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0m 우승자'''
[image]

[image] 보프 더 용
(2006)

[image] '''이승훈
(2010)'''

[image] 요리트 베르스마
(2014)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우승자'''
[image]

[image] '''이승훈
(2018)'''




[image]
'''이름'''
이승훈(李承勳, Lee Seunghoon)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8년 3월 6일(36세), 서울특별시
'''학력'''
리라초등학교
신목중학교
신목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종목'''
스피드 스케이팅[image]
'''주종목'''
매스스타트, 팀추월, 5000m, 10000m
'''소속'''
대한항공
'''소속사'''
브라보앤뉴
'''신체'''
177cm, 70kg
'''종교'''
개신교(성결교)[1]
'''가족'''
부모님, 누나, 아내[2]
'''링크'''

1. 소개
2. 선수 경력
2.1.1. 2006-07 시즌
2.1.2. 2007-08 시즌
2.1.3. 2008-09 시즌
2.1.4. 2009-10 시즌
2.2.1. 2009-10 시즌
2.2.2. 2010-11 시즌
2.2.3. 2011-12 시즌
2.2.4. 2012-13 시즌
2.2.5. 2013-14 시즌
2.2.6. 2014-15 시즌
2.2.7. 2015-16 시즌
2.2.8. 2016-17 시즌
2.2.9. 2017-18 시즌
2.2.10. 2018-19 시즌
2.2.11. 2020-21 시즌
3. 논란
4. 수상 기록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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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자 前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을 한 이후 한국 스피드 스케이트 사상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바른 생활의 이미지로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후배 폭행 사건으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2. 선수 경력



2.1.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경력


[image]
어릴 때는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으나, 신목중고교 시절 때 쇼트트랙으로 전향했다. 즉, 스피드 스케이팅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셈이다.

2.1.1. 2006-07 시즌


항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가 2007 토리노 동계 유니버시아드[3]에서 1000m와 1500m에서 은메달, 계주 금메달을 따내며 상승세를 탔고, 2007-08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이호석송경택의 팀플레이로 또 한번 탈락의 위기를 맞았으나 4위를 하며 계주 멤버로 선발되었다.[4] 하지만 당시에는 안현수, 이호석의 장벽이 너무 높았고, 송경택, 성시백을 비롯해 쟁쟁한 경쟁자들 때문에 밀리는 감이 많았다. 더군다나 신예 곽윤기가 월드컵에서 나이에 맞지 않는 활약을 보이며 그가 공기화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2.1.2. 2007-08 시즌


그런데 안현수2008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중부상을 당하고 시즌아웃되어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하게 된다. 본 대회에서 3000m와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사실 이승훈의 활약이 상당히 미미했던 대회였다. 3000m 슈퍼파이널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이승훈 본인이 다른 개인전 종목에서 제대로 죽을 쒔으므로 종합 3위에도 들어보지 못하고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종합우승을 내준 이호석이 까이느라 이승훈은 거의 관심 밖이었다.

2.1.3. 2008-09 시즌


2008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2008-09 시즌에 열린 2009 하얼빈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국가대표로 출전해 1,000m, 1,500m, 3,000m 금메달을 휩쓸어 3관왕을 차지했다. 물론 정상급 선수들한테 유니버시아드에서 3관왕을 하는 게 그렇게 대단한 업적은 아니어서 그냥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서서히 자신의 기량을 계속해서 끌어올리게 위해 출전한 대회이다.

2.1.4. 2009-10 시즌


하지만 2009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5]에서 탈락하며 쇼트트랙 선수로는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진출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유니버시아드 3관왕을 차지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재능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어느 한 가지에 특출나거나 아주 뛰어난 쇼트트랙 선수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무릎팍도사에서 꽤나 실력이 있는 선수였는데 안타깝게 불운으로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탈락한 것으로 잘 포장이 되었지만 사실 그 당시 한국 쇼트트랙의 흐름상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던 성시백곽윤기는 물론 나중에 들어오게 될 이정수나 탑급은 아니지만 실력이 실제보다 과소평가받는 송경택에게도 밀릴 게 뻔했다.[6]
스케이팅 스타일은 강한 체력과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이정수나 노진규의 스타일과 비슷했다.

2.2.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경력


[image]
쇼트트랙 대표팀 탈락 후 본업이었던 롱 트랙으로 돌아왔다. 쇼트트랙 선수였을 때에도 강점을 보인 장거리에 도전하여 쇼트트랙 대표팀에 탈락한 지 불과 6개월 만인 2009년 10월 롱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다. 뒤이어 11월 월드컵 2차대회에서 5,000m 6분 28초 49로 한국신기록을 경신했으며 이후 두 번 더 대한민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5,000m 개인기록이자 한국 신기록은 6분 14초 67이었다.[7] 무서운 기세로 5,000m 기록을 줄여나가서 올림픽이 기대되는 유망주라고 간혹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2.2.1. 2009-10 시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5,000m에서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무리 유망주라고 기사가 나오긴 했어도, 평소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에서 메달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남자 500m의 이강석, 이규혁이나 여자 500m의 이상화 정도가 메달후보라고 생각했지.. 당시 코치나 '''본인'''조차도 5,000m 목표는 5위 안에 드는 것이라고 할 정도.
이 때 그는 밥 데용 선수와 레이스를 시작할 때 무서운 페이스를 보여주면서 주도적으로 레이스를 이끌었고, 결국 6분 16초 95의 기록으로 '''아시아 남자부 스피드 스케이팅 최초로''' 장거리 종목 은메달을 수상하는데 성공했다.[8] 이 은메달은 밴쿠버에서 대한민국이 획득한 첫번째 메달이 되었다. 여담으로, 당연히 기존의 강자들이 5,000m 시상대를 휩쓸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신들이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이승훈이 은메달의 주인공이 되자, 한국기자들에게 "한국에서는 저 선수의 메달을 예상하고 있었나요?"라고 질문할 정도로 놀라움을 표했다고 한다.
[image]
'''10,000m는 더 드라마틱했다.''' 2009년 12월 국내대회인 빙상선수권대회에서 14분 01초 64를 기록한 이후, 이듬해 1월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13분 21초 04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우더니, 또 그 다음 달 펼쳐진 올림픽에서는 최강자인 네덜란드스벤 크라머가 실격당하는 운이 겹치면서[9] 12분 58초 55로 올림픽 신기록까지 바꿔버리면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게다가 같이 경기를 펼친 네덜란드의 반 더 키에프 선수를 마지막 코너에서 한 바퀴 차를 내며 제치는(!!) 퍼포먼스[10][11] 전체경기영상를 선보이며 '''10,000m 공식대회 단 3번째 출전에 올림픽 금메달.''' 상단 사진에서 3위를 기록한 네덜란드보프 더 용[12]과 함께 시상식에서 저런 포즈를 취했다.
비록 코스 착각 때문에 메달을 뺏기긴 했지만 스벤 크라머도 5,000m 경기를 본 뒤에 '5,000m 하던 대로만 한다면 은메달을 땄었을 것'이라고 예측했을 정도다. 다음 달 19일에 열리는 2010 월드올어라운드챔피언십에 이승훈 선수가 나간다면 올림픽에서 대결한 지 3주 뒤에 리벤지 매치가 확정이 되는 것인데, 체력문제를 이유로 올해는 올림픽을 끝으로 시즌 종료를 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플라워 세리머니에서 은메달리스트 스콥레프와 동메달리스트 보프 더 용은 이승훈을 들어올리면서 새로운 강자의 탄생을 축하했다.(위 사진) 메달리스트 모두가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띄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훈훈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같은 나라 선수들도 아니고 서로 다른 나라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올림픽 화합의 정신에 들어맞는 명장면이었다.[13]
1988년생으로 아직 나이가 어리며(빠른 1989년생인 모태범, 이상화와 한체대 동기이자 친구), 무서운 성장속도[14]를 보여주고 있어 앞으로의 미래도 매우 밝다.
5,000m 은메달 수상 이후에도 쇼트트랙 국가대표에 대한 열망을 내비치는 등 대단한 도전정신의 소유자. 실제로 라트비아에서는 스피드 장거리와 쇼트트랙을 병행해서 하는 선수도 있는 만큼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의견도 있지만, 위 쇼트트랙 선수 시절 서술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탑급 선수는 절대 아니었고, 성시백, 곽윤기, 이정수과 비교했을 때 실력적에서 이미 밀린다.[15] 그렇다 하더라도 쇼트트랙 국가대표 탈락 후에도 스케이팅을 포기하지 않은 의지와 새로운 종목에 도전해서 올림픽 메달 2개라는 최고의 성과를 거둔 성공신화는 앞으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듯하다.
빙상 계열 선수로는 최초로 무릎팍도사에 출연이 확정되어 쇼트트랙->스피드의 전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소개되었다.

2.2.2. 2010-11 시즌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5,000m와 10,0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홈의 이점을 앞세운 드미트리 바벤코를 아시아 스피드스케이팅 무대의 콩라인으로 등극시켰다. 물론 매스스타트에서도 막판 질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 장거리 무대에서는 이제 독재자가 될 듯하다. -- 그 뒤 모태범과 함께 새로 창단한 대한항공 빙상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2.2.3. 2011-12 시즌


그러나 훈련 방식을 바꾼 것이 독이 되어 훈련량이 부족해지고, 무릎 부상이 겹치면서 2012년 들어서부터는 부진을 거듭했다. 이 시즌은 이승훈에게 최악의 시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쇼트트랙 훈련비중을 줄였는데, 그게 오히려 부작용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스케이트 구두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에게는 구두와 날도 아주 중요하다.

2.2.4. 2012-13 시즌


다행히 2013년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0,000m 4위를 차지하면서 회복하는 추세이다. 여기에 팀 추발 같은 단체 종목에서는 아직도 한국의 에이스급 선수다.

2.2.5. 2013-14 시즌


월드컵 5,000m와 10,000m 종목에서는 스벤 크라머와 요리트 베르흐스마와 같은 네덜란드 선수들이 상위권을 독점하지만, 그 속에서 메달을 항상 따내면서 기량을 많이 회복했다. 팀 추발 부문에서는 단연 한국팀의 에이스의 역할을 맡았다. 김철민, 주형준과 팀을 구성하여 출전하는 팀 추발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전까지 열린 월드컵 3개 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전 대회 메달을 따면서 네덜란드에 이은 포인트 2위를 기록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5,000m에서는 6분 25초 61이라는 부진한 기록으로 12위에 머무르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 다음날 이승훈은 인터뷰에서 "현지 적응에 문제가 있었다, 내 불찰이다"라며 아쉬운 심경을 밝혔다. 경기 대기를 하면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얼굴이었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화면에 비쳐졌는데 심적 부담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자랑스럽기만 한데 뭐가 죄송하냐는 반응이다. 기자들도 이승훈의 노력을 인정하여 가십성 기사는 삼가고 있다.
그리고 절치부심을 한 덕분에 2월 18일에 벌어진 10,000m 경기에서는 마지막 조인 7조로 스벤 크라머와 함께 출전해서 4위를 기록했다. 6조로 출진한 네덜란드의 베르흐스마가 세계기록에 가까운 올림픽기록을 세우며 들어오자 스벤 크라머가 초반에 페이스를 빨리 가져갔는데 이 탓에 페이스가 살짝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금은동은 또다시 네덜란드 가 싹쓸이했다. 그러자 웹상에서는 모태범에 이어서 이승훈에게까지 지구 최강 드립을 열심히 시전하고 있는 중. 게다가 10,000m 출전 선수 중 유일한 동양계 선수이기도 했다. 5,000m 컨디션 난조는 아쉽지만,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두 종목 은메달리스트 인 드미트리 바벤코의 성적[16]과 비교해보아도 이승훈의 성적은 대단하다. 그리고 바벤코는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다.
그리고 마침내, 이후에 벌어진 팀 추월 경기에서 병역브로커 다운 모습을 보이며 김철민, 주형준과 함께 출전하여 8강에서 러시아, 그리고 4강에서 디펜딩 챔피언 캐나다[17]를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 결승에서 네덜란드에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종목은 제일 앞서 타는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체력이 가장 많이 소모되며 앞에서 잘 끌어줘야 기록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로 이승훈이 앞에서 이끌며 기록을 단축시켰다.[18]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5.000m와 4위로 아슬아슬하게 동메달을 놓친 10,000m의 아쉬움을 만회할 만한 성과이며 후배들의 군 면제를 이끌어낸 것은 덤이다.

2.2.6. 2014-15 시즌


2014년 11월 14일 일본 오비히로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5,000m에서 9위를 기록했다. 동계올림픽 때도 그렇고 5,000m에서 계속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다. 그래도 11월 15일 팀추월에서 다시 한 번 은메달을 획득하며, 새로운 전략 종목으로 입지를 다졌다. 게다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이 되는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전략 종목을 넓히고 있다.
11월 23일 2차 월드컵에서 10,000m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3차 월드컵에서 팀추월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리고 매스 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다시 한 번 따냈다. 2014년 마지막 월드컵인 네덜란드 헤렌벤 4차 월드컵에서 5,000m 13위를 차지했다. 소치 동계 올림픽 이후로 점점 장거리 부문 메달권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5,000m 10위로 많이 밀려났다. 딱히 이승훈을 이을 선수가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려된다. 대신 매스 스타트에서 은메달, 팀 추월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2.2.7. 2015-16 시즌


2015년 첫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인 5차 노르웨이 월드컵에서 매스 스타트 금메달을 다시 획득했다. 그리고 2016년 러시아 콜롬나에서 열린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2.8. 2016-17 시즌


2016년 11월 13일 열린 2016-17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1차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10위권 밖으로 처지다가 막판 스퍼트로 1위로 들어오며 다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17년 2월 10일 강릉 빙속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다. 1년 후 평창 올림픽 모의고사로 생각되며 전략종목인 매스스타트 활약이 기대되었었는데... 팀추월 경기 도중 넘어져 정강이를 베이며 8바늘 꿰맸고, 이후 경기들을 모두 기권했다. 기대를 모은 만큼 아쉬운 상황. 다행히 큰 부상까지는 아니었지만, 이후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도 경기력에 지장이 갈 것으로 보였다.
2017년 2월 20일, '''부상을 이겨내고 아시안게임 5,0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6분 24초 32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1년 자신이 세웠던 아시안게임에서 세웠던 기록을 앞당긴 '''아시안게임 신기록'''이다. 또한 10,000m에서도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에 이어 또 한 번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10,000m 경기와 같은 날 열린 팀 추월에서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예상대로 경기 중후반에 선두로 팀을 이끌며 에이스의 면모를 과시했다. 결승선 직전 카자흐스탄 선수들을 따라잡고 바깥으로 홀로 치고 나가는 모습은 압권.[19] 2월 23일 매스 스타트 경기마저 막판 스퍼트를 통해 1위로 골인, 금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안게임 금메달 7개로 한국 선수 역대 최다 금메달기록을 수립했다.[20] [21]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3월 12일 노르웨이에서 열린 월드컵 시리즈에서 막판 스퍼트로 매스스타트 금메달을 획득했다. 또한 이 시즌 매스스타트 월드컵 랭킹 1위까지 차지했다.

2.2.9. 2017-18 시즌


2017년 11월 11일 네덜란드 헤이렌베인에서 열린 2017-18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1차 매스 스타트 종목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2018년 2월 11일에 있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5,000m 종목에서 6분 14초 15라는 자신의 올림픽 최고기록을 작성하여 5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15일에 있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10,000m 종목에서 '''12분 55초 54'''로 기존 1등보다 '''4초'''가량 단축시켰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10바퀴 전만 해도 선두와 '''10초''' 차이로 3~4위에 위치했었는데. 남은 바퀴 수가 줄어들수록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22] 이 경기로 이승훈은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그러나 경기 직후 바로 다음 조의 요리트 베르스마가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면서 1위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뒤에 테드 얀 블루먼은 요리트 베르스마가 세운 '''올림픽 신기록을 또 다시 2초 가량 갱신해버렸다'''.[23] 물론 이 둘이 세운 기록은 '''올림픽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대기록'''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리고 테드 얀 블루먼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테드 얀 브루먼과 함께 레이스를 벌였던 니콜라 두몰레로 역시 좋은 레이스를 펼쳐서 이승훈 선수보다 1초 빨리 들어와서 아쉽게도 4위까지 떨어지면서 메달을 따는 데에는 실패했다. 벤쿠버 동계올림픽 때부터 라이벌 기믹이 붙었던 스벤 크라머는 자신의 앞순번에서 올림픽 신기록이 2번이나 연속해서 갈아치워진 것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5,000m를 넘은 후부터는 한 바퀴 랩타임이 31~32초대까지 떨어지는 등 그답지 않은 레이스를 펼쳤고, 결국 이승훈보다 못한 13분대의 기록과 6위의 성적을 받게 되었다.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는 김민석, 정재원을 잘 끌어가면서 팀의 결승을 이끌었다. 특히나 여자 팀 추월 경기는 남자 팀과 달리 불협화음을 제대로 일으키며 최악의 성적과 논란을 일으킨 만큼, 남자 팀의 선전이 더욱 돋보였다. 다시 결승에 올라 금메달을 노렸으나, 상대는 그 네덜란드를 제치고 올라온 노르웨이었고 결승에서 패배해 2연속 은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올림픽 매스스타트 종목 남자부의 초대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정재원이 레이스 중반부 10바퀴가 남은 시점부터 4바퀴가 남을 때까지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하며 이승훈의 페이스메이킹에 큰 도움을 줬다. 그는 금메달이 확정된 후 정재원의 팔을 들어올려주며 치켜 올려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다만, 이 전략 때문에 특정선수 몰아주기 논란이 약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이승훈이 라디오스타에서 유럽 쪽은 아예 유럽 연합으로 전략을 펼친다고 하면서, 개인전이지만 팀 전략이 매우 중요한 경기라고 말하면서 논란을 해명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퇴하겠다는 인터뷰를 했었지만, 훈련을 하면서 점점 회복했고 평창에서 10,000m 경기를 치른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노리겠다고 밝혔다. 다만,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면 한국나이로는 35세, 만 나이로는 33세다. 운동선수 치고는 상당히 나이가 있다보니 향후 정말로 출전할지는 미지수인 부분이다.

2.2.10. 2018-19 시즌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클럽인 AB 바크베르크(Vakwerk)에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개월동안 스케이트 마라톤을 뛴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번에 열릴 2018/19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 불참했고, 이번시즌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2019년 7월 9일, 후배 폭행사건으로 인해 1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나이를 생각하면 사실상 은퇴처분이다. 하지만 영구 자격정지나 연금 박탈이 아닌 단기 자격정지이므로 향후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에 제약을 받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어났다.

2.2.11. 2020-21 시즌


징계 기간이 종료되자 유튜브를 통해 사과하고 복귀를 선언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2년 9개월 만에 국내대회인 회장배 전국남녀 5000m에 참여해 6분 53초 28로 4위에 올랐다. 그 동안 국내에선 장거리 강자였지만, 징계 여파와 나이를 무시할 수 없는지 순위권에서 밀려났다.

3. 논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노선영에 의해 한국체육대학교 출신 선수들인 이승훈, 정재원[24], 김보름이 선수촌 밖에서 별도훈련이라는 특혜를 받고 있다고 지목당했다. 이에 이승훈은 상당히 격한 어조로 억울함을 표했다. 하지만 노선영의 인터뷰를 먼저 본 대중들은 이미 이승훈을 적폐로 인식하며 비난을 가했다. 사실 노선영이 '특혜'라고 주장한 별도훈련의 실상은 쇼트트랙과 유사한 종목인 매스 스타트 출전 선수들이 한체대 내 쇼트트랙 링크를 사용하기 위해 한체대에서 훈련을 했던 것이고, 이 때문에 선수촌에서 훈련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일 10만 원의 훈련수당을 포기해야 했다. 이승훈은 올림픽을 마친 후 노선영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사과했다.
2018년 4월 7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현 빙상연맹 전명규 부회장의 특혜를 받았다고 방송이 나가면서 다시 논란이 번질 조짐이 보인다. 이어서 후배 선수 폭행 논란에 휩싸였다. 대회기간인 2011년과 2013년, 2016년 후배 2명이 숙소, 식당 등에서 이승훈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차례동안 후배들에게 폭행과 기합을 일삼았고, 2016년 스피드스케이팅 4차 월드컵전이 열린 네덜란드에서는 식당에서 밥풀이 튀었다는 이유로 후배 선수의 머리를 내리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승훈 본인은 폭행이 아니라 가벼운 훈계 정도라 주장하고 있으며 당혹스럽다고 한다. 관계자 측은 사실관계 확인중이라 밝혔고, 선수 본인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이다. 후배 폭행에 관련된 것은 전명규 특혜 건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선수 생명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결국 1년 자격정지 처분이 되었다. 재심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어서 1년 자격정지 처분이 확정되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대중들에게도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지 오래. 팬들도 이때 사건을 이후로 등을 돌렸으며, 팬 사이트에도 이때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징계 기간이 끝나자마자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사과영상을 올렸다. 그러나 댓글들도 폭행 당시엔 아무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무슨 사과냐', '유튜브 개설 자체도 양심도 없다', '더 이상 보기 싫다' 등등 싸늘한 반응이 대부분이다. 유튜브 개설도 기사화 되었으나 그마저도 대중들은 전혀 관심이 없는게 현실이다.
국내대회에 복귀 직후 한 인터뷰에서 그 당시 피해자 후배들과 잘 지내고, 본인의 징계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4. 수상 기록


'''스피드 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
2010 밴쿠버
10000m
금메달
2018 평창
매스스타트[25]
은메달
2010 밴쿠버
5000m
은메달
2014 소치
팀추월
은메달
2018 평창
팀추월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6 콜룸나
매스스타트
은메달
2011 인첼
5000m
은메달
2013 소치
팀추월
동메달
2015 헤이렌베인
팀추월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매스스타트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5000m
금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10000m
금메달
2017 삿포로
팀추월
금메달
2017 삿포로
매스스타트
금메달
2017 삿포로
5000m
금메달
2017 삿포로
10000m
은메달
2011 아스타나·알마티
팀추월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0 홋카이도
종합
금메달
2010 홋카이도
1500m
금메달
2010 홋카이도
5000m
금메달
2010 홋카이도
10000m
금메달
2011 하얼빈
종합
금메달
2011 하얼빈
1500m
금메달
2011 하얼빈
5000m
금메달
2011 하얼빈
10000m
금메달
2012 아스타나
종합
금메달
2012 아스타나
1500m
금메달
2012 아스타나
5000m
금메달
2012 아스타나
10000m
금메달
2013 창춘
종합
금메달
2013 창춘
1500m
금메달
2013 창춘
5000m
금메달
2013 창춘
100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8 강릉
5000m 계주
금메달
2008 강릉
3000m S.F
은메달
2005 베이징
5000m 계주
동메달
2005 베이징
1500m
동메달
2005 베이징
3000m S.F
세계 팀선수권
은메달
2005 춘천
단체전
동메달
2008 하얼빈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7 토리노
5000m 계주
금메달
2009 하얼빈
1000m
금메달
2009 하얼빈
1500m
금메달
2009 하얼빈
3000m
은메달
2007 토리노
1000m
은메달
2007 토리노
3000m
동메달
2009 하얼빈
5000m 계주
동메달
2009 하얼빈
1500m

5. 기타


  • 스피드 스케이팅 역사상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을 보유하고 있다.
  • 이승훈과 비슷한 케이스 중에 아예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병행하는 이도 있다. 네덜란드요리엔 테르 모르스가 대표적인 사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양종목 모두 출전, 쇼트트랙에서는 1,500m 결승까지 올라 4위에 입상했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선 1,500m와 팀추월 (6바퀴)에서 각각 올림픽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특히 팀추월에서는 8강, 4강, 결승에서 매번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는 충공깽한 위엄을 과시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는 쇼트트랙에만 출전했으나 입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선수는 2018 평창 올림픽에서 뜬금없이 디펜딩 챔피언임에도 롱트랙 1,500m를 버리고 1,000m로 옮겨 금메달을 따내 고다이라 나오의 2관왕을 저지하더니,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네덜란드가 결선(파이널 A)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파이널 B 1위를 기록한 뒤 파이널 A의 중국 캐나다 2팀의 실격으로 동메달을 따내면서 기어이 양쪽 메달을 따냈다.
  •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후에도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고 싶어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로 대단한 성공을 한 뒤였음에도 쇼트트랙에 대한 상당한 미련이 있었던 모양이다.
  •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5,000m와 10,000m 종목은 그 시점에서 본인의 주종목이 아닌데도[26] "내가 아니면 국내 장거리 종목의 계보가 끊긴다."라는 책임감으로 출전했다고 한다. 언론에서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 말미에 "나를 넘어서는 후배가 나오길 바라고, 그런 후배가 있다면 스케이트를 벗겠다." 는 말을 항상 덧붙이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 이승훈 아니면 장거리를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실 아시아 전역을 다 털어도 이승훈 정도 되는 장거리 선수는 없을 정도로 아시아인에게 빙속 장거리는 굉장히 힘든 종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타고난 피지컬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승훈이 동양인임에도 장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별종급이다. 이승훈이 세계대회에 나가면 아시아 선수들 전부, 심지어 일본 선수들마저 응원할 정도다! 그래서 훈련을 같이 할 파트너가 없어서 힘들다고 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혼자서 온갖 훈련법을 시도하면서 운동하다가 2017년 여름이 되어서야 평창 올림픽을 대비한 장거리 전문 코치로 보프 더 용 코치가 선임되었다.
  •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명단을 봐도 1,500m까지는 선수들이 좀 나오는데[27]그보다 긴 장거리 종목에는 정말 이승훈 뿐이다. 그래도 다행히 팀 추월 종목에서 같이 은메달을 따낸 정재원 선수가 장거리 유망주로 각광을 받는 중이다. 그리고 이승훈은 책임감으로 출전한 두 종목에서 각각 5위와 4위를 기록하며 여전한 기량과 클래스를 입증했다.[28]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승훈의 주종목이 아니다.
  • 스피드 스케이팅 장거리 종목의 1인자인 스벤 크라머와 절친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올림픽에서 스벤 크라머에게 메달을 가져간 유일한 동양인 선수이기도 하고 서로 시즌 중엔 자주 마주치기도 해서 친구처럼 지낸다는 모양. 물론 크라머의 성격상 누구와도 금세 친해지는[29] 인싸이기에 가능한 교류였다. 소치 올림픽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이승훈 선수가 부진에 빠지자 같이 훈련할 때는 이렇지 않았다면서 기자들 앞에서 변호해줬던 일화는 유명하다.
  • 코너웍을 좋게 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주로 쇼트트랙에서 많은 훈련을 한다. 훈련량이 많은 날에는 500바퀴를 돌기도 한다고 한다. 무려 55km가 넘는 거리다.[30]
  • 2018년 3월 경 이승훈 선수와의 솔직 인터뷰라는 타이틀의 인터뷰 공개 영상에서 정재원 선수가 희생한 게 아니냐, 혹은 페이스메이커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 "그게 전술이었다. 우리 팀의 전술이었고, 정재원 선수의 역할이 있었고 제 역할이 있었고 유럽 선수들은 여러 선수가 뭉쳐있기 때문에 그 여러 선수들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저희가 가지고 들어갔던 경기였다고 밝혔다.
  • 2018년 3월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안전 약속 지키기' 음원 방송 캠페인에 목소리 재능 기부를 했다.[31]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승훈입니다. 오늘도 서울교통공사 광화문역을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가 함께 타는 지하철, 무엇보다 안전하게 이용해야겠죠? 스케이트 경기라면 빨리 가는 게 중요하지만, 지하철에서는 안전한 이용이 가장 중요합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 마시고, 손잡이를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휴대전화만 보고 걷는 행동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무리한 승하차는 절대 금물입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지하철 안전약속, 다 함께 지키면 안전하고 즐거운 하루가 됩니다. 지난 겨울, '하나된 열정'으로 동계 스포츠 선수들을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정재원에게 사이클을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진짜로 사주었다. 2017년식 치폴리니 본드, 구동계는 듀라에이스 9100에 마빅 코스믹 카본휠셋 구성이다. 이승훈 외 여러 빙상 선수가 훈련 및 취미용 자전거로 부쩍 치폴리니 모델을 많이 사용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동호인 사이 인식과 별개로 회사 차원의 선수 할인이나 마케팅 푸시가 대단한 모양이다. 김아랑도 보유하고 있는 걸 확인되었다.
[1] 창신성결교회에 출석한다.[2] 6년 열애 끝에 2017년 6월 결혼했다.[3] 성시백이 이 대회에서 5관왕(전관왕)을 했다.[4] 성시백도 이 사건 때문에 선발은 됐지만 피해를 입었다.[5] 선발전이 원래는 1년에 2번 열렸지만 빙상연맹이 2008년부터 선발전을 줄였기 때문에 빙상연맹이 선발전을 2회에서 1회로 줄인 것을 당시 안현수 등 많은 선수들이 부상의 위험으로 선발전 축소를 주장했기 때문이다.[6] 사람들의 인식은 거의 아오안에 가깝지만, 송경택은 주종목인 1500m만큼은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아폴로 안톤 오노보다 우위에 있었던 몇 안되는 선수 중 한 명이였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성시백, 곽윤기 등보다 우위냐고 하면 그건 확실히 아니다. 어찌보면 가장 애매한 선수다.[7] 2013년 11월 11일 (현지시간으로는 11월 10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남자 5,000m에서 6분 07초 04로 한국 기록을 경신하였다.[8] 이전까지 아시아 남자부 최고 성적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0,000m에서 일본의 시라하타 케이지 선수가 기록한 4위였다. 아시아 여자부 최고성적은 북한의 한필화 선수가 1964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3000m에서 따낸 은메달이다.[9] 크라머가 인코스를 2번 탄 후의 기록이 이승훈보다 4초 정도 빨랐다. 하지만 인코스를 2번 타기 전에도 이승훈의 랩 타임보다 꾸준히 1~2초 정도 앞서던 상황인지라 실격되지 않았다면 또 은메달을 받았을 것이다.[10] 그 땐 네덜란드 사람들도 환호했다. 이거야 말로 위아더 월드 ㄷㄷ.[11]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이 일에 대해 언급하기를 자신이 쇼트트랙 선수를 했었기 때문에 앞에 사람이 보이면 추월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추월을 해버렸다고 말했다.[12] 밥 데용으로도 표기했다. 오렌지색 유니폼 입은 선수. 2014 소치 대회에서도 동메달 딴 선수인데, 1976년생이어서 한국 나이로 무려 39세 때 딴 동메달이다.[13] 이승훈이 말하길 2, 3위가 1위를 저렇게 들어올려주는 것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례가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크라머의 실격으로 메달 등급이 하나씩 올라간 격이니 분명히 셋 다 기분이 좋을 상황이었다.[14] 5,000m 6분 29초 99(2009/11/9) - 6분 14초 67(2009/12/13), 10000m 14분 01초 64(2009/12/24) - 12분 58초 55(2010/2/23). 장거리임을 고려해도 엄청난 기록단축 페이스이다.[15] 지금은 병행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며 5,000미터, 10,000미터가 워낙 체력소모가 심한 종목이라서.[16] 5천m 15위, 1만m 12위[17] 이전 대회 우승자를 말한다. 캐나다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 종목에서 우승했기에 이리 불리는 것.[18] 이 메달은 대한민국이 2014 소치 올림픽에서 확보한 메달 중 유일하게 남자가 딴 메달이다. [19] 대한민국 선수들이 뛰기 이전 일본 대표팀이 3분 45초 93을 기록했다. 이는 이전에 자신들이 세웠던 아시안게임 신기록을 3초 이상 당긴 기록으로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는데...이를 바로 대한민국 남자 대표팀이 3분 44초 68로 더 당기면서 일본은 은메달...[20] 이전까지는 빅토르 안이 귀화하기 전 땄던 5개.[21] 그 유망주 김민석이 다음날 1,500m에서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본인 스스로 금메달을 땄다![22] 레이스 완주 후 인터뷰에 따르면 그간 자신의 10,000m 경기들이 6,000m 이후로 랩타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6,000m부터 시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페이스 조절을 했다고 한다.[23] 요리트 베르스마의 경우 이승훈의 기록이 12분 55초 54였는데 그보다 '''13~14초 정도''' 기록을 앞당겼고,(12분 41초 xx) 그 뒤의 테드 얀 블루먼은 그보다도 2초 가량 기록을 앞당겨서 12분 30초대로 진입했다. 보통 2~3초정도만 앞당겨도 상당히 큰 차이인데 말이다. 애초에 베르스마나 블루먼이 10,000m를 주 종목으로 한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24] 그런데 정재원은 2018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25] 본 종목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다.[26] 밴쿠버 시절에는 주종목이랄 게 딱히 없었고 급 결성해서 내보낸 팀 추월에서 이승훈이 좋은 모습을 보이자 팀 추월을 전략적으로 키웠는데 이 때 자연스레 대한민국 팀의 핵심 멤버이자 본인의 주종목이 되었다. 또 매스스타트가 신설되었을 때 전직 쇼트트랙 선수답게 두각을 나타내며 매스스타트 또한 주종목이 되었다.[27] 특히 김민석 선수가 남자 1,500m 종목에서 아시아 최초 올림픽 메달을 따냈다.[28] 심지어 10,000m에서는 본인이 세웠던 한국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29] 이상화 선수와도 매우 친하다.[30] 이를 통해 이승훈 선수의 괴물 같은 체력을 엿볼 수 있기도 한데, 평창올림픽에서는 5,000m, 10,000m, 팀추월 경기를 모두 마무리하고 매스스타트만 남겨놓은 시점까지 경기에서만 무려 24,600m를 달렸음에도 인터뷰에서 "전혀 힘들지는 않고, 이제 몸이 좀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31] 수도권 전철 5호선 광화문역, 올림픽공원역, 서울 지하철 6, 7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