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모토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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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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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투수 코치 시절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드래프트 번외로 입단한 투수로서는 최다인 통산 165승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에가와 스구루와 함께 팀내 에이스 투수로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역회전공인 슈트를 주무기로 한 땅볼 투수로, 전성기에는 사와무라상을 받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NPB 투수로서는 최다 기록 타이인 8개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1] 로 발군의 수비력을 갖추었다.
다만 니시모토의 사와무라상 수상은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는데 니시모토의 성적이 18승 12패 128탈삼진 방어율 2.58이었고 에가와의 성적은 20승 6패 221탈삼진 방어율 2.29였다. 게다가 이 시즌 에가와는 다승, 승률, 방어율, 탈삼진, 완봉 1위로 사실상 선발투수로서 투수부문을 모두 석권한, 이견의 여지가 없는 그 해의 원탑 투수였는데도 에가와가 아닌 니시모토가 사와무라상을 수상하게 된것. 이것은 당시의 사와무라상이 기자투표로 받게 되는 상이었다는 점 때문이 큰데, 입단 과정과 그 이후 발언등으로 밉상이 제대로 박혀버린 에가와를 미워한 기자들이 성실하고 이미지도 좋은 니시모토에게 표를 몰아줘서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니시모토의 성적도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고 다른 시즌이었다면 받을만할 자격이 있는 성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가와를 제쳐놓고 사와무라상을 받기에는 모자란게 사실이었기에 사와무라상의 선정주체를 OB투수의 위원회로 바꾸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요미우리를 퇴단한[2] 이후에는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해서 역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최종적으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도 1년을 뛰고 은퇴했다.
현역시절의 투구 모습. 니시모토는 일본에서 역회전공을 칭하는 슈트의 달인으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당시의 영상을 보면 비록 시대가 시대인지라 구속은 느리지만 무브먼트만큼은 매우 뛰어난 모습을 확인할수 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와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코치로 한신 타이거즈를 포함한 여러 팀을 지도하였다. 2015년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를 맡았고 시즌 종료 후 계약 연장 없이 일본으로 돌아갔다[3] .
과거 한국 언론에서 김명해(金明海)라는 이름의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지만 # 오보였으며 실제로는 순수 일본인이다.#
소학관의 빅 코믹 스피리츠에서 그와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에가와 스구루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에가와와 니시모토' 가 연재중이다. 그만큼 교진의 에이스로서 일세를 풍미했던 선수.
그의 형으로는 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선수 니시모토 아키카즈가 있다.
2015 시즌 한화 경기를 보면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니시모토 투수코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다. 약간 다리를 절룩이며 마운드로 올라가는데,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가는 상황이 보통 수비팀에게 좋을 리가 없어서... 이래저래 고생하고 있다. 2015년 8월에는 배영수에게 경기 전 불펜대기를 알리면서 다독이는 장면도 기사로 나왔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과는 사뭇 다른 야구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한 토막.
2015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그런데 열혈 한화 팬으로 알려진 OSEN 이상학 기자의 관련 기사에 김성근 감독과 투수운영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5]
건강 문제로 수술한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간뒤 본인의 1년간의 경험담을 문예춘추에 연재하였다. 인터넷에는 전문이 다 올라와 있지 않고 잡지분을 번역한 글이 웹에 있다. 일본웹, 한글부분번역본 여기서는 김성근 감독의 투수운용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야구친구 서영원 기자에 따르면, 한국음식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기사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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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이글스 투수 코치 시절
1. 소개
전 일본프로야구 선수, 야구 지도자.
드래프트 번외로 입단한 투수로서는 최다인 통산 165승의 기록을 갖고 있으며 에가와 스구루와 함께 팀내 에이스 투수로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한 시대를 풍미했다. 역회전공인 슈트를 주무기로 한 땅볼 투수로, 전성기에는 사와무라상을 받을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NPB 투수로서는 최다 기록 타이인 8개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1] 로 발군의 수비력을 갖추었다.
다만 니시모토의 사와무라상 수상은 여러모로 논란이 많았는데 니시모토의 성적이 18승 12패 128탈삼진 방어율 2.58이었고 에가와의 성적은 20승 6패 221탈삼진 방어율 2.29였다. 게다가 이 시즌 에가와는 다승, 승률, 방어율, 탈삼진, 완봉 1위로 사실상 선발투수로서 투수부문을 모두 석권한, 이견의 여지가 없는 그 해의 원탑 투수였는데도 에가와가 아닌 니시모토가 사와무라상을 수상하게 된것. 이것은 당시의 사와무라상이 기자투표로 받게 되는 상이었다는 점 때문이 큰데, 입단 과정과 그 이후 발언등으로 밉상이 제대로 박혀버린 에가와를 미워한 기자들이 성실하고 이미지도 좋은 니시모토에게 표를 몰아줘서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니시모토의 성적도 충분히 대단한 성적이고 다른 시즌이었다면 받을만할 자격이 있는 성적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에가와를 제쳐놓고 사와무라상을 받기에는 모자란게 사실이었기에 사와무라상의 선정주체를 OB투수의 위원회로 바꾸게 되는 큰 원인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요미우리를 퇴단한[2] 이후에는 주니치 드래곤스로 이적해서 역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최종적으로는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도 1년을 뛰고 은퇴했다.
현역시절의 투구 모습. 니시모토는 일본에서 역회전공을 칭하는 슈트의 달인으로 유명했는데 실제로 당시의 영상을 보면 비록 시대가 시대인지라 구속은 느리지만 무브먼트만큼은 매우 뛰어난 모습을 확인할수 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와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코치로 한신 타이거즈를 포함한 여러 팀을 지도하였다. 2015년 한화 이글스의 투수 코치를 맡았고 시즌 종료 후 계약 연장 없이 일본으로 돌아갔다[3] .
과거 한국 언론에서 김명해(金明海)라는 이름의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지만 # 오보였으며 실제로는 순수 일본인이다.#
소학관의 빅 코믹 스피리츠에서 그와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에가와 스구루의 일대기를 그린 만화 '에가와와 니시모토' 가 연재중이다. 그만큼 교진의 에이스로서 일세를 풍미했던 선수.
그의 형으로는 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선수 니시모토 아키카즈가 있다.
2. 한화 투수코치 시절
2015 시즌 한화 경기를 보면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니시모토 투수코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다. 약간 다리를 절룩이며 마운드로 올라가는데,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가는 상황이 보통 수비팀에게 좋을 리가 없어서... 이래저래 고생하고 있다. 2015년 8월에는 배영수에게 경기 전 불펜대기를 알리면서 다독이는 장면도 기사로 나왔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과는 사뭇 다른 야구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9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한 토막.
인터뷰 전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다.[4]144경기를 치러야 하지 않나. 캐치볼을 많이 하면 결국 어깨에 피로가 쌓인다. 일본에서 한신, 지바 롯데, 오릭스 등에서 코치를 했다. 일본에서도 투수 어깨에 피로가 축적되는 걸 가장 꺼린다. 투수는 캐치볼 뿐 아니라 불펜 피칭도 해야 한다. 특히 매일 등판하는 구원 투수는 공 개수 관리가 중요하다. 베스트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올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144경기를 치르는 스케줄이다. 캐치볼로 지친 근육을 세 시간 뒤 불펜 피칭에서 다시 깨우는 건 피로가 쌓이는 일이다. 피로 축적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훈련은 제외해야 한다.
2015년 시즌 종료 후,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그런데 열혈 한화 팬으로 알려진 OSEN 이상학 기자의 관련 기사에 김성근 감독과 투수운영을 두고 의견 차이가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5]
건강 문제로 수술한다고 한다. 일본으로 돌아간뒤 본인의 1년간의 경험담을 문예춘추에 연재하였다. 인터넷에는 전문이 다 올라와 있지 않고 잡지분을 번역한 글이 웹에 있다. 일본웹, 한글부분번역본 여기서는 김성근 감독의 투수운용에 대해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야구친구 서영원 기자에 따르면, 한국음식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기사
[1] 팀 후배인 쿠와타 마스미와 타이[2] 미나가와 무츠오 투수코치와의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미나가와 코치는 난카이 호크스에서 스기우라 타다시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통산 221승, 일본프로야구 사상 현재까지 최후의 단일시즌 30승을 기록한 언더핸드 투수로 요미우리의 투수 코치로서도 사이토 마사키-마키하라 히로미-쿠와타 마스미 쓰리펀치를 만들어냈다. 다만 이 세대교체와 니시모토 본인의 부진이 겹쳐 둘의 사이는 굉장히 안 좋았다고.[3] 건강상 문제로 수술, 이후 해설자를 맡을 예정이라고 한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998774 [4] 이 인터뷰에 대해서 노리타들은 인터뷰 담당기자가 안티김성근인 최민규라서 믿을 수 없다고 깎아내렸다.[5] 이때 고양 원더스 시절부터 함께한 쇼다 코우조 코치를 제외한 나머지 일본인 코치 4명도 함께 팀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