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동

 

金明東
1903년 11월 25일 ~ 1951년 12월 2일[1]
대한민국의 전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자는 성만(聖萬)이며, 호는 이호(伊蒿)다. 본관은 신 안동 김씨다.
1903년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문을 배웠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신간회의 발기인 34명 중의 한 사람으로 중앙상무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우익 정치인으로서 신탁통치 반대 총동원위원회 중앙상무집행위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공주지회 회원, 민족통일총본부 공주군 사무국장 등을 지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공주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대전, 충남지역의 반민특위 위원을 지내며 공주 갑부 김갑순 등 친일파 척결에 앞장을 섰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임기 중 사망하였다. 묘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금암리에 있으며, 부인 남양 홍씨[2]와 합장되었다.
아버지는 조선 말기 문신이며,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셨던 김복한 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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