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느릅나무에 벨라를 넣었습니까?

 


시신이 발견된 느릅나무
'''"Who put Bella in the Wych Elm?"'''
1. 개요
2. 나무 구멍 안의 백골
3. 난항을 겪는 수사
4. 관련 문서


1. 개요


1943년 영국에서 벌어진 살인사체유기사건. 2021년 현재 약 78년째 미제사건이다.

2. 나무 구멍 안의 백골


1943년 4월 18일, 영국 웨스트미들랜드 주 우스터셔[1]에 살던 소년 4명이 새 사냥을 나섰다가 느릅나무[2]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중 소년 한명이 새 둥지를 찾기 위해 나무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머리뼈 하나를 발견했는데, 나무구멍에서 나온 뼈가 동물의 뼈인 줄 알았던 아이들은 같이 딸려나온 머리카락과 턱뼈를 보고 이것이 '''사람의 두개골'''임을 알고 기겁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를 바로 어른들에게 알리지 않고 신고하는것을 망설였는데 이는 이들이 새를 잡으러 들어간 곳이 다른 사람의, 그것도 '''영국 귀족'''의 사유지[3]였기 때문. 그러나 소년들 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였던 토미 윌렛(Tommy Willetts)이 이 사실을 부모에게 알렸고 부모가 이를 경찰에 신고하면서 영국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다.

3. 난항을 겪는 수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영국 경찰은 나무구멍을 뒤져 두개골 이외에도 완전히 백골화가 진행된 변사체 1구를 찾아내는데 성공했으며, 옷 조각과 신발, 결혼반지 등 유류품도 발견하였다.
검시결과 유골은 약 35세 전후의 여성으로, 152cm정도의 키에 갈색 머리를 지니고 있었으며 불규칙한 치아와 이미 한번 정도 출산을 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시신의 입에는 태피터[4] 조각이 발견되어 이것으로 인한 질식사가 직접적인 사인이 되었으며, 최소 18개월 전인 1941년 10월 전후로 유기되었음이 밝혀졌다. 좁은 나무 구멍 사이에 시신이 유기된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직전, 즉 살해 직후에 시신이 유기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러한 추정치를 기준으로 실종자들과의 대조작업에 착수했으나 '''시대가 시대였던 탓에'''(...) 제대로 된 신원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피해자가 나치 독일이나 네덜란드의 스파이, 또는 집시 여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았으며, 시신의 오른손 손목 뼈들이 나무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것을 이유로 제기된 흑마술 의식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는 주장 역시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었기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1944년 웨스트미들랜드 주 버밍엄의 매춘부가 자신의 동료인 벨라라는 이름의 매춘부가 3년 전인 1941년경에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했으나, 시신과의 연관성이 밝혀지지는 않았다.
세월이 흐른 후 1953년, 우나 모솝(Una Mossop)이라는 여자가 경찰서를 찾아 자신의 사촌인 잭이 자신의 나치 부역행위를 입막음하기 위해 네덜란드인과 함께 여자를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나무구멍에 유기했다는 진술을 했다. 이후 잭은 1941년 이후로 '''나무 위에서 여자가 자신을 내려다본다'''는 악몽을 꾸며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시신이 발견되기 직전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으나 43년 이후로 10년간의 공백기간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기에 사건은 끝내 원점으로 돌아갔다.[5]

매춘부가 진술을 한 해인 1944년 이후로 사건 현장 인근에는 '''"누가 느릅나무에 벨라를 넣었습니까?(Who put Bella in the Wych Elm)"'''라는 낙서가 새겨지기 시작했다.(해당 낙서) 현재 해당 낙서는 남아있지 않지만 최소 1970년대 이후부터 인근의 위치버리 오벨리스크[6]에 같은 내용의 낙서가 산발적으로 적혔다고 하며, 1999년에 마지막으로 적힌 낙서가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낙서가 적힌 오벨리스크를 2016년에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다.
경찰은 낙서를 처음 시작한 범인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으나, 여인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음은 물론 문제의 낙서를 한 사람도 끝내 잡지 못했다.

4. 관련 문서


  • 울진 백골 유기사건 - 여성의 시신이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점, 시신의 손에 훼손이 가해졌다는점, 용의자와 피해자로 추측되는 인물이 지목되었으나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점이 유사하다.
[1] 우스터 소스의 어원이 되는 그 곳이다. 우스터셔 출신의 인도 총독이 인도 스타일의 소스를 개발하다 나온 것이 우스터 소스이기 때문.[2] 여기서는 국내에서 자생하지 않는 '양느릅나무(wych elm)'이다. 국내에 자생하는 나무는 '''Japanese''' elm.[3]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영국은 은근히 신분간의 격차가 남아있는 국가이다. 왕세손비의 어머니조차도 화장실을 물으면서 상류층이 사용하는 단어(lavatory)가 아닌 일반 서민계층이 사용하는 단어(toilet)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상류층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을 정도. 2011년경에도 이런데 1940년대의 영국이었으면.... 제9대 콥햄자작 존 카번디쉬 리를턴이 당시 영주였다. 현재는 제12대 콥햄자작 크리스토퍼 찰스 리를턴이 영주다.[4] taffeta, 속칭 '''다후다'''라 부르는 얇은 직물[5] 이런 경우 한국에서는 용의자인 잭이 이미 사망해 기소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하고 그 결과를 통지한다.[6] 당연히 고대 이집트의 유물은 아니다. 18세기에 세워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