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비불설

 

大乘非佛說
1. 개요
2. 논의
3. 맹점
4. 관련 문서


성철스님이 1967년 12월 7일 해인사 방장 취임으로 한 백일 법문에서 한 대승비불설[1]

1. 개요


대승불교 경전은 성립 시기가 늦기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볼 수 없어서 대승 불교의 가르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주장. 불교는 부처를 신이라고 하지 않으나 오히려 정각자로서 다신교적인 여타 신을 뛰어넘는 존재로 여긴다.[2] 또한 석가모니에게서 승려들의 법맥이 시작하고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깨달음의 길에 이른다 하므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설하는 경전이 실제로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리하여 대승비불설이 나오자 불교계에 큰 파란이 일어났다.

2. 논의


대승비불설의 기초는 대승불교상좌불교의 경전(팔리어 경전)은 아함경을 제외하면 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 가르침의 근간으로 삼는 금강경·반야심경·화엄경·법화경 등은 상좌불교에는 해당하는 경전이 없다. 전통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아함경은 석가모니 전기의 가르침, 법화경 등은 후기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으며, 전자는 근기가 낮은 자들을 위한 수준 낮은 것, 후자는 근기 높은 자들을 위한 우월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근대에 문헌학에 기초해 연구해보니, 상좌불교의 (아함경 등) 팔리어 경전의 성립시기가 더욱 빠르다는 결과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다른 설도 존재하지만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은 아함경 등 초기경전보다 몇백 년은 늦는다는 것이 일반론이 되었다. 여기에 기초하여 근대적인 '대승비불설'이 나타났는데, 대승불교 경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측의 반론/호교론은 다음과 같다.
  • 구전론: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경전으로 결집된 것 이외에도 다른 경로로 구전이 존재했고, 상좌불교 경전은 대승불교 경전과 전승한 집단과 경로가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이 늦은 것은 단지 문서화가 늦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인도에서는 이미 구전전통이 있었고 대승불교 경전의 가르침도 구전으로 전해졌음이 드러난다.
    • 말하자면, 문헌학에 기초한 비판이나 본문을 비평해 연대를 추론한다고 해도 '대승불교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라는 증명은 할 수 없다. 성립연대가 늦었다는 것이 곧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필요충분적인 증명이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물론, 이 주장도 현재로서는 확고한 증거가 없기에 증명이 불가능하다. 문자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석가모니는 대승불교의 가르침도 전파했다는 '믿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도나 티베트의 일부 사람은 석가모니와 몇몇 지배계급 출신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에 정통했으므로, 소수 제자들에게 대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 법맥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비밀스럽게 전승하다가 후대에 문자로 기록했다고 믿기도 한다. 다만, 일부 출토된 프라크리트어 문헌을 볼 때 처음부터 산스크리어 전승되었을 가능성보다는 프라크리트어로 전승되다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또한 모든 대승경전이 소수에게 전승되었다고 보기에는 대승경전의 양이 너무 많다. 또한 대승경전 중에서도 일부만이[3]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 집단론: 유교의 가르침이 공자 이외에도 맹자, 주자 등에 힘입어서 성립됐듯이, 역사상 석가모니 개인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해도 그 가르침을 이어받은 집단과 제자들이 완성해 낸 가르침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다.[4]
  • 불성론: 대승불교의 특수한 관념으로,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이 있고 대승불교 경전도 불성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다. 예컨대 수행자가 명상으로서 만난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다. 가령, 무착(아상가)의 경우 수행 중 도솔천의 미륵보살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 내용을 논서로 기록하였다.
이전부터 상좌불교에서는 대승불교 경전은 본래 없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대승불교 측에서는 이상과 같은 논리로 반박했다. 근대 문헌학상으로 이것을 지지하는 근거가 나타나자 새로운 논의가 필요해졌다. 위경 관련으로 중국 불교 내부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중국에선 아함경, 법구경 등의 경전은 석가모니의 활동 초기에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한 가르침으로 방편이었다고 하고, 후대에 나온 화엄경, 금강경, 법화경 등은 어느 정도 단계가 오른 중생을 대상으로 한 수승한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정리했다. 당연하지만, 이런 분류는 '''실제 역사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더구나 중국 불교 내에서도 후발 주자인 선종이나 유교도교 등에 공격받을 시기에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많은 위경/위조 문헌이 만들어졌다.

3. 맹점


대승경전이 역사적인 불타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를 믿지 않는다면 이는 참다운 신앙이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확립은 대승비불설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라카미 센조(1851~1928). 출처 아이러니하게도 대승비불설을 처음 제기해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힌 당사자다.
대승비불설이 본격으로 처음 등장한 일본의 대승비불설 주장 세력은 초기 경전(숫타니파타, 법구경, 자설경, 아함경)만이 진실한 경전이고 다른 불설은 전부 부처의 직설(直說)이 아니라고 단정하여 결론하면서 많이 비판받았다. 당시 일본의 불교계 전체가 이 설을 내세운 학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그 학자들도 이 탓에 평생 고생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때의 비판은 당시 불교계가 최신 문헌고증학의 연구 결과를 수용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던 것이 더욱 컸으나 그 후 다음과 같은 비판들이 등장하였다.
1. 대승불교 경전이라고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관련이 전무한가?
대승비불설을 향한 가장 오래된 비판이다. 물론 현대에는 정말로 대승불교 경전들을 전부 석가모니가 설했다는 걸 믿는 학자는 없고, 승려들 중에서도 학문을 많이 연구하거나 이쪽에 관심있는 이들은 믿지 않는다. 현대에 이 비판은 대승불교 경전의 설립과 유관하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승려용 교육교재로 쓰이는 책이나 자료에도 학자들이 연구해 낸 경전 형성과정은 당연히 언급된다. 즉 현대 기준으로 제대로 교육받은 한국 승려라면 대승비불설이나 관련된 정보를 최소한 들어보기는 했어야 정상이다.
물론 대승불교 경전이 초기 경전보다 한참 뒤에 성립되었음은 사실이지만, 대승불교도 결국에는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만든 것이고 기존 불교문헌과 연구를 근간으로 형성된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승불교에서 강조되거나 보이는 공 사상이나 불법승 삼보를 향한 공양사상이나 정토염불 신앙은 초기불전 중 아함경에도 나타나며, 초기 불교를 기반으로 생겨난 것이지 그냥 짠하고 독자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2. 상좌부 불교 문헌들은 비불설에서 자유로운가?
이것은 현대적인 문헌연구학을 이용한 불교문헌연구가 더욱 발달하자 나타났다. 남전불교 문헌도 연구 결과, 초기 경전이 대승불교보다 잘 전수되고 중시되어 왔음은 사실이지만, 상좌부 불교에서 전래되는 불경을 비롯한 불교의 여러 문헌 또한 후대에 여러 차례 첨삭과 증보개정을 거쳐 현재까지 이른다는 것은 문헌연구학상으로는 이미 정설이다. 이 때문에 일부 극단적 연구자들은 상좌불교 문헌이나 대승불교 문헌이나 학술상 정통성 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거 이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논쟁이 일어났다. 당시 팔리 경전의 정통성을 비판하는 쪽은 동국대학교 권오민 교수를 비롯한 기존학계였고, 팔리 경전을 옹호하는 사람은 마성 스님과 전재성 박사였다. 대체로 한국과 일본 학계에서는 권오민과 비슷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대승불교가 주류라는 점을 필히 감안해야 한다. 그러니 국제학계의 학설들을 알아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다.
호주국립대학교의 J. W. de Jong은 팔리 경전의 상당부가 부처의 가르침을 잘 보존하였으나 후대에 전래되면서 일부가 변형됐다고 주장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A. Wynne은 팔리 경전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부처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방법이라고 주장한다.[5] 반면 페어필드의 Ronald Davidson은 후세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에 현재 불경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정확히 재구성하기는 불능하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의 Gregory Schopen처럼 아예 원시불교를 다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에 현재로서는 석가모니의 본 가르침을 다룬 추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논의들에서 알 수 있듯, 팔리 경전도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는 국제 학계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이다. 현재로서는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고고학상 근거가 부족하기에 명확히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참고로 현존하는 불경 중 가장 오래된 간다라 불경 중에 대승경전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6][7] 다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간다라 불경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불경을 기록한 문헌 중 그 존재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지 불경의 내용 자체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인도에 남아 있는 왕 아쇼카의 비문을 보면, 현존하는 팔리어 경전 일부가 인용된다.

4. 관련 문서



[1] 물론 성철스님이 대승비불설을 말했다기 보다는 소승비불설도 더불어 이야기하고 하여 부처님 중도사상을 불교가 어떻게 찾아낸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2] 불교는 무신론이 절대로 아니고 기독교다운 유일자로서의 신과 다를 뿐 천룡팔부 등 신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리고 부처는 이러한 신들을 뛰어넘었다고 믿는다.[3] 이를테면 소품반야경이나 금강경, 아미타경 정도가 초기 대승불교 경전으로 가능성이 있다.[4] 다만 종교보다는 철학의 성격이 깊은 유교와의 비유가 적합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며, 오늘날에는 유교의 패악에 대해 논하는 경우 유교를 옹호하는 쪽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 공자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며, 주자가 유교를 열화시켰다며 논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5] A. Wynne은 심지어 팔리 경전의 몇몇 부분은 부처가 실제로 말한 원형 그대로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6] 2012, Harry Falk과 Seishi Karashima이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으로 서기 75년이라는 결과가 나온 소품반야경 조각을 출판. https://en.wikipedia.org/wiki/Prajnaparamita#A.E1.B9.A3.E1.B9.ADas.C4.81hasrik.C4.81_Praj.C3.B1.C4.81p.C4.81ramit.C4.81[7] Edward Conze는 소품반야경이 기원전 100년경에 기원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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