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략결혼

 

政略結婚
1. 개요
2. 역사적 정략결혼
3. 금슬
4. 대중매체
5. 예시
5.1. 실존 인물
5.2. 가공 인물
6.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6.1. 실존 인물
6.2. 가공 인물
7. 혼동
8.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9. 기타


1. 개요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시키는 결혼. 정략혼이라고도 한다. 스케일이 커지면 집안이 아닌 나라 사이에 왕실의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여 나라 간의 동맹 등을 이루기도 한다. 나라간의 결혼으로 동맹을 강화한 역사적 사례로 나제동맹이 있다. 좋게 보면 가문 사이의 우애를 강화시켜 주는 풍습이지만, 나쁘게 보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족(자식)을 팔아먹는 악습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정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가 어떤 일[1] 때문에 법적 관계를 맺어서 사회적 위상과 보호를 얻기 위해 사무적으로 결혼하는 것 역시 서로의 자의로 했어도 정략결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돈만 보고 한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혼테크라 불러야 하며, 사전적 의미로는 정말 사회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한 결혼만이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혼테크 문서 참조.

2. 역사적 정략결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행위며,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많이 해온 풍습이다. 특히 뼈대 있는 집안들에서 정략결혼은 꽤나 흔한 경우였고, 정략결혼을 통해서 서로간에 가족 관계를 맺어서 이득을 취하는 일도 역시 많았다. 왕족들은 이것으로 나라간에 평화를 이루는데 많이 써먹었다. 대개는 약소 국가에서 힘 있는 강대국에게 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를 강대국의 왕족에게 시집 보냄으로써 사돈 관계도 맺고, 동맹국으로 만들어 전쟁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클리셰 중에서 사랑하던 연인 중 다른 1명이 정략결혼으로 곁을 떠나고 서로간에 그리워한다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로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이야기거리 중 하나다.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난 비운의 연인은 사랑의 도피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재벌들은 지금도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민왕노국대장공주의 금슬은 굉장히 유명한데,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공민왕이 비탄에 빠져 고려 멸망을 앞당겼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다만 정략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반원 정책의 완벽한 지지자였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결혼은 원나라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해 버린 정략결혼이다. 서양에서는 이사벨라 1세페르난도 2세의 금슬이 유명하다.
근세나 근대 이후로는 정략결혼이라도 무조건 가문에서 점찍은 후보와 시키는 게 아니라, 조건이 동등한 여러 명의 후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기도 했다.
서양에서의 수많은 정략결혼 중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마리 앙투아네트루이 16세의 결혼이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통의 강국들인 프랑스오스트리아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정략결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강대국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결혼한 여성이 그 나라에서 좋지 못한 대접을 받거나 홀대를 당한다는 소식이 강대국에 전해졌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간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략혼인이 파탄나는 비극도 있었다. 529년 대가야 왕자가 신라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드디어 아이를 가졌으나 신라가 결혼 동맹을 취소했다. 가야는 "부부가 되었고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떨어질 수 있겠냐"며 신라에 사정사정했지만 신라는 이미 혼인 동맹을 깨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고, 부인은 결국 신라로 돌아갔다. 또 다른 비극으로 정략결혼이 사실상 자식 하나를 희생해 상대 나라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던 경우가 있다. 553년 백제성왕은 신라 진흥왕에게 딸 소비 부여씨를 시집 보내는 정략결혼을 맺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바로 이 때부터 성왕은 동맹국 일본과 함께 신라와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불과 1년 뒤 관산성 전투로 폭발하게 된다.[2] 진흥왕에게 시집 간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허가 받지 않은 다이묘끼리의 정략결혼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명목상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바로 자식과 손주를 정략결혼시켰고, 히데요시의 충신들에게 크게 비난 받았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에 대적할 다이묘가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히데요시 세력을 멸망시켜버렸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졌다.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도 다이묘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정략결혼을 금지시켰지만, 다이묘들 간에 정략결혼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3. 금슬


현대에는 '권력/재산/가문의 이익 등을 위해 본인의 의지나 사랑과는 무관한 결혼을 한다'는 점 때문에 비극적이거나 불행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은 역사상 이루어진 정략결혼 중에 당사자들의 감정이 나빴던 경우가 의외로 더 드물다.
일단 정략결혼을 했다는 건 결혼 당사자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란 건데, 동서를 막론하고 그런 사람들은 애시당초 이성을 만나고 로맨스를 찍을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따라서 '원치 않는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와 헤어지는' 경우 자체가 발생하기 힘들다.
그리고 결혼 자체에 작게는 가문끼리, 크게는 국가끼리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으므로 상대의 첫인상이 안 좋았다고 해도 대놓고 파토낼 수 없어서 상대를 어느 정도 배려하며 살아야 했다. 부부라는 공적 관계로 얽혀서 서로 배려해 가며 붙어 살다 보니 뒤늦게 애정이 싹트기도 했고, 연인으로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진 않는 대신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진 않다 보니 정말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도저히 서로를 좋아할 수가 없던 경우도 있었다. 만약 한 쪽이 외모나 성격 등의 이유로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색이 결혼한 사이이면서도 서로 얼굴조차 자주 마주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고, 배우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며 애도 낳고 잘 살지만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적어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허구한 날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든지, 서로를 증오해서 물고 뜯고 싸운다든지 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흔하지 않았다.
정략결혼을 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원만하게 지내더라도 상대를 연인으로서 원하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지만, 역시 일반화할 수 없다. 웬만해선 양가 어른들이 먼저 만나서 원만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겠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고, 집안끼리 동질감도 커서, 부부 사이가 흔히들 상상하는 것만큼 극악했던 경우는 오히려 적었다. 그리고 한창 나이의 남녀를 한 집에 놔뒀으니 서로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물론 연인으로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첩이나 정부를 따로 두는 경우도 많았다. 전근대에선 첩이나 정부를 두는 건 당연하게 여겼고, 정략결혼을 할 정도면 그럴 재력이나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4. 대중매체


대중매체에서는 재벌, 명문가 같은 높으신 분들 속성이 있는 집안 출신 캐릭터가 으레 안고 있는 클리셰 가운데 하나다. 즉 집안에서 정해준 미래의 배우자가 존재하고 상대방도 상당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략결혼에는 관심 없고 상대방에게 연애적인 감정이 일말도 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과 이런저런 일로 엮여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 이런 식. 막장 드라마에서도 꽤나 보이는 클리셰다.
반대도 자주 나오는 콘셉트이다. 주인공들이 어릴 적, 심지어는 뱃속에 있기도 전에 부모들끼리 당사자들 동의 없이 '니 딸과 내 아들 결혼시키자'라고 정략혼인 약속을 해서 평생 모르고 살다가, 철 들 때 쯤 주인공 앞에 갑툭튀해서 너희 부부 하는 시추에이션이 잦다. 물론 처음부터 정략혼을 맞아들이는 전개는 거의 없으며, 처음엔 거부하고 서로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돼서 부부로 잘 사는 게 클리셰.
정략결혼과 관련되는 배신하는 딸이란 클리셰가 있다. 일단은 서로 정치적인 이익을 보고 결혼한 두 집안이 나중에 정치적인 이득 때문에 갈라설 때, 시집 간 딸이 본가와 시댁(남편) 가운데 어디를 선택하냐는 문제.
사랑의 불시착 7화에서 구승준이 서단에게 정략결혼의 폐해를 알려준다.

5. 예시


※ 금슬이 좋았던 경우(♡)
※ 금슬이 나빴던 경우(☓)
※ 남자 & 여자 식으로 기재한다.

5.1. 실존 인물


이 가문의 모토가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일 정도로, 철저한 정략 결혼을 통해 한적한 지방 영주에서 유럽 최고 명문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과도한 정략+근친 결혼의 폐해도 가장 많이 보여준 가문(...)
공민왕의 반원 정책을 원나라 공주 출신이었음에도 후원했을 정도로 사랑했다. 심지어 반란이 일어났을 때 반란군이 공민왕을 죽이려 하자 자신이 직접 가로막았다. 보통 같으면 노국대장공주도 끔살행이었지만, 그 반란이 친원 세력이 일으킨 거라 결국 공민왕도 노국대장공주도 죽이지 못했다. 물론 노국대장공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와 사별한 공민왕이 피폐해져 고려의 개혁을 실패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항복하게 만들기 엄청나게 어려운 난적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굴복시키기 위해 엄청난 무리수를 많이 뒀다. 이미 유부녀였던 자기 여동생인 아사히히메를 강제로 이혼시켜버린 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정략결혼으로 시집 보내버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생모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내줬다. 이러고서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항복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아사히히메를 사람으로서만 대우했을 뿐[3] 절대로 여자로 대우하지 않았다. 아사히히메 역시 알콩달콩하게 잘 살고 있다가 강제로 이혼 당한 후 억지로 한 결혼이었던지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 옛 남편을 더 생각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관계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싫어하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결혼한 과정이 워낙 개떡 같았기에 금슬이 좋아지는 데에 한계가 명확했다.
그 유명한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지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다스리던 바빌로니아는 평지에 가까웠는데, 아미티스의 고향인 메디아는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무함마드가 친족이 반대하는 결혼이라도 자기가 하는 결혼이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자, 아이샤가 "당신의 신은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가 보군요!"라고 비꼬았지만 무함마드는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옆에서 이를 두고 아이샤가 너무 버릇 없다고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무함마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 대해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며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다. 또한 아이샤는 기억력과 통찰력이 뛰어나, 무함마드가 아이샤에게 이슬람학에 대해서 가르쳐줌으로써 아내임과 동시에 신학적인 동료이기도 하였다.
아이샤가 6살일 때 결혼했고, 그것도 첫째 아내인 카디자가 죽자마자 한 결혼이었기에 현재까지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슬람권의 악습으로 꼽히는 조혼을 극단주의자들이 무함마드와 아이샤의 사례를 들어서 정당화하려고 들기 때문이다. 아이샤의 아버지는 무함마드가 천사 지브릴에게서 알라의 계시를 받아온 직후에 개종해 무슬림이 된 인물이자 무함마드 사후 초대 정통 칼리파로써 움마(이슬람 공동체)를 이끌게 되는 아부 바크르인데, 이슬람의 전파에 그의 재력과 인맥이 크게 도움이 되었던, 무함마드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무함마드로써는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지하던 아내와 부족장 삼촌이 이틀 간격으로 죽고, 새로 부족장이 된 사람은 사이가 안 좋아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무함마드로서는 현실적으로도 기댈 데가 아부 바크르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백제신라간의 정략결혼이 있었으나 이 결혼 자체가 관산성 전투의 전쟁 준비를 위한 백제 측의 시간 벌기였다. 실제로 백제를 지원한 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결혼 시점에 이미 백제는 뒤에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의 정략결혼이기도 했지만, 사실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1세 모두 서로 첫눈에 반했던지라 정략결혼을 가장한 흔치 않은 사실상 연애 결혼이었다. 슬하에 자식만 16명이나[4] 낳을 정도로 부부 금슬도 좋았다. 사실 프란츠 1세도 바람을 숱하게 많이 피웠으나, 자존심 강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의 내연녀들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란츠 1세는 차남 레오폴트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갔다가 인스브루크에서 뇌졸중으로 급사했다. 이후 아내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남편의 죽음을 매우 슬퍼해 궁전에 그를 위한 방을 만들었고, 내내 상복만 입으며 남은 평생을 남편을 애도하며 지냈다.
서양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략결혼. 루이 16세는 이전의 프랑스 국왕과는 달리 그 흔한 정부도 두지 않았고 사생아도 없이 오로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충실했다. 하지만 이게 당시 프랑스 대중들이 생각하기엔 매우 '왕답지 못한' 모습이라서, 두 사람에게 '못난 남편과 그걸 등쳐먹는 못된 아내'라는 루머가 생겼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두 사람을 금슬 좋은 부부처럼 그려놨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사이가 매우 나빴다. 손부인은 침소에서까지 무장한 시녀들을 대동하고 있었으며, 동오에서 데려온 관리와 장수들을 거느리고 규율을 위반하며 위세를 부렸다고 한다. 즉 자신은 유비를 존중하는 시늉도 안 할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침소에서 유비를 암살할 수도 있다고 무력 시위를 벌인 셈이다. 이에 유비는 손부인이 변고를 일으킬까 봐 항상 꺼려했고, 내실에 들어갈 때마다 두려워했다고 한다. 오래 못 가 둘은 별거에 들어갔으며, 급기야 손부인이 유비의 아들을 납치해 동오로 데려가려다가 실패하고 본인과 본인 세력만 동오로 귀환하면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만 2년도 못 채우고 완전히 파탄났다.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은 덕혜옹주조현병 때문이었는데, 병의 원인은 적어도 부부 사이의 불화는 아니다. 이미 10대 중후반부터 정신 질환의 증세가 있었기 때문. 증세가 호전되는 듯 하자 양가에선 서둘러 둘을 결혼시켜 버렸다. 그 후 아이를 낳고 잘 사는 듯 했으나 재발했다. 특히 조현병은 여성 환자는 아이를 낳고 살 무렵인 20대 후반~30대 전반에 본격적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던 관계였으나,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헨리의 마음이 떠나 버렸다. 이후 헨리는 앤 불린과 눈이 맞아 그와 재혼해서 아들을 얻기 위해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화하려고 했는데, 캐서린은 여전히 남편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하나 남은 딸 메리가 사생아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여 이혼을 거부했다. 캐서린이 순순히 이혼해 주지 않자 헨리는 화를 내며 그를 증오하게 되어서, 딸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거처를 옮기게 하고 캐서린이 갖고 있던 보석들도 빼앗는 등 여러 가지 치졸한 수로 압박했다. 끝내 이혼에 성공한 뒤에도 캐서린이 죽을 때까지 생활비 한 푼 대 주지 않아, 캐서린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외롭게 죽었다.
정치적 이유로 결혼이 성사됐지만, 앤의 용모와 성격 등이 헨리의 취향이 아니었다. 이에 헨리는 앤을 두고 인격의 바닥이 보이는 폭언을 지껄이며 모욕하는 등 공공연히 박대했다. 안 그래도 이 결혼은 오래 못 가서 정치적/외교적 가치를 상실한 터라, 헨리는 반 년만에 혼인 무효화를 결심했다. 앤은 이를 알고 처음에는 몹시 충격을 받아 혼인 무효화를 거부하려 했지만, 그래 봤자 손해는 자신만 보게 된다는 것을 파악하고 결국 위자료를 받고 이혼하는 데 동의했다. 지켜야 할 딸(메리 1세)이 있던 아라곤의 캐서린과는 달리 자식이 없었으므로, 헨리와의 결혼을 유지해야만 할 절박한 이유는 없었던 것도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관계는 이혼 후에 더 좋아져서, 이전에는 앤을 그토록 싫어했던 헨리가 이혼 후에는 위자료로 앤에게 성 3채와 막대한 연금을 지급하고 왕실 일원처럼 후대하는 등 여러 가지 호의를 베풀었다.

5.2. 가공 인물


  • - 의강세자(원조) & 대비 (♡)
처음에는 사이 좋은 척 연기하였으나, 나중에는 세자가 먼저 고백하면서 좋아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 대비는 옛 애인인 결혼한 시동생(=서방님)과 바람을 피웠다. 애초에 세자가 자기 동생의 여자친구한테 정략결혼하자고 청혼해서 결혼하긴 했지만... 결국 이율을 낳고 잘 살기는 한 모양이지만 의강세자는 병으로 요절하고, 대비는 세손에서 세자의 아들인 정2품 군으로 격하된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난다. 이후 세월이 지나 남편이 왕으로 추존되어 대비로서 궁으로 돌아온다.
아사가의 부모님으로 사나유진에게는 조부모가 된다. 수가 본인 말로는 이복 남매였던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아서 혼인하면 아내에게 잘 해주리라 다짐했었다고. 아사라 또한 수가와 혼인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대답했다.
우온이 자신과 어머니를 이용하려고 했던 부마사의 손녀라는 점 때문에 다른 후궁들보다도 푸대접했고, 이후 사나(우이)가 후궁으로 들어오자 후궁들과 함께 사실상 방치되었다. 결국 우온이 바리에게 협조해 사나가 이바나를 떠나게 만들었고, 유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이전보다 더 우온을 냉대하면서 부부 사이는 끝까지 안 좋았다.
위의 실제와는 정반대인데, 연의에선 두 사람의 관계는 좋았지만 유비와 동오의 형주 문제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었고,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없던 손부인을 동오에서 어머니 오국태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다시 데려와 사실상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 촉한과 동오의 전쟁이 벌어지자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랄 정도로 그리워 했지만, 유비가 패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에 장강에 투신자살을 해 비극적으로 끝을 맺게 된다.
  • 아웃랜더 - 제이미 프레이저 & 클레어 프레이저 (♡)
원래 연인이 있었으나, 일국의 황제라는 신분 탓에 신분에 걸맞는 여자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결혼. 다만 연인과 아예 헤어진 것은 아니다. 그녀를 비밀리에 정부로 두고 내연 관계를 이어갔으며, 결국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사생아까지 가진다(...)
이 둘은 어렸을 때 서로 결혼을 약속을 하였지만 남편이 바람둥이가 되었다. 그 후 아내가 잠들지 않는 체질이라며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아내는 거들떠 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마르가리타는 옆에만 있어도 좋아고 한다. 그리고 카스팔은 마르가리타가 준 gift로 인해 죽고, 결국엔 마르가리타도 그걸 먹고 자살한다.
지지 세력이 부족한 백하가 황위를 물려받기 위해서 정해졌다. 태누는 전부터 백하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백하 역시 태누를 좋은 아이로 생각하고 있기에 금슬이 좋다.
  • 유령신부 - 빅터 반 도트 & 빅토리아 에버글롯 (♡)
알렌의 말로는 정략결혼이었지만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고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높으신 분인 인제이의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나오며 결혼도, 자식도, 전부 정치에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나온다.
소비에슈가 라스타를 정부로 데려온 후부터 사이가 급속도로 악화되었으며, 그 전까지 부부 사이는 동료에 가까운 관계였다. 오히려 나비에는 나중에 소비에슈에게 이혼당하고 재혼한 하인리와 금슬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
  • 주베르 백작 & 주베르 백작 부인 (☓)
  • 그 외 다수의 귀족들
작중 정략결혼으로 결혼했다는 언급이 있다. 다만 아이린이 멸룡 마법을 손에 넣은 이후 용화가 되자 남편은 그녀를 괴물로 인식하고 마구 학대하였으며, 결국 아이린이 완전히 드래곤이 되어버린 뒤 남편을 죽여 파탄나게 된다.
이쪽은 별 문제 없이 잘 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표르도바 2세에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하는 여인의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라 왕비와 결혼한 것이었다. 표르도바 2세는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에이레네를 그리워하며 파라 왕비를 냉대하다가, 결국 에이레네가 궁을 떠난 뒤에야 둘 사이에서 외동아들 비욘을 낳는다.
단, 작품 완결 시점까지 실제 결혼에는 이르지 않았다. 약혼 상태를 유지하는 듯.

6.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6.1. 실존 인물


여포와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어 원소, 조조를 견제하려 했다. 진궁 등 호족들도 긍정적으로 봤지만, 진규의 방해와 여포의 뒤끝 때문에 결국 다 성사될 뻔했던 것이 파토가 나 버렸다. 그런데 여포의 뒤끝이란 게 원술이 자기를 쫓아내서였는데, 그 이유도 결국 여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원인이라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
동오에서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에게 정략결혼을 권했으나, 관우가 동오의 사자를 모욕하며 쫓아냈다. 연의에선 여기에 좀 더 각색해서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냐"고 대놓고 까댔다. 관계는 좋진 않아도 어쨌던 동맹 세력의 군주를 일개 장수가 모욕을 주는 셈이어서 인격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매우 큰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다만 관우 쪽에서도 할 말은 있는 게, 관우가 형주 사령관이었던 만큼 단순한 정략결혼이 아닌 주군인 유비의 허락과 합의가 있어야 하는 중대사이다. 하지만 손권의 이런 직접적인 처사는 자신의 주군 유비를 무시하는 노골적인 행동일 뿐더러, 어찌 보면 자신에게 유비의 반역을 부추기는 행위나 진배없기 때문. 관우의 최선책은 이 일을 손권에게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 유비에게 보고하는 것이었다. 순순히 응한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싸가지 없게 군 것이 더 문제다. 왜냐하면 손권은 유비와 동일선상에 놓인 인물이다. 관우는 오나라로 따지자면 태사자 정도 위치에 불과한 인물이기 때문인 데다가, 관우는 안 일으켜도 되는 마찰을 굳이 일으킨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때 관우가 손권의 사신의 목을 베었더라면 이릉대전이 한참 일찍 발발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유비와 손권이 같이 죽을 쒀다가 조조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6.2. 가공 인물


이쪽은 주인공인 사토미 코타로포르트제에서의 진짜 신분으로 인해 격이 달라져버렸다. 22권 이후 루스의 부모님들이 오히려 코타로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
  • 바이올렛 에버가든 - 길베르트 부겐빌리아 & (불명)[5]
강유라의 고모 강나미가 자신의 시아버지인 엄일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했던 결혼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엄일남은 윤정애와 재혼 후 콩순이김강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에 엄일남이 허상순을 갈궜다. 이때 엄일남의 속내는 김강재를 정략결혼시키려고 했는데, 콩순이 임신으로 무산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 둘의 부모님이 의료장비 납품과 관련해서 사업상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맺어진 정략결혼. 그 당사자들 중 호죠 린은 카오리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정작 카오리는 타카하시 료스케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 정략결혼을 할 수 없다는 발언 직후 뺨을 때리며 '니가 뭔데 이 결혼을 거절하느냐!!!'라며 사업밖에 생각 안하는 막장부모급의 아버지와 거절 직후, 니네 사업 망할 거라며 마찬가지로 홧김에 마음에도 없는 폭언을 내뱉은 린에게 몰린 끝에 카오리는 자살했다. 린은 그 후 스스로를 자책하며 가족하고도 말 섞지 않고 히키코모리로 지내다가 가출한 끝에, 흉기급으로 개조한 650마력 GT-R을 끌고 다니며 고갯길에서 보이는 폭주족마다 크래쉬추락시켜버리는 사신으로 전락했다.
파혼이 아니라, 둘 다 비명에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7. 혼동


영어의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결혼)과 정략결혼의 의미 차이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8.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 혼테크
  • 혼맥 - 왜 정략결혼이 아닌지는 정략결혼 문서 토론 참조
  • 중매결혼

9. 기타



[1] 주로 돈에 관계된 일. 돈을 서로 배분할 일이 생겼는데, 서로 배분을 못하는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경우 등.[2] 이후 신라의 장군 도도가 성왕의 목을 벨 때 성왕의 죄로 '맹세를 어긴 것'을 드는데, 이것이 혼인 동맹을 뒤집고 기습 공격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고 있다.[3] 그래도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존중했다.[4] 이 두 사람의 막내딸이 바로 아래에도 서술된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5] 길베르트는 물론 그의 약혼자도 둘 다 서로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혼자 쪽에서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약혼을 파기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