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시리 황후

 


1. 개요
2. 행적
3. 창작물에서


1. 개요


Данашири / 答纳失里 皇后
(1320 ~ 1335)
원나라 혜종 토곤 테무르의 첫번째 황후. 다나슈리, 타나시리, 타나슈리 등으로도 표기된다.

2. 행적


아버지 엘테무르가 권세가 높았기에, 정략결혼을 통해 1333년 13살의 나이에 제1황후로 책봉되어 옥책과 금보를 받았다. 엘테무르가 권세를 부려 혜종이 황제에 즉위하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후에도 아들인 텡기스, 다르카이 형제가 권세를 부려 그 세력을 믿고 세도를 부렸다.
고려 출신 기씨공녀에서 후궁이 되어 혜종의 총애를 받자, 타나실리는 기씨를 시기해 채찍으로 때리거나 인두로 지지며 괴롭혔다. 이때 겨우 10대 초·중반의 나이였다.
1335년 6월 텡기스 일파가 혜종을 폐위하려는 모반을 획책했고 친위군을 이끌던 메르키트 바얀이 이를 진압하였다. 텡기스와 다르카이는 이때 죽임을 당했고 다나시리 역시 이들과의 혈연관계로 인해 엮여 폐위된 후 북방의 개평부(開平府)로 쫓겨나 여생을 보내다가 승상이 된 바얀이 보낸 짐독을 마시고 목숨을 잃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3. 창작물에서


드라마 기황후에서는 백진희가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표기는 타나실리. 주인공인 기황후의 적으로 나오고 작중에서 원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최강 권신 연철의 외동딸인지라 황제조차 우습게 여길 정도로 콧대가 높다.
기황후와 대립하다가 결국 연철이 반역죄로 죽게 되면서 연좌제로 자신도 사약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이를 계속 거부하다가 공개 처형되었다. 이때 타나실리가 교수형을 당하는 걸로 나오는데, 본래 원나라는 처형 방법에 능지처참참수형만 규정하고 교수형을 폐지했었다. 때문에 모살도 아니고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는 장면은 고증 오류이다.
교수형은 명나라가 건국되어 대명률을 적용할 때에야 비로소 부활한다.
다만 이건 고증보다 촬영상의 문제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잔인성에 대해 엄격해진 국내 드라마 심의로 인해 살을 발라내는 능지형은 방영할 수가 없고, 사지를 묶어 에 연결하는 거열형도 배우가 다칠 수 있어 왕과 비(사육신 처형장면), 제국의 아침(효은태자 처형장면) 같은 90년대~00년대 초반 사극들 이후 등장하지 않다가 2011년 공주의 남자에서 이민우가 정말 오랜만에 보여줬다. 그렇다고 명색이 황후인데 망나니 댄스를 추면 모양새가 안 나고... 결국 여성 고위층의 처형 방법은 사약 아니면 교수형으로 연출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