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풍
1. 소개
한국프로농구에서 뛰었던 귀화 혼혈 선수. 미국명은 '''토니 애킨스(Tony Akins)''', 풀네임은 '''Anthony Jewell Akins'''.
미국 태생의 미국인이었으나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여 현재 한국 단일 국적자다.[15]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2. 기록
2.1. KBL 이전 기록
2.2. KBL 기록
3. KBL 이전
3.1. NCAA 이전
1980년 7월 3일, 디트로이트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 농구 선수였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온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후 LA로 가서 13년간 살다가 Lilburn이라는 곳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Richards Middle School을 거쳐 Berkmar High School에 진학했다.
Berkmar High School에서 3학년때 평균 28.6점, 5.0리바운드, 6.5어시스트, 5.0스틸, 야투율 55%, 3점슛 42%, 자유투 85%로 그 학교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하면서 팀을 이끌며 25승 8패를 이뤄냈다. 이때 Mr.basketball에 선정되어 조지아주 최고의 선수로 뽑혔고, USA Basketball이 뽑은 Junior National Championship Team의 27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청소년 대표로 경기를 했던게 바로 이 시기이다.
고교시절 총 1,955점을 기록하여 그위넷 카운티 득점 기록을 갈아 치우게 되고, Berkmar 고등학교는 최우수 농구 고등학교로 선정됐다. 수십 개의 대학에서 오퍼가 왔으나 조지아 공대와 미시건 대학 두 가지 선택지에서 부모님은 미시건 대학 진학을 원했다. 전통적으로 포인트 가드가 강한 학교이며 집에서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조지아 공대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전태풍은 전미 리크루팅 랭킹 56순위로 조지아 공대에 입학한다.[16]
3.2. NCAA
조지아 공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으며, 심지어 개인교수까지 붙여서 그가 운동, 공부 모두 잘 할 수있게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런데 전태풍은 처음 2년은 좀 헤맸는데 바로 점프슛이 부족했기 때문에 경기력이 불안정했다. 고교시절에는 준수한 운동능력과[17] 기술로 상대를 압살했지만 대학무대의 수준은 달랐고, 마크 프라이스로부터 미들 점퍼를 배우기 시작했다.
조지아 공대 1학년때는 31경기 11.3점 3.7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학년때는 11.5점 3.3리바운드 3.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필드골이 상당히 떨어졌고, 턴오버가 상당히 많은 턴오버 머신이었다. 적응기를 끝낸 3학년때는 14.5점 3.5리바운드 4.3어시스트를 기록, 이때 조지아 공대는 17승 13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4학년때는 17.0점 4.3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졸업했다. 이 때 조지아 공대는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지만 기량을 인정받았던 전태풍은 ALL ACC 컨퍼런스 세컨드팀에 뽑히게 된다.
1,2학년때는 필드골이 30% 초반대로 안 좋았지만 3,4학년때는 40%대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TS%는 3학년때 59.4%, 4학년때는 57.7%를 기록했다. 4년동안 3점슛을 301개를 성공했고(성공률은 37.1%) 이는 조지아 공대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그러나 사이즈가 애매하고 실력 역시 그 사이즈를 커버할 정도로 전국에서 압도적인 건 아니여서 결국 NBA 입성에 실패,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여담으로 전태풍이 졸업한 후 곧바로 그 유명한 크리스 보시와 재럿 잭이 입학하기도 했고, 2003-04 시즌에는 크리스 보시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공대는 NCAA 파이널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코네티컷 대학교에게 82-73으로 패배하여 준우승을 차지했는 데 이 때 코네티컷의 원 투 펀치가 바로 에메카 오카포와 벤 고든이었다. 오카포는 이 때 24득점 15리바운드 2블록슛 필드골 10/17을 기록하며 조지아 공대를 압살했다. 오카포는 2004 NBA 드래프트 2순위로 샬럿에 입성했고, 벤 고든은 곧바로 3순위로 시카고에 입성했다.
3.3. 유럽
유럽에서 그가 거쳐간 국가는 러시아, 프랑스, 터키, 폴란드, 크로아티아, 그리스, 불가리아. 스탯은 보통 평균 10~15점에 어시스트도 5개 이상 기록하면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이 중 폴란드에서는 통합 23경기 15.0점 5.3어시스트로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통합 39경기 12.1점 5.9어시스트로 팀을 챔프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당시 전태풍은 어시스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어머니의 나라에서 뛰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트라이아웃에서 양동근을 상대로 1:1에서 승리하는 모습이 나오면서 일약 1순위 후보로 지목되었다.[18]
가드가 부실했던 모든 팀들이 탐을 냈던 전태풍을 지명한 팀은 1순위 지명권을 가지게 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을 내는 순간이었는데, 왜냐하면 허재 감독은 '''순서 상 가장 마지막인 10번째에 추첨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앞의 9개 팀이 모두 꽝을 뽑아서 1순위가 되었다는 뜻. 어쨌든 이상민의 이적으로 그 후계자 육성에 애를 먹던 KCC 입장에서는 단숨에 가드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행운이 따라주었다.
전태풍은 하승진 유튜브에서 이 당시 본인의 기량이 농구 인생에서 가장 뛰어났다 밝힌 바 있다.
4. KBL 시절
4.1. 전주 KCC 이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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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국에 귀화 신청을 해서 빠르게 귀화했고, 이름도 지금의 전태풍으로 지었다. KCC의 공격을 조율하고, 뛰어난 볼 핸들링과 슛팅으로 KCC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다만 기분을 좀 타는 편이라서 기분이 업될 때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신들린 듯한 활약을 보이다가도 기분이 다운되면 영 시원찮은,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허재 감독과 KCC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선수. 가드로서의 볼 컨트롤과 드리블과 같은 스킬에 있어서는 여타 한국 선수들보다 훨씬 낫다는 것이 중평이다. 기본기가 좋고, 순간 스피드가 좋기 때문에 1:1로는 어지간해서 막기 힘들다.
한국어에 아주 능통하지는 않지만, 허재 감독의 지시로 통역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심지어 경기 끝나고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국어가 늘면서 곧잘 인터뷰도 잘 한다. 다만, 이게 어휘 구사에서 골때리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팬들에게는 아주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쯤 되면 과장 살짝 보태 레알 귀요미 수준(…)."속공 잘됐어요. 슛 잘했어요"(경기에서 이긴 후, 승리 이유에 답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전태풍씨입니다. 시청자 하라분(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니다"(2010년 새해 인사에서)
"4쿼터 됐어요. 다리 힘들어요"(4Q 막판 덩크에 실패한 이유를 묻자)
"안 돼요. 감독님 모가지 잘려요"(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허재 감독을 놓고 덩크하는 것이 어떻냐는 질문에)
"감독 얘기하는 거 힘들어요. 미안해 감독님."(가장 어려운 한국말을 묻자.)
KBL에 대한 불만 사항으로 귀화 선수에게는 강제로 3년 마다 팀을 바꾸도록 하는 규정을 들고 있다. 사실 캐나다 국적인 김효범이 정상적인 FA를 취득하는 것에 비해 차별적인 것도 맞다. 이 때문에 농구 팬들은 KBL과 김효범을 까지만, 한편으로는 KCC에서 나와 다른 팀에 간 전태풍의 활약도 은근히 기대하는 편.
2012년 3월 11일, 소속팀인 전주 KCC 이지스가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 스윕으로 패배를 당해, 4강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KCC에서의 생활은 마무리짓게 되었다. 현재 혼혈 선수를 영입한 이력이 없는 서울 SK 나이츠, 울산 모비스 피버스, 원주 동부 프로미, 고양 오리온스가 전태풍을 지명할 수 있는데, 김선형과 양동근, 김시래, 박지현을 보유한 SK, 모비스, 동부보단 상대적으로 가드가 약한 고양 오리온스에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리온스 역시 5억을 지를거라 공언하며 사실상 오리온스 단독 입찰 분위기.
4.2. 고양 오리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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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3일 발표된 혼혈 선수 드래프트 결과에서 고양 오리온스의 지명을 받아 오리온스로 가게 되었다. 가드가 약한 오리온스가 포인트 가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 이로서 오리온스는 김승현 부상 이후 계속되어온 포인트 가드 부재의 악순환을 끊게 되었다.
2012년 10월 13일 KT와의 시즌 개막전에 출장한 전태풍은 18점 7어시스트 5리바운드로 맹활약했고 팀의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2012-13 시즌 평균 12.2점 6.1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KBL에 와서 처음으로 어시스트 1위를 기록했지만 KCC에서 보여줬던 파괴력보다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전보다 공격력이 줄어들고 느려져서 이제 노쇠화가 진행됐다는 평가. 그럼에도 KBL을 대표하는 다른 3명의 가드(양동근, 김태술, 김선형)에 비등비등한 실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스피드가 느려진 현재 김선형에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19]
그런데 인터뷰에서 밝히길 노쇠화보다는 골반쪽에 문제가 있어서 발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더불어 별로 오고싶지 않았던 오리온스였기에 의사소통도 많이 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몸상태가 좋다고 했다.[20]
하지만 본인의 말대로 몸상태는 좋아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오리온스라는 팀에는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약간 겉도는 플레이가 작년보다 더 심해졌다. 그로 인해 오리온스는 4연패를 기록했고 더불어 전태풍 역시 저번 시즌보다 부진했다.
결국 포인트 가드 역할을 해줄수 있는 전태풍을 필요로 하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로서 부산 kt 소닉붐은 조성민과 전태풍이라는 좋은 가드라인업을 운영할수 있게 되었다. 트레이드 직후 인터뷰에서 대놓고 이런 말을 했다. 오리온스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수 있는 부분. 그런데 올스타전 이후 트레이드가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멘붕하기도 했다. 기자가 물어보자 "벤치에 앉아 있어야죠"라고 대답하기도. 하지만 극적으로 고양 오리온스와 부산 kt 소닉붐이 극적으로 합의 하면서 다행히 무사히 갈 수 있게 되었다. 댓글의 반응은 북한 탈출 후 납북되었다 재탈출에 성공했다는 식.
4.3. 부산 kt 소닉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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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스타팅으로 뛰었다. 하지만 전반에는 특별한 활약 없이 야투를 단 한개도 성공하지 못하고 자유투로만 2점에 그쳤다. LG의 지역방어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그러나 후반에는 슛이 좀 터지면서 풀렸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아쉬운 턴오버를 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조성민과의 시너지도 아주 좋은편은 아니였다는 평가가 많은편..[21] 그 후에도 KT가 3연패를 하면서 전태풍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상당히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전창진 감독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전자랜드전에서 첫 승을 했지만 전태풍의 모습은 그다지 별로였다. 하지만 그 다음 오리온스전에서 10점 9어시 야투율 5/6을 기록하면서 조성민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그 이후로 잘 한다 싶었지만 시즌 후반될수록 점점 부진하게 되고 경쟁포지션인 김우람의 폼이 올라오면서 결국 주전에서도 밀리게 되었다. 심지어 KT에서도 조성민에게 MVP를 주기 위해 공격을 몰아주는 경향까지 보이면서 존재감이 없는 선수로 전락하였다. "무득점에 그친 전태풍, 존재감도 제로." 딱 현재 전태풍에 어울리는 말이다. 본인이 밝히는 이야기로는 생각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감이 확 떨어지면서 무기력해 졌다고 한다. 더불어 많은 패턴에 익숙치 않은 전태풍이 KT에 와서 복잡한 패턴을 포인트 가드로서 수행해야 하니 더 못하게 된 걸수도 있다. 더불어 전창진 감독에게도 점점 신뢰를 잃어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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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진이 계속되자 전태풍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동시에 언론이나 해설자들에게도 지적을 받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전창진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고 전창진 감독이 왜 농구하면서 벤치의 눈치를 보냐고 하자 KT의 패턴에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밝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감독은 전태풍에게 자유로운 플레이로 팀을 이끌길 원했지만 전태풍은 패턴에 지나치게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기의 플레이가 안나오게 된것.[22] 전자랜드전에선 예전 스타일로 돌아가면서 10점 7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용병싸움에서 밀려 패배하였다. 그 후로도 그냥 별로 눈에 띄는 활약은 하지 못했다. 출전시간도 점점 줄어들어 평균 26분정도 뛰는데 그치고 말았다. 결국 평균득점은 3점정도 내려가고 평균 어시스트는 2.3개 정도 내려갔으며 필드골, 3점슛, 자유투 모두 최저를 기록하면서 흑역사를 썼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서 팬들에게 실망감만 주었다. 특히 조성민 역시 부상여파로 부진하면서 KT는 엘지에게 3대0 떡실신. 연봉이 깎이는건 불가피 해 보인다. 그런데 5억원으로 동결되었다. 그 후 인터뷰에서 13-14 시즌은 정말 몸과 마음이 전부다 제대로 되지 못했다고 하며 이승준의 연봉 삭감을 보고 위기 의식을 느꼈는데 한 시즌 더 부진하면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시즌 KT의 트레이너 말에 의하면 전태풍 본인이 스스로 맞춤 훈련 일정을 짜왔는데 본인이 봐도 전혀 손색이 없을정도로 좋은 프로그램이라 하고 전태풍 스스로도 둘째를 출산하면서 더 독하게 마음을 먹은것 같다고 하였다. 전창진 감독 역시 본인이 가장 기대하는 자원 중 하나라고 하니 14-15 시즌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조성민이 무릎 부상으로 적어도 2달은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더욱 전태풍의 활약이 KT로서는 필요하게 되었다. 조성민이 나간 이상 전태풍이 에이스가 되어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에서 말한대로 주말 개막2연전에서 양날의 검의 모습을 보였는데, 원정경기인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20득점으로 팀을 캐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 홈 개막전인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경기에서는 저조한 야투를 보이며 전역귀 모드로 팀이 패배하는것을 막지 못했다.[23]
그런데 그 후 2경기는 내리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2연승을 주도 하였다. 그 후 팀은 2연패를 다시 했지만 전태풍은 매치업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시즌 초반 KT는 거의 용병들이 무존재감인지라.. 전태풍 원맨팀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24] 11월 14일 전자랜드전 13득점 12어시스트 더블더블을 했어도 경기는 91대 69로 대패. 조성민의 부재가 너무 크다. 그나마 이재도가 득점력에서 부담을 덜고, 에반 브락의 합류로 마커스 루이스보다 나은 활약 속에 조금 부담이 줄었다. 현재의 평가는 KCC 시절만큼의 파괴력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부활했고 KBL 최고 수준의 포인트 가드 정도(?). 그리고 조성민이 복귀하자 자기의 부담을 덜었다고 누구보다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 조성민이 복귀하고 본인은 오히려 하락세이며 조성민과는 거의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팀의 주축으로 활약 했지만 너무 무리했는지 오른쪽 무릎부위 통증으로 아웃되었다. 그 사이 이재도, 조성민, 찰스 로드 등이 잘해주면서 팀은 5승1패라는 성적을 거뒀다. 12월 중순쯤 나갔는데 2~3주 정도 휴식을 취하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나올 예정이다. 결국 올스타전 이후 나왔으나 8분도 안돼서 착지 과정에서 허리를 다쳐 나갔다. 전창진감독에 의하면 복귀시기가 언제인지 모르며 너무 들뜬 나머지 제대로 몸도 안푼 결과라 하며 아쉬워했다. 6강 싸움에서 힘든 위치에 있는 KT로서는 상당히 악재가 되었다. 부상 회복 후 복귀하긴 했지만 기복있는 모습을 보여줬고 KT의 6강 플레이오프 탈락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전태풍으로서도 한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였다.
귀화선수 규정상 KT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였기 때문에 10개 구단이 자유롭게 입찰에 나서고 가장 높은 연봉을 쓴 팀과 계약해야 한다. KT에서 몇년 더 뛰다가 은퇴하고 싶었던 전태풍은 '''언제까지 본인을 혼혈로 묶을 것인가 장난은 그만쳤으면 좋겠다'''라며 분노하였다. 더군다나 포인트 가드 포지션 특성상 팀을 리드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팀과 감독에 적응하기 더욱 어려운것도 사실이고 그런 이야기 또한 인터뷰에서 하였다.관련기사 그리고 KT에 새로 부임한 조동현 감독은 전태풍이 한국형 조직농구에 안맞는 선수라 디스(?)를 하면서 사실상 결별의사를 밝혔고 김태술의 부진과 김민구의 부상으로 위기를 맞게된 친정팀 KCC와 김시래의 군입대로 포인트 가드가 필요한 LG 이 두팀이 영입경쟁에 뛰어들어 두 팀 중 한 팀을 선택하는 입장에 놓였다.
4.4. 다시 KCC로
4.4.1. 2015-16 시즌
그리고 5월 24일, KCC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이며, 총액은 5억 4천만원.[25] 다만 본인이 포인트 가드로서 뛰는 걸 강력하게 희망했지만 팀에는 김태술이 이미 있어서 이야기가 많은 상황이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단순히 1번, 2번 이런식으로 나누는 게 아니라 투가드로 뛰면서 맞추겠다고 하였다. 더불어 더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 선수들의 체력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좋으면 좋았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고, 비시즌에도 팀 훈련과 체력훈련을 엄청 시키는 게 그 이유. 어느 나라도 그런식으로 체력훈련을 열심히 하는 걸 못 봤고 주로 비시즌 때는 개인 기술 훈련이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술적으로는 부족한 게 많아 한 명을 제낄 때 온 힘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한 반면 본인은 힘을 다 쓰지 않아도 기술을 이용해 제끼는 게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였다. 최근 한국 선수들도 개인 스킬트레이닝을 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많은 팬들이 공감하고 있다.
1라운드에서 꽤나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KCC는 6승 3패를 기록 했으나 제법 무리했는지 허리와 골반쪽에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김태술이 오면서 포지션이 겹치고 하다보니 이후에는 1라운드 때에 비하면 주춤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전태풍의 장기중 하나였던 페네트레이션 이후 킥아웃 해주는 플레이가 거의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고 슛감도 많이 떨어졌다. 한마디로 표현 하자면 오리온스 2년차 MK-2인 상황. 심지어 KCC의 새로운 용병인 안드레 에밋은 개인 플레이 성향이 상당히 강한 선수이며 김태술 역시 볼을 가지고 하는 포인트 가드 인지라 더욱 그런면이 나타난다. 추승균 감독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다가 결국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시작하자마자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하고 나갔다.
전자랜드전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으나 다시 폼을 어느정도 회복을 했고, 완전히 리그에 적응한 안드레 에밋을 보조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 전주 KCC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냈다. MVP까지 거론이 되고있긴 하지만 기록 자체는 14-15 시즌에 비해서도 많이 하락했고, 양동근이 13점이 넘는 평균 득점에 어시스트 1위까지 하면서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양동근에 1표차로 밀리면서 아쉽게도 MVP 획득에 실패했고, 베스트 5에도 들지 못했다. 그래도 MVP에 대하여 양동근은 아주 좋은 선수이며, 24시간 농구만 생각하는 훌륭한 선수라고 전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KGC와의 4강전에서 4경기 13.8점 4.3리바운드 4.0도움을 기록하면서 에밋과, 하승진을 잘 보조했다. 특히나 KCC가 패배한 3차전에서는 그야말로 KGC 포인트 가드진을 압도하며 팀을 연장까지 이끌기도 했다.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는 조 잭슨을 상대로 좋은 플레이+트래쉬 토크로 활약 하면서 팀의 역전승을 도왔다. 다만 경기 후 매우 힘들어질 거 같다면서 오리온의 전력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결국 그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는데, 2차전에서도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3쿼터 턴오버 이후 김태술과 교체되어 나오지 못했고 팀은 28점차로 대패하였다. 3차전에는 오랜시간 출전을 했으나, 에이스 에밋이나 센터 하승진이 그냥 막히면서 게임이 터졌고 본인도 10득점을 했으나 5점은 4쿼터 가비지 타임에 나온 득점이었다. 그리고 막판에는 체력 문제도 겹쳐 매치업 상대인 조 잭슨에게 속절없이 뚫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차전에서 1쿼터에 활약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 뒤로는 체력 문제인지 조 잭슨에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5차전에서 홈경기에서는 20득점 5리바운드 3어시스트로 에밋(38점 9리바운드 6어시스트)의 뒤를 받쳐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마지막 6차전에서는 체력적인 문제를 빠르게 보이면서 6점 3도움에 그쳤고(야투 시도 자체가 많이 없었다) KCC는 120대 86이라는 큰 점수차이로 패배했다. 평균 기록은 12.2점 3.3리바운드 2.8도움에 야투 성공률 49.02%, 3점슛 성공률 52.63%.
4.4.2. 2016-17 시즌
2016-17 시즌을 앞두고 컨디션이 좋다고 하였으나 프로/아마 최강전에서 성재준과 부딪히면서 코뼈가 골절됐다. 그래서 3주간 아웃이 됐으며 몸 상태는 안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팔꿈치 부상까지 당하면서 나오는 경기 내내 부진했고, 결국 11월 5일 경기에서는 결장했다. 이로서 KCC는 전태풍, 에밋, 하승진 작년 준우승 주역 멤버들이 모두 부상으로 빠지는 상황이 되었다. 인터뷰에 의하면 팔꿈치 부상은 개막 이전 당했고, 인대가 찢어져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무리해서 뛴 상황이라고 한다. 수술을 한다면 시즌아웃까지도 되는 상황이라 한다. 결국 수술을 결심했고, 야구선수들, 특히나 투수들이 자주 한다는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시즌 아웃되었다.
4.4.3. 2017-18 시즌
원주 DB 프로미와의 개막전에서 복귀, 26분 동안 7득점 1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에밋의 볼 호그로 인해 볼 잡을 시간 자체를 거의 잡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지만 워낙 볼 잡을 기회가 없어서 기록 자체는 크게 하락하였다.
그 후에 전주 KCC의 주전 가드로 활약을 했으나 중간에 햄스트링 부상으로 1달동안 결장을 했다. 복귀 후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또다시 삼성전에서 종아리 부상으로 4주 진단을 받고 시즌아웃 되었다....고 하지만 7일 전태풍은 최근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일단은 시즌아웃은 아니라는 소식이 나왔다. 그리고 3월 9일 부산 kt전에서 복귀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실제로 전태풍은 이번 시즌에 우승하지 못하면 실패한 시즌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번 kcc의 6번째 챔프 우승에 대한 목마름이 누구보다도 크다.[26]
인천 전자랜드를 상대한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5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0분 가량 뛰며 5.6득점,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서울 SK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는 4경기에서 평균 18.58분을 뛰며 8.25득점, 2.5어시스트, 3.25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전태풍도 이제 노쇠했다는 생각이 드는 기록일 수 있지만 4차전 막판에 맹활약을 펼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4차전 1분을 남기고 송교창의 득점을 어시스트하고 신발이이 찢어지는 바람에 갈아신고 107-112로 뒤지고 있는 경기 종료 29초 전 재투입된 것을 시작으로, 돌파 후 레이업으로 2점 → 파울 작전 → 돌파로 자유투 획득 후 2개 모두 성공 → 파울 작전 → 김민수를 앞에 두고 3점을 성공시키며 9.1초를 남기고 114-116 턱밑까지 따라붙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SK 정재홍이 자유투 2개 중 1개를 성공시켰고, KCC의 마지막 공격에서 이정현의 3점슛이 빗나가며 17-18시즌을 그대로 마무리했다.여담으로 1차전에서 최부경의 골반에 머리를 부딪힌 것을 팔꿈치에 맞은 것으로 오해해 화를 내다 팀동료 하승진과 이정현의 만류, SK 김선형의 설명으로 오해를 푸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 KCC와 1년간 1억 8000만원의 계약을 체결해 잔류하게 되었다.
4.4.4.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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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부터 플레잉코치로 뛰면서 정식 감독이 된 오그먼 감독을 보좌했는데, 주 임무는 '''통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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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9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패러디한 프레디 풍큐리로 변신해 특별 공연을 연출하였다..
4.4.4.1. SNS 사진 공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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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난 뒤인 5월 14일, 재계약 할 필요 없이 은퇴하라고 권유를 한 최형길 단장의 거짓말로 본인을 분노하게 만들어 버리자 SNS를 통해 이와 같은 메세지 사진을 올리며 비판했는데, 그것도 1차 FA 협상 때 재계약 불발로 내쫓아 버린 하승진이 은퇴한 이후 곧바로 일어난 일이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선수를 은퇴한 뒤에 코치를 임용하거나 연봉 금액에 대해선 아예 없었던 데다가 구단에 잔류하면 코칭 스태프가 불편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 그리고 본인은 돈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 데 KCC 구단에서 "구단은 6000만원을 원했지만 전태풍이 1억 2000만원을 요구해서 불발되었다." 라는 식의 소문을 내서 분노를 더더욱 한다 언급하였다.
또한 서류를 빨리 보내면 다른 팀으로도 갈 수 있다며 KCC에서 "15일에 일괄적으로 보내겠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보니 빨리 서류를 보냈어야 한다면서 KCC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일으킨 선수를 받아줄 구단이 있을까?" 라는 말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퍼지자 대다수의 농구 팬들이 분노하였다.
4.5. 서울 SK 나이츠
4.5.1.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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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1년 7천 5백만원에 서울 SK 나이츠로 이적했다.
최원혁, 이현석의 입대와 변기훈의 쇠락으로 가드진에 구멍이 뚫려버린 SK로서는 경험 많은 포인트 가드인 전태풍의 영입은 훌륭한 무브였다고 할 수 있다.
SK 영입 이후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 '''도중에''' KCC가 전태풍에게 전세를 들어줬던 집에 부동산업자가 왔다는 것도 밝혀져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했다. 링크 [27]
네이버스포츠 라디오 프로그램인 바스켓 카운트에 출연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먼저 본인이 원클럽맨으로 남고 싶었는데 너무 많은 팀을 옮겨다닌것 같다라고 얘기했고, 혼혈선수 3년 제한 규정때문에 KCC를 떠났었다가 다시 돌아왔었던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KCC를 떠나게된점은 마음이 안좋지만 팀이 리빌딩을 해야하기 때문에 본인은 이해한다고 밝혔다. 자신과 같이 팀을 떠난 하승진이 자신도 KCC를 사랑했었지만 하승진은 더 사랑했었다면서 안타깝다고 했다.
SK로 오게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밝혔는데, 먼저 FA제안을 했던 팀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동료 선수들의 추천을 받고 [28] SK의 문경은 감독과 삼성의 이상민 감독에게 연락을 해서 일종의 본인 PR을 했었는데, 이후 문경은 감독과 만나서 문경은 감독이 돈을 많이 줄수 없다고 밝혔고 본인은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잘하고 싶은게 목표기 때문에 액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며칠동안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던 찰나 문경은 감독이 전화를 통해 영입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말했었다고 한다. 본인 입장에서는 새로운 팀을 얻게되었으니 매우 기뻐서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전태풍이 말한 문경은 감독의 장점은 선수들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감독이라고 말했다. SK에서도 상무로 가는 것으로 확정된 최원혁의 번호를 받아 3번을 단다고 한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부터 은퇴 시즌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다만 개막 전 터리픽12 대회 때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개막 후 한 달 정도 지난 11월 초에야 엔트리에 합류했다.
백업 자원으로서 쏠쏠하게 뛰어주며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에 도움을 줬다. 출전시간도 적고 나이도 있는 만큼 예전처럼 많은 득점을 하지는 못하지만 때때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했다. 선수로서 마지막 올스타전에 실제 자신의 바이크를 타고 입장 퍼포먼스를 했고 3점슛 컨테스트에는 SPOTV 중계에 객원 해설로 등장하기도 했다.
2020년 1월 25일 삼성전에서 천기범과 볼 경합하는 도중 팔꿈치로 천기범의 뒤통수를 가격해 논란이 일었다. KBL 재정위원회는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고 구단은 자체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전태풍은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흥분해서 저지른 잘못이었다며 천기범과 농구 팬들을 향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상대 선수를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는 위험한 반칙에 대한 팬들의 비판 여론은 한동안 피하지 못했다.
2020년 2월 29일 전자랜드전이 그의 선수로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전태풍은 경기 도중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날을 끝으로 리그가 잠정 중단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4쿼터 막판 문경은 감독에게 뛰게 해달라 요청했다. 경기 종료와 함께 넣은 8m 버저비터가 그의 프로 마지막 득점이 됐다.[29]
은퇴 직후 인터뷰에서 이제는 방송인으로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5. 은퇴 후
친구인 하승진처럼 KBL를 비판하였다.
은퇴 후 이승준, 이동준과 함께 한솔레미콘 소속으로 3대3 대회에 참가하였다. 초반 몇 주는 3대3에 적응하지 못했고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결승전에서 팀을 캐리하며 MVP를 받으며 팀을 우승시켰다. 이 때 아프리카 프릭스의 한준혁과 트래시 토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전태풍은 인터뷰에서 트래시 토크를 걸어줘서 너무 좋았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았으며 트래시 토크 및 플레이를 열심히 해 준 한준혁을 리스펙트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6. 플레이 스타일
전태풍의 포인트 가드로서의 플레이 스타일은 그야말로 공격형 포인트 가드. 처음 KCC에 입단했을때는 그야말로 KBL판 아이버슨을 연상시킬정도로 화려한 드리블과 득점력을 자랑했지만 반대로 패스나 리딩에서는 살짝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30]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패스의 빈도가 늘어났고 공격과 패스의 조화가 절정에 달했던게 2009-10시즌 플레이오프, 2010-11시즌 부상 당하기 전, 2011-12시즌이었다. 하지만 오리온스에 가면서 한국형 패스 위주의 포인트 가드로 거의 바뀌었으며 그 다음 시즌에는 포인트 가드보단 슈팅 가드로서 뛰는데 김동욱, 이현민과 함께 뛸 때면 그야말로 병풍신세가 되기도 한다.
드리블 능력은 여전하지만 KBL식 가드로 점점 변하고 나이도 먹으면서 처음 보여줬던 폭발적인 플레이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한명 정도는 혼자서 제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서 다른 KBL 가드들이 드리블도 제대로 못치는 상황이 오자 처음 폭발력있던 스타일이 다시 재평가 받는 중이며 문태종 이후의 국가대표로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지만...[31]
한 마디로 따지면 처음 전태풍과는 달리 2016년 기준의 전태풍은 상당히 애매하고 계륵같은 스타일의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본래의 유니크함도 KBL 처럼 플레이하길 바라는 풍토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고, 그렇다고 KBL에서 가장 바라는 퓨어 포인트 가드도 아닌 그냥 이도저도 아닌 포인트 가드가 되어버렸다. 유재학 감독과 함께 본인의 강점을 살려서 MVP를 여러번 휩쓴 양동근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
2018년 12월 8일 코치가 필요한 팀의 상황에 따라 플레잉코치에 선임되었다. 그렇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경기에 출장치 못해 아쉬움을 줬다.
6.1. 장점
'''전태풍'''의 가장 돋보이는 장점이라 하면 역시 '''드리블 능력'''. 어린 시절부터 연습을 해온터라 드리블 스킬이 국내선수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난 수준. 길거리 농구에서나 나올법한 기술들을 실제 경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다.[32]
사실 드리블에 가려서 그렇지 전태풍의 가장 뛰어난 장점은 바로 '''슈팅'''이다.[33] 조지아 공대 시절 기록을 봐도 눈에 띄는 점은 바로 3점슛 성공률과 그 갯수였으며, 현대 농구에서 가드가 가장 갖춰야 할 점이 슈팅이란걸 감안하면 정말 큰 장점이 아닐수 없다.
패스 능력역시 수준급이며, 시야역시 뛰어난 편이다. 특히나 수비를 개인능력으로 찢은 뒤 패스를 빼주는 능력이 상당히 좋다. 더불어 키는 178cm로 가드로서도 작은키에 속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여 피지컬이 1번 포지션에서 탑 수준이고 스피드 역시 상당히 빠르다.[34]
즉 개인능력만 보면 KBL 포인트 가드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기분파답게 한번 분위기를 타면 1대1로는 막을 선수가 없다.
6.2. 단점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한 선수인데 가장 단점으로 지적되는 건 바로 '''수비'''이다. 오펜스에 비해 수비력은 상당히 떨어지는편. 1대1 대인방어는 좋은 편이지만 지역방어에서 약점을 드러내 3점슛을 얻어맞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게다가 이건 KBL기준이지 만약 해외농구 기준으로 본다면 전태풍은 1대1 대인 방어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 수준이다. 키가 작고 윙스팬이 긴 것도 아닌데 하체 힘이 강한 편도 아니다. 하승진이 말하길 전태풍은 수비만 잘했어도 NBA는 갔다고 말했으니 말 다한 셈. 또 포인트 가드로서 '''감정 컨트롤이 서툰 편에다가 기분파인데''' 잘될 때는 기분이 좋은 반면 상대에게 좀 심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면 무리하는 감이 있고 그러다가 좀 말린다 싶으면 흥분하면서 게임을 던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에 벤치에서 컨트롤을 해줘야 한다는 점도 단점이다. 강한 승부욕에다 분위기를 타는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래서 나온 별명이 '''전역귀'''이다.[35]
가장 커다란 단점은 바로 '''부상'''. 피지컬은 좋지만 부상을 자주 당하는 선수 중 하나이다. 부상이 선수의 생명을 갉아먹고, 전성기를 짧아지게 한다는 걸 감안하면 이건 정말 치명적인 단점이다.[36] KBL에 오기 전에 이미 부상을 한 번 겪고 운동능력을 많이 상실했으며, 첫 시즌에서는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두 번째 시즌에서는 '''허벅지 근육파열''',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세 번째 시즌에서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결정적인 순간에 거의 나오지 못하면서 팀의 패배를 바라봤다. 게다가 왼쪽 발뒷꿈치 '''하글런디시병'''까지 걸리면서 완전한 완치는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2014-15 시즌에도 '''무릎 부상'''으로 몇경기 이탈했다가 올스타전 이후 복귀하자마자 '''허리 부상'''으로 결장하게 되었다.
2015-16 시즌에는 레이업 후 착지하던 도중 카메라맨의 발을 밟고 '''발목 부상'''을 당했다. 2016년 프로 아마 농구 최강전에서는 1쿼터에 상무 성재준과 부딪히면서 '''코뼈'''가 또 골절되었다. 그리고 2016-17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로 인해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시즌 아웃. 2017-18에는 부상이 없나 싶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또 다시 한 달 결장. 그리고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 부상'''으로 아웃.
7. 수상
7.1. 대회 기록
- KBL 플레이오프 우승 1회(2011)
7.2. 개인 수상
- KBL 베스트 5 1회(2010)
- KBL 어시스트상 1회(2013)
- Georgia Mr.basketball 1회(1998)
- All-ACC Honorable Mention(Media) 1회(2001)
- All-ACC Second Team(Media) 1회(2002)
- Poland-DBL Assists 1st 1회(2007)
- Croatian League Assists 1st 1회(2008)
8. 기타
- 유럽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던 용병이었으나, KBL에 올땐 이미 30세의 나이였고[37] 개인기를 자제시키는(…) 한국농구에 적응하면서 전성기때의 기량은 잃어버린 상태. 물론 그럼에도 스타급 포인트 가드로 통했다는 점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의 실력을 예상할 수 있다.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이적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데 한국이 좋아서 거절했다고 한다.
- 2015-16시즌이 끝나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미국 스타일 농구를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매일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 프리하게 놔뒀다고 알려져 있던 허재 감독마저 플로터를 쏘지 못하게 했고[38] 드리블 스킬 역시도 자제하고 패스를 돌리라고 주문을 했고 속공 상황에서 3점 슛을 쏘는 건 당연히 반대를 했다. 더불어 투 포 원 플레이 역시 근본없는 플레이라 까였다.매일 그런 소리를 듣다 보니 본인도 모르게 위축이 되었고, 한국 스타일의 농구로 적응을 하면서 본래 스타일을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반대로 추승균 감독은 왜 그때 스타일로 하지 못하냐고 이야기했고, 이미 7년동안 한국 스타일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쉽지 않을 거라면서 다시 그 리듬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퇴 후에는 KCC에서 코치를 하거나 스킬 트레이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서도 스킬 트레이닝 열풍은 좋은 현상이라 이야기했지만 최대한 어렸을 때 해야 실력이 확 는다며 다시 한 번 어린 시절 기술을 익히는 걸 강조했다. 이 인터뷰를 보면 단순히 국내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서 부진하고 기술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꼭 그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전태풍마저도 저런 식으로 못하게 제약을 걸었는데 다른 국내선수들은 더 많은 제약을 걸었음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마지막으로 드리블에 대해 강조하며 드리블 연습 방법 영상을 촬영했다.
- SK로 트레이드 된 후 많은 인터뷰를 하였는 데 KBL에 온 후 4년차부터는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다 이야기를 하였다. 크블식 스타일로 강제로 뜯어 고쳤기 때문이라 했고 본인을 받아준 KBL과 한국에게는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KBL은 이대로는 안 된다며 쓴 소리를 하였고, 현재 KBL의 지도방식은 선수의 BQ를 살리기는 커녕 오히려 죽이는 상황이라 하였다. 또한 SK에서 딱 1년만 뛰고 은퇴를 할 것이라며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말도 하였다.
- 키는 작지만 덩크슛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동부전에서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올스타전에서도 실패했다. 본인 말로는 늙어서 점프력이 떨어졌다고... 그런데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덩크하는 영상을 올렸다.[39] https://www.instagram.com/p/66nJKNIntx/
- 헐리웃 액션을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워낙 정면 승부를 좋아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한 성격이 이유인듯 하다. 그런데 나이를 좀 더 먹고 액션이 과장되는게 보여지긴 한다.
- 국가대표 멤버들과 유재학 감독이 회식 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하자 바로 "애들이 저한테 형이라고 안 불러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재학 감독은 "전태풍보다 한 살이라도 어린 놈은 다 형이라고 부르고 존댓말 해"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선수로 유명하다. 사진도 잘 찍어주고 사인도 잘 해준다고 한다.[42]
- 어린 시절 인종차별은 백인과 흑인 양쪽 모두에게서 받은 기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본인에게 상처가 된 것은, 본인이 충분히 자란 후로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당했을 때라고 한다.
- 트래쉬 토크를 상당히 즐겨하는 선수인데, 그 수위는 케빈 가넷이나 게리 페이튼같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정도는 아닌 약한 편. 주로 넌 나에게 안된다, 안 들어간다 등 이 정도이다. 다만 한국 농구판 자체가 선후배 관계가 심해서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 1차전 직후 김민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코트 위는 전쟁터"라는 발언 자체가 틀린 건 아니지만[45] 그 대상이 같은 혼혈 선수인 문태종이였고[46] , 음주운전으로 무한 안티를 양성했던 김민구였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 한국말이 아직 완벽하지 않아 영어의 속어 표현을 직역하는 경우가 있다.[47] '김민구는 간이 크다, 배짱 있다'고 하고 싶었던 말을 "김민구는 불X이 크다"라고 이야기했다. "He's got some balls"라는 표현을 직역한 것. 다만 그 당시 분위기가 살벌해서 현장 사람들이 웃겨도 웃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 SK 이적 후에도 지속적으로 KCC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는 발언을 많이 했다. KCC 구단이 연봉 문제 등에 대해 전태풍에게 무조건적인 의리를 요구했고 이를 묵묵히 선수생활 말년까지 받아들였는데 완전히 내치는 형태로 팀에서 나가라고 하여 충격이 컸던 듯.
- 유튜브를 개설하고 구독자 1000명 공약으로 삭발을 하겠다는 공약을 세웠고 구독자가 1000명이 되자 정말로 삭발영상을 업로드했다. 해당 영상에서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전태풍의 아내이며 자녀들도 같이 나왔다(...).
9. 관련 문서
[1] #[2] 현재는 대한민국으로 귀화했으므로 법적인 이름은 전태풍이다.[3] 본인 유튜브 댓글에서 "신발 신으면 183!" 이라고 말한 바 있고 하승진 유튜브에서 nba 2k21 전태풍 키우기 캐릭터를 만들때 직접 잰 키가 179cm로 나왔다. 게임 캐릭터 신체 사이즈를 설정할 때 키 5피트 11인치(약 180.3cm), 몸무게 180파운드(약 81.6kg)로 세팅하였다. 실제 KBL에 처음 들어왔을 때 측정한 신장은 178.4cm이다.[4] 2010년 결혼. 아내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혼혈이다.[5] 전태풍의 세 자녀는 한국과 미국의 복수국적이다. 대한민국은 부모 중 한명이 한국 국적이면 출생국가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을 부여한다. 미국도 일부분 속인주의를 인정하기 때문에 부모 중 한명이 미국 국적이면 미국 출생이 아니어도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2010년 5월 4일부터 선천적인 복수국적자는 만 22세 전까지 한국 내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남성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조건 하에 복수국적을 허용하도록 대한민국 국적법이 개정되었다.[6] 러시아 리그[7] 프랑스 리그[8] 터키 리그[9] 프랑스 리그[10] 폴란드 리그[11] 크로아티아 리그[12] 그리스 리그[13] 불가리아 리그[14] 키프로스 리그[15] 전태풍이 귀화할 당시의 한국 법은 외국인 선수의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다.[16] 이 당시 랭킹 1위는 알 해링턴, 2위가 라샤드 루이스[17] 이 당시 전태풍의 점프력은 36.5인치로 약 92.7cm를 뛰었다.[18] 양동근은 이 때 이미 한국 최고의 가드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정작 전태풍은 나중에 은퇴후 밝히길 솔직히 양동근이 누군지 몰랐다고...[19] 그런데 의외로 전태풍을 가장 괴롭힌 선수는 SK의 변현수 선수로 실제로 멀쩡하고 빨랐던 2009-10 시즌에 호되게 당한적이 있다. 실제로 변현수를 상대로 평균이하의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20] 사실 그건 거짓일 확률이 높은 게, 오리온스로 이적했을 당시 전태풍은 한국나이로 33세로, 좀 이르지만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21] 그러나 조성민과 합작 34점을 해줬고 상대 김시래, 양우섭 조합은 7점을 넣었다.[22] 전창진 감독이 밝힌 바로는 기술자가 있다면 지나친 패턴공격은 별로라고 밝혔으며 패턴들은 3라운드만 되어도 다른팀들이 다 알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23] 사실 전태풍의 부진 자체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의 쫒긴 볼들이 전태풍에게 폭탄돌리기 식으로 갔고 전태풍 본인도 차바위의 거친 수비에 파울이 불리지 않아 짜증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4] 퍼스트 용병인 마커스 루이스는 한지릿수 득점을 기록하고 KCC전에선 '''0'''득점을 하였다. 찰스 로드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타팀 용병들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다.[25] 당시 전태풍이 다시 KCC로 올 수 있었던 것은, 하승진이 스스로 몸값을 5억으로 낮추며 전태풍을 꼭 잡아달라고 윗선에 부탁했던 것. 이로써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26] 그럴 만도 하다. 용병 에밋, 로드의 득점력은 말할 것도 없고, 부상을 달고 다녔던 하승진은 건승진 모드로 이번 시즌 처음으로 전경기 풀타임 출전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송교창의 플레이는 이미 성장했으며, 특히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외곽슛을 성공시킬 정도로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팀의 스코어러 역할을 해주는 이정현을 9억이나 주고 영입하는 등 팀 우승을 위한 전력보강을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한 kcc이기에 더더욱 간절하다. [27] 선수에게 아무 말도 안하고 구단에서 계약을 해지해버린 것. 부동산업자가 오지 않았다면 전태풍은 아무 것도 모르고 가족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을 뻔 했다. KCC는 전태풍의 항의에 선수는 전세를 줄 수 있지만 코치는 전세를 줄 수 없다는 황당한 변명을 했다. 아마 이때 즈음 전태풍과 은퇴 후 코치가 아닌 이상은 더 이상 함께가지 않겠다고 확정지은 듯.[28] 김민수가 전태풍이 FA가 되었을 때 "형은 SK로 와야한다"라고 말했고 전태풍이 KCC에게 버림받자 문경은 감독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고한다.[29] 이날 경기 종료 후 SK 모 코치가 매너 없이 마지막 슛을 왜 쐈냐고 묻자 전태풍은 ‘이게 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의 예감대로 약 한 달 간의 중단 기간 이후 KBL은 리그 재개 대신 시즌 조기종료를 결정했다.[30] 속공시 공격숫자가 더 많은데도 3점슛을 던지는 플레이를 하고 욕을 먹은적도 있다. 사실 전태풍 입단 당시는 이게 욕을 먹고 리딩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으나 속공시 3점은 결코 나쁜 방법만은 아니다. 슛이 좋은 선수들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는 득점이며 공격 리바운드 성공률 또한 높기 때문이다.[31] 일단 전태풍도 상당히 노장에 속한다. 80년생이며 15년 시즌이 되면 한국 나이로 36살이다. 지금 노인소리 듣는 양동근보다는 오히려 1살 형이며 2018년 4월 은퇴한 김주성보다는 1살 동생이다.[32] 실전에서 그런 스킬들을 써먹으려면 기본기가 거의 완벽해야 한다.[33] 2011-12시즌에는 평균득점 15점에 야투율 50%가 넘었다.[34] 나이가 들어서 많이 죽긴 했지만 강약 조절을 잘 하는 편.[35] 이 부분에서 추일승과 허재의 차이가 나오는데 추일승은 조용히 불러들인 다음 계속해서 쓰질 않는 반면 허재는 레이저를 쏘고 다시 코트로 복귀시킨다. 그리고 이런 점이 결정적으로 KBL에서 전태풍이 저평가 받는 큰 이유이며 전태풍보다 양동근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다. 물론 KBL 한정이지만 전태풍이 현재 뛰는 리그는 KBL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36] 엄청난 운동능력을 지녔던 데릭 로즈가 대표적이며, 다재다능 했던 크리스 웨버 역시도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NBA까지 갈 필요도 없이 KBL에서는 오세근이 연이은 부상으로 신인 시절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렸다. 다만 오세근은 그 이후로 재기에 성공해서 잘 뛰는 중.[37] 사실 30세면 전성기에서 크게 멀어질 나이는 아니지만, 이전에 이미 부상을 당한 터라 운동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KBL에 왔다. 실제 전태풍은 전성기 시절 90cm가 넘는 수준급 점프력을 지녀 덩크까지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으나 KBL에서는 덩크를 어쩌다 한 번 연습에서나 할 수 있는 정도였다.[38] 손대범 편집장도 파울아웃에서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한국 농구 원로들은 플로터 같은 기술을 싫어한다고 이야기 했다. 반대로 본토에서는 플로터는 기본기이며 꼭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39] 전태풍은 과거 36.5인치, 약 92cm 정도의 점프력을 보유했다고 한다.[40] 부인도 아프리카계 아버지-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님들끼리 친구사이였다고 한다.[41] 정확하게는 전태풍이 한국에서 뛰기로 결정했을 때 어머니로부터 미나가 한국에 있다는 데 연락 한 번 해봐라는 얘길 들었고 페이스북에서 부인의 프로필을 확인, 메신저로 연락을 해서 만났다고 한다.[42] "형 화이팅~!" 이라고 하자 "응 고마워" 라고 대답. [43] 그렇지만 최근 너무 부진하면서 까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44] 한국말을 어눌하게 해서 아주 순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영어를 쓸 때 보면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파이터 기질이 있다고 본인이 밝히기도 하였고 코트 위에서도 상대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45] 지금은 은퇴하고 연예 활동을 하는 서장훈이 많이 했던 발언이다.[46] 전태풍은 혼혈 차별에 대해 상당히 반대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47] 한국어는 영어권 사람들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이다. 높임말이 있고 체계 자체가 영어와는 다르기 때문. 체계적으로 공부만 해도 수 년은 걸려야 잘 할 수 있는 게 한국어인데 운동선수라면 더욱 시간이 걸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