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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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益魯
1905년 4월 15일 ~ 1962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수원(水原).
1905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연일군 서면 택전리(현 포항시 남구 연일읍 택전2리)[1]으로 이주하여 영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농업대학 실과를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삼우공업주식회사 사장, 남선민보사 사장, 한국독립당 경상북도당 선전부장, 독립신문 경상북도 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이후 달성군-대구시 농회 기수, 대구시 시정회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개편으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영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주사에 임명되었다. 1952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국회 징계자격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부정선거를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고 같은 해 6월 선거무효 판결이 내려져서 9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상대 후보의 표를 절취했다는 이유로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1959년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해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포항시사 제 3권 제 9편 인물 제2장 인물 5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