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마키

 

'''이치로 마키
一路真輝 / ICHIRO MAKI
'''
'''예명'''
이치로 마키 (一路真輝(いちろ まき, Maki Ichiro)
'''본명'''
이시카와 이즈미 (石川 いづみ(いしかわ いづみ, Izumi Ishikawa)
'''출생'''
1965년 1월 9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코호쿠구
'''국적'''
[image] 일본
'''신체'''
164cm, B형
'''가족'''
남편 우치노 세이요, 딸
'''소속'''
도호 예능
'''데뷔'''
1985년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공연 날아올라라 황금날개여
'''소속 극단'''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
'''입단 성적'''
45명 중 7등
1. 개요
2. 활동
3. 입단 전
5. 퇴단 후
6. 평가
7. 여담


1. 개요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 출신 뮤지컬배우로 1982년남역으로 입단하여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설조 톱스타였다. 1985년 당시 설조 톱스타였던 아사미 레이의 퇴단공연에서 남역이 아닌 여주인공 클라리체 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그후로 쭉 남역으로서 공연을 해오다 1993년 톱스타로 취임하였으며 1994년에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다시 한번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했다. 1996년 퇴단작으로 엘리자벳에서 토드 역을 맡아 공연한 후 다카라즈카를 퇴단했다. 퇴단 후에는 토호 버전 엘리자벳, 안나 카레니나, 왕과 나, 더 라스트 키스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역을 했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로 입단 당시에는 남역을 맡은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남역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큰 키와 저음부터 고음까지 훌륭하게 부르는 가창력을 소유해 그런얘기는 사라졌다. 춤도 꽤 잘추는 편이지만 극단 당시에는 잘추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후술.

2. 활동



3. 입단 전


어렸을때 다카라즈카 공연을 보고 입단을 지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입학 시험을 봐서 합격하였다.

4. 다카라즈카 가극단 설조 재단 시절


1982년 음악 학교를 졸업한 후 극단 설조로 배정되었다. 1985년 당시 설조 톱스타였던 아사미 레이의 퇴단작에서 히로인 클라리체역을 연기하게 되었다. 이때 아름다운 얼굴로 이치로 마키가 남역인지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9년 다카라즈카 최고 인기작인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과 앙드레 편에서 오스칼을 맡아 중성적인 매력을 많이 뽐냈다. [1]
1987년 니방테[2]가 되었으며 1993년 설조 톱스타로 취임한다. 1994년 설조가 공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클라리체에 이어 다시 한번 여자 역할인 스칼렛 오하라를 맡았다. 이때 아름다운 미모와 자태로 남성 팬들을 많이 생성했다.
이후 1996년 퇴단작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뮤지컬인 엘리자벳에서 죽음을 연기한 후 퇴단하였다. 톱스타의 퇴단작으로 죽음 역을 맡는것에 대해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자벳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고 2018년까지 다카라즈카 10회 이상 재연될 정도로 명작이 되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하나후사 마리와 함께 일본 뮤지컬계에서는 전설이 되었다.

5. 퇴단 후


퇴단 후에는 토호 엔터에 소속되어 왕과 나의 안나를 연기하였다. 이때는 퇴단 후 1년도 되지 않아서 아직까지 목소리가 남역이었을때 그대로였기 때문에 혹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후 남태평양에서는 피나는 노력 끝에 다카라즈가 시절과는 다르게 완벽한 여역이 되었다.
엘리자벳 초연 10주년 기념 콘서트에 출연하였다. 이때 콘셉트는 각국의 토드와 엘리자벳이 같은 노래를 각국의 언어로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치로는 혼자 토드 역 엘리자벳 역 다했다...
2000년부터 토호 버전 엘리자벳에서 주인공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역을 맡아 토드에 이어 엘리자벳까지 연기하게 되었다.[3] 이후 2006년까지 총 5번 토호에서 엘리자벳을 연기하였다. 2007년부터 결혼과 출산으로 활동을 하지 않다가 2010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복귀 후 더 라스트 키스, 키스 미 케이트, 셜록홈즈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카라즈카 OG로서 관련 콘서트에도 자주 출연하며 아직도 뛰어난 가창력과 춤 실력을 자랑한다.
2005년에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발트슈테텐 남작부인 역할을 맡았다. 여기서 부른 노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황금별. 이 당시 출연 배우중 가장 유명하고 제일 잘 나갔을 때라 일본에서의 반응은 그야말로 왜?였다. 오죽하면 뮤지컬 발트슈테텐이 아니냐고 할정도. 덕분에 더블 캐스트로 같이 나왔던 배우는 묻혔다...
뮤지컬 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갈라콘에도 많이 출연한다.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의 작곡가인 실버스터 르베이 갈라콘서트에도 출연하였으며 다카라즈카 극장에서 열린 베르바라 45주년 콘서트에서 가창력을 과시했다.[4]
2015년과 2016년에는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이자 일본에 수출된 뮤지컬 셜록 홈즈에 제인 왓슨역으로 출연하였다. 이때 홈즈역의 하시모토 사토시와 부부 케미...를 보이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베토벤의 편지와 숨겨진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베토벤 op. 110에 베토벤의 연인 역으로 출연했으며 게임 도검난무를 연극으로 재현하는 무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내 코다이인 역으로 출연한다고 하여 팬들이 놀라하고 있다.
1999년과 2000년 2004년에는 개인콘서트를 열었고 이 시기 뮤지컬계에서 탑급의 인기를 누렸다. 이때 게스트로는 남편인 우치노 세이요, 현재 일본 탑 뮤배 이노우에 요시오, 초연 엘리자벳 토드역 우베 크뤼거가 있다.
관계자와 팬들 사이에선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초연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이치로였지만 임신때문에 고사한 걸로 알려져 있다.
실버스터 르베이 갈라 콘서트에서 뮤지컬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 Act1과 Act2를 불러서 화제가 되었다. 팬들은 이치로가 댄버스 부인으로 출연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 났으나 스즈카제 마요가 맡았다.[5]

6. 평가


가창력 부분에서는 다카라즈카 출신 배우들과 비교하거나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도 탑급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서는 믿보배. 일본 음악계는 부장 토드, 썩어 문드러진 샹들리에 정도로 평가하는 우리나라 뮤덕 사이에서도 인정받는다. 물론 옥주현, 김선영과 비교하면 욕 먹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반응은 현재까지도 따라올 자 없다는 평이다. 한국 덕들은 반응은 전성기 시절 땐 최고의 토드, 티타늄 성대...[6]
연기력 부분은 상대적으로 가창력에 가려 빛을 못 보기는 한다. 실제로 가창력에 비해 연기력은 떨어지는 편. 다카라즈카 재단 시절에는 이점 때문에 까이기는 했지만 퇴단 후 나이가 조금 들다 보니 이젠 연기도 다른 배우보단 낫다는 평을 듣는다.
종합적으로 보면 다카라즈카 시절엔 연기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남들보단 낫고 가창력은 탑이었고 퇴단 후엔 두 부분 모두 탑 수준[7]

7. 여담


  •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다카라즈카 가극단을 전문적인 수업을 따로 받지 않고 찾아가 한 번에(!) 붙은 것으로 유명하다.[8]
  • 이치로 마키는 춤을 꽤 잘추는데 극단 시절에는 춤을 추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선천성 고관절 탈구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자연 기흉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약한듯하다.
  • 다카라즈카를 퇴단하고 토호버전에서 엘리자벳을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맡았는데 이때 죽음 역할을 했던 배우 우치노 세이요와 6년 열애 끝에 2006년 결혼했다. 이유는 혼전임신... 같은해 10월 딸이 태어났다. 이때 이치로 마키는 41살로 상당히 노산이었다. 2006년에 한 안나 카레니나엘리자벳 당시 임신중이었던 것이다(!!!)[9]
  • 1985년 아사미 레이와 "날아올라라 황금 날개여"를 공연할 때 연 2년차에 톱스타의 상대역을 맡았다. 이때 극단의 다른조에서 톱여역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설조에 남고싶어 거절했고 이후 니방테를 거쳐 톱스타가 되었다[10]
  • 메이저리거 출신 일본의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와 열애설이 난 적이 있었다. 다카라즈카에서 활동하던 때로 스즈키 이치로가 스스로 이상형이 이치로 마키라고 밝혔다는 설도 있다. 이치로가 결혼한 후에도 마키의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도 여러번 포착된 적이 있다.

  • 성격은 매우 밝고 활달하며 멍뭉미(...)가 넘치는 성격이다. 다카라즈카 설조 탑 시절 니방테와 조원들이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마음으로 보살펴줬다고 한다. 눈물도 많아서 우는 모습이 많이 보이기도 했다.
  • 취미는 판다 영상보기와 그릇 모으기.
  • 다카라즈카 입단시부터 눈에 띄는 실력으로 팬들 사이에서 극단에서 애정하는 배우로 불렸다.[11]
  • 다카라즈카에서 남역으로 설조 톱까지 올랐지만 여역을 맡은 적이 꽤 많다. 당장 데뷔작부터 여주인공을 맡기도 했고 94년 성조와 함께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도 성조 탑을 제치고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되었다.
  • 이치로 마키의 퇴단작 엘리자벳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엘리자벳은 일본 초연작이자 다카라즈카의 히든카드로 극단에서 어느 조에 맡길까 고심을 했다고 한다. 당시 탑 중 토드의 이미지에 맡게 잘생기면서 예쁜 중성적인 매력이 있고 가창력과 춤 실력이 가장 좋은 사람에게 맡기기로 했는데 그게 이치로였다. 또한 엘리자벳의 제작자 실버스터 르베이와 굉장히 친하다고 하며 엘리자벳 초연 10주년, 20주년 행사에도 참여해 굳건한 우정을 과시했다.
  • 별명은 잇상 또는 이치로상, 잇짱, 이즈미상 등이 있다.
  • 2010년 남편인 우치노 세이요의 불륜현장이 파파라치에 의해 포착되었다. 이때 우치노는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한 정황도 포착되어 크게 논란이 되었다. 이에 우치노 측은 불륜은 인정하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며 잡아뗐다. 덧붙여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며 이혼을 절대 없을거라 말했다. 이치로 쪽에선 공식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우치노가 다른여자랑 온천여행을 갔다왔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이에 이치로의 반응은...
  • 엘리자벳은 일본에서 토드역과 엘리자벳을 합쳐 가장 많이 공연한 배우이고 엘리자벳 역만해도 하나후사 마리보다 더 많이 했다. 토호버전 엘리자벳 공연 횟수의
40% 정도를 이치로가 했을 정도니...
  • 위에서 언급된 실버스터 르베이 콘서트 당시 이치로의 출산, 휴식 후 첫 콘서트라 화제가 됐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외도 스캔들 이후 첫 공식석상이었기 때문.
  • 매우매우 마른편. 현재도 군살 없는 몸매를 소유하고 있고 예전에는 특히 더했다. 남역이었을 당시에도 여리여리한 체구였다. 93년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역을 맡았을 때를 보면 평소 옷에 가려져있던 가녀린 체구가 보인다.
  • 우베 크뤼거와도 친하다. 엘리자벳 10주년 콘서트에서 토드역으로 같이 출연한 후 인연이 되어 이치로의 개인 콘서트 DIVA 2004의 게스트로 출연하였으면 뮤지컬 미츠코에서는 부부로 출연했다.


[1] 오스칼은 남장여자다[2] 2번수[3] 엘리자벳을 할 때 나이가 36세에서 41세까지로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동안인 덕에 어린 씨씨부터 나이 든 모습까지 완벽하게 소화하였다. 이때 토드역을 맡은 배우 야마구치 유이치로는 이치로보다 9살이나(!) 많은데다가 이치로가 동안이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보였다 [4] 이 콘서트를 관람한 한 블로거의 말에 따르면 전체 출연자 중 노래를 가장 잘했고 특히 합창에서는 이치로만을 의지해 들었다고...[5] 우리나라의 평은 권사님... [6] 엘리자벳에서 모든 노래를 고음으로 지르는데 너무 편안해서 생긴 별칭. 트위터에서 찾을 수 있다.[7] 하지만 여기서 착각하지 말자 우리나라 배우들과는 비교 불가다. 우리나라 뮤배를 생각하고 봤다간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일본 사람 중 제일 최고라는 수준[8] 다카라즈카는 전문적으로 춤을 배운 사람도 합격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경쟁률이 아주 높아서 재수 또는 3수를 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치로 마키의 경우는 정말 희귀하고 대단한 케이스다[9] 죽음과 엘리자벳이 혼전임신으로 결혼을...[10] 2년차에 톱여역을 제안했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일이다. 다카라즈카 여역의 전설이라 불리는 하나후사 마리도 4년차에 겨우 여역톱이 됐는데 그보다 2년 더 빠른것이다[11] 다른 톱의 팬들은 밀어주기라고 욕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