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

 



金慶漢
1944년 2월 5일[1] ~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2]다.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모세이다.

2. 생애


1944년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오천리 군자마을(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3]#에서 아버지 김정구(金鼎九)와 어머니 옥천 전씨 전주희(全胄姬)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1970년 제1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현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 대한민국 법무부 교정국장(현 교정본부장), 법무부 차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지냈다. 2002년부터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8년 2월부터 2009년까지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3. 여담


  • 김근태의 저서 「남영동」일화중에 등장한다.
김경한(당시 공안연구소장 검사)은 김근태가 "남영동에 있을때 변호인접견이나 조력을 요청하지 않았고 고문받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김근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뻔뻔한 거짓말 중에 그래도 꼭 하나 사실과 맞는 이야기가 있다."라면서 자신이 변호인의 접견이나 조력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약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하면서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했더라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한심한 작자'라고 구박 받으면서 한 차례 더 전기, 물 고문을 당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1] 광산 김씨 족보에는 1943년 2월 6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양간공파-밀직부사공파. 예안파 18세.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시조 37세이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image][3] 본래 광산 김씨 집성촌이었으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었다. 독립유공자 김남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