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회

 


金東會
1918년 8월 10일 ~ 2004년 8월 25일
1. 개요
2. 생애
3. 논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대한민국조직폭력배. '''소공동 백작'''과 '''김두한의 평생지기'''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2. 생애


충청북도 괴산 출신이지만 상경해서 일본인 상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했다고 한다. 김두한을 처음 만난 건 1939년의 일로, 유도를 승단한 김동회를 축하해주기 위해 3~4명이서 서울 관철동의 술집에서 축하파티를 하던 중 10여 명쯤 되는 패거리와 시비가 붙어서 이겼다고 한다. 그 패거리는 자신들의 두목을 데리고 왔는데 그 두목이 바로 김두한. 서로 통성명을 한 둘은 같은 안동 김씨라는 것을 알고는 함께 술을 마시고 친구가 됐다고 김동회 본인은 회고[1].
유도로 이름을 날려서 일명 하야시라고 불린 선우영빈[2]에게 스카웃되지만 광복 직전에 벗어나서 다시 김두한과 함께 일하게 되었고 아편 탈취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무사히 출소했다고 한다고 한다. 정진룡과도 교분이 있었는데 출소 후 다시 만나보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고. 정진룡이 김두한과 김동회를 위해 술자리를 열었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낀 김두한이 김동회를 데리고 나온 뒤 영영 적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본인이 밝힌 생애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김두한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동회를 언급한 적이 없으며, 김두한을 다룬 신문기사를 봐도 신영균이나 조희창이나 김영태의 이름은 보여도 김동회 세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본인과 김두한이 아편 탈취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 김두한이 사형선고를 받은 건 정진룡 살해 사건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김동회가 정말 김두한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살아 돌아왔다면, '''정진룡 살해 건으로 잡혔다고 주장하는게 타당하다.'''[3]
노년이 되어서는 야인시대[4]의 방영으로 김두한의 생애가 재조명받자 언론에서 김두한의 평생지기라는 타이틀로 소개받으며 자신이 기억하던 김두한의 모습과 자신의 지난 삶을 회고했다. 매일 정장을 입고 소공동 롯데호텔 커피숍에 나타나서 자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5]했다고 하며 김두한의 평생지기라고 알려진 덕분에 그쪽 후배들, 심지어 조양은도 그를 큰형님이라고 부르며 예우했다고 한다. 위암을 앓다가 야인시대 종영 다음 년도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논란


상술했듯이 김두한과의 관계가 불분명한데 김두한의 회고록이나 생전 인터뷰 및 김두한의 부하들 관련 신문 기사에도 김동회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김두한을 팔아먹은 사기꾼이라는 추측들이 많다. 이는 이상욱도 마찬가지. 다만 이상욱은 주먹패 시절 사용한 이름을 밝히기라도 했기에 김두한의 직속부하만 아니었을 뿐이지, 최소한 종로에서 활동했던 주먹이었음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김동회는 그런 것도 없다.
한편 일각에서는 김두한의 사후에 개명을 했거나, 주먹패로 활동할 당시엔 가명을 썼기에 언급이 없었던게 아니겠냐는 주장도 있지만 또 그렇다고 하기엔 김동회가 자신이 개명했음을 밝히거나 주먹패 시절에 가명을 썼었다고 밝힌 적이 없기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이 사람이 김두한의 평생지기를 자처하기 시작했을 때는 김영태조일환을 제외한 김두한의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세상에서 모습을 감췄을 시기였다.[6] 그마저도 김영태는 미국으로 이민간 상태였고, 조일환은 김두한과 나이차가 상당히 나기 때문에[7] 김두한의 전성기 시절엔 미성년자에 불과했다. 즉, 제대로 된 교차검증을 해줄 수 있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는 본인들만 알겠지만, 김두한의 후계자인 조일환은 그를 선배로 모셨다고 하며, 함께 야인시대 촬영장을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회가 사기꾼이라는 가정 하에, 아예 말이 안되는 일은 아니다. 이미 서술했듯이 김두한의 전성기 시절에 조일환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일제강점기 시절을 기준으로 두자면 아예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하는 나이었기에''' 김동회가 조일환한테까지 거짓말을 했다고 하면 설명이 된다.
참고로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김두한 본인도 동시기에 활동했던 여러 주먹들을 팔아먹은 적이 있다. 대표적인 피해자로는 구마적신마적이 존재한다.

4. 대중매체에서



4.1. 영화 장군의 아들


배우는 이일재.[8]
어린시절 음식서리를 하다 잡힌 것을 수표교 거지패였던 두한이 구해준 인연이 있다. 이후 성년이 되어 하야시에게 뛰어난 주먹실력을 인정받아 중용되고, 경성 변두리 주먹들을 꺾어 하야시패로 복속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신마적이 그게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도 왜 일본의 앞잡이 행세를 하는지 다그치나, 조국보다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현실이 더 좋은 것이라 반론한다. 마찬가지로 성년이 되어 종로의 주먹세계에 들어온 두한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1편에서는 과거의 인연을 두한이 인지하지 못한 채 상대패거리의 적수로만 대했다. 하야시에게 신마적의 린치를 복수삼아 쳐들어와 난장판이 된 싸움 한복판에서 두한과 1:1 대결을 하나 패배한다.
2편 초반부 하야시의 종로 습격을 피해 도망치던 두한을 일격에 쓰려뜨리고, 한동안 하야시패가 종로를 세력권에 두는 등 기세가 좋았으나, 이내 김기환이 종로를 떠나고 각성한 두한 패거리들이 조선 주먹패들을 규합하자 예봉을 꺾기위해 다시한번 1:1로 두한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이때 수표교 거지 시절 일화를 들려주며 그제서야 두한이 동회를 알아채고, 종로 댓거리에서 시리즈를 통틀어 멋진 대결씬을 선보인다. 결국 두한에게 다시 패배했으나, 묘령의 술집 여인 송채환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이내 종로를 함께 떠나 새로운 삶을 희망했지만, 이 시기 두한이 헌병대 장교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송채환이 헌병대장과 동침을 하여 두한을 석방시키지만, 그 길로 송채환은 홀로 종로를 떠나고, 두한에 대한 원망과 번민이 함께 쌓였던 동회도 독립운동을 도모하고자 종로를 떠난다.
3편에서는 만주에서 두한과 재회하고 독립군 대신 국경을 넘나드는 밀수업자가 되어있었다. 쌍칼 몰래 생아편을 팔아넘기려 했으나 마적단의 함정에 빠져 두한과 함께 린치당하고 아편만 뺏기게 되었다. 이를 분하게 여겨 밀매책을 수소문한 끝에 두한이 일당 중 한명을 족치게 되지만, 이를 알게된 마적단 두목이 두한과 동회를 잡아들이게 했으나 쌍칼 패거리가 막아선 사이 분전끝에 두한과 헤어진다.
이 후 꽤 건실한 상사를 운영하게 되어 하야시와 거래를 틀 정도로 어느정도 거물이 된 그는 징용으로 종로 건달들이 모조리 와해될 위기를 두한에게 경고하지만, 쪽바리 꼬붕짓이나 하는 주제에라는 조롱만 들은 채 화가 난 두한에게 쫓겨나게 된다. 이 후 두한이 장은실에 빠져 종로를 소홀히한 사이 쳐들어온 하야시패들에 의해 죽을뻔 한 것을 단신으로 구출하게 되고, 그 길로 이번엔 하야시의 본거지로 함께 쳐들어가 두한의 복수를 돕지만, 최후에는 옛 오야붕이었던 하야시에게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을 용서해달라 청하고 난자당하여 거의 초죽음이 된 두한을 데리고 종로 거리를 나서며 영화가 끝난다.
[1] 다만 김동회는 구 안동 김씨로 25세손 회(會)자 항렬을 쓰며, 김두한은 신 안동 김씨로 27세손 한(漢)자 항렬을 쓴다.[2] 김두한이 언급한 '''하야시'''라는 야쿠자가 한국인 선우영빈이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 이 항목의 주인공이다.[3] 또한 김동회는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가까운 친구 관계였다면서 실제 이름인 '''정진룡'''이 아닌 드라마에서의 이름은 '''정진영'''을 말했다. 이 점은 김두한 역시 마찬가지였다.[4] 다만, 본인은 등장하지 않았다.[5] '''소공동 백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유다. 김동회 본인은 가족들 모두 미국으로 떠나서 생계가 어려웠는데 후배들이 지원해준 돈으로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했다고.[6] 김두한의 부하들이 마지막으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1987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신영균, 상하이 조, 휘발유, 홍만길, 김관철, 박용직 등 당시 한국에 살아 있던 김두한의 부하들이 모였지만 김동회의 이름은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김동회의 이름이 있기는 했었는데, 문제는 김동회가 그 멤버 중 하나라고는 했는데 여러 활동에 관계된 부하들 이름을 여러 사람이 줄줄이 읊는 중, 별별 하급간부 이름도 다 나왔는데 김동회의 이름은 안 나왔다는 것... 나중에 당시 멤버라고 하는 사람들이 80년대쯤 단체사진을 찍는 곳에 들어가 있기는 했는데, 그게 그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전부였다.[7] 김두한은 1918년생이고, 조일환은 1938년생이다. 즉, '''20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런 조일환의 나이를 감안하면 구마적, 신마적, 김기환 등에 대해선 주먹계의 대선배들이란것 정돈 알고 있었겠지만, 직접적으로 만나는건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지어 김두한이 1972년 11월 21일에 사망했을 때도 조일환은 고작 34살이었다.[8] 마찬가지로 김두한의 생애를 다룬 야인시대에서는 이정재의 부하이자 화랑동지회 내에서 가장 큰 조직을 이끌고 있는 김동진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