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
1. 개요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는 '''가짜 경전'''. 예를 들어 아무개가 써 놓고 예수 또는 부처 같은 사람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경우 위경이 된다.
그러나 '''옛날의 거의 모든 경전들은, 당시 종교 창시자가 직접 저술했다던가 하는 경우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종교 창시자의 말을 이후에 구전하여 저술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정확한 경전은 있을 수가 없고, 경전으로 문자화되거나 옮겨적으며 복사되는 과정에서 첨삭 또는 실제로 나오지 않은 내용 등이 들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위경이다"라는 식으로 따지면, 위경 아닌 게 없을 지경이다. 따라서 대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면 경전으로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에서 위경은 서기 367년에 틀이 잡힌 신약 27서 이외의 다른 모든 기독교 문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략적인 틀일 뿐 사람에 따라 전통적으로 영향력이 큰 문서들은 적당히 받아들이는 등 그 경계가 불분명하였다. 명확히 법적으로 정경이 무엇이라고 고정한 것은 그로부터 천 년도 더 지난 뒤였다.
2. 이슬람의 위경
이슬람에서는 선지자 무함마드가 신으로부터 '''직접''' 계시받았다는 쿠란과 무함마드 자신의 언행을 모은 하디스가 있는데 쿠란의 경우 그 뜻이 변질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조차도 금지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1] 그래서 무슬림들은 토라나 성경과는 달리 쿠란이 그 뜻이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고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받은 당시 모습대로 온전하게 위조 한 번 되지 않고 전해왔다.''''고 자부심을 품는다.
그러나 아이샤가 쿠란 제33장(알-아흐잡)이 본디 200절이 넘었으나 지금은 73절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하디스가 있으며, 사나아 사본 등 오래된 쿠란 사본이 오늘날의 꾸란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거나, 쿠란에 사용된 단어들 중 시리아어에서 유래한 외래어들이 많으나 이를 아랍어로 간주하여 잘못 해석한다거나, 초기 쿠란 사본에서 모음이나 끊어읽는 방법을 잘못 적용하여 내용을 곡해했다는 연구가 있는 등, 현대 서양학자들의 연구는 무슬림들의 믿음을 반박한다. 여기에 대해서 이슬람권에서는 연구하지 못하도록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하며, 불경한 연구를 한다는 이유로 위협을 받을까 걱정하여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가명으로 저술을 발표하는 이도 있다.
정수일 선생에 따르면 하디스 외에도 여기저기에 무함마드의 언행으로 전하는 가르침들이 존재해 왔는데, 이 가운데 어떤 것이 무함마드의 실제 언행인지 아니면 후대에 오면서 위조된 것인지를 분간하기 위해 해당 발언이 누가 어디서부터 인용되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는 '이스나트'와 무함마드 당대의 사회적 현상들에 비추어 검토하는 '마튼'이라는 두 가지 연구 방법론이 있다고 한다.[2]
그러나 이슬람 내부의 자체적인 연구는 현대 역사학과 방법이나 기준이 다르므로 그냥 믿기는 어렵다.
3. 불교의 위경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대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등 석가모니가 활동한 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고 중국 등에서 찬술된 경전은 학술적으로는 위경으로 본다. 종교적 관점에서 현대 불교에서는 중국 찬술 경전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 써온 경전이므로 버리지는 않는다.)
문헌 비판적 관점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경전에 대한 비판을 거쳐서 심지어 대승비불설까지 나아가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일단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시대 이전은 구전으로 가르침이 전승되던 시기이므로 이 당시 언어로 저술된 경전은 대개 비판 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인다.
종교적으로는 종파나, 혹은 승려 개인에 따라서 가르침에 근거를 두는 경전이 다를 수 있으며, 위경으로 보는 경전을 포함하는 종파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본 정토종의 경우는 <정토삼부경>만을 중시하는데, 이는 현대는 말법 세계이므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는 이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일련종의 경우에는 법화경을 강조하며 다른 경전은 단지 석가모니가 진정한 법을 감추고 말한 것이므로 가치가 낮다고 보고 무시한다.
이러한 '소의경전'은 종파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다른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이라도 역사성이 있으면 '위경'이라 보는 경우는 드물다.
3.1. 위경 부정설
위경은 정경이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인데, 불교에는 정경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장경도 불교의 일부 분파인 대승불교 계열의 잡다한 경전을 차별없이 전부 모아놓은 것 인데, 대승불교 말고도 불교는 다양한 계열이 있으며 대장경 외에도 다양한 전승의 경전이 있으므로, 이들을 싸잡아 상좌부 불교라고 안일하게 부를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정경이 확정되어야 위경이 있을 수 있는데, 불교는 교황청 같은 것이 없으므로 정경을 지정할 집단 자체가 없었다. 중국 불교 내에서 위경 목록을 작성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 불교 내에서 문제다.
한편 남방불교나 스리랑카에서 팔리어로 문서화된 삼장(三藏, Tripitaka) 같은 것은 중국에 전래되지도 않았다가, 1930년대에 일본에서 타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 박사 공적기념회에서 『남전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여 동아시아에 알려졌다. 그렇다고 대장경은 정경이고 팔리어 경전은 위경이라는 식의 논리는 성립할 수가 없다. 불교사적으로도 북서인도의 유명한 논사인 세친, 청변, 중현 등이 자신들의 저술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후 1차 결집(근본 결집)당시 불전들은 이미 산실되었다.''''고 밝혔고, 현존 빨리어 경전들 중 대다수가 17세기 이후 동남아 불교의 영항 하에 필사된 것들이다.
석가모니가 부모의 은혜에 대해 설법하는 <부모은중경> 같은 경전은 확실히 후대에 만들어진 경전이므로 위경시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명의를 빌려 자신의 썰을 푸는 행위는 인류 고전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굳이 위경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불교가 너무 가족윤리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상쇄시키 위해 동방의 불교계가 동방의 전통적인 효(孝) 개념을 불경에 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어차피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는 모두 부처이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도, 모든 경전은 부처의 경전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원래 불교에서 경전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역사적 인물 석가모니의 말에 의해 직접 전승되지 않은 경전을 모두 위경이라고 부른다면, 현존하는 대장경이 번역문제까지 합치면, 전부 위경시비에 걸려든다. 그러나 애시당초 철학 종교인 불교는 그런 식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따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유교의 경전 개념과 유사하다.
물론 요즘 사람이 끄적여놓고 이게 과거부터 전해지던 불경이라고 우기면(...) 위경이라고 부름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구분도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술된 문제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3.2. 위경 긍정설
저 주장을 모조리 인정한다면 3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명백하게 기원이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 한국 등으로 확실한 경전을 두고 전통적 불교 경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상단에서는 남의 이름을 가져와서 썰을 푸는 것은 전통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런 책을 '''위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부모은중경>은 석가모니가 길을 가다가 뼈를 보고 절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을 중국인이 썼다면 이것은 관대한 관점에서 위경이라고 안 불러줄 수는 있어도 위서가 된다. 종교의 위경 시비는 벗어난다고 해도, 위서 시비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번째로 작성자를 부처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경전이 될 수 없다. 내용이 좋으냐 나쁘냐는 나중 문제이다. 실제로 경전으로 인정받은 문서 대부분은 '석가모니가 말한 것이겠거니.' 생각했기에 경전이 됐다. 그 경전을 논할 때, 이 경전은 중국의 누군가가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읽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수단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그 깨달음의 수단이 논어나 구약성경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논어나 구약성경을 불교 경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은 없다.
마지막으로 저 기준이라면 위경을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과거에 썼다고 했다는 이유로 <라마다경>을 위경이라고 했다지만, <부모은중경>도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들에 비하면 한참 후대에 쓰였다. 현대만 문제라면, 노자가 인도로 건너가서 부처가 되었다는 <노자호화경>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교가 불교를 까내리려고 쓰인 이 경전도 <부모은중경>과 비슷한 시기에 쓰였는데 이 경전은 불경인가 아닌가? 만일 동남아에서 전란시기라는 이유로 '''전쟁을 긍정하고 적을 말살할 것을 주장하는 경전'''이 쓰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속오계의 임전무퇴의 배경이 되는 경전이 고려시대에 쓰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경전인가 아닌가? 즉, <라마다경>이건 <노자호화경>이건 모두 경전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위경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라마다경>은 불교를 모독하고 있음에도 위경이라고 하는 것은 통용될 수가 없다.
결국 위경 긍정설은 지극히 정치적 목적 때문에 존재한다. <부모은중경>이 위경으로 취급받았을 때, 효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같은 것은 차라리 사소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각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이 위경으로 판정이 나왔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너무 거대한 떡밥인 대승비불설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이전의 모든 경전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법화경은 내용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이전 경전보다 후대에 창작되었으며 이전 경전들과 그 목적이 다른 것이 명백하다[3] . 그렇다고 해서 <법화경>은 위경이라고 규정하면,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천태종이나 법화경이 없으면 종파로서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일련종 같은 교단들은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불교 자체를 공격하는 경전들을 제외하면 좋게 좋게 넘어간다.
그리고 애초부터 각 불교 종파들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하여, '''각 종파별로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고 친설이 아닌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다시 말해 '''불교 내부에서도 무엇이 위경이고 아닌지를 일찍부터 가려낼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교상판석 작업은 실증적이고 학술적 중립을 지키면서 석가모니 부처니의 친설을 가려내었다기보다는 각 종파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게 주 목적이었고, 인도 본토보다는 중국에서 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지만, 교상판석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인가?"'''라는 시대적 문제 해결이었다. 중국에서 교상판석 작업이 인도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 기본적인 이유 역시, 석가모니의 고향이자 불교 문헌이 순차적으로 등장한 인도와 달리, 중국은 불교 포교승들과 인도 유학승들이 저마다 석가모니 부처님 친설이라는 불경들과 기타 불교 문헌들을 들고 오다 보니 '''무엇이 진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인지를 가려낼 필요성을 인도보다 더 크게 느껴서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적 문헌비교학의 결과와 비슷하게 아함경은 초기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그 외의 대승 경전들은 후기의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동북아시아의 주류 불교가 대승불교다 보니 '석가모니의 초기 말씀=소승 경전=하근기들을 위한 방편론적 가르침/후기 말씀=대승경전=수준높은 가르침'이라는 사고방식이 박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일찍부터 무엇이 위경이고 무엇이 정경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4. 유대교의 위경
우리가 흔히 구약이라고 부르는 경전은 기독교에서 성립한 히브리 경전이기 때문에, 유대교의 경전과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 히브리 경전이라는 것도 전승이 다양해서 파고 들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히브리 경전은 다양한 전승의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했고, 문서화되지 않고 율법사들이 암기력으로만 전승되는 것도 많았다.
현재의 구약성경 목록은 10세기경에나 완성된 마소라텍스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최근 발굴된 히브리 경전들이 이 마소라텍스트와 차이가 있다. 마소라텍스트라는 것은 옛날 히브리 경전을 수집해서 당대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인데, 그보다 더 오랜 전 판본이 발굴된 것이므로 경전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충 뭐는 정경이고 뭐는 위경이다 식으로 함부로 말하기 힘들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에서 구약이라고 부르는 타나크보다, 옛 율법적 문제들의 판례나 구전 등을 성문화한 미쉬나를 더 중시한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는 현재의 구약성경 목록이 당연히 없었고, 구전되는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미쉬나가 성립한 것이 200년경이다.
5. 기독교의 위경(Pseudepigrapha)
의외로 오랫동안 교회는 정경의 목록을 정확히 정하지 않았는데 397년에야 비로소 카르타고 지역 공의회에서 구약 39권, 신약 34권, 총합 73권의 목록을 정하고 이것을 토대로 서방 교회 전체가 이 목록을 사용한다. 이것은 서방교회에서만 받아들여졌고 동방교회에선 지역 교회마다 차이가 있었다. 그 후 1000년이 넘게 흘러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 유대교 랍비들의 결정인 90년 얌니야 회의[Council of Jamnia]를 근거로 개신교 측이 정경 목록을 규정하자 로마가톨릭교회 측에서는 기존에 지역 공의회 레벨에서 합의된 정경 목록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보편 공의회의 권위로 강화하였다.
다만 신약을 상대로 삼아서는 서기 367년 성 아타나시오가 '''"내 생각엔 신약 정경은 27권이야"''' 라는 의견을 내자 서방 교회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서 그나마 빨리 의견이 모인 편이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어느 교회에서는 정경 목록이 이렇고 어느 교회에서는 저런데 적당히 참고해." 하는 정도였다. 기독교도 불교의 대장경처럼 싸그리 다 기독교의 경전으로 인정해 버렸다면, 위경이라는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위경(Pseudographia)은 '이름이 잘못된 경전'이라는 뜻이고, 외경(Apocrypha)은 보통 가톨릭에서 정경에 속하지 않는 문헌을 통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가끔 가톨릭교회의 제2 경전을 개신교신자가 외경이라고 표현해서 가톨릭신자와 키배가 벌어지곤 하는데 이것은 교리상 차이이므로 염두에 둬야 좋다.
위경과 외경 중 일부는 여기서 볼 수 있으니 참고.
5.1. 역사
기독교 경전은 모두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으며 이것은 저자들이 모두 상당 수준의 그리스어를 교육받았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잡지나 소설이 광범위하게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옛날에 문자를 배운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전 공부를 뜻한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모두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중에서 그리스 철학과 동방 종교가 짬뽕되어 신비주의다운 세계관으로 쓰인 문서들을 영지주의 문서라고 통칭하며, 이런 것은 신약 27서에서 모두 탈락되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를 영지주의답다고 분석하는 예도 있고 영지주의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자세한 건 영지주의 항목 참조.
알고 보면, 초기 기독교는 딱히 명확하게 정해진 경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으며 그나마 몇몇 사람이 정경 목록을 정하기도 했지만 그 목록조차 이곳저곳마다 달랐고 꼭 뭘 읽어야 한다는 강제성도 없어서 다양한 교파가 존재했다. 사도의 성명에 가탁하여 예수의 일생을 기록한 온갖 복음서, 역시 사도의 성명에 가탁해서 쓴 온갖 편지, '''각종 다양한 묵시록''' 등 말세답고 위험한 문서도 매우 많이 있었다. 다만 유명한 누군가의 성명에 가탁해서 저술하는 것은 그때 당연한 관행이었기에 현존하는 신약 27서 중에서도 저자가 불분명한 것이 상당히 많다. 또한 요한묵시록은 정경 목록에서 퇴출해야 된다고 오랫동안 많이 논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367년 아타나시오를 중심으로 한 신약 27개 문헌이 정경이라는 의견이 서방 교회에서 힘을 얻어 의견이 모였으나 동방교회에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데 알아서 참고들 해.'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무리 法으로 그 경계가 명확해지진 않았더라도 대략의 틀은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딱히 정경이 아니라고 일부러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다. '토마스의 유년기 복음서'라든지 '베드로 행전' 등 외경이 이미 중세 시절에도 내용이 알려졌다. 정경이 아니라고 무조건 없애려 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는 와중에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서들을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 버렸는데 이것이 1950년대에 발견되어 신학계를 깜놀하게끔 한 나그함마디 문서이다. 여기에는 특히 토마스 복음서가 포함되어 관련 학계에 큰 불을 지폈다.
5.2. 특징
아주 많다. 판본도 너무 다양해서 전부 열거할 수 없다.
여기에 나온 목록 중에서 묵시문학에는 세계 멸망 스토리가 많지만, 나머지는 읽으면 그렇게 이상한 내용이 아닌 것도 많다.
이러한 책이 내세우는 유명한 사람들의 성명은 모두 어떤 작자가 빙자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위경(Pseudepigrapha)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정경의 상당수를 포함해 고대 문헌들은 원래 저자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때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저자가 분명한지의 문제보다 핵심인 것은 그 내용이나 말하려는 바가 신학상으로 정당한는지와 그 문헌이 역사 내에서 오랜 시간 정경으로 여겨 왔고 신학 체계 구축에 중요하게 역할해 왔는지 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신약 정경 27권이 확립되기 전 초기 교회에서는 오늘날의 신약 정경 외에도 디다케, 클레멘트 1, 2서[4] 등의 문헌을 읽었고 교리적으로도 문제가 없었으나 정경 확립 과정에서 사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위경에 대한 설명의 출처는 대부분 대한성서공회이나, 가톨릭 계통 문헌이나 성서비평학 서적에 의한 것도 있다.
정경에서 탈락된 문서에는 요상한 판타지나 영지주의로 분류된 문헌을 비롯해 상식답지 않은 문서도 많지만, 알고 보면, 오늘날 연구한 바로는, 그냥 상식다운 예수의 가르침만 적힌 문서도 상당히 많기에 위경을 싸그리 이상한 책이라고 간주하면 곤란하다. 모든 위경이 모두 신비주의나 반사회다운 내용으로 점철된 것은 절대 아니다. 반대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문서들도 사실 많다. 알고 보면, 상당수 위경은 일반인이 보면 그냥 성경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내용이 많다. 실제로 위경으로 불리는 경전들은 책 전체가 아니라 몇몇 구절이 문제 돼서 위경으로 지정된 예가 잦다. 모든 위경이 다 터무니없는 헛소리로 가득한 불쏘시개였다면 애초에 수많은 신학자가 지금까지 논쟁을 벌일 이유도 없었으리라. 그러나 워낙 해괴한 내용의 위경들이 적잖게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 이런 것이 도태되지 않고 기독교 세계에도 남아 있었다면 기독교는 더욱 더 종말론 사상에 근접한 주장이 강한 종교가 되었을 듯. 요한묵시록 하나만으로도 이러한데 위경 중에는 구약, 신약 묵시록이 각각 5종에서 6종이나 된다. 이게 정경에 편입되었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래도 일부 경전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했어도 계속 영향력을 발휘하여 일부는 교회 전승으로 남게 된다. 사도 토마스가 인도로 선교하러 갔다든지[5]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저승으로 내려갔다든지 하는 류의 이야기[6] 들이 이런 것이다.
5.3. 구약 위경
- 묵시 문학서
- 아히카르
- 기도, 시, 송시(Ode) 류
- 요셉의 기도
- 므나쎄의 기도
- 시선 단편
- 시리아어 제2정경 시편 다섯[13] 링크
- 유다 헬레니즘의 저작 단편들
- 비극작가 에스겔
- 주석가 아리스테아스
- 그 외
- 무명의 사마리아 본문
- 역사문헌 단편
- 필로 위경
- 포킬리데스 위경
5.4. 신약 외경
- 예수 어록(Q 문서)
- 실바노의 가르침
- 소고
- 세상의 기원
- 이집트인들의 복음(콥트어)
- 진리의 복음
- 아르콘의 본질
- 부호라에 관한 소고
- 3부 소고
- 묵시문학적 문서
- 엘리야 묵시록(콥트어)
- 베드로 묵시록(아랍어) 링크
- 베드로 묵시록(콥트어)
- 베드로 묵시록(그리스어/에티오피아어)
- 바오로 묵시록(콥트어)
- 바오로 묵시록(라틴어)
- 스바니야 묵시록
- 토마스 묵시록
- 이사야 승천지
- 기독교인 시빌린 사람들
- 우리의 위대한 능력
- 엘카사이의 책
- 제5, 6에즈라 멜키체덱
- 사도 요한과 거룩한 동정녀의 신비
- 행전
- 안드레아 행전
- 안드레아와 마티아 행전
- 요한 행전
- 유다 복음서
-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 링크
- 베드로 행전(콥트어)
- 베드로 행전(그리스어) 링크
- 베드로와 열두 사도 행전
- 필립보 행전
- 베드로의 케리그마
- 바울의 행전 링크
- 서간
- 아브갈 전설
- 바오로와 세네카 사이의 서신
- 가짜 티토의 서간
- 라오디케이아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
5.5. 전례 자료 및 전승되어오는 기도문 등
- 강론
- 지식의 해석
- 진리의 증언
- 발렌티누스의 설명
- 시편
- 솔로몬의 오대
- 기도
- 도유에 관하여
- 세례 A
- 세례 B
- 사도 바오로의 기도
5.6. 근래에 발견된 복음서
- 유다 복음서: 유다복음은 기독교 설립초기에 일어난 분파 중 하나인 카인파의 입장에서 비영지주의파를 비난하는 내용과 영지주의적 시점에서 작성된 색채가 강하여, 종교의 입장상 위경으로 분류하고 있다.
5.7. 대표적인 위경들의 내용
5.7.1. 예수 유년 복음들
5.7.1.1. 빛의 탄생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되자, 나자렛의 요셉이 자켈이라는 산파를 데려온다. 마리아는 동굴에서 아이를 낳는데, 동굴 전체가 광채로 빛나고 있다. 산파가 마리아의 몸을 검사하고, 출산 때에도 전혀 피가 흐르지 않으며 아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녀가 임신하고 처녀가 해산하고 해산 이후에도 처녀인 채라고 하느님을 찬미한다.
'야고보 원복음서 (Gospel of James)'라고 불리는 문서의 내용. 라틴어로 써 있으며 예수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다. M.R.제임스는 이 이야기가 2세기 때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문서 자체는 정경에 편입되어 있지 않으나, 정통 교회에서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교리인 마리아 평생동정이라는 형태로 남아있으며, 가톨릭에서는 이 이야기 자체가 전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7.1.2. 기적의 아이
어린 예수가 5살 때 냇가에서 놀면서, 물을 모아 웅덩이를 만들고 진흙 반죽으로 참새 12마리를 빚는다. 그때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유대인이 아버지 요셉에게 알리고, 요셉은 예수를 야단친다. 예수는 손뼉을 치며 참새들에게 날아가라 명령하고, 만든 참새들은 짹짹거리며 하늘을 날아간다.
율법학자 안나스의 아들이 예수가 만든 물 웅덩이를 빼버리자, 예수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저주를 퍼붓고 안나스의 아들은 온 몸이 말라 죽는다. 그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면서 요셉에게 원망을 퍼붓는다.
예수가 길을 걷다가 한 아이가 예수의 어깨에 부딪치자, 예수는 화가 나서 저주를 퍼붓는다. 그 아이는 즉시 땅에 넘어져 죽었다. 죽은 아이의 부모가 요셉에게 가서 예수 때문에 이런 마을에서 살 수 없다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원망한다. 요셉은 아무도 안 보는 데로 데려가서 예수를 혼낸다. 예수는 요셉을 원망한 사람이 벌을 받을 것이라 말하고, 정말 그 사람은 즉시 장님이 돼버린다.
율법학자 자케우스가 그 광경을 보고 예수가 영리하다고 크게 놀라서 예수를 데려가서 가르치지만, 예수가 너무 똑똑한 나머지 자케오스는 크게 망신을 당한다. 자케오스가 놀라서 예수가 위대한 존재라고 칭송하자, 예수는 크게 웃으며 저주로 쓰러졌던 모든 사람들을 즉시 회복시켜준다.
예수와 아이들이 같이 놀다가 제논이라는 아이가 집 위에서 떨어져서 죽자, 제논의 부모가 예수를 비난했다. 예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제논을 부활시켜서, 자신이 결백하다고 증언하게 한다.
한 청년이 장작을 패고 있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서 큰 부상을 입었는데, 예수는 그 청년을 치유해 준다.
예수가 6살이 되자,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물을 길어 오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부딪혀서 물동이가 깨지자, 예수는 옷을 펼쳐서 거기에 물을 담아 가져온다.
요셉이 어떤 부자에게 침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으나, 침대 다리를 하나 짧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자 예수가 짧아진 각목을 잡아 늘여서 멀쩡하게 만들어주었다.
요셉이 예수를 가르치려고 선생에게 보냈다. 하지만 예수가 배우려 하지 않자 화가 난 선생이 예수의 머리를 때리고, 예수가 화가 나서 저주를 하자 선생은 죽어버렸다.
요셉의 절친한 친구인 다른 선생이 예수를 학교로 데려가자, 예수는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선생은 예수를 요셉에게 도로 돌려보내고, 이미 은총과 지혜로 가득 차 있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기뻐하며 이미 죽은 선생도 되살려 준다.
요셉이 아들 야고보와 예수를 함께 보내서 나무를 해오게 한다. 야고보가 나뭇가지를 줍다가 뱀에게 물려 죽어가자, 예수가 야고보를 치유시키고 뱀은 몸이 터져서 죽어버린다.
그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율법학자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이 들어 있다.
150년 경에 작성된 「토마스의 유년 시절 복음」, 토마스의 유아 복음서라고도 한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복음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 수백년 동안 인기를 누렸던 문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단순한 기적행의 연속이며, 내용이 지극히 조잡하고 유치하다. 도덕적인 내용은 완전히 결핍되어 있다.
5.7.2. 그 외의 예수의 유년기에 관한 기록들
라틴 유아 복음서예수 탄생에 대한 요셉의 증언 ‘내가 아이를 들자 아이는 나를 보고 아주 환하게 웃었다. 눈을 떠서 똑바로 보다가 갑자기 눈에서 큰 광선이 나왔다.’
어린 예수에 대한 아랍 복음서구유에 누워 있을 때, ‘나는 하느님의 아들, 말씀을 전할 예수다’고 말했다.
스도-마태오 복음서(가짜 마태오 복음서)마리아와 요셉이 이집트로 도망갈 때, 아기 예수가 용이 해치지 못하게 명령하고, 사자, 표범, 늑대가 경배했다. 대추야자나무에게 명하여 땅으로 휘어져서 마리아가 대추열매를 따먹을 수 있게 했다. 이집트 허모폴리스의 신전에 들어가자 우상들이 넘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5.7.2.1.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대한 의문들
어느 날 예수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어떤 산으로 데리고 가서는, 아담처럼 옆구리에서 여자 하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보는 앞에서 그 여자와 성관계를 한다. 다 한 뒤 , 이렇게 해야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물론 충격과 공포. 그러자 예수는 쓰러진 마리아 막달레나를 잡아 올리며 말한다. "너는 왜 나를 의심하느냐? 이 믿음 없는 자여." 그리고는 요한복음 3:12과 6:53의 말이 이어진다. "너희는 내가 이 세상 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위대한 의문들(The Great Questions of Mary)은 초기 영지주의 문서로서 위경으로 분류되는 '마리아의 질문들'과 '이브의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으로, 나스티시즘적 텍스트로 분류된다. 성 에피파니오는 이를 두고 그노시즘의 일파인 보르보로스파의 자유 연애 사상을 비판하였다.
5.7.2.2. 니코데모의 복음서
예수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의 공관복음서와 대체로 내용이 일치하며 공관복음서에서 인용한 부분도 있다. 추가된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
그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하기 이전까지 저승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대목에서 사탄은 천지창조부터 그 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가두고 있던 하데스(저승의 의인화)를 찾아가 예수를 잡아 가두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천사들을 이끌고 저승으로 내려온 예수는 하데스의 문을 쳐부수고, 하데스에 갇힌 모든 사람들을 구출해낸다.
아담을 비롯하여 주로 구약의 인물들이 여기에 등장하는데, 이들은 예수에게 이끌려 천국으로 올라가고 먼저 천국에 와 있던 에녹과 엘리야, 예수를 받아들이고 죽은 십자가 왼쪽 편의 죄수 디스마[14][15] 등을 만난다. 하데스는 사탄을 원망하며, 예수는 사탄을 하데스에 가둬버리고 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 가둬두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 부활을 하러 지상 세계로 올라간다.
딱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내용은 매우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저승을 파괴하고 죽은 자를 모두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끌고 가는 예수의 모습이 매우 스펙터클하고, 현실에서 대체로 비참한 처지였던 기독교인들에게 가상세계의 카타르시스 같은걸 안겨주었기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인기가 많았고 널리 퍼졌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액션 영화 같은 것이었을 듯하다. 이 때문에 예수가 죽어있는 3일 동안 저승에서 옛 유대인의 족장들을 풀어주고 다녔다는 전승도 널리 퍼졌으며 그 뒤에도 교회 전승으로 남아 버렸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이 내용이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