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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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
'''도쿄 베르디 '''
'''Tokyo Verdy '''
'''정식 명칭'''
東京ヴェルディ1969
Tokyo Verdy 1969[2]
'''라이센스'''
J1
'''리그'''
J2리그
'''창단 연도'''
1969년
'''연고지'''
도쿄도
'''홈 경기장'''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49,970명 수용)
'''모기업'''
제비오[3]
'''대표자'''
모리모토 조지(사장)
'''감독'''
나가이 히데키
'''킷 스폰서'''
애슬레타
'''애칭'''
베르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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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
'''JSL'''
'''(5회)'''
1983, 1984, 1986-87, 1990-91, 1991-92
'''J1리그'''
'''(2회)'''
1993, 1994
'''AFC 챔피언스 리그'''
'''(1회)'''[4]
1987
'''천황배'''
'''(5회)'''
1984, 1986, 1987, 1996, 2005
'''J리그컵'''
'''(3회)'''
1992, 1993, 1994
'''일본 슈퍼컵[5]'''
'''(1회)'''
1984
'''후지 제록스 슈퍼컵'''
'''(3회)'''
1994, 1995, 2005
1. 소개
2. 역사
3. 주요 선수
4. 기타


1. 소개



일본 도쿄도를 연고로 하는 J2리그 소속의 축구팀을 중심으로 한 종합 스포츠 클럽. 다른 종목 팀으로는 여자프로축구 WE리그 닛테레 도쿄베르디 벨레자, V.리그 2부 소속 배구팀 등을 두고 있다.
1969년 요미우리신문 산하의 일본 최초 프로 클럽으로 창설되었으며, 현재는 멀티스포츠샵 체인인 제비오의 자회사이다.
1993년 J리그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우승팀이다. 팀명인 베르디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을 뜻한다.
[image]
콘도르를 모델로 하고있는 클럽 마스코트 베르디 군.

2. 역사


[image]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동메달을 획득 후 일본 사회에서 축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1969년, 요미우리신문니혼 TV, 요미우리랜드가 공동출자해 요미우리 축구 클럽을 창단하였다. 당시 여타 기업 소속 사회인 클럽이 사내 동호회 형태였던 데 비해 프로화를 염두에 두고 선진적인 독립법인 형태를 취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도쿄를 연고로 도쿄도 사회인 축구 리그에서 시작하여 J리그 출범 이전 일본의 최상위 리그인 일본 사커 리그의 최다 우승팀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1년 10월 J리그 개막에 대비해 요미우리 신문, 요미우리 랜드, 니혼 TV 3개사의 출자로 '주식회사 요미우리 닛폰 축구 클럽'이 설립되었으나 도쿄 내에는 규격에 맞는 경기장이 없어[6][7] 도쿄도 인근의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토도로키 육상 경기장으로 옮겨가게 된다.
J리그 초창기만 해도 일본 내에서 레알 마드리드 CF에 비견되던 강팀이었다. J리그 2연패, 3년 연속 후기리그 우승, 3년 연속 리그컵 우승, 천황배 1회 우승 등 거의 매년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고, 미우라 카즈요시, 마에조노 마사키요, 루이 라모스 등 일본 대표팀의 주전급들이 이 팀의 소속이었다.
그러나 1998년을 마지막으로 요미우리가 경영권에서 손을 떼면서[8] [9] 성적이 급하락. 이후 2001년 도쿄에 49,970명이 수용 가능한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이 개장하자 도쿄로 연고지를 옮겼다. 2004년 천황배 대회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성적 부진으로 급기야 2005년에 J2로 강등되었고, 2008년 1년을 제외하고는 근 10년 간 J2에서 노는 약체로 전락해버렸다. 2009년에는 니혼 TV도 손을 뗐다.[10] 2014년 시즌에선 J2 22개 팀 중 20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마무리. 만약 이 시즌에 더 삽질을 해서 J3리그로 강등됐더라면 J리그 사상 최초로 J1부터 J3까지 다 경험한 팀이라는 타이틀을 달 뻔도 했다. 아직 J1리그 우승 후 3부로 떨어진 데는 없다 보니 여전히 이 타이틀은 베르디가 가장 가깝다.
2017년 시즌 J2리그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리그 6위를 기록하였지만 7위 마쓰모토가 1점차, 8위 치바와 2점차밖에 나지않아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거나 진다면 승강플옵 진출을 장담할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이었던 5위 도쿠시마와의 외나무다리 경기에서 2-1로 승리하여 리그 5위를 차지하며 마침내 승강플레이오프 자리를 획득하였다. (마지막 한자리는 치바요코하마를 잡아내며 도쿠시마를 밀어내고 6위로 진출하게 된다.) 그렇게 고생끝에 승강플옵에 올랐으나 1차전 상대였던 후쿠오카에게 1-0으로 패하며 탈락, 다음시즌도 J2리그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2018시즌에는 6위로 시즌을 마치며 2년 연속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4위인 마치다가 라이센스가 없는 관계로 사다리식 토너먼트로 경기 방식이 변경되어 5위인 오미야 아르디자와 맞붙게 되었다. 오미야로 원정까지 간데다가 비기기만해도 탈락인지라 적극적으로 몰아붙힌덕에 1명이 퇴장당한 상황에서도 골을 집어넣으며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상대는 3위인 요코하마FC였는데 90분까지 0-0스코어가 이어지며 탈락이 예상되었지만 추가시간에 골을 집어넣으면서 0대1로 승리했다. 그리고 J1리그 16위팀인 주빌로 이와타와 승강전을 펼쳤지만 2-0으로 완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2019시즌에는 천황배 3회전에서 호세이대학에 2:0으로 패했다.

3. 주요 선수


한국인 선수로는 과거 김현석, 김도근, 이강진, 김태연, 김종필, 배대원이 있다.
과거 유명한 선수로 브라질 국가대표 출신 헐크가 있다.

4. 기타


[image]
2014년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와 콜라보레이션을 맺고 11월 1일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
[image]
2017년 은혼과 콜라보레이션을 맺고 8월 20일 이벤트를 개최했다. #
같은 연고팀인 FC 도쿄에게 밀려서 인기가 없는 구단이다. 거기다가 2001년에 연고이전 경력 때문에 애정이 덜할 수밖에 없다. 둘이 경기장이라도 다르다면 도내에서 지역별로라도 팬이 갈릴텐데 경기장마저 똑같아서 팬 유입도 어려운 상황. 도쿄라는 연고지를 갖고도 처참한 평균관중수를 자랑한다. 연고이전 전과는 없지만 요코하마 FC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11]
2016년부터 e스포츠 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FIFA, 블레이블루, 오버워치 선수단을 보유 중. #
2020년부터 팀 창단 50주년을 맞아서 새 엠블럼을 사용한다. 그 직전(2001~2019년)에는 아래 엠블럼을 사용했다.
[image]

[1] 바리에이션 [image][2] 2008년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도쿄 베르디라고 부른다. 도쿄 베르디 1969는 법인의 명칭이다.[3] 2020년 12월 과반지분을 확보하였다. 다만 이는 형식상이고, 실질적으로는 이미 2010년에 신주예약권 형태로 출자를 한 상태였다.[4] 전신인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절에 거둔 우승[5] 후지 제록스 슈퍼컵의 전신[6] 유일하게 규격 (1.5만석 및 야간조명 등) 이 충족되는 국립경기장은 공동사용을 위하여 독점이 불가능했다.[7] 같은 사유로 초기 홈구장 시설이 미비했던 관동 지역 클럽들이 종종 국립경기장 홈경기를 치렀다.[8] 사유는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 팀명에 모기업명을 배제하고 연고지명을 반드시 표기하는 규정이 적용되었는데 요미우리 축구단은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 비롯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구단들처럼 운영비 적자를 모기업 홍보비 내지 광고비로 보전하는 방식으로 경영을 해왔기 때문에 누적되는 적자를 해소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 가와사키 시절 도쿄도 이전 전까지 한번도 엠블렘에 가와사키를 명기하지 않았으며, 현재 운영하고 있는 프로야구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우에도 도쿄라는 지역명은 원정 유니폼만 빼고는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도 2018 시즌부터 엠블럼에 도쿄를 표기하기 시작했다. 타 클럽의 경우 모기업을 상징하는 애칭을 달거나 (미쓰비시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전일본공수 → 요코하마 '''플뤼겔스'''(날개) 등) 약자로 박아넣는 (JR동일본, 후루카와전공 → '''JEF'''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등으로 대응했다.[9] 사실 구단명 같은 경우 융통성 있게 적용도 가능한 사안이었지만 일본 프로야구가 요미우리의, 요미우리를 위한, 요미우리에 의한 리그가 되어버렸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 가와부치 사부로 등 J리그 수뇌부에서 견제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 J리그 수뇌부가 요미우리가 기업명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투자로 슈퍼클럽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당시 의사결정에 대해 일본 축구팬들은 요미우리가 언론 장악력으로 리그 입김을 거세게 불어넣는 수도의 슈퍼클럽이 되어 리그를 지배하면 유럽 대부분의 리그처럼 몇개의 슈퍼구단이 지배하는 그런 리그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긍정론이 존재하지만, 근래 J리그 수뇌부가 J리그 부흥의 마지막 한큐로 스타들이 즐비한 도쿄 연고의 슈퍼클럽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전세계 모든 프로스포츠 리그에 자연스럽게 리그 전체 인기를 좌우하는 슈퍼클럽이 출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막아서 결국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몇십년 후에 힘들게 돌아가게 만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비판론도 존재한다. [10] 서브 스폰서십 및 여자팀 '닛테레 벨레자'의 명명권은 유지. [11] 그나마 이 팀은 다른 홈 경기장을 사용하고 있고 예전 요코하마 플뤼겔스의 팬들이 유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