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마적

 

'''신마적
新馬賊
'''
'''출생'''
1908년?[1]
'''사망'''
?
'''신체'''
194cm, 149kg[2]
'''별명'''
신마적
1. 개요
2. 루머
3.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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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 시기의 깡패이자, 본명은 엄동옥(嚴東鈺).[3] 야인시대에서는 신마적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며 "너희들, 내가 누구야!" 라고 일갈하자 술집 직원들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천하의 신마적 형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하는데 거기다가 "'''내가 왜 신마적이야, 난 엄동욱이야!'''"라고 일갈하며 더 크게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신마적이 신마적이라는 별명을 싫어한 건 절대 아니고 단순히 꼬장의 명분이 필요했던 것 뿐이다. 이래 봬도 보성전문학교-도쿄대학 출신 초엘리트. 조선인 차별로 인해 출세길이 가로막혀 비뚤어진 듯.
동아일보1935년 3월 9일자 기사에는 서울의 밤거리를 피로 물들이는 폭력단의 패왕인 신마적을 종로경찰서에 체포했다고 하며, 부내 관철동 116번지 식위천 오뎅집에서 술을 먹고 있는 손님인 양점수, 지봉수에게 술을 내라는 요구를 했다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구타를 하고 도주했다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다음해쯤 동아일보에 기사가 하나 나오긴 나오는데, 이것도 문 닫은 술집에서 문 열라고 꼬장부리고 술집 때려부수다가 잡혀갔다는 이야기...... 뭐 종로경찰서에서는 엄단할 전망이라고 위나 아래나 써 놓았지만, 위의 사건에서 저렇게 잡혀놓고 1년도 안 되어 또 나와 꼬장을 부린 걸 보면 엄단이고 뭐고 별로 없었던듯 하다.
훗날 한참 후에 김두한이 말한 [4] 동아일보 인터뷰에 따르면 매체에 언급되는 것과 반대로 구마적이 기습으로 김두한에게 깨지자 복수를 하러 덤볐다가 깨져서 물러났다고 한다.
일제로부터 조선이 해방된 광복 이후에는 행적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대에 유명했던 여러 깡패들 중에서 유일하게 언제 죽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5] 해방공간에서 웬만한 주먹들은 좌익, 우익으로 갈라져 행적이 알려져 있는데 이 인물은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해방 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시라소니 소설판에서 이 자의 일화가 잠깐 언급되는데, 건달들중에 보기 드물게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 출신이었으며, 칼빵을 맞고도 겁에 질려 도망치던 상대를 보고 낄낄거렸다는 일화[6]나 단검 던지는 실력도 의외로 좋았다는 얘기등이 언급된다. 김두한에게 패하고나서 중국으로 갔는데, 이때 야쿠자들이 점령하던 곳을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의외로 유혈충돌이 없었는데, 이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본군 장교의 양자였다고 한다.

2. 루머


  • 여담으로 한때 인터넷에서 신마적의 사진이라면서 떠돌았던 사진이 있었지만, 당시 박헌영 사진이 최동열, 김두한의 부인 이재희 사진이 박인애와 함께 떠돌던 사진 중에 한장이었다. 그리고 진짜 신마적인 인물이 찍힌 사진은 프로필에 있는 사진 딱 한장 뿐이다.

3. 대중매체에서


신마적의 비중이 가장 높은 매체라고 할 수 있는 야인시대 이외엔 '감격시대'라든가 '불문율'같이 일제강점기 주먹세계를 다룬 작품에서도 주로 초반에 김두한에게 패배해 전투력 측정기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장군의 아들에서도 등장하며, 일본인과 싸우다가 쓰러지면서 김두한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3.1. 드라마 야인시대




3.2. 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1편에서도 신마적이라는 인물이 주연급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김형일[7]이 연기했으며 구마적과 1대 1로 대결하여 이기는 모습도 나온다. 하지만 야인시대의 개차반 신마적과는 180도 다른 인물로, 성격이 매우 점잖고 신사적이며 김두한을 특별히 아끼고 뒤에서 지원해준다.[8] 인텔리가 어째서 깡패질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김두한 역시 신마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 신마적이 자신을 찾는다고 하자 놀라고 신마적 앞에서는 당연하다는듯이 무릎을 꿇고 형님으로 대한다. 김기환과는 작중 면식이 없지만 형님으로 칭하는 걸 봐선 윗사람 대접 하는 듯 싶다.
하지만 이후 김동회가 속한 하야시 패거리와 싸우다 일본도에 찔려 큰 부상을 입으면서 퇴장한다. 그 소식을 듣고 분노한 김두한이 쳐들어가서 모두 박살내는 것이 영화의 후반부 내용. 1편 마지막 씬에서는 병원에 입원한 채 문병을 온 김두한의 손을 잡으며 "너는 장군의 아들이다"라고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당대 인텔리에 신진 주먹이면서 설정이나 작중 행적은 그야말로 현실도피에 가까운 행동을 자주 보여준다. 김두한을 보호하고 조언을 해주는 것은 좋은데, 하야시에 맞서서 종로를 맡아달라는 제안엔 자신은 학생이라 불가능하다면서 회피해버리질 않나 자신을 포함한 YMCA 학생패들이 징집대상이 되자 혼마찌, 그것도 '''하야시 생일 잔치'''가 열리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 칼을 맞아버리는 등 민폐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준다.[9]

3.3.


원래는 유태웅이 배역을 맡아 출연하기로 했지만, 작가 교체로 조연들 대부분이 잘려나가며 출연이 무산되었다.
[1] 1935년 기사에 엄동옥의 나이가 28세로 알려져 있다. 출생년도를 환산하면 1908년이 된다. 다만 1932년 기사에 엄동옥의 나이가 19세, 즉 1913년생으로 나온 것도 있어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신마적을 사칭해서 횡포를 부린 인간들도 많았다고 한다.[2] 출처[3] 한 때 엄동'''욱'''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야인시대에서도 신마적의 본명을 엄동'''욱'''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엄동'''옥'''이 맞다. 한자까지 쓰여있어 확인 사살. 아마 남자 이름에 '옥'이란 글자를 잘 쓰지 않는데다 몬데그린으로 인해 '욱'으로 헷갈린 듯 하다. 여담으로 신문 기사들 내용이 전부 술 먹고 행패부려 경찰서 간 얘기 뿐이다. 잘못 알려진 엄동욱으로도 이 문서에 들어올 수 있다.[4] 당연하지만 당시 "주먹들"이란 것들은 힘 좀 쓴다고 술먹고 깽판 치거나 사람 패고 다니는 조폭들이었으니 행패부리고 경찰서 잡혀갔다는 식의 신문기사 정도를 빼면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을리가 없다. 그것도 현대조폭들처럼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저들의 "결투"도 그냥 양아치들이 싸운 것. 그 깡패 중 하나인 김두한이 정치깡패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그 얘기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덩달아 그들의 이름이 대중들도 다 알정도로 유명해진 것이다.[5] 김두한1972년 11월 21일에 고혈압으로 사망, 김기환은 1949년 7월 20일에 암으로 사망했고, 구마적은 19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흔히 하야시로 알려진 선우영빈은 1978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이화룡은 1984년 2월 24일에 고혈압으로 사망했으며, 마지막으로 시라소니로 알려진 이성순은 1983년 1월 25일에 사망했다.[6] 야인시대에도 언급된다.[7] 당시 CBS 성우였기 때문에 다른 주역들과 달리 김기환 역을 맡은 민응식과 함께 직접 자신의 배역를 더빙했다.[8] 상인들에게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며 잘 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도 있다.[9] 말단부터 시작한 김두한이 일인자가 되기 위해선 기존의 주먹들이 퇴장하는게 옳다. 기존의 윗전들이던 쌍칼, 니또류 무사시, 김기환, 신마적의 리타이어는 비참한 수준. 쌍칼은 무사시와의 나이프 파이팅후 퇴장, 무사시는 술집에서 깽판을 부리다 김두한에게 퇴장, 김기환은 술처먹고 혼마찌에서 화류계 여자에게 집쩍대던 형사를 폭행하여 수감(소설에서는 술에 취해 순사부장에게 오줌을 먹여서 도피), 신마적은 상기했다시피 하야시 생일상에 멋대로 쳐들어가 깽판부리다 칼부림에 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