그 영향을 받을래야 안받을 수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민요 혹은 거기에 기초한 작품이라도 가사에서 혹부리우스와 뽀그리우스에 대한 진한 후빨을 느낄 수 있다던가, 고전 작품을 가극 등으로 각색할 때 신분제의 폐단 등을 비판하는 장면이 많아진다던가 하는 등의 정치사상 노선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초기에 이 단체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많은 전통예술인들이 한국전쟁 후 김일성의 주도로 진행된 판소리의 발성법 비판이나 전통악기의 기술적 한계 극복을 위한 개량 사업에 반대 혹은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했다가 숙청 혹은 실각당했기 때문에, 단체의 이름답잖게 민족예술의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
실제로 이 단체에는 민요 가수나 민족악기 연주자 외에 서양악기 연주자나 서양식 발성을 쓰는 성악가들도 많이 소속되어 있으며, 혁명가극이나 민족가극, 민속무용조곡 등 무대 작품의 공연 때 반주하는 관현악단의 경우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혼합 편성하는 배합관현악 체제를 취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로 로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언론에서 언급되는 비중이 줄어들어 안습이지만, 한창 잘 나가던 1970~80년대 리즈시절에는 중국을 비롯한 우방국에 정기적으로 공연도 나가고 했었다. 민족가극으로 각색된 춘향전만 해도 원작이 원작인지라 북한 정권과 지도자에 대한 후빨이 없어서 남한에서도 꽤 관심을 가졌고, 심지어 남한에서 창작된 춘향전 기반 창극이나 오페라, 뮤지컬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녔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상주 공연장은 봉화예술극장으로, 2011년 여름에 리모델링 공사가 완공되었다. 이외에도 청년중앙회관이나 평양 시내 여타 공연 시설을 빌려 공연하기도 하고, 기업소나 공장, 농촌 등에서 진행하는 경제선동 공연도 종종 하고 있다.
[1] 발표 순서대로 피바다, 당의 참된 딸,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 다섯 작품을 꼽는다. 이외에 함경남도예술단에서 집단 창작한 '한 자위단원의 운명' 을 추가로 넣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