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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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2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KBS 고려사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2002년 3월 2일부터 2003년 1월 26일까지 총 94부작으로 KBS 1TV에서 방송되었다. 주연은 광종 역을 맡은 김상중이다. 내레이션은 성우 임종국.
시대적 배경은 고려 혜종대부터 광종대인 943년~975년[1] 이며, 공간적 배경은 고려의 수도 개경과 제 2의 수도였던 서경 및 주변 지역(황주, 평주(평산) 등)과 그 외의 지역들이다.
일본에도 수출되어 "광종대왕 - 제국의 아침(光宗大王 〜帝国の朝〜)"이란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
2. 주요 특징
드라마 태조 왕건의 후속작. 고려 태조 이후의 혜종 - 정종 - 광종기의 왕조 초반의 혼란과 그 수습상을 그리고 있다. 크게 혜종의 치세(943년 ~ 945년, 3화 ~ 30화)를 1기, 정종의 치세(945년 ~ 949년, 31화 ~ 50화)를 2기, 마지막으로 광종의 치세(949년 ~ 975년)를 3기로 구분한다.
스토리상 전작 태조 왕건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이며,[3] 이후 한참 지나서 KBS에서 방영한 천추태후가 이 드라마의 종결 시점에서 시대가 바로 이어진다.[4]
극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청운의 꿈을 품고 왕위에 오른 광종(光宗)이 차츰 정치판에 찌들어 광종(狂宗)으로 변해가다 막판에 꿈에 나타난 아버지와 자신이 숙청한 호족들에게서 호통을 듣고 갱생하는 이야기. 특히, 고려의 기틀을 다지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왕족과 호족의 대숙청을 강행하던 냉정한 전제군주 광종의 모습과 그 뒷면에 숨겨져 있던 광종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드라마의 내레이션은 태조 왕건의 내레이션을 맡은 중견 성우 김종성이 아닌 원로 성우인 임종국이었는데, 걸걸한 톤이 강해서 부담을 느낀 시청자들도 많았다.
그 당시 인기 드라마였던 태조 왕건의 뒤를 이어 방영되었던 지라 많은 기대를 받았고, 첫 방송에서 무려 '''31%'''라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나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시청률은 점점 바닥을 기게 된 작품이다.
그 이유를 보면, 우선 왕건, 박술희 등 태조 왕건에 등장했던 모든 배역들이 전부 교체[5] 되어 위화감을 준 것이 첫번째이며, 태조 왕건의 인기 요인 중 하나인 잦은 전쟁 장면도 아예 나오지도 않았고[6] , 지루한 정치극으로만 흘러가서 시청층 대부분이 떨어져 나간 점이 두번째이다. 여기에 전작 태조 왕건에서 왕건 및 고려 측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삼한 통일을 위해 일치단결된 식으로 좋게좋게 묘사[7] 하다 보니, 제국의 아침에서 많은 고려의 왕자들과 호족들이 피를 튀기는 권력 투쟁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심히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
다만, 초반에 혜종 역을 맡았던 노영국의 '나약한 왕' 연기가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다.[8] 하지만 혜종 시대가 시청률이 가장 낮았던 게 함정. 사족으로, 혜종 역으로 나온 노영국은 전작이었던 태조 왕건에서 왕건 역 물망에 한때 거론된 바 있었는데, 탁월한 연기력을 가졌으나 당시 많았던 나이 때문에 캐스팅 목록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전쟁씬이 적은 정치사극이라는 점이, 이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을 모두 설명해주기는 힘들다. 당장 이환경의 출세작이었던 동일한 방송사의 용의 눈물부터가 위화도 회군부터 무인정사 사이에 전투 씬 한 번 안 나오던 전형적인 정치 사극이 아니었던가? 용의 눈물 전반부가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라는 대사건, 세자 책봉과 정치적 이상을 둘러싼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 연합과 이방원의 첨예한 대립과 그 대립을 보조하는 원경왕후 민씨, 하륜 등의 치열한 권모술수, 어둑어둑한 촛불 조명 연출 등으로 전투 씬 한 번 없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던 데 비해 본작의 전반부를 이끄는 왕규-요(정종)/소(광종) 간의 대립, 중반부를 이끄는 왕식렴-소(광종) 간의 대립은 그 긴장감의 밀도가 확연히 떨어졌던 것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용의 눈물의 작가인 이환경의 작품임에도 전작과 확 차이가 나는 극의 밀도에 시청자들이 몰입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또한, 전작인 태조 왕건보다도 환빠적인 성향이나 시대에 맞지 않은 역사 의식이 묘사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9]
바로 위의 용의 눈물에서 고려를 멸망시켰던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으로 나오던 김무생 씨와 김흥기 씨는 여기서는 정적으로 나와 항상 대립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한편, 용의 눈물, 태조 왕건, 무인시대 등 KBS에서 방영된 다른 사극들과는 다르게 '''유달리 전체 영상을 구하기 힘든 드라마 중에 하나'''[10][11] 로서 시청자들의 공유가 적었다. 그러다가 2016년 들어서 곰티비와 네이버 스토어 등에서 회당 300원으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재개했으며 POOQ에서도 볼 수 있다. 유튜브 KBS Drama Classic 채널에서도 1회는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으며, 2회부터는 유료로 멤버십에 가입하면 시청할 수 있고 2020년 12월 28일부터는 아래처럼 무료로 스트리밍을 방송하고 있다.
여담으로 제목은 제목 베끼기의 유명한 사례로 시바 료타로의 인기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의 국내 번안명인 제국의 아침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제국은 '''대일본제국'''이다. 그래서 방영 당시에는 말이 좀 있었다. 폼 잡는다고 일본 근대사를 다루는 내용의 소설 제목을 그대로 갖다 쓰느라, 식민지도 없던 고려인데 '제국'의 아침이라는, 좀 이상한 제목이 되어버렸기 때문.
방영 후에는 오히려 드라마가 더 유명해져, 이후 판본부터 소설은 원제인 '료마가 간다' 로 제목을 바꿔 달고 출간되었다. 드라마가 로컬라이징한 제목을 베낀 탓에 원작보다 유명해져서 원작은 제목을 원제로 바꿔 달고 나와야 해서 고증에 충실해졌으니,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격.
2.1. 조기 종영
원래 100회로 예정되었던 작품이지만, 이환경 작가가 시청률을 이유로 조기종영을 요청하여 94회로 줄어 들었다.#[12] 그리고 이환경 작가가 제국의 아침을 버리고 제대로 전념한 작품이 바로 야인시대.
그 때문에 후반부에서는 급전개를 보인다. 광종의 호족 숙청 정책 자체를 평주 호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국문을 하는 장면 하나로 거의 때워버렸으며, 호족들을 숙청한 뒤의 이야기는 통째로 생략해버렸다. 특히 마지막회 중반까지 공포정치를 보여주던 광종이 갑자기 반성하고 선정을 약속하는 부분은 압권. 그나마 배우의 연기력이 뛰어났던 덕에 광종이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광종의 공포정치는 상당히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고 그 후폭풍이 광종 사후인 경종 재위기간에도 만만치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 공포 정치를 단순한 광증으로 그려내고 부실한 급전개로 마무리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폭풍을 아주 안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대표적이 노비안검법과 관련된 대목[13] 이 대표적이며, 공포 정치를 시행하면서도 죄 없는 자들을 숙청하는 것은 알지만 다 나라를 위해서라면서 괴로워하며 독백하는 장면도 있었다.
그 외에도 잔혹한 장면이 많아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참수형, 능지형, 거열형은 기본. 황제의 국문 신에서는 시행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으나, 코를 베는 의형[14] 과 발 뒷꿈치를 베는 월형, 궁형 등의 형벌을 가하라는 지시가 직접 등장했으며, 혜종의 자손들이 숙청당하는 장면에서는 혜종의 어린 아들이 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하드코어한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되었다. 마지막화에서는 호족들을 철퇴로 처형하는 장면을 상당히 강도높게 집어넣었다. 문자 그대로 선혈이 낭자하게 때려죽인다. 이런 잔혹하고 과격한 장면들은 무인시대까지 이어졌다.
평균 시청률은 20% 초반대. 태조 왕건의 버프에 역사스페셜까지 동원 되는 광고 효과로 첫 방송 시청률은 30% 초반선[15] 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그게 최고 시청률로 끝났다(...) 이후 혜종 시대를 다루면서 10% 초반선까지 뚝 떨어졌다가 정종/광종 갈등 시점에 22.6%까지 다시 올라가기도 했다.
의외로 따지고 보면 직후에 방영된 무인시대와 평균 시청률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거나 되려 높았다.[16] 그러나 꾸준한 시청자, 특히 마니아층이 확보되지 않아서 제국의 아침은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궁예, 견훤 네타로 십수 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유명한 태조 왕건, 사극 매니아들에겐 비운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무인시대와 달리, 그 사이에 껴서 이도저도 아닌 제국의 아침은 그대로 묻혀버린 것이다. 물론 2002 한일 월드컵이나 16대 대선 같은 악재도 많았지만.[17]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2002년 KBS 연기대상에서 출연 배우들 중에 상을 받은 건 최우수상을 받은 메인 주인공 광종 역의 김상중뿐이었다.[18]
2.2. 고증
복식 고증 면에서는 태조 왕건의 성공에 따른 상당한 예산과 소품들. 그리고 광종 시기에 구비된 관복적 특징, 정치 사극이란 특성으로 꽤 상당한 수준이었으나, 드라마와 함께 거의 잊혀진 상태이다. 관련 기사 사실, 고려시대 왕이 후기 신라에서 이어지는 당나라와 오대십국시대의 제왕 복식(특히 복두)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기할 만한 드라마다.[19]
다만, 일부에서는 매우 혼재되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예가 왕실 여성들의 가채로 처음엔 조선시대의 올림머리(!)가 그대로 나오다가 다시 당나라 풍으로, 막판엔 약간 고계형 머리처럼 나온다. 또한, 당나라 혹은 여말선초 식의 사모에서 신라형 복두를 거쳐서, 고려식 각진 사모관대로 이어진다. 사실 임금의 복두도 어느 정도 논란은 있으나, (왕건의 통천관 논란처럼) 일단은 이 이후 무인시대까지 당나라형 복두가 조선의 익선관을 대신해 사용되었다. 갑옷의 경우, 대부분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사용하던 걸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장소 역시 전작을 찍었던 문경새재(조령) 촬영장뿐만 아니라, 북한 개성특급시와 평양특별시의 을밀대, 평양성, '''백두산 천지''' 로케이션 촬영이 주목되는데, 역시 전작인 태조 왕건의 성공과 더불어서 당시 남북관계가 좋아진 덕분에 전폭적인 후원과 촬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백두산 천지에서 촬영한 장면은 멋지긴 하지만, 관련 문서에도 나오다시피 1, 2화의 배경인 943년 당시는 아직 천지가 형성되기 전이다. 여기에 1회에서 왕소(광종)이 형인 왕요(정종)에게 백두산 등반을 하면서 가이드를 해주는데, 두 인물의 대화가 매우 환빠스럽다.
역사적 사실 측면에서는 영 좋지 못한데, 몇 줄 안 되지만 엄연히 있는 사료를 무시하고 창작해 넣은 부분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극 후반부를 장식하는 평주 지방 세력가들의 반란은 사료와 완전히 다른데, 고려사에는 박수경의 아들 삼형제가 참소로 옥에 갇혔고 이로 인해 박수경이 화병으로 죽었다고 되어 있고 효은태자는 성품이 포악하고 악소패들과 어울리며 반역을 꾀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극중에서는 박수경의 아들들이 대놓고 반역을 도모하며, 효은태자는 유약하기 그지없는 인물로 거의 어거지로 추대된 것으로 묘사된다. 물론 참소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으니 반역죄가 씌워진 것으로 각색할 수는 있으나 광종을 직접 암살하려 했다고 볼 만한 근거는 전혀 없고[20] , 오히려 반란의 주도자로 묘사되었어야 할 효은태자를 심약한 인물로 그린 것은 각색이라는 말로는 변호가 안 된다.
언어 고증도 영 좋지 못한데, 위에서 언급된 환빠적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후삼국 시대'나 '민족', '문치주의', '고려 왕조'라는 당시에는 도저히 쓰였을 법하지 않은 말들이 수시로 남발되며, 극중 인물들이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인 후주의 세종을 '세종' 이라 부르고 다니기도 했다. 또 원 간섭기 이후에나 나오는 수랏간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한자어라 사이시옷이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에 '수라간' 이 맞으며, 고려 초 왕실의 음식을 만드는 부서는 어주(御廚)라고 불렀다.
3. 등장인물
전작인 태조 왕건과 후속작인 무인시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가가 연출을 했던 야인시대 등에 출연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여담으로, 본 문서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3.1. 왕실
3.1.1. 국왕
1화와 2화의 임종 장면에서만 특별 출연을 했으며, 사후에 자신이 한 호족정책으로 인해 나비효과가 발생해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후에는 혜종이 죽기 직전이나 정종의 즉위 초와 죽기 전, 드라마 막판 광종 앞에서 잠깐씩 등장했다.
태조 왕건에서의 쾌활하던 모습과는 달리 병약한 모습으로 등장. 잦은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미약한 세력으로 인한 암살 위협 때문에 거의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결국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는 비운을 맞는다. 후사를 아들인 흥화군 대신 이복 동생인 왕요가 잇는다.
광종과 함께 주연격인 인물. 1화에서부터 광종과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씬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온화한 이미지로 일관하는 왕소와 달리 처음부터 호탕하고 야심을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 왕이 된 이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마음 고생을 하고 친밀하던 동생 왕소와도 대립한다. 결국, 무리한 서경 천도 시도를 하다 좌절되고 최측근이었던 왕식렴마저 충격에 빠져 사망하자 개혁 의욕을 모조리 잃고 병을 앓다가 요절한다. 죽기 전 광종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메인 주인공. 호탕하지만 그 반작용으로 자잘한 실책을 많이 보여주는 형 정종(왕요)과 달리 인자하면서도 철두철미한 성품으로 왕이 되기 이전부터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호감을 샀다.[24] 하지만, 정종에 이어 임금 자리에 오르자 뜬금없이 술판을 즐기거나 놀러 쏘다니는 등 암군같은 모습을 보여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숙청을 위한 치밀한 사전 작업의 일환 중 하나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호족들의 세력을 꺾고 왕권을 강화하는 각종 정책을 서슴없이 시행하여 호족들과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개혁 초반에는 그래도 인간성을 잃지는 않았고, 효은태자를 앞세운 반란 시도가 있었을 때조차 죄를 엄히 묻지 않고[25] 방면해주는 등 선을 꾸준히 지키려 노력했건만, 또다시 평주 세력이 반란이 일으켜 측근 중 상당수가 희생되고[26] , 이에 꼭지가 돌아 효은태자를 비롯한 왕족과 호족들의 대다수를 무자비하게 처형하고 어린 태자까지 의심하며 사약을 내리는 등 공포 정치를 펼치게 된다. 하지만, 이후 균여대사의 노력으로 다시금 흑화상태에서 벗어난다.
3.1.2. 왕후·왕실 부인들
3.1.2.1. 태조(왕건) 관련
태조 왕건의 두 번째 부인이자 혜종(왕무)의 모친으로 친정인 나주 오씨가문이 미약한 탓에 권력욕이 엄청 강한 여장부로 묘사되었다. 병약하여 정무를 돌보지 못하는 아들 대신 왕규와 자주 만나면서 서경의 왕식렴과 신명순성왕후 소생인 왕요, 왕소 형제를 견제하다가 혜종 사후, 손자인 흥화군과 옥새를 들고 태후전에서 끝까지 저항했지만, 왕식렴과 왕요, 왕소 형제에 의해 모든 걸 잃은 채 흥화군과 강제로 헤어지면서 사가로 내쫓기는 것으로 극에서 퇴장한다.
태조 왕건의 세 번째 부인이자 정종(왕요)과 광종(왕소), 낙랑공주의 모친으로 혜종 대에는 숨을 죽이면서 몰래 아들들을 돕는다. 정종이 즉위하자 태후전에 머물게 되지만, 곧 병환에 걸려 자리에 눕고 끝내 세상을 떠난다. 특히나 그 무렵 벌어지고 있던 서경 천도 및 정종과 왕소 형제의 갈등을 죽기 전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황주 출신의 태조 왕건의 네 번째 부인으로, 광종 비인 대목왕후 황보씨[30] , 왕욱의 어머니이다. 즉 주인공인 광종 입장에서는 작은 어머니 겸 장모님에 해당되는 셈. 주로 신명순성왕후나 동양원부인과 같이 나왔다.
- 동양원부인 유씨: 한복희
유금필의 딸로 태조 왕건의 아홉 번째 부인이며, 효은태자의 어머니. 주로 신명순성왕후와 신정왕후와 같이 등장하는 편이며, 정종(왕요)의 병이 극심하였을때 치료를 위해 알고 있었던 도인을 추천했다가 그 도인이 공물을 명목으로 쌀 수 만섬과 비단 수 만필을 먹튀하고 잠적하여 대목왕후에게 질책당했다. 이후 효은태자가 평주의 박수경의 아들 삼형제와 어울리면서 왕권에 욕심이 들려고 할 때마다 늘 불려 경계를 하도록 하지만, 끝내 역모가 발각이 되자,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면서 광종에게 효은태자를 살려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소광주원부인 왕씨: 서미애
왕규의 둘째 딸이자 왕건의 16번째 부인. 왕규 처형 직후 역적의 딸로 몰려 후광주원부인과 함께 교수형으로 죽임을 당한다.
3.1.2.2. 혜종(왕무) 관련
- 의화왕후 임씨: 김현주
혜종의 첫번째 부인. 혜종 붕어 후 아버지 임희가 왕규의 난에 휘말려 처형되자 역적의 딸로 몰려 왕후임을 고려하여 죽이지는 않고 궁에서 출궁당했다.
- 후광주원부인 왕씨: 강경헌
왕규의 셋째 딸이자 혜종의 두번째 부인. 왕규 처형 직후 역적의 딸로 몰려 소광주원부인과 함께 목에 매달아 죽였다.
- 청주원부인 김씨: 오지영
김긍률의 첫째 딸이자 혜종의 세번째 부인. 위의 두 사람에 비하면 비중이 작게 나온다.
3.1.2.3. 정종(왕요) 관련
박영규의 둘째 딸이자 정종의 첫번째 부인. 정종 사후에는 잠시 궁에 있다가 근처 절로 가면서 극에서 퇴장하였다.
- 문성왕후 박씨: 김효주
박영규의 셋째 딸이자 정종의 두번째 부인. 경춘원군의 모친이며, 정종 사후에 잠시 밖에 머물다가 광종 즉위 이후, 경화군부인·흥화군 남매와 아들 경춘원군과 같이 궁으로 되돌아와 지낸다.
김긍률의 둘째 딸이자 정종의 세번째 부인으로, 원래 왕규 파였던 김긍률이 왕규가 자신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최지몽의 점괴를 듣고 나서, 왕요에게 찾아가 '딸을 줄테니 나 좀 살려줘라.'식으로 부탁하면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다.
3.1.2.4. 광종(왕소) 관련
광종의 첫번째 부인이며 위의 신정왕후 황보씨의 딸. 광종의 개혁 정치 때마다 대립각을 살짝 세우기는 하지만, 금슬은 좋은 편이다.[33]
- 경화궁부인 임씨(광종 비): 장수혜(아역), 김민경(성인)[34]
광종의 두번째 부인이자 혜종의 딸. 위의 청주남원부인의 일로 형 혜종의 허락을 받으러 온 왕요, 왕소 형제 앞에서 혜종이 자신이 죽은 이후, 자식들의 삶을 걱정해 부인 의화왕후와 상의 끝에 모친인 장화왕후의 반대에도 자신의 딸을 왕소에게 준다. 워낙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탓에 부모와 아우인 흥화군을 그리워하다가 혜종 사후, 출궁당한 모친과 아우를 그리워한 것을 안 광종의 부탁으로 노비와 식량을 보태어 보내줬는데, 이후 광종이 즉위하고 나서 성인이 된 후에야 아우인 흥화군과 다시 불러와 조용히 지냈지만[35] , 극 후반에 흥화군이 역모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죽을 때,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한다.
3.1.3. 왕자·공주
- 흥화군: 서현석(아역), 김규민(성인)
혜종의 아들. 혜종 사후 모친인 의화왕후 임씨가 역적의 딸이라는 명분으로 같이 출궁당했다가 정종 사후 광종에 의해 경화궁부인과 같이 다시 입궁하였다. 그러나 평주 호족들의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음에도 평주의 호족들이 효은태자와 더불어 흥화군과 경춘원군이 반란에 가담했다는 말도 안되는 실토를 했고, 이미 측근의 죽음 탓에 흑화 상태였던 광종에 의해 경춘원군과 같이 교수형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36]
- 경춘원군: 성낙만
정종의 아들. 흥화군과 더불어 평주 호족들의 말도 안되는 실토를 들은 광종에 의해 흥화군과 같이 교수형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다.
- 태자 주(왕주): 김민우
광종의 아들. 광종의 유일한 후계자[37] 로 어렸을 때부터 광종과 대목왕후에 의해 외가인 황주에서 양육된다. 결말 즈음 벌어진 평주 세력의 역모에 연루되어 광종에게 사약을 받을 뻔했다. 다행히 광종은 균여 대사의 노력으로 흑화 상태에서 벗어낫고 이후 광종에 의해 태자 책봉식을 치루게 된다.
본래 왕소가 서경 공역의 책임자로 부임할 무렵에 외가인 황주 황보 가(家)에 머물면서 한량처럼 사는 인물로 소개되면서 등장하지만, 왕소가 서경 공역장에서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 할 때에 그를 지지하면서 광종 즉위 이후에는 의형대령(지금의 법무부장관)으로서 당숙이자 병부령(지금의 국방부장관)인 왕육과 함께 광종 지지파로 활약한다. 극 막바지에 광종이 효은태자, 흥화군, 경춘원군 등을 숙청할 때 형을 집행하는 일을 감독하면서 황실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하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나름 인상적.
- 효은태자(왕원): 박진형
태조 왕건의 아들이자 유금필의 외손자. 방종하고 용렬한 주제에 쓸데없는 야심만 많았다가 반란 후에는 매사에 초연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우유부단하여 주변에 휘둘리는 성품으로 묘사된다. 광종의 왕권 강화 정책에 반발한 호족들, 특히 박수경 일가의 평주 세력이 그를 왕으로 세울 목적으로 꾸준히 접근해왔다. 모친인 동양원부인은 광종 즉위 때부터 이미 권력 기반이 굳건했기 때문에 효은에게 평주 사람과 어울리지 말라는 경고를 몇 차례 했으나 효은은 모친의 경고를 한 귀로 흘리고 평주 사람들과 어울린다. 첫 번째 평주 세력이 관련된 반역 사건이 일어났지만, 조기에 발각되었고, 효은이 평주 세력과 어울린다는 사실이 밝혀져 죽을 위기에 놓이게 된다. 유신성, 쌍기 등 광종의 친위 세력들이 강하게 처벌을 주장하나 광종이 같은 일가라는 이유로 용서해주자 감복하고 앞으로는 조용히 살겠다며 시골로 내려간다. 그러나 효은태자가 낙향한 곳이 다름 아닌 평주. 평주는 효은태자의 외가여서 평주로 내려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겠으나 그 평주의 호족들이 광종의 최대 적수이자 광종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박수경 일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이라는 게 문제였다. 극 중에서도 유신성에게 조용히 살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이러한 효은을 보며 도리어 의심살 짓을 한다면서 평주로 내려가는 효은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39]
그러나 박수경의 아들 삼 형제가 또다시 그를 억지로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광종의 최측근인 유신성이 황제로 위장해 임금 대신 살해되자 이에 꼭지가 돌아버린 광종에 의해 거열형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40]
그러나 박수경의 아들 삼 형제가 또다시 그를 억지로 내세워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광종의 최측근인 유신성이 황제로 위장해 임금 대신 살해되자 이에 꼭지가 돌아버린 광종에 의해 거열형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40]
효은태자, 왕욱, 광주원군과 함께 태조 왕건의 아들들로서 광종의 개혁에 지지하면서 효은태자가 연루되었던 평주 세력의 첫번째 역모 사건 당시 효은태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한 인물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해당 드라마 이후의 일이었지만, 경종 때에 호족 출신인 왕선이라는 인물의 '복수법'에 의해 희생되었다.
신명순성왕후의 딸이자 정종과 광종의 동복 누이이며, 정승공인 경순왕 김부의 부인. 남편과 함께 경주에 있으면서 가끔씩 도성(개경)에 올라오기도 한다. 모친 사후, 장례식 때 이후로는 잠시 나오긴 한다.
3.1.4. 내관·상궁
- 왕건 대전내관: 김창봉[42]
왕건 사후에 혜종, 정종 대까지 있었던 내관들의 우두머리로 최지몽과도 각별한 사이라 그에게 박술희의 삭탈관직 소식과 혜종의 죽음을 몰래 알리기도 하였다.
- 광종 대전내관 1: 강만희[43]
광종이 즉위하면서 내군 장군과 함께 내관을 맡았다가 평주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광종을 구하고 최후를 맞이했다.
- 광종 대전내관 2: 민경진[44]
- 내군 장군 1: 정일모[45]
본래 왕요의 집사장이었다가 즉위 이후에 내군장군을 지냈다. 즉위 전에 왕규의 명을 사칭한 사신으로 박술희를 없애는 일에도 나섰다. 정종 사후, 부담 때문인지 스스로 물러난 것으로 퇴장.
- 광종 내군장군 : 오현수
본래는 내군 장군 휘하의 부장이었다가 광종이 즉위하고 나서 내군 장군으로 승진되었다. 평주에서 일어난 반란 와중에 광종을 구하고 대신 죽는다.
혜종 사후, 흥화군과 장화왕후을 찾던 왕식렴 군의 앞을 가로막다가 좌장군의 칼에 죽게 된다.
3.2. 주요 신료&호족
대다수의 신료 및 장군들이 한다하는 호족들이기 때문에, 주요 특정 인물들의 세력을 중심으로 다루고, 그 외의 신료들도 이름 옆이나 설명에 주요 지역이나 극 중에 맡았던 직책들을 다룬다.
3.2.1. 왕규(광주) 세력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규를 혜종의 고명대신으로 설정하면서 조선의 정도전, 김종서와 같은 인물로 묘사했다. 역모를 꾀했다는 고려사의 주장과 달리 자신의 외손자가 황태자가 된다는 소식에도 이간질이라며 내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독선적인 행보와 더불어서 끝까지 강력한 숙청 정책을 바탕으로 왕식렴과 왕요/왕소 세력과 노골적으로 적대하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결국, 전적으로 혜종의 명령에 충실했던 박술희를 귀양을 보내고, 장화왕후 오씨와 적극 연대해 혜종의 죽음을 숨기고 왕요/왕소를 죽이려다가 역관광 당해 처형되지만, 백성들은 왕규를 동정한다. 왕규는 확실히 여러 면에서 용의 눈물 등의 정도전과 겹친다. 신권 정치를 주장하는 건 물론이고, ‘환단고기’[48] 를 건네면서 “삼한이 통일됐으니 이제 보다 큰 국가의 목표가 필요해졌다”며 중국 대륙까지 진출을 주장하는 장면은 정말 환빠의 백미. 심지어 자료 영상으로 환타스틱한 영토 사진을 보여준다.
태조의 임종 당시(극 중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와 혜종의 재위 중에 내군 장군(오늘날의 대통령 경호실장)이었으며, 혜종이 서거할 무렵에는 순군부령(군 통수권자)까지 겸한 인물이다. 왕식렴에 의해 왕규의 난이 진압되자 왕식렴은 왕규의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었음을 참작하였는지 김견술을 특별히 살려주겠다고 하자 김견술은 왕규와 임회가 처형당한 후에 장례를 치르겠다고 왕식렴에게 청하여 허락받았고, 왕규의 장례를 치른 후 자결을 하자, 이에 백성들이 그를 의리 있는 사람이라 하여 장례를 치뤄준다. 이 때문에 박술희와 함께 시호를 받고 혜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 임희(내봉셩령 → 병부령): 이한승
진천의 호족. 의화왕후 임씨의 아버지로 혜종 때 대광에 내봉성령 벼슬을 맡아 사실상 왕규의 2인자 역할을 했으며 왕규가 박술희를 몰아낸 후, 병부령(오늘날의 국방부장관)에 임명되다가 왕규의 난이 진압되어 왕식렴에 의해 왕규와 같이 처형당한다.
- 명천공(원봉성 학사): 오승명[50]
신라 대의 충신인 박제상의 후손이며, 고기를 비롯해 고대의 기록들을 보관해 온 인물이다. 왕규에 의해 불러 조정에 들어왔지만, 왕식렴을 비롯한 다수의 신료들도 그의 존재를 잘 알기 때문에, 왕규의 난 이후에도 정종과 광종 대에도 원봉성 학사로서 생존한다. 광종 초에 나오는 걸 끝으로는 극에서 퇴장한다. 여담으로 나레이션에서는 이 인물과 관련해서 기록에는 자세하게 나오진 않으나 박씨 문중의 족보 등을 토대로 그가 '고려 초에 전법관서 삼중대광벽상공신으로 예원군에 봉해졌다.'라고 나온다.
- 한현규(광평성 시랑): 남영진
왕규의 측근 중 한 명으로 혜종 즉위 후 광평성 시랑에 임명 되었다. 서경 세력이 왕규 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왕규파 대신들과 구금되었다가 이후에 궐문에서 참살당한다.
- 김염 : 허기호[51]
3.2.2. 왕식렴(서경) 세력
태조 왕건의 사촌 동생이며, 주로 서경에 머물면서 그 곳의 유력 호족으로 있다가 태조 왕건이 임종에 가까울 무렵부터 개경에 머물렸다.[54]
극에 등장할 때부터 왕규를 탐탁치 않게 노렸으며, 자신의 장조카 대신 다른 조카들을 저울질하다가 왕요, 왕소 형제와 손을 잡고, 혜종 사후에 왕규 일파를 처단하고 스스로 집정에 올라 정권을 장악한다. 이후 서경 천도를 적극 지지하면서 동시에 왕소를 견제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서경 공역장에서의 역부들의 반란[55] 으로 둘째 아들인 왕함순이 죽고, 뒤늦게나마 서경에 당도하긴 했지만, 그 때부터 심적 고통이 심해지다가 뒤이어 역부들에 의해 공역장이 전부 불에 타자 순시 중에 그 광경을 보고 낙마하여 숨을 거둔다. 죽기 전까지도 "서경"을 외칠 정도로 서경을 생각했었다.
- 왕함윤(서경 총관): 최성준
왕식렴의 장남으로 정종이 즉위한 이후에 집정이 된 아버지의 후임으로 서경 총관이 되었다. 숙부인 왕육과 마찬가지로 광종이 되는 왕소에게 호의적이다.
- 왕함순: 정욱
왕식렴의 차남으로 서경 부총관을 맡았지만, 서경 공역장의 역부들의 반란 당시 반란군이 던진 도끼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왕식렴의 왼팔과 오른팔이며, 극 중 이름 대신 그냥 '좌장', '우장'으로 불리어 왔다. 정종 즉위 후 왕식렴이 집정을 맡자 서경 총관직을 이어받은 장자 왕함윤을 보좌하였다. 왕식렴 사망 후 등장이 없다.
왕식렴의 동생. 서경에 있던 형 대신 개경에 있었으며, 태조 사후 이후에 개경에 머물던 형을 도와서 왕규 제거, 정종 옹립, 서경 천도 등을 진행했다. 정종 즉위 이후부터 병부령을 맡았으며, 왕식렴의 일파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광종(왕소)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왔으며, 종종 왕식렴과 대립하는 그에게 나름 조언을 해주기도 하였다. 왕식렴 사후에 서경공역이 실패로 돌아가고 패서 호족들과 연합하여 광종을 차기 후계자로 추대하며, 개경으로 복귀 하게 된다.
이 덕분인지 정종 승하 이후 광종 집권 때에도 병부령에 유임하면서 광종의 측근으로 군제 개혁[58] 에 앞장서고, 이후의 노비안검법이나 과거제 시행 등도 강력히 지지한 탓에 왕식렴과 앙숙이었던 광종이 '형제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라면서 고마워 했을 정도였다.
이 덕분인지 정종 승하 이후 광종 집권 때에도 병부령에 유임하면서 광종의 측근으로 군제 개혁[58] 에 앞장서고, 이후의 노비안검법이나 과거제 시행 등도 강력히 지지한 탓에 왕식렴과 앙숙이었던 광종이 '형제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라면서 고마워 했을 정도였다.
본래 왕식렴을 도와 서경을 건설하던 인물였으며, 왕식렴이 집정으로서 정권을 장악할 때, 시중을 맡는 것으로 등장해 서경 천도 공사를 실질적으로 감독하는 것으로 나온다[61] . 문제는 서경을 건설할 당시도 그렇고, 천도 공역 과정에서 백성들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듣는다든가 한두 명이 물에 빠졌다고 다 같이 몰려가서 구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하는 등 인부들을 공역에 얼마든지 갈려 나가도 되는 재료 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왕소가 이들을 몸소 구휼하고 같은 밥을 먹는 등 인정을 베풀자 쓸데없는 인정은 이들에게 딴마음을 품게 한다며 대립한다. 이 때문에 인부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잘못을 이들에게 딴마음을 품게 한 왕소에게 돌리는 등 극도로 찌질한 모습까지 보인다. 결국 마지막에 서경 공역장이 불타고 왕식렴이 심장마비로 죽은 후, 반란군들이 몰려오자 피하던 중에 인부들 중 하나가 던진 창에 등을 맞아 목숨을 잃는다.
3.2.3. 평주 세력
평주의 대 호족. 극 초반(태조 왕건의 임종 시)에 시중으로 나왔으며, 혜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물러나 향리인 평주에 머무르면서 가끔씩 개경에 방문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후, 조카(아래의 박수경의 아들 삼 형제)들의 반란으로 동생인 박수경이 자살한 이후에는 언급 없이 퇴장.
- 박수경(시중): 정상철
평주의 대 호족이자 박수문의 아우이다. 초반에는 평주에 있다가 왕식렴과 함께 개경에 내려온 이후에는 형처럼 평주에 머무르면서 가끔 개경에 내려오는 모습을 보인다. 정종과 광종의 즉위에 많은 역할을 하면서 광종 즉위 이후에 시중에 올라 권세를 누리긴 했지만, 아들들에게도 주의를 줄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였으며, 특유의 우유부단함의 늘 발목을 잡았다.
이후, 광종의 호족 견제책 중 하나인 노비안검법이 시행되고 난 이후, 직에서 내려오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 삼 형제의 첫 번째 반란 모의 이후에는 일가와 함께 향리인 평주로 내려갔다. 그러나 평주에서 다시 아들 삼형제의 반란으로 인해서 화가 잔뜩 난 광종에 의해 본인과 형은 나이가 많이 곧 풀려났지만 아들들이 참형을 받고 가문이 몰락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광종의 호족 견제책 중 하나인 노비안검법이 시행되고 난 이후, 직에서 내려오고,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 삼 형제의 첫 번째 반란 모의 이후에는 일가와 함께 향리인 평주로 내려갔다. 그러나 평주에서 다시 아들 삼형제의 반란으로 인해서 화가 잔뜩 난 광종에 의해 본인과 형은 나이가 많이 곧 풀려났지만 아들들이 참형을 받고 가문이 몰락한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박승위(순군부령 → 내봉성령): 이용진[63]
박수경의 장남. 혜종 시기 부터 개경에 머물면서 주요 관직들을 차지하긴 했었다. 광종 즉위 후 박수경이 주의를 줄 정도로 오만한 행동들을 하였다. 이후 광종의 호족 견제책에 의해 직을 잃은 후 여러차례 반란을 모의하다가 실패하고, 최종적으로 동생들과 같이 참형을 받는다.
- 박승경(순군부령): 박유승[64]
박수경의 차남. 형과 동생과 행보를 같이 하였다.
- 박승례(순군부 사인): 신동일
박수경의 3남. 두 형들과 행보를 같이 하였다.
- 왕승 / 준홍(내봉성 사인): 유벙한 / 안형식
광종 즉위 이후에 등장한 인물들로 언행 등을 봐도 알 수 있듯 평주 세력과 뜻을 같이 한 인물들이다. 광종의 개혁 정책에 불만을 내보이다가 유신성 등의 측근들과 평농서사였던 권신의 참소로 인해 체포되어 국문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백성들이 끌러가던 이들에게 돌을 던지는 등 반감을 품었다. 한편 국문 중 행해진 고문에도 끝까지 평주 세력이 연관되어 있음을 불지 않았고 끝내 고문의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는다.[65]
3.2.4. 황주 세력
- 황보씨: 박정웅
본명은 황보제공으로 황주 황보씨를 대표하는 대 호족이자 신정왕후 황보씨의 부친이며, 대목왕후와 왕욱의 외조부이며, 광종에게는 처외가 집안의 큰 어른으로서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는다. 극에서는 이름 대신 '황보씨'로 불리운다.
- 황보광겸(내의성 대부): 박영태
신정왕후 황보씨의 사촌형제로 황보위광과 황보숭의 형이다. 일찍부터 개경의 관료로 진출한 탓에 극 중반에야 등장한 동생들과는 달리 매사에 신중하면서, 다른 호족들에 비해 눈치가 빠르고 처신 또한 잘했다. 매형인 광종도 그 부분을 칭찬할 정도이다. 그 덕분인지 극 후반에 평주의 박수경 일가와 청주의 김긍률, 승주의 박영규마저 박살나는 대숙청에도 황주는 별다른 피해 없이 넘어갔다.
- 황보위광(내봉성경): 신동훈[66]
황보광겸의 동생, 황보숭의 형. 동생 황보숭과는 정종 시기부터 황주의 호족으로 등장하였다. 광종 즉위 이후 황주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으며, 몇몇 정책에도 반발하다가 형인 황보광겸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하였다. 매형인 광종도 이 행동이 걱정 되었는지 야밤에 따로불러 이부분을 질책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딴 마음은 품지않고 모나는 행동을 하지않아 대숙청때 무사할 수 있었다.
- 황보숭(광평성 사인): 김기복[67]
황보광겸, 황보위광의 동생. 작은형 황보위광과 같이 중반부 부터 등장하며, 둘째형 처럼 매사 불만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3.2.5. 신라계
작 중에는 천문관으로서 사천대의 수장으로서 신료 무리 중 하나인 신라계 관료들의 수장 격의 인물로 나온다. 태조 왕건에서 풋풋한 청년 관료로 나왔던 것과 대조적으로 배우 정동환 특유의 능글맞은 이미지와 연기가 가미되어 노회한 중견 관료로 변모한 묘사가 볼 만하다. 신라계 관료들의 수장격이지만 계파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으며, 김긍률, 왕함민 등 일부 신료들의 살길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광종 즉위 후 평주, 청주, 승주의 대호족들이 대거 숙청되자 이들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채우게 될 신라계 관료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들떠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최지몽은 이러한 모습을 우려하며 이들에게 언행을 조심하라고 하였으며[69] , 극 후반에 자신 또한 언젠가 숙청될 것을 알고 이를 피하기 위해 꾀를 부려 술김에 황제에게 주정을 부렸다. 여기에 광종은 대노하며 그를 옥에 투옥하였고, 그동안 공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여 그를 귀양보내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었다. 그는 자신의 꾀가 먹히고 비록 귀양이지만 살얼음판 조정을 벗어나는 것에 안도하며 기분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눈 내리는 귀양길을 걸아가며 퇴장한다. 마치 태조 왕건에서 최승우의 마지막 모습과도 비슷한 인상을 주는데, 위의 항목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잘 활용한 편.
신라삼최의 일원이었고, 고려 태조 때부터 혜종 때까지 벼슬을 한 최언위의 차남. 오월에서 유학하다가 후진에서 유학중이었던 형 최광윤이 거란의 침공 징후를 알리는 서신을 보낼 때쯤 귀국하여 중원의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첫 등장하였다. 이후 관직에 있으면서 자연스레 신라계 파벌에 합류하게 된다. 광종이 호족들의 세력을 밀어내기 시작할 때, 광평성 시랑(현재의 차관급)에 임명되어 중용되었다. 마지막 회차 때 광종이 탄문 대사를 송별하는 술자리를 열 때 함께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말 실수를 하였다가 광종에게 즉결 사형 처분을 받아 바로 죽으면서 퇴장하게 된다.[71]
정종 즉위 이후부터 등장한 신라계 학사로서 광종 즉위 이후에는 최행귀와 사관 역할을 하면서 한 편으로는 광종이 측근들과 쌍기와 같은 귀화인들의 과한 대우와 그들의 활약에 나름 염세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레이션에 각 임금들의 평가(혜종, 정종, 광종)을 다룰 때, 그가 이후 성종에게 올렸던 '오조치적평'의 내용을 참고하였다.
- 식회(원봉성경): 차기환[73]
- 손소(원봉성 학사 → 원봉성령): 이계영[74]
- 장유(예빈성경): 장기용
3.2.6. 광종의 측근
충주 출신으로 신명순성왕후 집안의 일족이며 광종의 최측근이다. 아래에 서술되는 장단설과 이몽유와는 달리 왕소가 서경 공역의 책임자로 시간을 보내던 시절 충주의 대부이자 왕소의 외조부인 유긍달의 추천으로 들어왔는데, 만날 때부터 광종을 놀랄만하게 한 직언[76] 으로 그를 깨우쳤으며, 광종(왕소)는 그를 의형제로 지낼 정도로 다른 측근들 못지않게 각별히 대하였다. 광종 즉위 이후에 그의 개혁 행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내봉성령(지금의 행정안전부장관)에 이르렀으나, 극 후반 광종의 북방 순행길에 동행하다가 평주에서 그 지역 대 호족인 박수경의 아들 삼 형제가 반란을 일으키자 위기에 빠진 광종 대신 용포를 입고 불타는 건물에 갇혀 사망한다. 광종이 총애하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사망 소식을 듣자 광종은 흑화하여 숙청극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인물 문서에도 나오지만, 그는 서필과 함께 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왕소의 집사로 본래는 발해 사람으로서 거란에 있다가 쫓겨나 유량하던 중 왕소의 휘하에 든 인물이다. 왕소의 측근들 중에 워낙 지략과 책략에 유능한 탓에 혜종 대에는 잠시 왕요 휘하에 있었으며, 정종 대에는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왕식렴에 의해 잠시 절영도의 목마장으로 좌천되기도 해 잠시 극에서 이탈하긴 했다.
광종 즉위 이후에 다시 중앙에 들어와 내봉성 사인에 임명되어 유신성, 이몽유, 왕육, 왕욱 등과 더불어 광종의 개혁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노비안건법 이후에 폐지된 순군부 대신 새로이 변한 군부의 수장에 오른다.
광종 즉위 이후에 다시 중앙에 들어와 내봉성 사인에 임명되어 유신성, 이몽유, 왕육, 왕욱 등과 더불어 광종의 개혁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노비안건법 이후에 폐지된 순군부 대신 새로이 변한 군부의 수장에 오른다.
여담으로, 유신성과 이몽유에 비해 문서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일부에서는 가상 인물설까지 나오긴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 사극 마니아 카페의 답에 나온 것처럼 본래는 '장단열'이 맞는 표현이며,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 보물로 지정된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와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의 비문을 작성한 서예가로 알려져 있다.관련 지식백과
왕소의 집사로 초창기부터 장단설과 함께 왕소를 따랐다. 광종 즉위 이후에는 병부경으로서 병부령인 왕육과 함께 군제 개혁을 비롯한 광종의 개혁 행보에 참여하였다. 후에 성종의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3.2.7. 그 외 신료들
극 중 백전노장에 병부령을 맡았으며, 태조 왕건의 유훈을 맡을 정도로 태조 왕건과 혜종의 신임은 물론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태후와 시중 왕규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끝내 직을 잃고 강화에 유배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왕규를 사칭한 정종(왕요)과 왕식렴 세력에 의해 제거되었다.
박술희와 마찬가지로 백전노장이면서 순군부령을 맡아왔으며, 박술희와 같이 다니면서 우직한 그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혜종 즉위 이후에 내의령으로 그 직을 옮기긴 했지만, 관복 대신 군복을[83] 입은 채 직무를 수행했다. 혜종 사후에 중립을 지키긴 했지만, 과거 박술희 휘하의 부장들과 연합해 왕식렴과 왕요·왕소 세력을 왕규 세력들을 제압했다. 정종이 즉위한 후에도 직을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이후에 왕식렴의 권유로 그 직을 거두고 향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극에서 퇴장했다.
여요전쟁 때의 명신인 서희의 아버지. 극 초반부터 의형대령을 맡으면서 유난히 '법'을 강조하는 인물이다. 왕규나 왕식렴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직언으로서 그들의 전횡에 맞서 주변 신료들조차 두려울 정도로 자타가 인정한 강직한 신료였다.[85] 광종이 즉위한 이후에는 직책이 내의령으로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언을 아끼지 않는 신하였으며, 사료에 기록된 술잔의 일화[86] 등을 포함해 많이도 직언을 해 어떨 때에는 광종도 성질을 내면서 쫓아내거나 참형을 하라고 했음에도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여하튼 이러한 강직한 성품으로 광종이 대숙청을 할 무렵에도 충언을 하다가 병사를 했는데, 광기에 물들어가던 광종도 그의 죽음에는 애석해하며 친히 조문을 했으며, 장례비용까지 전액 지원해주었다.[87]
- 서희: 한범희
서필의 아들로 극 후반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온 것으로 등장해, 서필이 임종할 즈음에 유언을 쓰기도 한다. 다만, 이후 드라마에 비하면, 해당 드라마에서는 비중이 엑스트라급으로, 극의 흐름상 필요해서 나온다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이름이 있는 인물이라 등장한다는 느낌이 강한 편이다.
- 왕함민(내봉성령 → 내의성 대부 → 시중): 원석연[88]
광종 즉위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어느 특정 세력에 속하지 않는 고위 신료이자 종실 중 한 명이었고, 정종 즉위 이후 내봉성령에 오르게 된다. 왕식렴 사후 최지몽에게 향후 거취에 관련하여 조언을 듣기도 하였다. 광종 즉위 후 박승위에게 내봉성령 직을 인계하고 대신 원로 고문격인 대의성 대부로 임명된다. 호족 세력 숙청을 위해 아무런 배경이 없었던 것을 이용한 광종에 의해 노비안검법 발표 시점에 박수경 대신 시중 자리에 오른다. 극 중 다른 시중들에 비하면 권한이 적은 모습을 보이는 등 바지사장 포지션이 되어버렸다.[89]
- 권신(광평성 사인 → 편농서사): 권혁호[90]
비중은 그저 그런 신료 중 한명으로 비중있게 나왔던 것은 박수경 아들들의 1차 반역 모의 때 친왕파와 협력하여 반역을 진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 김악(원봉성 학사): 남일우
- 왕융(예빈성령): 정운용
- 신강(원봉성 학사): 박태민[91]
본래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갑자기 증발이 되었던 인물로[92] 기록에 따르면, 광종 초에 위의 식회와 함께 각 고의의 세공의 액수를 정하였다고 한다.
- 순질(광평성 시랑): 최헌철
시중을 맡았던 박수경이 잠시 입궐을 하지 않았을 때, 임시로 시중 대행을 보면서 난처해진 모습을 보였다.
3.2.8. 주요 호족들
청주 출신의 대 호족으로 호칭은 '대부'로 많이 불린다. 극 초반부에는 혜종의 장인으로 왕규, 임희와 함께 왕규 파벌에 속하면서 순군부령을 지냈지만, 경박하고 너무 나서는 탓에 왕규의 눈초리를 받던 중에 최지몽을 만나 그의 조언을 듣고, 다른 딸을 왕요(정종)에 게 주면서 자연스레 그의 세력으로 넘어가게 된다.
정종 즉위 이후부터 광종 대까지는 박영규와 함께 다니면서 원로로서 내의성의 대부로 있었다가, 광종의 호족 견제의 여파로 관직에 물러나 그저 숨 죽은듯이 조용히 지내는 와중에 평주 호족들과 반역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숙청, 국문과정에서 연로한 것을 감안하여 고문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외손자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박영규와 같이 유배 도중에 광종이 보낸 독주를 마시고 사사된다.
정종 즉위 이후부터 광종 대까지는 박영규와 함께 다니면서 원로로서 내의성의 대부로 있었다가, 광종의 호족 견제의 여파로 관직에 물러나 그저 숨 죽은듯이 조용히 지내는 와중에 평주 호족들과 반역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숙청, 국문과정에서 연로한 것을 감안하여 고문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외손자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박영규와 같이 유배 도중에 광종이 보낸 독주를 마시고 사사된다.
후백제 견훤의 사위로서 태조 왕건과 정종의 장인이며, 승주를 비롯한 옛 후백제 세력을 대표하는 대 호족이다. 초반부터 사위인 왕요와 왕소 형제를 부족하게나마 지원을 해 주다가 혜종 즉위 이후에는 왕식렴과 박수경을 비롯한 북방의 호족들과 연합하여 왕규 파벌을 견제하고 끝내 제거했다. 정종이 즉위한 이후부터는 김긍률과 같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평주 호족들과 반역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그 역시 숙청, 국문과정에서 연로한 것을 감안하여 고문은 하지 않았지만 옆에서 외손자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후 김긍률과 같이 유배를 가던 도중에 광종이 보낸 독주를 마시고 사사된다.
태조 왕건의 첫 번째 부인인 신혜왕후 유씨의 부친. 즉, 왕건의 큰 장인이 된다. 딸과 사위보다 오래 살면서 왕규의 독선적인 행보에 다른 호족들과 제동을 걸면서 적극적으로 움직인 인물들 중에 하나이다. 정종 즉위 중반까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광종 때에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 유긍달: 허현호
태조 왕건의 세 번째 부인인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부친으로 왕요(정종)·왕소(광종) 형제와 낙랑공주의 외조부가 된다. 초반 대법회를 핑계로 딸의 밀지를 받고 나서 장단설과 함께 북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찰 등으로 전하는 것이 전부이며, 위의 유천궁처럼 광종 때에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 강기주 : 박경득[93]
태조 왕건의 22번째 부인인 신주원부인의 부친인데, 이 부인의 아들이 요절해서 왕소(광종)이 부인의 양자가 되면서 황주와 마찬가지로 왕소(광종)를 지원하는 인물이다.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이후, 경주에 머물면서 '정승공'이라 불리우고 있다. 위의 유천궁이나 유긍달과 마찬가지로 개경에 왔으며, 이후 장모인 신명순성왕후의 장례에 참석하고 광종 대에도 잠깐 얼굴을 내밀긴 했을 뿐 비중은 거의 없다.
3.3. 승려
- 탄문: 정욱
균여의 스승이자 왕소의 정신적 스승. 황제가 되기 전이나 된 후에도 계속해서 왕소에게 학문적, 정신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광종이 차츰 정치판에 찌들고 계속되는 호족들의 반란으로 흑화하면서 결국에는 대대적인 숙청을 벌이자 한탄하며 속세를 떠나 은거한다.
탄문의 제자이자 광종에겐 친구와도 같은 승려. 8화에서 혜종의 쾌유를 비는 법회에서 호탕하게 등장해 법문 을 외치면서 등장하였고, 이후에는 탄문과 함께 광종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교적 속세에 관심이 적고 학문과 불경에만 몰두하는 탄문과 달리 정치나 속세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후반부에 탄문이 속세를 떠날 때도 끝까지 남아 왕궁 앞에서 광종을 비판하는 패기를 보이다 꼭지가 돈 광종에게 처형당할 뻔한다.[94] 그러나 꿈에 등장한 왕건과 자신이 처형했던 사람들의 영혼을 목도하고 정신을 차린 광종의 용서를 받는다.
3.4. 그 외의 인물
가공 인물로 개경에서 거대 상단을 이끌고 있는 여행수. 상인답게 해외 사정에 밝으며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광종이 본격적으로 호족들의 숙청과 개혁을 시작하기 전 일반인으로 위장하고 세간의 민심을 살필 때 만나 인연을 맺는다. 광종의 인품과 학식에 매료되지만, 동시에 그가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으며, 광종이 균여에게 기청제를 부탁하는 자리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그가 황제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 광종의 주선으로 쌍기와 맺어지게 된다.
초선을 모시는 집사장으로 절영도의 목마장에 있던 장단설과 이전부터 아는 사이인 듯 한다.
서경 공역장에서 권직의 혹독함에 고생하다가 반란을 일으킨 자로 왕소를 흠모해 그와 그의 주변 사람들은 건들지 않았다. 일개 역부 출신이지만 나름 군사적 재능이 있었는지[98] 반란군을 잘 이끌어 관군들을 농락하고 결국 서경 공역장을 불바다로 만들어 반란을 성공시킨다. 이후 반란을 일으켰음에도 반역죄를 추궁받지 않고 백성으로 돌아가 살다가 왕소가 광종으로 즉위하자 호위장수 중 하나로 등장한다. 박수경의 세 아들들이 광종을 시해하려 거사를 일으켰을 때 왕의 갑옷을 입고 이들을 교란시켜 거사를 좌절시켰다.
- 소무개 : 맹봉학[99]
고려 국경지대 근처에서 세력을 이루고 있는 동 여진족의 족장으로 선대 족장 부터 왕식렴과 인연이 있었으며, 그의 부탁을 받아 국경 밖으로 도망치는 역부들을 잡아 송환시키고 있었다. 고려와 무역을 하기 위해 왕식렴에게 부탁을 하였고, 왕식렴 사후 광종(왕소), 왕육과 함께 개경을 방문하였다.
4. KBS Drama Classic 채널 연속 무료 스트리밍
KBS Drama Classic 유튜브 채널에서 2020년 12월 28일 10시부터 스트리밍했다. 초반부는 1,400~1,500명 대를 유지하였으며, 왕규의 난 이후에는 1,700~2,000명 대를 유지하였다. 정종 등극 이후에 2,300명까지 돌파하였으며, 광종 등극 이후에는 잠시 3,000명을 돌파하기도 하였으나, 평균 2,000명 대를 유지하였으며, 90회 박승유 형제의 반란 이후 다시 3,000명을 돌파하였다. 마지막 90~94회 분은 3,000~ 3,500명 정도 인원이 시청하였다. 평균 2,000명대 시청층을 유지하였는데, 이는 사극 스트리밍을 시작한 이후 최저 시청 기록이다. 아무래도 인기작이 아니었고, 지루한 전개가 이어지다 보니 채팅창 드립 면에서도 화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반응 역시, '지루하다' 라거나, '마지막 5회 분만 재밌었다' 등의 평이 이어졌다. 2021년 2월 1일부터 2차 스트리밍이 시작되었다. 1일차에는 평균 700명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동 채널에서 방영하는 쌈 마이웨이 스트리밍보다 시청자 수가 밀리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스트리밍 동안 800~1,200명대를 기록하다가 최후반부에서 2,000명을 돌파하며 간신히 미니시리즈 스트리밍보다 시청자 수 우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해당 스트리밍 채팅 중 흥했던 별명, 드립은 아래와 같다.
- 배역 / 배우의 별명: 태조 왕건 후속작이다보니 전작에 나온 인물들의 별명이 그대로 계승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기타 등장한 사극의 배역으로도 많이 불리는 편이었다.
- 고려 왕실
- 왕건(이문수 분): 노잼건, 암건
- 왕무(노영국 분): 치킨무, 노잼무, 정종, 노잉글랜드, 잉글랜드좌, 푸린[100]
- 왕요(최재성 분): 마루오까, 원균, 강조, 계백, 투탕카멘[101]
- 왕소(김상중 분): 류성룡, 킬소, 그알좌, 그런데 말입니다, 백두산 가이드, 킹카우, 그란데좌, 오구탁, 소탈린
- 대목왕후 황보씨(전혜진 분): 고려 아이린 1, 샤크라, 황보
- 장화왕후 오씨(반효정 분): 염정아[102] , 나주부인
- 신명순성왕태후(정영숙 분): 전미선[103] , 두한이 할머니
- 제조상궁(박주아 분): 박나래, 연화엄마, 이혜정
- 흥화군(서현석 분): 정진영, 전위대장
- 신정왕후 황보씨(안해숙 분): 경애왕비, 시침좌
- 낙랑공주(이칸희 분): 낭낭공주
- 문공왕후(홍리나 분): 금영이[104] , 미달좌[105]
- 경화궁부인(김민경 분): 고려 아이린 2
- 경화궁부인 아역(장수혜 분): 난정이[106]
- 왕욱(정국진 분): 찐식렴(구식렴)[107] , 약장수[108]
- 원녕태자(김광영 분): 왕신
- 왕주(김민우 분): 부왘좌, 잼부왘, 신마적[109]
- 고려 왕실
- 대신들 / 호족들
- 왕규(김무생 분): 이성계, 아지태(왕지태)[110] , 국정농단[111] , 환빠
- 왕식렴(김흥기 분): 정도전, 정중부, 챌린지 정, 엔딩요정[112] , 종북[113]
- 박술희(조경환 분): 수리, 김종서, 양예수, 호랑이 선생님, 수사반장 조형사
- 염상(백인철 분): 환선길, 환밍턴[114] , 염부장
- 최지몽(정동환 분): 타로좌, 윤두수, 최동열, 스포충[115]
- 서필(이대로 분): 벌처좌, 염동진, 도선대사, 서희 아버지, 서피리, 꼰필, 서중권
- 김긍률(변희봉 분): 흥선대원군, 벼니봉, 잼긍률
- 박영규(김상순 분): 장택상[116] , 대추나무좌, 생존왕, 수사반장좌
- 박수문(김영인 분): 이총언, 워터도어
- 박수경(정상철 분): 이적, 박한이[117]
- 왕육(민욱 분): 유긍달, 정병주
- 김견술(김주영 분): 조원정, 위홍, 복상사좌, 김진기, 개소주
- 왕함민(원석연 분): 도우너, 도우너 어서오고, 이화
- 박승위, 박승경, 박승례: 개노답 삼형제
- 박승위(이용진 분): 암살좌, 독화살좌
- 박승경(박유승 분): 진호, 현소
- 김악(남일우 분): 고노에, 이홍장, 데빌김
- 명천공(오승명 분): 싸이 25대손[118] , PSY
- 임희(이한승 분): 이미, 김선평
- 한현규(남영진 분): 채병덕, 돼병덕, 주라후
- 유천궁(김수일 분): 믹키유천궁, 광치나[119]
- 김부(이도련 분): 경순왕, 최후의 승리자
- 황보광겸(박영태 분): 광겸이, 보겸, 황보, 샤크라
- 왕함윤(최성준 분): 이억기
- 권직(김성옥 분): 자양강장자, 강장자, 다크강장자[120]
- 황보위광(신동훈 분): 배현경, 민무구
- 황보숭(김기복 분): 김락, 더락, 마천목
- 유신성(박진성 분): 황희, 망이, 곡사정, 원세개, 유숭겸
- 손소(이계영 분): 윤신달, 핸드리틀
- 왕융(정운용 분): 염신약
- 신강(박승규 분): 원극유
- 최행귀(임병기 분): 신덕, 박헌영, 혁명전사
- 장유(장기용 분): ITZY장군, 잇치, 이도
- 식회(차기환 분): 식혜, 신립
- 서봉(이성용 분): 경문왕, 궁두한 아빠
- 쌍기(이효정 분): 히데요시, 유진산, 영양왕[121]
- 최승로(이지형 분): 시무 28조좌, 김윤도 검사
- 권신(권혁호 분): 전의갑, 김보당
- 준홍(안형식 분): 성석린, 김억추
- 왕승(유병한 분): 문희상, 류현진
- 서희(한범희 분): 당고종, 이재면, 서희건설
- 최섬(이대건 분): 최아일랜드, 쓰리섬
- 기타
- 탄문(정욱 분): 센노 리큐, 삼적대사, 혜민, 풀소유좌, 플렉스좌[122]
- 장단설(송금식 분): 황세득, 김후옥, 레이좌
- 좌장군(이동준 분): 클레멘타인좌, 똥꼬쇼좌[123]
- 우장군(이원발 분): 윤근수, 환향식, 사고야마
- 균여(정승호 분): 고니시, 짭석총, 주호민, 파괴왕, 변균여[124] , 손민한, 곡차충, 장학도[125] , 작곡가[126] , 균예
- 이몽유(이재연 분): 몽유병
- 초선(임채원 분): 국대부인, 어홍, 부용
- 초선 집사장(이일웅 분): 오다련
- 광종 대전내관1(강만희 분): 전이갑
- 광종 대전내관2(민경진 분): 종훈 군사
- 여계빈(후주 사신)(김기진 분): 명길
- 쌍철(양재성 분): 선전관, 금성태수
- 드립
- 대영제국 드립: 왕규가 환단고기를 인용하면서 고구려가 당태종을 무릎꿇리고 중국대륙을 차지했다는 강의를 보면서 빠지는 혜종의 표정이 국뽕에 차오른 행복한 표정에서 나온 드립. 혜종 역 배우인 노영국의 이름을 따와서 대영제국 드립이 나왔다.
- 브렉시트 드립: 혜종이 즉위식이나 조회 등 공식 행사에서 계속 실신하고 내관이나 무관의 등에 업혀 실려나가면서 나온 드립. 역시 혜종 역 배우인 노영국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후 혜종이 정말 사망으로 하차하면서 다시 브렉시트 드립이 흥했다.
- 석총 드립: 팔관회장에서 탄문의 법회 중 난입하여 독설을 퍼붓는 균여의 모습을 보고 전작의 태조왕건때 독설을 퍼붓는 석총의 모습이 오버랩되자, '석총이가 또 왔어' 등의 드립이 터졌다.
- 탈모 치료 드립: 전작인 태조왕건에서 박술희를 맡았던 김학철이 탈모로 유명하기도 하고 또 탈모가 두드러지게 보이는 비주얼을 하고있던데 반해 본작에서의 박술희는 배우도 바뀌었고 머리숱도 풍성하기에 나온 드립. 심지어 박술희의 젊은 시절도 풍성한 머리숱으로 나와서, 고려의 탈모치료기술이 현대보다 낫다는 얘기도 나왔다.
- 래퍼(쇼미더머니)드립: 혜종(왕무)이 병이 심해지면서 불안증세가 나타날때 마다 낮고 빠른 말투의 혼잣말로 불안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 때마다 빠르게 말하는 어투를 보고 '래퍼', '잉글랜드좌 쇼미더머니 출연' 등의 드립이 등장했다.
- 나이드립: 실제 배역의 나이와 맞지 않는 미스캐스팅에 대한 나이드립이 본 작에서도 이어졌는데, 이 작품에서는 혜종의 나이가 30대로 표현되나, 50대였던 노영국이 배역을 맡으며 혜종(30대) 드립이 이어졌고, 왕건의 장인이자 왕건과는 나이차이가 나는 유천궁이 왕건 사후에도 등장하자, 유천궁(100세) 드립이 등장했다.[127] 또한, 신라 경순왕도 실제 작중에서는 50대 정도였지만, 배역이 70대 이상의 노인으로 설정되어 나이드립이 이어졌다.
- 옥새런 드립: 혜종 사후 태후인 장화왕후가 옥새를 가지고 숨기는 일이 발생했는데, 왕식렴 일파가 이를 찾을때 옥새런 드립이 나왔다. 용의 눈물에서도 옥새런드립이 등장한 적이 있다.
- 불멸드립: 극중 탄문과 균여로 나오는 정욱과 정승호는 이후 불멸의 이순신에서 일본측 인물 센노리큐와 고니시로 나오는데, 이 두 사람이 등장할때마다 '불멸의 아침'과 같은 불멸 드립이 나오고있다. 이후 정종으로 나오는 최재성과 왕함윤으로 나오는 최성준은 불멸에서 원균과 이억기로 재회하는데, 이때도 불멸드립이 이어졌다.
- 렉드립: 29화에서 하필이면 혜종이 승하하고 왕규와 왕식렴이 한판붙는 중대한 회차에 갑자기 스트리밍에 문제가 생겨 렉이걸리는 바람에 영상재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채팅창에선 '렉제국의 아침', '제국의 버퍼링'등의 드립이 나왔다. 스트리밍 문제는 관리자가 점심먹고 와서 해결했고 이후 렉이 걸려 제대로 재생이 되지못했던 회차부터 다시 제대로 재생했다. 31일 0시 45분쯤 71회 방영때에도 갑자기영상이 되감기되는 사고가 있었다. .
- 백제 갑옷드립: 태조왕건의 후속작이다보니 태조왕건때 보던 의상이 자주 등장하는데, 제국의 아침에서 신검이나 금강이 입던 갑옷을 입고 전투를 치르는 쪽이 계속 패배하는 모습이 등장하다보니, 백제쪽 갑옷을 입고 나타나면 '패배의 갑옷', '또졌어 갑옷' 등의 드립이 등장했다.
- 인민재판 드립: 광종이 대목왕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비안검법을 밀어붙이자 등장한 드립
- 혼노지의 변 드립: 90화에서 평주의 박승위 삼형제에 의해 광종이 함정에 빠지자 유신성이 그걸 알고도 숙소에서 불에 타 죽는 것을 보고 나온 드립. 여기에 신성의 야망이란 드립까지 나왔다.
- 왕건 드립: 90화에서 평주의 박승위 삼형제에 의해 광종이 함정에 빠지자 유신성이 황제를 대신해 용포를 입는 모습이 등장하자, 태조왕건의 공산전투때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할 때 나왔던 "숭겸아우 아니돼" 드립이 등장했다. 그를 계기로 유신성에게 '유숭겸'이라는 별명이 계속 붙게 되었다.
- 특전사 드립 : 왕육으로 출연하는 민욱이 예전에 제5공화국에서 정병주로 나왔었던 것에 대한 드립... 왕육이 군사를 이끌고 나타나면 특전사 천리행군 드립이 나온다.
[1] 초반 2화는 태조 왕건의 최후를 다뤘지만, 이는 혜종의 즉위와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또한, 후술하지만 조기 종영으로 인해서 태자 책봉식 이후의 일은 마지막의 나레이션으로 대체하였다.[2] 여담으로 배경에는 전작인 태조 왕건의 일부 장면들도 나온다.[3] 첫 화에서부터 '''대놓고 전작 태조 왕건에서의 최수종의 왕건, 김영철의 궁예, 서인석의 견훤 등이 나레이션이 나올 때 화면에 비치거나 왕건이 회상을 할 때 나오며, 그가 승하할 때는 태조 왕건의 테마곡이 나온다'''. 배우들만 일부 교체됐을 뿐 방송사와 방영 시간, 배경 시대와 작가가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전작 태조 왕건과 이 드라마의 관계는 이를테면 비슷한 시기에 방영한, 같은 이환경 작가 작품인 야인시대 1부와 2부의 관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난세중에 난세인 후삼국시대와 통일된 고려 초기라는 두 시대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에 분위기는 달라졌는데, 이것도 액션 활극 위주의 1부와 정치 사극화된 2부로 나뉘는 야인시대와 비슷하다.[4] '''천추태후에서 배우 최철호가 연기했던 경종이 약간 미친 사람처럼 나오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이 드라마를 한번 보는 것을 권한다. 아마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자신을 시해하려는 반역자들이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려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이려고 들었으며, 관료들이 다같이 반대하고 나오자 유폐시켜버렸다. 게다가 당시 나이가 여덟 살에 불과했으니,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5] 태조 왕건 결말이었던 936년의 일리천 전투와 후삼국 통일 이후, 역사적으로 '''7년 정도 지났던 때'''라 주요 배역들이 노년이 되었다. 태조는 아주 팍삭 늙었고, 염정아가 맡았던 장화왕후(태후)는 반효정으로, 전미선이 맡았던 신명순성왕후(왕태후)도 정영숙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왕규, 염상, 박수문, 박수경, 박영규, 최지몽 등 주요 배역들이 다 바뀌었고, 박술희의 탈모가 사라진 건 대단한 일도 되지 못한다(...)[6] 이 무렵, 고려는 수 십 년 간 이어져오던 후삼국을 통일이 된 직후였고, 아직 고려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던 시기가 아니라서 전투 장면이 안 나오는건 당연했다. 여담으로 이 드라마에서 처음 나온 전투 장면은 어이없게도 왕규가 혜종에게 환단고기를 일러주면서 등장한 안시성 전투인데, 그나마 삼국기영상을 짜깁기해서 연출했다. 그리고 작중에서 벌어진 실질적인 전투는 혜종이 죽은 직후, 서경과 북쪽 지역(평주, 신천, 황주, 정주) 지역의 연합군과 개경 황도 수비군과의 교전이나 서경 역부들의 반란 외에는 없다.[7] 그렇다고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고, 고창 전투 이후에 왕식렴과 홍유, 배현경과 유금필의 갈등이 나온 적이 있다. 물론 이후 예성강 전투를 거치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다시 일치단결하긴 했지만...[8] 캐릭터 자체는 유약한 이미지였는데 배우 자신의 목소리가 좋아서 의도했던 이미지는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입지가 어쩡쩡하고 몸이 골골대는 왕이 야심만만한 동생들(후의 정종, 광종) 보다 카리스마가 넘쳤다.''' 게다가 이 시점은 광종이 정종 앞에서 미친 척 하고 파락호 놀이하는 시점이라(...) 심지어는 즉위 뒤에도 친위 세력이 모일 때까지 호족들에게 굽실거렸다.[9] 태조 왕건에서도 이 부분은 지적 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토대로 북벌을 추진하던 아지태와 궁예를 빌런으로 묘사하는 등 어느 정도 조절을 하였다.[10] KBS 홈페이지 내에 '종영 드라마 다시보기' 코너에는 2000년부터 최근까지 종영된 드라마들을 볼 수 있는데, 이중 사극에서는 불멸의 이순신과 함께 다시보기 서비스가 되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KBS 내의 개별 홈페이지에서 서비스를 해줬지만, 초저화질이어서 보기가 힘들었고, 그나마도 홈페이지가 개편된 지금은 아예 사라졌고, 다시보기도 아예 나오지 않고 는 상황이다. 대본 역시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일부 올라와 있긴 하지만, 역시 잘 안되는 상황이긴 하다.[11] 후술하겠지만, 주요 배역들 중 탄문 역을 맡았던 정욱이 이후 사건으로 인해서 출연금지가 되면서 그가 참여했던 드라마들이 일제히 다시보기가 안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12] 기사에는 86회로 되어 있으나, 결국 이듬해 1월 94회로 막을 내렸다. 회차에 대해서는 드라마 공홈 참고. 태조 왕건을 20편 연장방영 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13] 원래 유튜브에 '노비안건법 - 왕과 노비 입장', '노비안검법 - 신하 입장'버전의 영상이 있었지만, 현재는 다 삭제된 상태이다.[14] 이 장면은 직접 나온다(...)[15] 최고 시청률은 2회의 33.7%(일본 예고편 출처) 혹은 4월의 31.9%나 35.5%# (중앙일보 기사). 이게 얼마나 높은 거냐면, 2000년대 전반기 드라마 가운데 첫 방송(1~3회)에서 '''세 번째로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였다(...) 참고로 태조 왕건과 명랑소녀 성공기 다음.[16] 무인시대는 2003년 6월 28일부터 시간대가 주말 오후 9시 45분에서 10시 10분으로 옮겨지면서 시청률이 20%대로 떨어졌고, 급기야 후반기 때 같은 시간 방영된 SBS의 파리의 연인 탓인지 최종회 시청률이 13.6%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한자리수 시청률까지 가기도 했다(...) 반면에 제국의 아침은 일정 시청률을 유지한 셈이었지만 SBS가 제국의 아침 첫 회부터 유리구두를 통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를 부활시키면서 2인자에 머물렀다.[17] 대선 시즌이라서 그런지 참언(?)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화갑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광주역 광장 유세에서 “한국방송의 사극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 황제가 탄 백마의 앞다리에 ‘노’라고 써 있었다”며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사진# 실제로 15대 대선에서도 용의 눈물 이방원의 말에 DJ라고 쓰여져 있던게 눈길을 끌었다(...). # 참고로 말의 낙인은 주로 소유주의 이니셜 등을 뜻하는 것으로 특정 후보와는 관계가 없다.[18] 사실 화제성이 덜 된것도 있었겠지만 김상중의 광종 연기 만큼은 자타가 인정할 정도로 출중했기에 이 수상에 대해 반론은 없었다.[19] 무인시대의 고려 인종 역시 같은 복장을 착용하고 있으나, 송나라의 관복이 이미 고려에 전해진 시대이므로 고증과 거리가 멀 가능성이 높다.[20] 이렇기 때문에 극중의 설정과는 정반대로 조선 초의 민무구 형제들처럼 광종의 친위세력이었다가 억울하게 걸려든 것으로 묘사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21] 작중에서는 혜종 역의 노영국의 아버지로 나오지만, 본인이 노안에 노영국이 동안인 탓에 1살이나 적은데도(노영국은 1948년생. 이문수는 1949년생) 아버지 역으로 나왔다.(...). 회상에서 나오는 젊었을 적 모습은 최수종. 물론, 최수종이 직접 이 드라마에 캐스팅된 건 아니고, 태조 왕건에서 촬영한 부분을 다시 틀어 준 것이다. 최수종이 왕건의 죽음을 연기한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혜종 역도 노영국이 아니라 태조 왕건에서의 담당 배우였던 안정훈이 그대로 맡는다고 소개하는 등 정확도가 영 떨어지는 기사다.[22] 왕년의 청춘스타. 정종 역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으나, 드라마가 드라마인지라 묻히고 후에 야인시대의 마루오까 역을 맡아 젊은 층에게도 크게 어필했는데, 여담으로 정종 역에는 이경영, 이성재 등이 거론됐다.[23] 이 배역에는 당초 최민식, 장동건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모두 개인적인 이유들로 고사했다.[24] 태자 시절에는 세종이 될 것 같았는데 왕이 되니 태종이 되더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왕이 되기 전에는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다가 왕이 되니 강단있고 때에 따라서는 폭군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는 캐릭터는 한국 사극 중에서는 달리 찾기 힘들다.[25] 평주 일가와 효은태자는 물론 직접적으로 붙잡혔던 준홍과 왕승조차 방면해주었다. 다만 준홍과 왕승은 이미 방면 전에 당한 고문의 여파로 사망한 후였다.[26] 특히 측근 중 가장 아끼던 유신성이 희생되었다, 유신성의 희생에 광종 본인 역시 매우 상심한 듯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것이 직접적인 폭주의 기폭제가 되어버린다.[27] 재미있게도 스토리상으로 이 뒤를 잇는 천추태후에서는 신정왕후 황보씨로 나온다.[28] 같은 작가의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의 친할머니 역,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 최 상궁 역을 맡았다.[29] 태조 왕건에서 경애왕비 역, 무인시대에서 윤 상궁 역을 맡았다. 같은 작가의 드라마인 무풍지대에서 이정재의 처 역을 맡았다.[30] 태조 왕건의 딸이지만, 광종과 근친혼을 하면서 외가의 성인 황보씨라고 불리운다. 이는 고려조 내내 계속된다.[31] 전작 태조 왕건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SBS 주말드라마 그래도 사랑해에 출연하게 되면서 무산됐다.[32] 본명인 도지원으로 출연하였으며, 용의 눈물에서 소헌왕후 역을 맡았다.[33] 실제 역사에서도 광종의 노비안검법에 대해 간언을 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직접적으로 충돌했다는 기록은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다. 사실, 고려시대 기록들 대부분이 많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34] 2010년 위암으로 요절했다. 다모에 출연한 적이 있다.[35] 다만, 그래도 궁궐에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대목왕후가 늘 걱정하기도 하였다.[36] 이를 말리는 여론도 있었지만 이미 측근의 죽음에 꼭지가 제대로 돌아버린 광종이 그냥 숙청해버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를 집행했던 인물이 바로 광종의 동생인 대종 왕욱이라는 것.[37] 실제 역사에서는 경종 이외에도 효화태자라는 아들이 한 명 더 있었다. 그러나 따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요절한 것으로 추측된다.[38] 당시에는 정태수라는 이름으로 출연하였으며,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왕식렴 역을, 같은 작가의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으로 출연하였다.[39] 그러나 유신성이 평주로 내려가는 효은을 말리지는 않았는데, 애초에 효은이 처음으로 연루된 반역 사건 때 효은의 처벌을 주장하던 쪽이었기 때문이다.[40] 실제 역사에서는 그냥 사사되었다. 한편 그 당시 아이까지 있었는데, 기록에는 그 아이는 광종의 배려(?)로 죄를 면하였고, 이 때문에 효은태자의 후손들이 현재 개성 왕씨의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한다.[41] 용의 눈물에서 민무휼 역을, 태조 왕건에서 왕신 역을 맡았다.[42] 단역 전문 배우로, 태조 왕건에서는 초기에는 서남해지역의 호족 중 한 사람으로, 중반에는 왕창근, 후반에는 고창 전투의 삼태사(三太師) 중 하나인 김행 역을 맡았다.[43] 태조 왕건에서 전이갑 역을 맡았다.[44] 태조 왕건에서 종훈 역을 맡았다.[45]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원의 최측근인 내금위장 정만쇠로, 야인시대에는 홍만길의 중년 시절을 맡았다.[46] 태조 왕건에서 강장자의 부인 백씨 역을 맡았다.[47] 역사상으로 먼 훗날, 왕씨의 사직을 끝내는 여말선초 시기를 다룬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왕씨의 사직을 끝내는 이성계 역을 맡아서 열연한 바 있다.[48] 드라마에선 '고기'라고 말한다.[49] 태조 왕건에서 신라 각간 김위홍 역을, 무인시대에서 조원정 역을 맡았다.[50] 야인시대에서 최동열의 아버지인 최상우 역을 맡았다.[51] 야인시대에서 인촌 김성수 역을 맡았다.[52]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 정중부 역을 맡았다.그리고 그 후속작이 그의 마지막 드라마 유작.[53] 재미있게도 한참 전 대하드라마인 용의 눈물에서는 위의 왕규 역을 맡은 김무생을 도와 고려를 무너뜨리는 정도전 역할을 맡았다.[54] 물론, 장화왕후 오씨나 왕규는 그가 개경에 머무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겨 늘 내쫓으려 하지만, 왕식렴이 여러 이유들을 들먹거리면서 무산되기도 하였다.[55] 해당 반란은 드라마 상 가상 설정으로 실제로 역부들의 반란이 일어난 적은 없었으며, 『고려사』기록에는 정종이 죽고 나서, 서경 천도 공역이 중지가 되자, 동원된 일꾼들이 환호했다는 기록이 있다.[56]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의 동생인 환향식 역을,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 이고의 측근이었던 김교위 역을 맡았다.[57]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유긍달. 후속작 무인시대에서는 최세보 역을 맡았다.[58] 철저히 대 호족들과 그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던 중앙군을 중소 호족과 평민 위주의 구성으로 개편하여 호족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중앙군을 국왕의 직속 군대가 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조치였다. 실제로도 국왕 직속의 친위군 양성은 왕권 강화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후 조선에서도 정조가 왕권을 강화시키고, 군부에서의 노론 영향력 배제를 위해 장용영이라는 국왕 직속 친위군을 육성한 바 있다.[59] 실제로 이 당시 시중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나주 공방전 때 왕건 휘하에서 참여한 장수들 중 권직이라는 인물이 있다.[60] 용의 눈물에서 최영 장군 역,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강장자 역을 맡았다.[61] 총 책임자는 왕소였지만, 이는 그를 견제하던 왕식렴에 의해 명목상으로 보내진 것에 불과했다[62] 다음 해 야인시대 심영으로 고초를 겪는 그 분과는 동명이인인 원로 배우로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이총언 역을 맡았다. 이 분은 무려 무풍지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으신 분이다.[63] 용의 눈물에서 이숭인 역을 맡았으며,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 암살 시도한 자객 등 여러 단역을 출연한 바 있다.[64]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진호 등 여러 단역을 출연한 바 있다.[65] 그나마 광종이 이 당시까진 인간성이 남은 상태여서 이들을 옥에서 풀어주고 식솔들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다. 다만 사망한 후였기에 주검이 되어 감옥에서 나갔다.[66] 전작 태조 왕건에서 배현경으로, 후속작 무인시대에서 문장필 역으로 출연.[67] 전작 태조왕건에서 김락으로 무인시대에서는 백임지 역으로 출연했다.[68] 야인시대에서 최동열 역을 맡았다.[69] 실제로 광종은 평주, 청주, 승주의 호족들이 숙청된 후 이들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채우게 될 신라계 관료들이 과거를 주관하고 신진관료의 교육까지 담당하는 상황에 대해 당파를 형성한다고 하여 경계하였다.[70]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신덕 역을 맡았다.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는 전존걸 역을 맡았다.[71] 정확히 상황을 설명하자면, 탄문 대사를 송별하는 술자리에서 최지몽의 발언으로 광종이 분노하게 되고, 그를 옥사에 보내게 된 상황에서 최행귀가 광종을 칭송하는 발언을 하였는데, 거기에서 "신라계 학사들과 쌍기 공이 함께 학문을 일으키고 있다."라는 발언을 한다. 그런데 광종은 이 무렵 평주의 박수문과 박수경 일가를 비롯해 청주의 김긍률, 승주의 박영규 등 주요 대호족들을 대거 숙청한 후부터 이들의 빈자리를 자연스레 채우게 될 신라계 관료들이 과거를 주관하고 거기에서 합격한 사람을 교육하는 상황에 대해 이들이 당파를 형성한다고 생각하여 상당히 경계를 하였다. 신라계 관료 우두머리 격이었던 최지몽도 이런 광종의 심성을 꿰뚫어보고 신라계 관료들에게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하였는데, 최행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신라계라는 말을 내뱉었고, 이에 광종은 가뜩이나 최지몽의 발언으로 분노하게 된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여 최행귀를 즉각적으로 죽이게 된다.[72] 야인시대에서 김윤도 검사 역을 맡았다.[73] 야인시대에서 최장군 역을 맡았다.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는 염흔 역을 맡았다.[74] 전작 태조 왕건에서 윤신달 역으로 출연, 야인시대에서 의사 역을 맡았다.[75] 용의 눈물에서 황희, 왕과 비에서 성삼문, 연개소문에서는 곡사정을 맡았다.[76] 차려놓았던 주안상을 엎으면서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직언이다. 대목왕후(당시는 부인)는 물론 같이 온 균여조차 놀란 가운데, 왕소는 그의 말을 새겨들으면서 이후, 고통받았던 인부들을 치료하고 구휼하는 삶으로 전환했다.[77] 극중에서는 장단설로 나온다.[78] 훗날 정도전에서 변안열역을 맡은 변레이로 유명한 그 사람 맞다.[79] 태조 왕건에서 이총언의 아들 이영 역과 최승우의 집사 역을 맡았다.[80] 이후 작품인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았다. 야인시대에서 유진산 역을 맡았다.[81] 첫사랑에서 이재하 역을 맡았다.[82]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환선길 역을 맡았다.[83] 물론 갑옷은 아니다. 물론, 과거 혜종의 회상들 중에 박술희와 함께 갑옷을 입고 혜종과 함께 전장을 나선 적은 있었다.[84]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도선 대사,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 정숙첨 역을 맡았다.[85]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신명순성왕후의 별세로 인한 장례 중 문상을 하고 나오던 중, 문상을 하던 왕식렴 앞에서 "태후 폐하께서는 어느 늙은이로 인해 고통받는 서경 백성들이 안타깝다고 하시면서 운명하셨다."는 직언을 날려 왕식렴 뒤에 있던 김긍률과 박영규까지 간담을 서늘케 할 정도였다.[86] 재위 초반 속내를 감추던 광종이 대신이나 호족들에게 금으로 된 술잔을 하사할 때 서필만은 이를 거절하였다.[87] 실제로 사후에는 광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광도 누렸다.[88] 용의 눈물에서는 의안대군으로,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백제 승려 도우 역으로 출연하였다.[89] 왕규, 박수경을 제외한 다른 시중들도 힘은 없었지만, 왕함민만큼 약하진 않았다. 박수문은 극 시작 이전부터 시중이었고 곧 왕건이 사망하여 비중이 적었을 뿐이었다. 권직은 왕식렴이 시중위에 집정이라는 관직을 만들어 권한은 줄었지만 그래도 서경 공역을 진두 지휘 하기라도 했었다.[90] 전작 태조 왕건에서 전의갑 역으로 출연, 후속작인 무인시대에서는 김보당 역으로 나온다.[91] 본명 박승규, 전작인 태조 왕건에서 원극유 역을 맡았다.[92]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을 맡았던 태민영씨가 연기한 역할이었는데, 태민영씨가 중도에 간암으로 별세하면서 배역 자체가 증발했었다.[93] 태조 왕건에서 신라의 관료 연식 역을 맡있다.[94] 사실, 광종이 이성을 잃었다기보다는 균여만큼은 처형하기를 망설이면서도 황실의 위엄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황실의 위엄을 세우겠다고 호족과 황족들을 대거 숙청했는데, 그런 가운데서 천도제를 지내 그들의 명복을 빈 것은 광종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은 물론 그의 위엄까지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95] 태조 왕건에서는 견훤의 딸이자 박영규의 아내인 국대부인 견씨, 후속작 무인시대에는 이의민의 연인 부용으로 나와 KBS의 고려사 사극 세 편에 모두 출연했는데, 전작 '태조 왕건'에서 강비 역을 맡았던 김혜리는 용의 눈물에서 효빈 김씨, 왕과 비에서 혜빈 양씨 역을 맡아 역시 KBS 대하 사극에 3연속으로 나왔었다. 여담으로 당시에는 본명인 임경옥으로 나왔다.[96] 태조 왕건에서 오다련, 무인시대에서는 이인로 역으로 출연함.[97] 대조영에서 이문의 수하인 우면, 징비록에서는 이시다 미츠나리 역으로 나온다.전작인 태조 왕건에서도 여러 단역을 맡았었다.[98] 당시 고려 백성 대부분은 과거 군인이었다는 설정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후삼국시대였으니 당연한 것. 때문에 반란도 일개 농민군 vs 관군이 아닌, 예비역 vs 현역의 양상을 띄게 되었다. [99] 야인시대에서 김원봉, 법무장관 역으로 출연하였다.[100] 호족들과의 연회에서 가야금을 연주하자 졸린 분위기를 연출하여 생긴 별명.[101] 가끔 묘하게 이집트 파라오 느낌 나는 복장을 하고 있다(...)[102] 전작 태조왕건에서는 염정아가 연기.[103] 전작 태조왕건에서는 전미선이 연기.[104] 대장금에서 최금영을 연기.[105] 백제 출신 박영규의 딸이라 생긴 별명.[106] 여인천하에서 정난정 아역을 연기.[107] 전작 태조왕건에서 배우가 왕식렴을 연기.[108] 역병에 걸린 백성들에게 약초달인 물을 나눠주는 모습이 약장수같다고 나온 드립.[109] 본작의 후속편인 천추태후에서 경종을 맡은 배우 최철호의 별명을 계승.[110] 태조 왕건의 아지태처럼 북방정벌같은 포부를 밝힐 때가 많아 생긴 별명.[111] 건강이 좋지 않은 혜종을 대신해 시중으로써 국정을 농단하여 얻은 별명.[112] 초반부 드라마가 끝나는 엔딩장면에 자주 등장하며 생긴 별명.[113] 34화에서 정종과 왕소 앞에서 북방 진출의 중요성을 역설하자 나온 드립.[114] 전작 태조왕건에서 배우가 환선길을 연기.[115] 앞날을 예견하는 포지션을 맡으면서 전작의 스포충 포지션 계승.[116] 전작 태조왕건에서 본 캐릭터의 별명 계승.[117] 전작 태조왕건에서 본 캐릭터의 별명 계승.[118] 명천공이 등장할때 나레이션에서 신라 내물왕때 박제상의 25대손이라고 했는데, 비슷하게 들리는 박재상을 본명으로 하는 싸이의 후손이라고 드립이 등장했다.[119] 태조왕건에서의 유천궁 별명을 계승했다.[120] 서경 공역에서 백성들이 역병이 도는데도 오히려 끌어내서 산 채로 생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러서 생긴 드립.[121] 그런데 실제로는 쌍공, 쌍대인 등으로 드립이 더 터진다. 아무래도 쌍이라는 성씨 때문에 더 찰지게 입에 붙는듯..[122] 금빛 옷을 입고오자 터진 드립[123] 배우 이동준하면 떠오르는 환상의 똥꼬쇼에서 따온 별명...[124] 나레이션에 균여의 속가 성씨가 변씨라고 나오자, 똥막대기 드립과 연관되어 나온 드립. 놀랍게도 이는 본명이다.[125] 굶주리고 병든 빈민을 모아 구제하는 장면이 드라마 허준의 장학도가 혜민서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장면과 유사해서 "혜민서 장학도"라는 드립도 등장했다.[126] 향가 보현십원가를 저술하면서 생긴 별명.[127] 실제로 유천궁은 생몰년대가 미상이라 왕건 사후에는 80대쯤이라 생존해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