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적
舊馬賊
1907년?[1] ~ 1960년대(추정)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직폭력배. 본명은 '고시형' 또는 '고시경'이며 창씨개명한 이름은 타카야마 이사오(高山勲)이다. 고희경이란 말은 김두한의 회고담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은 것에서 와전 된 것으로 당시 기록을 보면 고시형으로 나와있다.[A]
힘이 매우 드센 장사라 마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종로 조선극장 기도들의 우두머리가 되기 전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는 설이 있다.
김두한과 김두한의 동료 김동회의 회고에 의하면, 6척/30관(183cm/110kg)에 달하는 거구에 머리는 보통 사람의 두 세 배 가까이 컸다고 한다. 택시의 뒷채 부분을 들쳐올리고, 손으로 차돌을 내리쳐 빠개고, 동전을 휘어버리거나 잣을 열매 껍질 째 으깨는 등 믿기지 않는 괴력을 구사했고, 손아귀에 멱살을 붙잡히면 허공에 매달려 땅에 꽂히거나 집어 던져서 죽어나갔다고 한다.
마적과 힘을 겨루어 능가한 엄동옥이 있었으나 마적이 나이가 더 많아 주먹패들간의 예우로 호형호제하는사이가 되면서 마적은 구마적, 엄동옥은 신마적으로 불렸다. 김두한보다 10~11세 정도 나이가 많았다. 부하들을 구타하는 등 횡포가 심했기에 이를 보다 못한 김두한이 직접 조선극장 뒤 공터로 불러냈고, 두 차례 김두한의 발길질에 면상과 미간을 걷어차여 간단히 제압 당했다.[2] 그리고 김두한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구마적은 이후 종로를 떠나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934년, 구마적은 27~8세 정도였고, 김두한은 불과 17~8세의 나이였다.
드라마에서는 정오에 만인이 지켜보는 극장 앞에서 김두한이 고전했을 정도의 팽팽한 승부를 벌인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는 밤 10시경의 늦은 시간 인적 드문 극장 뒷마당에서 김두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드러누웠다.
..여기까지가 김두한과 그와 인연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 주장한 내용이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자신의 주장에 뻥과 과장을 많이 보태는 김두한의 특성상 실제로는 구마적과의 대결은 있었으나 대결 이후 김두한이 구마적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아니면 아예 대결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1940년대 당시 기록에 '김두한의 두목인 마적'이라고 적혀있었다.[A] 그리고 이걸로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김두한이 주먹계의 1인자는 아니였다는 것이다. 사실 김두한이 주먹계의 1인자라는 것은 본인의 주장과 야인시대를 비롯한 몇몇 대중매체에서만 나온 내용이고, 실제론 김두한은 김기환의 부하에 불과했으며 김기환이 술자리에서 순사부장에게 오줌을 먹여서 수배령이 떨어져 도피하게 되자, 그가 자연스레 조직을 이어받았을 뿐이었다.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백작에도 잠깐 언급되는데,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5~60년대 당시에 한국노총 관련된 일을 맡았었고, 명동에도 한 번씩 술을 마시러 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망했다는 언급이 있는걸로 보아 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두한과 살림차린 여자들중엔 구마적의 조카도 있다고 한다. 위의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김두한이 일제 말에 구마적의 측근으로 행동했었다고 하니,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장군의 아들 1편에서도 구마적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야인시대의 구마적과 비교하면 그냥 공기에 가까워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야인시대에선 엄동욱에게 신마적의 호칭을 준 건 구마적이지만 여기서는 마적을 꺾은 엄동욱이 얻은 호칭에 가깝다. 일단 생긴 것도 뭔가 호탕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아저씨인데다 여기서는 김두한과는 접점이 전혀 없고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매우 어설프게 싸우다 패배하여 퇴장한다.
대신 1편의 중간보스급인 '''무사시#s-2.2.3'''라는 인물이 야인시대의 구마적의 위치와 비슷하다.
1907년?[1] ~ 1960년대(추정)
1. 개요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직폭력배. 본명은 '고시형' 또는 '고시경'이며 창씨개명한 이름은 타카야마 이사오(高山勲)이다. 고희경이란 말은 김두한의 회고담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은 것에서 와전 된 것으로 당시 기록을 보면 고시형으로 나와있다.[A]
힘이 매우 드센 장사라 마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종로 조선극장 기도들의 우두머리가 되기 전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는 설이 있다.
김두한과 김두한의 동료 김동회의 회고에 의하면, 6척/30관(183cm/110kg)에 달하는 거구에 머리는 보통 사람의 두 세 배 가까이 컸다고 한다. 택시의 뒷채 부분을 들쳐올리고, 손으로 차돌을 내리쳐 빠개고, 동전을 휘어버리거나 잣을 열매 껍질 째 으깨는 등 믿기지 않는 괴력을 구사했고, 손아귀에 멱살을 붙잡히면 허공에 매달려 땅에 꽂히거나 집어 던져서 죽어나갔다고 한다.
마적과 힘을 겨루어 능가한 엄동옥이 있었으나 마적이 나이가 더 많아 주먹패들간의 예우로 호형호제하는사이가 되면서 마적은 구마적, 엄동옥은 신마적으로 불렸다. 김두한보다 10~11세 정도 나이가 많았다. 부하들을 구타하는 등 횡포가 심했기에 이를 보다 못한 김두한이 직접 조선극장 뒤 공터로 불러냈고, 두 차례 김두한의 발길질에 면상과 미간을 걷어차여 간단히 제압 당했다.[2] 그리고 김두한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구마적은 이후 종로를 떠나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934년, 구마적은 27~8세 정도였고, 김두한은 불과 17~8세의 나이였다.
드라마에서는 정오에 만인이 지켜보는 극장 앞에서 김두한이 고전했을 정도의 팽팽한 승부를 벌인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는 밤 10시경의 늦은 시간 인적 드문 극장 뒷마당에서 김두한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드러누웠다.
..여기까지가 김두한과 그와 인연이 있는 몇몇 사람들이 주장한 내용이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자신의 주장에 뻥과 과장을 많이 보태는 김두한의 특성상 실제로는 구마적과의 대결은 있었으나 대결 이후 김두한이 구마적을 형님으로 모시거나, 아니면 아예 대결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1940년대 당시 기록에 '김두한의 두목인 마적'이라고 적혀있었다.[A] 그리고 이걸로 알 수 있는 사실이 하나 더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김두한이 주먹계의 1인자는 아니였다는 것이다. 사실 김두한이 주먹계의 1인자라는 것은 본인의 주장과 야인시대를 비롯한 몇몇 대중매체에서만 나온 내용이고, 실제론 김두한은 김기환의 부하에 불과했으며 김기환이 술자리에서 순사부장에게 오줌을 먹여서 수배령이 떨어져 도피하게 되자, 그가 자연스레 조직을 이어받았을 뿐이었다.
소설가 이봉구의 명동백작에도 잠깐 언급되는데,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5~60년대 당시에 한국노총 관련된 일을 맡았었고, 명동에도 한 번씩 술을 마시러 왔다고 한다. 하지만 사망했다는 언급이 있는걸로 보아 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두한과 살림차린 여자들중엔 구마적의 조카도 있다고 한다. 위의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김두한이 일제 말에 구마적의 측근으로 행동했었다고 하니,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2. 루머
- 인터넷에 실제 구마적의 사진이라며 돌아다니는 사진이 두 장이 있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야인시대
3.2. 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1편에서도 구마적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야인시대의 구마적과 비교하면 그냥 공기에 가까워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야인시대에선 엄동욱에게 신마적의 호칭을 준 건 구마적이지만 여기서는 마적을 꺾은 엄동욱이 얻은 호칭에 가깝다. 일단 생긴 것도 뭔가 호탕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아저씨인데다 여기서는 김두한과는 접점이 전혀 없고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매우 어설프게 싸우다 패배하여 퇴장한다.
대신 1편의 중간보스급인 '''무사시#s-2.2.3'''라는 인물이 야인시대의 구마적의 위치와 비슷하다.
[1] 당시의 여러 기사들에 나온 그의 나이와 김두한보다 10~11살 정도 많았다는 증언을 종합해보면 1907년 출생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생년월일이 들쭉날쭉한 기사들도 많으므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일단 확실한 것은 신마적보단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A] A B 사상에 관한 정보(경찰서장), 경종고비 제1721호의 1, 1942.04.07 16쪽, 同年2月19日自宅において被疑者金斗漢の紹介により其親分俗称旧馬賊こと高時亨(京)改め高山勲を知り、前掲両名に対する如き好言を述べて獲得し : 동년 2월19일 자기 집에서 피의자 김두한의 소개로 그의 두목인 속칭 마적(馬賊), 곧 고시형(高時亨, 京)을 알게 되어 위의 두 사람에게 한 것과 같은 감언으로 획득하였다.[2] 김두한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잽히면 죽으니까" 발차기로 재빨리 제압했다고 한다. 거구이던 김두한보다도 월등히 큰 덩치에 힘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힘싸움으로 가지 않고 당시 김두한이 당시 잘 쓰던 공격인 드롭킥으로 속전속결로 제압한 듯. 본인 회고에서 보듯이 구마적의 힘은 김두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드라마에서도 김두한 vs 구마적 싸움에서 싸움의 마지막은 공격은 구마적 얼굴을 향한 발차기였다.[3]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