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음악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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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에 위치한 일본의 사립학교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생도를 양성하는 학교이다.
2. 역사
3. 학교 생활
매일 성악, 발레, 일본무용 등 극단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깔끔한 레슨이 짜여져 있다. 그 밖의 수업으로는 모던댄스, 탭댄스, 연극, 피아노 등이 있다. 수업후에도 기숙사에서 레슨이 있어 학생들은 매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1년은 "예과", 2년째는 "본과"으로 불리며 대부분의 학생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단, 집이 학교와 멀지 않은 학생인 경우는 통학을 하는데 이때는 꼭 한큐전철만을 타야한다.
코바야시 이치조에 의한 '''"깨끗하게, 바르게, 아름답게"'''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예의범절이나 매너도 엄격하고, 이른 아침부터 예과생이 연습실을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것은 유명하다. 졸업생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출신자들의 인터뷰를 들어 보면 이 청소는 본인이 맡은 구역을 예과생 1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하며 청소하는데만 시간이 무려 1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이후 본과생이 검사를 했을때, 먼지가 보이면 혼나기도 한다고.
본과생이 문화제 일명 졸업공연을 하면 곧 예명을 발표하는데, 이때 남역과 여역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입학때부터 남역과 여역중 하나를 택해 그에 맞는 수업을 듣는다. 학교를 다니는 중 지망하는 역할을 바꾸는 경우도 꽤 있다. 남역과 여역은 대체로 키 164 cm를 경계로 나뉘어 무대 위의 성별은 '키만으로 결정된다.'고도 불린다. 다만 본인의 개성(얼굴이나 목소리 등)이 현저한 경우는 예외도 있다. 예전에는 키를 기준으로 나누었으나 현재는 본인의 선택이고 진급 및 졸업은 조건이 아니라 유급 조치도 존재한다.
3.1. 연간 일정
3.2. 예과생의 마음가짐
- 등하교 때는, 교성이나 웃음소리를 내지 않게, 자세를 바로잡고 바로 앞을 응시해, 빠른 걸음으로 등하교한다.
- 2열 종대(최대 6명)로 행진하며 길 가는 상급생들 각자에게 인사를 한다.
- 사복은 흑색, 백색, 회색으로. 적색은 입으면 안된다.
- 명품은 가져서는 안된다.
- 사적인 화장은 엄금.
- 한큐 전철 다카라즈카선과 이마즈선에 각각 승차할 때는 맨 뒤 쪽 칸에 타야 한다. 부모와 동반한 때도 지킬 필요가 있다.[3]
- 교내에서는 손님이 쉽게 지나갈 수 있도록 복도 끝을 일렬로 걷는다.
- 교내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뛰지 않는다.
- 전자레인지, 자명종 등 소리가 나는 것의 소유는 금지.
- 공사(公私) 모든 것에 있어서, 본과생이 예과생을 지도하여 돌보는 시스템이 되어 있다.
- 본과생이 되면, 상술의 규칙은 느슨해진다.
4. 입학 시험
가극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이 학교는 '''15세부터 18세까지'''[4] 의 여학생들만을 입학 대상으로 하며, 한 학년의 입학 정원도 40명으로 경쟁률도 굉장히 높은 편이라서 들어가기가 까다롭다. 그럼에도 학교의 명성이 명성인지라 재수, 심지어는 3~4수를 해서 들어가는 학생까지 존재한다[5] . 교풍도 엄격하기 때문에 들어가서도 까다롭다. 간사이 지방에선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뉴스에 나올 정도.
입학 시험은 매년 3월 말에 이뤄진다. 2000년도 이후의 학생 정원은 50명이었으나, 2008년도 이후부터 합격자 수는 약 40명으로 줄었다. 2016년도 제104기생 입학시험에서 응시자 수는 1079명, 배율은 27.0배로 이전 7년간 실시한 시험 중 경쟁률이 가장 높았다. 1960년대까지는 평균 3배 정도였으나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공연으로 다카라즈카 가극 붐이 일어나 이후 빠르게 늘어 '''"동의 도쿄대학, 서의 다카라즈카"'''로 알려질 정도로 경쟁률이 높아졌다.사상 최고 경쟁률은 1994년도(다카라즈카 가극단 82기생) 입학 시험으로 그 배수는 무려 '''48.2배'''. 2004년도 이후는 응시자 수가 줄어 20배 안팎의 경쟁률을 유지했으나 2009년도에 증가하고 당시 배율은 27.65배가 됐다. 그 후는 보통 1천 명 정도 응시하며 배율은 25배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104기생 이후 수험자가 점점 줄어들다 2020년 108기생 수험에는 852명이 수험에 응시해 21.3배로, 이전 9년간 수험비율 중 가장 낮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도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881명이 수험에 응시했던 101기생 이후 102기생 수험에는 약 200명이 추가된 1065명이 응시했던 기록도 있기에 꾸준히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 또한 있다.
5. 졸업 후
예과와 본과를 합쳐 2년간 학교 생활을 마친 후 극단에 들어갈 수 있다.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아예 남역과 여역을 구분한다[9] . 학교에서는 성악, 발레, 일본무용 등 이상적인 다카라젠느가 되기 위한 모든 것을 엄격한 지도 아래 배우며, 혹독한 교습과 수련생활이 계속된다[10] .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는 졸업과정을 거치고 정식으로 극단의 단원이 되어도 연구과의 '생도'라 불려진다. 한마디로 퇴단할 때까지는 이 학교의 생도이며, 공연은 어디까지나 생도가 배운 성과이자 발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으로 인해 항상 새로운 출연자를 확보할 수 있고, 양성 커리큘럼도 충실하고, 교육의 질이 뛰어나다 보니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기도 용이하며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므로 일관성 있는 장르구성이 가능해진다. 또 이런 시스템은 급여나 계약인 측면에서도 인건비 부담을 줄일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다카라즈카 무대에 설 수가 없기 때문에, 일반 뮤지컬이나 연극처럼 캐스팅시 오디션이나 출연자 모집이 필요 없다.
6. 사건 및 사고
6.1. 96기생 이지메 사건
6.1.1. 사건 경위
2008년, 96기 일부 학생들로부터 학생 A가 편의점에서의 절도가 의심된다고 하는 목격 정보가 학교에 전해졌다. 해당 A의 가방에서 타인의 물건이 발견되고, 공용 비품을 자신의 가방에 넣는 등에 대한 행위로 이전부터 주위로부터 도벽이 있다고 의심되었기에 학교 측에서 A의 가방을 검사했다. 그 결과로 훔쳤다고 주장되는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타인의 지갑이 발견되었다. A는 이에 다카라즈카 대극장에서 9일 전에 주웠다고 해명했으나, 학교는 취득한 지갑을 9일간 은닉한 등의 이유로 퇴학 처분을 실시했다. 하지만 A는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있고, 조작으로 인해 퇴학 처분을 받았으며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한 처분은 무효"'''라며 학교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을 요구하고 고베 지방 법원에 제기했다.[11]
6.1.2. 1차 재판 과정
2009년 1월, 고베 지방 법원은 '훔친 것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가 없고, 주운 지갑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퇴학 처분은 가혹하다.'는 판단으로 학생의 지위를 인정하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7일경 학교는 학생에게 두 번째 퇴학 처분을 내렸다. 이에 학생측은 두 번째 가처분신청을 지방법원에 제기했고, 같은 해 3월 법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 퇴학처분도 무효이며, 학교가 가처분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복종할 때까지 하루에 1만엔(한화 약 10만원)의 간접제재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학교측은 이것에 불복해 오사카 고등재판소에 항고를 하지만, 2009년 8월, 오사카 고등 법원은 고베 지방 법원의 판단을 인정해 불허가 결정을 내려, A의 복학을 인정하는 가처분이 확정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오사카 고등법원의 가처분 확정 이후에도 사법명령을 어기고 법원이 내린 결정을 무시하는 사회적 규범 일탈행위를 계속했다. 재판소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교육적 배려가 결여되어 있다」(오사카 고등 법원)「다카라즈카 음악학교는 퇴학처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책임전가를 하고 있다」(고베 지방 법원)고 하였다.
6.1.3. 2차 재판 과정
2009년 11월 1일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 대해 재차 퇴학처분의 취소와 위자료 1000만엔의 지불등을 요구하여, 코베 지방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제소에 대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는 '''"사실에 근거하여, 급훈에 따라 처분을 했다. 일부에서 보도되는 조작 사실은 없다. 본건은 원고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집단 따돌림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성명을 음악학교 홈페이지에서 발표했다.[12] 그러나 2009년 말, 1명의 96기생 블로그가 발각되었다. 이 학생은 12월 24일에 블로그 작성을 이유로 퇴학 처분이 결정되고 12월 25일에 자퇴 후 98기생으로 복학했지만 입단은 사퇴했다.
재판 과정에서 2010년 3월 18일, 4월 1일 양일간 총 13명의 96기생이 증인으로 나왔다. 4월 2일에는, A의 중학교 시절 교사와 어머니가 증인으로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부교장 및 사무장이 피고측 증인으로서 출정했다. 또한, A학생 본인이 출정해 증언하여 재판이 결정되었다. 선고는 6월 18일 예정이었으나 7월 20일로 연기해 화해 협의가 진행되었고, 7월 14일 재판소의 조정을 원고, 피고가 받아 들여 재판은 종결했다.
공표된 조정내용은 '''"피고 다카라즈카 음악학교는 두 번의 퇴학처분을 취소한다. 원고에게 2010년 3월 1일부로 졸업자격을 부여하여 졸업증명에 필요한 서류를 송부한다. 원고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하지 않는다."'''라는 것으로, 원고의 주장이 거의 인정되어 수리되었다. 사실상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완전 패소가 확정인 셈[13] . 또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에서 원고에 대한 사죄의 유무나 위자료를 제공하라고 시정하였으며 금액은 공표하지 않았다.
6.1.4. 공개된 이지메 상황
피해 학생은 당시 16세로[14] 이와테현 출신이다. 헤세이 이후 이와테현에서의 첫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합격자로, 96기생 유일한 토호쿠지방 출신이었다. 가해 학생은 다수에 달하며, 주요 인물로 여겨진 학생은 도쿄도 출신이었다.[15] 주간지 취재에 의하면, 이 집단 괴롭힘은 입학 직후 다카라즈카 가극의 팬이 모이는 웹 사이트의 게시판에 유명 팬이 「(피해 학생이) 96기에서 제일 예쁘다」라고 작성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해당 기수의 단체 사진에서도 피해 학생이 한사람만 부각되어 보일 정도로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였다. 동기 학생들이 A에게 자행한 행위는 아래와 같다.
- 죽었으면 좋겠다. 내 시야에 들어오지 마라.와 같은 욕설 퍼붓기
- 물건 쓰레기통에 버리기
- 세탁물이 더럽다며 세탁기를 새벽 5시에만 사용하도록 제한
- 쇼핑을 금지하기 위해 감시하기
- 라이터나 칼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는 소문 퍼트리기
- 공용 스프레이를 훔쳤다고 소란 피우기
- 단체 메일 리스트에서 제외하여 정보를 주지 않기
- 휴대 전화를 빼앗아 통화 내역이나 문자 확인하기
- 밀실에 둘러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 때리기
- 기숙사의 한 방에 수시간 동안 감금하기[16]
7. 출신 인물
- 해당 인물의 기수로 먼저 배열한 후 이름을 기준으로 한글(가, 나, 다, …) 순으로 2차 배열함.
7.1. 졸업생
- 스즈카제 마요 (67기)
- 쿠로키 히토미 (67기)
- 이치로 마키 (68기)
- 시부키 준 (72기)
- 아마미 유키 (73기)
- 아카네 리브 (85기)
- 오우키 카나메 (86기)
- 사기리 세이나 (87기)
- 아스미 리오 (89기)
- 모리 나나코 (91기)
- 마카제 스즈호 (92기)
- 아야카제 사키나 (93기)
- 레이 마코토 (95기)
- 유즈카 레이 (95기)
- 키사키 아이리 (96기)
- 아마이로 미네리 (100기)
- 오토 쿠리스 (100기)
- 하나 유우키 (100기)
- 호시카제 마도카 (100기)
- 마이소라 히토미 (102기)
- 준 하나 (102기)
- 미야히메 코코 (104기)
- 미하네 아이 (104기)
- 키요라 하류 (104기)
8. 여담
- 입학 수험시 암묵적인 체중의 룰이 있는데, 본인의 키에 120이라는 숫자를 뺀 것이 이상적인 체중이다.
- 선발 기준에 키에 대한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으며 150cm부터 180cm 이상도 선발된다. 다만 168cm부터 남역으로 분류되며 남역에 선발되는 조건 중 하나가 남장을 했을 때 미남처럼 보여야 한다. 즉, 외모를 상당히 까다롭게 평가한다.
- 매주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계속이면 중학교 3학년까지)소녀의 건전한 성장을 목적으로 한 일요일 교실 다카라즈카 코도모 아테네도 개설되어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강사진과 시설을 이용하고 발레, 일본 무용, 성악을 지도하고 있다. 실제로 다카라즈카 가극단에 입단한 생도들 중 코도모 아테네 출신인 생도도 있다.
- 응시 합격자 가운데 다카라즈카 코도모 아테네 외에도 입시학교로 불리는 스쿨 출신들이 많다. 대부분의 스쿨에서 전 타카라젠느가 직접 지도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스쿨은 도쿄에 위치한 KIE 뮤지컬 스쿨로 전 타카라젠느인 코지마 키에가 운영하고 있다. 해당 스쿨 출신자는 총 184명으로 2019년에는 총 10명이 음학학교 수험에 합격했다. 대표적인 출신 생도는 화조의 전 톱 여역 란노 하나, 현 월조 톱 여역 미소노 사쿠라, 전 성조 남역 스타 나나미 히로키가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생도들이 있다.
- 다카라즈카 패밀리랜드가 있을 당시에는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생도이며 교복 착용이라면 원내 놀이기구들의 이용료가 무상이자 자유이용료였다. 졸업생인 다이치 마오가 미래창조당 출연 때 학창시절 제트코스터를 좋아해서 방학 때 자주 놀았다고 했다.
- 2003년에 교육과정을 개정해 중졸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학하는 사람을 위해 코요다이 고등학교와 연계한 고교 수학(고졸 자격 취득)지원 제도를 시작했다. 희망자에 한해 할 수 있으며 첫 해 24명 제도 도입 후 4년간 101명(가극단 학생을 포함)이 이용했으며 2004년도부터 2008년도까지 센리국제학원에서 파견된 모국어 화자에 의한 영어 회화 수업을 주 1회 시행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필라테스, 보이스 트레이닝 과목을 신설했고 음악사, 연극, 다도, 영어 회화 과목이 폐지, 선택 수업인 기악도 종목에서 금·샤미센을 폐지하는 피아노에만 변경. 원래부터 있던 연극, 일본무용 수업 내용도 수정이 이루어졌다.
- 2017년 마츠오카 슈조의 딸이자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설립자인 코바야시 이치조의 현손 마츠오카 메구미가 음악학교 제 105기생으로 입학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참고로 메구미는 할머니가 다카라즈카 가극단 44기 센바 시즈카인데 그런 할머니에 이어 다카라즈카 극단의 구성원이 되었다. 참고로 메구미의 키가 169 cm(게다가 성장기)인지라 남역 확정이다.
- 아주 오래전 개교 초기였던 1919년에 선과를 두고 8명을, 패전 직후인 1945년에서 1947년까지 총 13명의 남학생들을 받기도 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본 무대에 데뷔하지 못했다. 초창기 8명은 10개월 후 해산된 이후 극단 내 연출가 밑 작곡가 등으로 영입되어 일했고, 패전 직후의 13명은 여자 단원들과 같은 수준의 레슨을 각 기수별로 3년간 받으며 데뷔 준비를 했으나 협연공연 이후 남자부는 폐지되었다. 몇 년 동안이나 기존 여자단원들과 팬들의 반대로 무산되어있다고 나와있지만 일본 위키백과에 따르면팬들과 단원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1951년 『虞美人』의 흥행으로 여자들만으로도 성공적인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시 확인되어 고바야시 이치조 선생이 폐지했다고한다.
- 연예계에 다카라즈카 음학학교 수험을 본 경험이 있거나 수험을 위해 관련 스쿨에 다닌 사람이 꽤 있다. BEYOOOOONDS의 히라이 미요, 스마이레이지의 전 멤버 타무라 메이미, SKE48 Team KⅡ의 소다 사리나가 대표적이다.
- 수험에 실패하는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 일반 대학생과 다름 없는 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이고 가극 더 레뷰 하우스텐보스의 양성학교 '하우스텐보스 가극 학원'에 수험을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수험에 실패하고 해당 극단에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다.
[1] 이 때문에 정식학력이 부여되지 않았으나, 2000년대부터 희망자를 대상으로 고교졸업 단위이수제를 시행하고 있다.[2] 중퇴자가 있을 경우에 변동이 생긴다.[3] 선생님과 본과생이 예과생을 지도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다. 또 한큐 전철 관계자이므로 외부의 승객에 대한 예의로 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함께 차 안에서 앉는 것도 엄금으로 알려져 있으며, 내린 역에서는 발차하는 열차를 손끝을 무릎까지 내려 상체를 45°로 숙이는 최경례(最敬礼)로 보내는 것도 규칙이다.(전철에 본과생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4] 만 나이 기준이며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이다.[5] 나이제한이 딱 4살 범위라 5수 이상은 불가능하다.[6] 다카라즈카 가극에 적절한 용모, 언어, 동작, 태도 등인지 아닌지에 대해 심사하기 위해서다.[7] 원서와 함깨 배포됨[8] 유연성, 리듬감, 운동 신경, 양무의 적성을 심사하기 위해서다.[9] 키가 충분히 자라지 않거나 반대의 이유로 재학 중에 남역에서 여역으로 여역에서 남역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10] 그래서 이렇게 힘든 과정을 함께 견디며 성장해 온 젠느들간의 동기애, 선후배애는 매우 끈끈하며, 퇴단 후에도 후배나 동기생의 공연을 보러 오고, 공연장에 꽃을 보내거나 무대 활동을 함께 하기도 하는 등 훈훈한 관계를 유지한다.[11] 고베 지방 법원이 학교가 위치한 다카라즈카시를 관할하고 있다.[12] 단, 화해 성립 후 그 성명을 삭제했다.[13] 물론 원고도 학교만 졸업할 뿐 가극단에는 입단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졸업이 인정되었기 때문에 음악학교 학력은 인정받으므로 다른 극단에 입단하거나 연예계 등으로 진출할 길은 열린 셈이다.[14] 한국 나이로는 17~18세인 고등학생이다.[15] 96기의 도쿄도 출신 생도는 9명으로 화조의 유우나미 케이(優波慧)가 주요 인물로 꼽히고 있다.[16] 감금시 감시할 학생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