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미 히로시

 


''' 일본의 축구감독 '''

''' 이름 '''
'''나나미 히로시'''
'''名波浩(ななみ ひろし | NANAMI Hiroshi'''
''' 출생 '''
1972년 11월 28일 (52세) /
일본 시즈오카현
''' 국적 '''
일본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 선수 '''
주빌로 이와타(1995-2008)
AC 베네치아 (1999-2000 / 임대)
세레소 오사카 (2006 / 임대)
도쿄 베르디 (2007 / 임대)
''' 감독 '''
주빌로 이와타(2014-2019)
''' 국가대표 '''
67경기 9골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여담


1. 개요


일본축구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미드필더였으며 은퇴 후 2014~2019년에는 친정팀이기도 한 주빌로 이와타의 감독을 역임하였다.

2. 선수 경력


일본 유수의 축구도시로 불리는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에서 4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형을 따라 동네 클럽의 선발에 뽑혀 축구를 시작하였다. 이후 강호 학교인 '''시미즈'''상고, 준텐도대학을 거쳤다. 시미즈상고 시절에는 오이와 고(현 가시마 앤틀러스 감독) 등과 함께 고교종합체육대회를 우승한 적이 있으며, 대학 재학시에는 U-23 대표팀에 선발되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지역예선에 출전하였으나 교체 멤버였으며, 일본이 예선에서 탈락해 본선에는 나서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주빌로 이와타에 영입되어 첫 해부터 주전을 차지하였다.[1] 선수생활 초기에는 왼발 기술을 살려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특히 당시 주빌로 이와타에는 미드필더의 구조가 둥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나나미는 그 앞에서 공격을 주도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성인 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에는 마에조노 마사키요나카타 히데토시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듀오를 이루는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이 옮겨졌다. 다만 1997년 최종 예선 때는 멤버 구성상 측면 기용이 많았으며,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기용이 확고해진 것은 대표팀 감독이 가모 슈에서 오카다 다케시로 교체된 후 일본 대표팀이 3-5-2 전형을 사용한 시기이다. 뒤를 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은 대표팀에서는 야마구치 모토히로[2]가, 소속팀 주빌로 이와타에서는 핫토리 도시히로가 주로 맡고 나나미는 중간에서 나카타와 함께 패싱 게임을 끌고 가는 형태가 되었다. 2000년에는 AFC 아시안컵 우승을 주도하여 대회 MVP에 뽑혔다.
그러나 전성기가 길지는 못해서 아시아 무대에서는 유상철같이 대인 마크에 능한 수비형 미드필더에 지워지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장기 결장한 이후 대표팀과는 인연이 멀어졌다.
1999년 나카타 붐을 타고 1년간 이탈리아 세리에 AAC 베네치아에 진출했었으나 제대로 자리를 잡지는 못하고 팀이 강등되자 일본으로 복귀하였다. 2006년에는 주빌로 이와타의 세대교체에 말려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출전 기회를 찾아 세레소 오사카도쿄 베르디 임대를 거쳤다. 2008년에는 주빌로에 북귀하여 리그 301경기 출장을 채우고 은퇴하였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주빌로 이와타의 코치직 제안을 거절하고 TV 해설자로 일하다가 2014년 9월, J2리그 강등으로 헤매고 있던 주빌로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풀타임 감독 첫해인 2015년 득실점차가 뒤지는 2위로 마무리하여 팀을 재승격으로 이끌었으며, 5년 가까이 재임하며 주빌로의 프로화 이후 최장수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2018시즌부터 다시금 팀의 부진이 시작되면서 2018년에는 간신히 강등을 면했고, 2019년 7월 팀이 17위까지 처지며 강등이 가까워지자 이에 대한 책임으로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주빌로는 결국 2019 시즌 창단 첫 최하위를 기록하며 2부로 강등되었다.

4. 여담


은퇴 후 1년이 지난 2010년 1월에 은퇴기념 경기가 열렸다. 팀은 주빌로 이와타 OB와 대표팀 선수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나나미는 양쪽에서 뛰며 주빌로 팀에서는 7번, 전직 대표선수 팀에서는 10번을 달았다. 재미있는 건 이 때 참가한 선수들 중에서 고참급이었던 미우라 가즈요시나카야마 마사시가 정작 경기 당시에도 몇 안되는 현역인 데다 미우라는 2020년 현재까지도 현역 생활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

[1] 이 해는 J리그가 14팀으로 구성되는 바람에 52라운드라는 정신나간 일정을 소화하는 해여서 (심지어 J리그컵도 건너뛰었다.) 나나미는 첫 해부터 천황배 포함 53경기에 출장했다.[2] 1997년 도쿄대첩에서 득점한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