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욱

 


'''김철욱의 수상 및 영예 '''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17'''

'''안양 KGC인삼공사 NO.32'''
'''ANYANG KGC'''
'''김철욱[1]'''
<colbgcolor=#e31736> ''' 출생 '''
1992년 6월 25일 (31세)
[image] 중국 헤이룽장 성 하얼빈
''' 국적 '''
[image] 중국[image] 대한민국
''' 신체 '''
202.3cm|체중 101kg
''' 포지션 '''
센터
''' 학력 '''
하얼빈초등학교 (졸업)
하얼빈 제5중학교 (졸업)
제물포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졸업)
''' 프로입단 '''
2016년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안양KGC)
''' 병역 '''
병역면제 (귀화)
''' 소속 '''
[image] 안양 KGC인삼공사 (2017~)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3. 시즌별 성적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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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농구선수.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김철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딱히 없다고 한다.[2] 중국에서의 이름은 우띠롱(오적룡). 이 항목은 우띠롱로도 넘어올 수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가 좋아서 한 건 아니고 노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다른 애들보다 키가 컸고 부모님이 그냥 놀 거면 농구라도 배우라며 농구교실을 보냈다. 거기서 하루 두 시간씩 친구들이랑 농구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노는 게 좋아 시작한 농구였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김철욱의 꿈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는 것. 농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가 아닌 농구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중학교에 갔을 때 그 때 키가 186cm였다. 어렸을 적엔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농구 특기생으로 학교를 가면 시험 점수가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중간에 농구전문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점점 농구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면서 공부는 못하고 농구는 잘해졌다.
결구 김철욱은 공부를 포기하고 농구로 프로에 가서 좋은 선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농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기량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우리나라의 유소년 팀 격인 중국 프로리그 3군에 스카우트 되며 실력을 쌓아갔다.
김철욱이 한국에 오게 된 건 그의 나이 18세 때로 2009년 2월 28일이라고 한다. 경희대 최부영 전 감독(현재 경희대 농구부장)과의 인연이 그 시작이었다. 중국 연변대학 총장을 통해 최부영 감독을 알게 됐는데 총장과 최부영 감독이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부영 감독을 중국에서 한 번 만나고 김철욱이 혼자 운동하는 모습과 개인기가 담긴 영상을 경희대에 보냈다. 이후 ‘한국에 와서 농구해도 괜찮겠냐’라는 제안이 왔다.
하얼빈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17년을 자란 김철욱이 단번에 한국행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한국행에 긍정적인 가족들의 반응과 농구를 통해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를 움직였다.
부모님과 선생님 모두 다 찬성했고 혼자 멀리 가는 건 마음 아파했지만 운동선수 출신이라 이해했다. 농구로 빛나기 위해 인생에 발전이 될 한국행에 승낙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현실적인 판단이었는데 사실 중국에선 농구선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2m였음에도 키가 '''작아''' 스몰 포워드를 봤었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210cm는 돼야 빅맨 축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행을 결정한 김철욱은 군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경기 수와 출전시간을 보장한 제물포고등학교로 전학하게 된다. 제물포고에서 김철욱은 한국농구에 빠르게 적응하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농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높이와 정확한 중거리 슛을 모두 갖춰 상대로선 여간 막기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김철욱은 고교 마지막 대회에서 뜻하지 않는 불운을 맞는다.
경복고등학교와의 첫 경기에서 레이업을 하기 위해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발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왔고 바로 병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이 다 부러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남겨놓고 당한 부상으로 이후 김철욱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기나 긴 재활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철욱은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때쯤에야 지긋지긋했던 발가락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4학년을 앞두고 이번에는 동계훈련 때 상대편이랑 무릎을 박아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오랜 기간 재활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4학년이 끝나고 프로진출을 하지 못하고 경희대에서 1년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

2.2.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부상 이후 기량 회복이 원활하지 않아 몸상태에 관해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이종현-박인태 이후 센터 포지션으로는 3번째, 드래프트 전체 순위로는 8순위로 안양 KGC인삼공사에 지명되었다.
비록 가비지 타임때만 출전하긴 하지만 1군에서 활약하기에 충분한 임팩트들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2016-17 시즌 후 오세근의 FA 결과에 따라 팀 내 행보가 주목되는 빅맨 중 하나이다.
2월 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속공에 참여하는 상대팀 임동섭 선수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걸어 넘어뜨리려 한 행위로 인해 크게 비판받았고 KGC는 2경기 출전 정지와 월급의 1/3을 벌금으로 부과하는 자체 징계를 받았고 KBL은 200만원의 징계금을 부과했다.
PO에서도 두텁기 짝이 없는 스쿼드 덕에 백업의 역할을 수행했다.
2017-18시즌의 쇼케이스가 될 동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선 강병현, 전성현과 함께 그나마 사람구실을 하는 선수였다. 매경기 평균 더블더블 등 팀내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다만 마무리 능력과 자유투, 파울관리에 대한 개선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그래도 드래프트 당시 저평가의 원인이었던 몸상태와 체력을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렸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던 선수가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환골탈태한 모습. 홍삼의 파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쯤 되면 KGC에 지명된 것이 선수인생의 행운 중 하나라고 보아도 될듯하다. KBL 최고의 센터인 오세근, 사이먼도 있으니 저 둘의 내공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해준다면 국대급 센터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시즌 평균 6~8분 가량을 소화하는 식스맨으로 활약하면서 오세근의 백업 센터 역할을 3라운드 기점부터 쏠쏠하게 하고 있는데, 외국인 선수에게도 밀리지 않는 수비 능력에도 자잘한 반칙이 많아서 오세근의 출전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잘 되지 않는 경기가 종종 있는 것은 아쉬운 모습.[3]
오세근의 부상 이후 선발로 출장하는 경기가 많아졌다. 종종 실수를 많이 하긴 하지만 슛 부문에서는 성공률이 꽤 높다.
2020~2021시즌에는 오세근의 휴식을 책임지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기사

3. 시즌별 성적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16-17
KGC
31
15/35
(42.86%)
1/4
(25.00%)
7/10
(70.00%)
40
20
11
1
3
2017-18
38
26/59
(44.07%)
0/0
(0.00%)
16/18
(88.89%)
68
54
2
4
0
2018-19
26
17/30
(56.67%)
7/23
(30.43%)
6/6
(100.00%)
61
30
10
1
6
2019-20
39
39/72
(54.17%)
14/33
(42.42%)
7/13
(53.85%)
127
55
9
5
3
2020-21









<color=#373a3c> '''KBL 통산'''
(4시즌)
134
96/196
(48.98%)
36/91
(39.56%)
30/41
(73.17%)
296
159
32
11
12

4. 여담


  • 한국말을 매우 잘하는데도 한국말을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언어 능력에서는 중국에서 언어대회나 국어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언어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 2011년 귀화한 후 한국 국적으로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한다.
  • 과거 논란이 있어서 안티팬들도 있지만 본인을 좋아해주는 팬들에게는 다른 KGC 선수들에게 지지 않을정도로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다만 전태풍처럼 간혹 반말을 쓰면서 다가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1] 귀화 전 중국 이름은 우띠롱(오적룡)[2] 친구가 지어줬다던가, 자기가 대충 생각해서 지은거라던가 식의 루머는 있다. 빠른 귀화를 위해 김현국 경희대 농구부 코치(現 감독)의 양자로 들인 것이라는 말도 있다.[3] 사실 KGC가 그리 팀파울이 많은 팀이 아니라서 매치업 상대에게 앤드원만 주지 않으면 저런 모습이 딱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출전시간 분배가 미흡하다는 것도 감독이 휴식을 안 주는 문제가 더 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