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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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지금까지도 생명력이 왕성한 유행어 '''"뭬이야?!"'''와, 아~ 아아~ 로 시작되는 배경음악을 배출한 전설적인 사극. 소설가 월탄 박종화의 소설 '여인천하'를 드라마로 제작한 것이다. 원래 월탄 선생의 여인천하는 박마리아나 모윤숙 등 제1공화국 치세 시절, 정계에 관여한 여인네들을 빗대서 쓴 작품이다. 당연히 정난정은 악의 축. 정난정 정도는 아니더라도 원작에서 실제 중종이 조광조를 사사하려는 장면에서 붓을 쥐어주는 자부터 먹을 가는 자 모두 후궁들이다.
2001년 초부터 2002년 중반까지 무려 1년 반 동안 방영된 SBS의 대하 사극. 기획 및 방영 초기에는 50부작으로 편성되었으나 150부작으로 종영된 드라마였다.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끌기는 하였지만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내용의 늘어짐도 엄청났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열연이 이 모든 것을 극복해냈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제작진 측에서는 150회만으로 내용을 다 담기 힘들다 생각했는지 200부작까지 늘리려고 시도했지만 배우들의 반대 및 여러 사정으로 인해 결국 150부작으로 마무리를 지었다.[2]
미천한 신분에서 정경부인으로, 천하를 쥐고 흔든 실권자의 부인이 된 정난정과 정난정의 도움으로 천하를 호령하게 된 문정왕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사실 이전 사극의 궁중 암투극과 딱히 큰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여인천하는 궁중 암투극을 '여성들의 권력을 향한 투쟁'으로 승화시켰다는 데에서 기존 궁중 암투극들하고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점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 중 하나였다.
음악 총연출은 고병준 음악감독[3] 이 맡았고, 내레이션 성우는 유강진.[4]
2. 상세
스토리는 거의 실제 역사 속의 등장인물들만 빼왔을 뿐, 실제 역사 사실과는 다른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정난정이 주인공인 탓에 실제 역사적 사건들의 배후는 다 정난정이란 식으로 끌고 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 게다가 중반쯤에서 치부책 관련 에피소드로 수십 화를 잡아먹어서 결과적으로는 정난정과 문정왕후가 권세를 잡은 뒤와 문정왕후가 죽은 뒤 정난정이 몰락하는 때의 이야기들은 거의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후다닥 지나가야 했다.[5] 원래는 극중 정난정의 어릴적 동무로 나오는 능금이를 비롯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룰 계획이었다고 하나, 이러한 극중 흐름의 변화 때문에 예정되었던 에피소드들 대부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날렸다고 한다. 다만 정치사 부분은 그럭저럭 실록의 기록과 일치하며, 조광조나 남곤이 사망하는 장면은 사료를 충실히 옮겼다.
하지만 강수연, 전인화, 도지원 등의 열연에 힘입어 여성 시청자들이 비교적 드문 사극 장르에서 여성 시청자들이 남성 시청자를 압도한 거의 유일무이한 사극이었고 결국 2001년 SBS 연기대상에서 정난정 역의 강수연과 문정왕후 역의 전인화가 영예의 대상을 '''공동수상'''하였다. 경빈 역의 도지원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특히, 두 명이 같은 해 시상식에서 같은 드라마로 연기대상에서 공동수상을 한 사례는 이 드라마가 최초였다.''' 근래에는 대상을 공동수상을 하게 되면 몰아주기나 연기력 등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지만, 강수연과 전인화가 모두 대상을 받았을 때는 시청자들은 대부분 납득을 하고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기 때문에 공동수상에 따라붙는 비난은 별로 없었다.
사실 주연은 강수연, 전인화였지만, 당장 당시에 유행을 탔던 명대사만 봐도 강수연이 맡은 정난정의 대사는 하나도 없고 죄다 문정왕후 역의 전인화와 경빈 역의 도지원의 대사 뿐이다. 특히 경빈의 "뭬야"는 각종 방송에 단골로 등장할 만큼 히트를 쳤다. 물론, 강수연이 연기를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전인화의 문정왕후가 보여준 본좌급 포스와 도지원의 경빈이 보여준 광기어린 악역빨에 발려도 한참 발렸다. 애초에 극중 대결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문정왕후 VS 경빈의 암투전에서 정난정은 들러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강수연이 불리하긴 했다.
각 회가 끝날 때마다 강수연의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클로즈업하던 것도 특징. 이는 강수연이 처음 계약할 때 조건으로 내 건 것이라고 한다. 영화배우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니 만큼, 마지막 샷은 늘 자기가 장식하는 것으로 자존심을 세우려 한듯 하다.[6] 하지만 전체 150회 가운데 3회는 강수연이 아닌 전인화와 도지원이 장식했다. 강수연이 147회의 엔딩 클로즈업(아역배우 포함)을 담당했고, 전인화는 가례식과 득남했을 때 2회, 경빈 박씨가 사약을 받은 회차에서는 도지원이 1회 엔딩 클로즈업을 맡았다. 출연료 또한 회당 500만원으로, 지금은 별것 아닌듯 하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우였다. 당시 최고의 출연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강수연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로서 받는 출연료였다. 여인천하 이후로 배우들의 출연료 인플레가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다. 2003년 KBS 수목드라마 대하사극 장희빈의 김혜수가 받은 출연료가 회당 700만원이고, 2004년 송혜교가 받은 회당 출연료가 1,500만원이었으니...
주제가(?) 가사를 힘들게 땄다고 하며 사람들을 낚는 네티즌들도 많았다. 사실 주제가라기 보다는 테마 음악으로, 판소리 명창 안숙선의 구음(口音)이다. 드라마 방영 전이었던 1990년대 중반 '안숙선 구음 시나위' 라는 음반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인지, 제작진이 특별히 가사가 담긴 곡이 아닌 구음 곡을 부탁한 모양.
3. 연장
겨울연가와 비슷한 시기 드라마인 상도와 경쟁할 정도로 시청률도 아주 높았지만 그 인기 때문에 100회나 연장을 해버려 극이 굉장히 지루해졌다. 어떤 부분은 말 그대로 실시간 처리라고 할 정도로 '''하루에 일어난 일을 한 회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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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질질 끌어버린 탓에 정작 정난정이 권세를 얻고 세도를 부린 부분은 마지막회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7] 특히 문정왕후 사후 정난정이 몰락하는 과정은 마지막회 단 1회로 퉁쳐버렸다......[8]
정난정 역을 맡았던 강수연은 정난정 캐릭터를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처음 계약은 50회 분량이었으나 드라마가 대박이 터지자 150회까지 연장되었고, 장장 2년 가까이 이 역을 하다보니 캐릭터가 본인이 생각하던 점에서 많이 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드라마에서 혼자 빠질 수 없어서 계속 찍었다고. 그 뒤로 방송에서 수많은 사극 섭외가 들어왔지만 다 거절했다고 한다.
연장되면서 스토리 라인이 많이 변경되었으며 박상민, 김정은은 전인화-도지원 중심으로 극이 진행됨에 따라 비중이 줄었으며, 이에 불만을 품은 김정은은 연장에 동의하지 않고 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108회에서 아무런 언급 없이 하차하였다.
4. 명대사
'''"뭬야?"'''
- '''여인천하 명대사 1위'''. 경빈 박씨의 단골 대사로 그 외의 인물들도 이 대사를 쓰게 되며,[13]
사진에 나와있는 중종도 15회 한정으로 이 대사를 쓴다.
"엄상궁!" / "예. 중전마마"
- 문정왕후, 엄상궁[14]
"네가 정녕 단매에 죽고 싶은 것이더냐?" / "나가라 경빈!"
- 문정왕후
"XXX를 찍어낼 것입니다"
- 자신의 적인 사람을 제거할 뜻을 밝힐 때
그리고..."XXX, 오늘은 무슨 일로 편전에 들었는가?"
- 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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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명대사
가 있으며, 본 드라마 105회와 109회에서 자순대비가 경빈 박씨에게 이 대사를 날리게 되며, 세자[15] 또한 이 대사를 세 차례 날리게 되는데, 92회에서 남곤에게 날린것이 처음이었고, 138회에서는 김안로에게, 140회에서는 조정의 양위공론에 빡쳐서 윤임에게 이 대사를 날린다. 문정왕후도 은근히 자주 써먹는다."그 입 다물라! 다물라! 다물라!"
5. 등장인물
- 장수혜(아역), 강수연[16] (성인): 정난정
- 전인화: 문정왕후[17]
- 도지원: 경빈 박씨[18]
- 이덕화: 윤원형
- 최종환: 중종[19]
- 이보희: 정현왕후(자순대비)
- 권오민(아역), 정태우(성인): 인종
- 신은정: 인성왕후
- 김민희: 희빈 홍씨
- 최정원 : 창빈 안씨
- 김학준(아역), 김광영[20] : 명종
- 박윤선: 인순왕후
- 백윤식: 정윤겸
- 김영란[21] : 정난정의 어머니[22]
- 박상민: 길상
- 박규리(아역)[23] / 김정은(성인): 능금
- 이휘향: 거상 장씨(장 대인)[24]
- 임혁: 갖바치[25]
- 한인수: 당추 스님
- 김종결[26] : 김안로
- 이효정[27] : 윤임
- 문창길: 남곤
- 김영선[28] : 심정
- 안대용[29] : 홍경주
- 이민우: 임백령[30]
- 주슬기(아역), 박주미(성인): 옥매향
- 김나운: 소월향[31]
- 차광수: 조광조[32]
- 서학: 안당
- 최동준: 파릉군
- 이혜숙 : 윤원형 적실 연안 김씨
- 오승윤[33] (아역), 안홍진(성인)[34] : 복성군 이미
- 김희정: 단경왕후 신씨
- 김기현 : 백치수
- 김기섭 : 윤원로
- 김경응 : 안처겸
- 이풍운 : 금원군
- 한영숙 : 엄상궁
- 서영애 : 김상궁
- 전현아 : 장상궁(금이)
- 이춘식 : 방백인
- 라재웅: 정렴[35]
6. 오프닝
https://youtu.be/swpDvrC3GY4
여인천하 오프닝으로 판소리 명창인 안숙선[36] 씨가 맡았다.
오프닝의 "~아아"로 시작하는 창 부분이 매우 유명하다. 개그 콘서트에서는 영 좋지 않은 곳을 맞는 개그를 한 뒤에 오프닝의 음악을 BGM으로 깔았다. 비명과 오프닝의 매우 적절한 조화. '''아아~''' 패러디물도 여럿 나왔을 정도.
오프닝 뿐 아니라 여러 역사적 사건이 나올 때 마다 나레이션의 설명을 받쳐주는 배경음으로는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사용되었다.
7. 여담
7.1. 캐스팅 & 배우 관련
- 기사 '인어 아줌마?' 장서희에 따르면, 장서희가 경빈 박씨 역에 캐스팅되었으나 고위간부의 의견으로 교체된 바 있다. 장서희뿐만 아니라 채림과 채시라 도 주인공 캐스팅 물망에 올랐으나 채시라의 경우 이 당시 임신 중이었기때문에 고사한 거라고 한다.
- 김정은의 아역으로 카라의 박규리가 나왔고, 장근석도 아역으로 나왔었다.
- 이덕화를 제외한 이 드라마의 핵심 인물들은 비슷한 또래인데 전인화, 도지원[38][39] 은 65년생 라인이고, 강수연은 66년생이다. 난정 모로 나온 김영란은 이덕화보다 4살 어리며, 자순대비 역의 이보희도 이덕화보다 7살이나 어리고, 아들 역의 최종환보다는 겨우 5살 많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배우의 액면가(...) 때문에 몇몇 인물의 설정이 바뀌었는데, 윤원형은 실제로는 문정왕후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두 역할을 맡은 배우 이덕화와 전인화의 나이를 생각해서, 극중에서는 윤원형이 오빠인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복성군 이미와 윤원형은 6살 차이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린 복성군 오승윤과 이덕화를 보면 액면가는 거의 큰아버지와 아들뻘인데...
- 문정왕후 역의 전인화와 중종 역의 최종환은 각각 65년생, 64년생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봤을 때 또래 부부로 보였지만, 실제로 문정왕후는 중종보다 13살이나 연하였다. 중종 입장에서는 문정왕후는 세 번째로 맞는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빈 박씨는 문정왕후가 중전이 되기 전에 이미 후궁이 되 상태였기 때문에, 문정왕후보다도 9살 연상이었다. 즉, 문정왕후가 혼인하여 중전이 되었을 때, 문정왕후는 겨우 17살이었지만 중종과 경빈 박씨는 이미 30살 전후의 나이였다. 차라리 연령 고증은 95년작 KBS 조광조가 잘된 편. 조광조에서 중종 역으로 68년생 이진우가 연기했고, 문정왕후 역으로는 그 당시 아직 아역배우였던 82년생 김민정이 연기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난정은 1511년생으로 극 중 오랜 기간동안 아역으로 나온 복성군보다도 나이가 어리다(....).[40]
- 김안로 역의 김종결과 윤임 역의 이효정은 2년 후 불멸의 이순신에 캐스팅이 되는데, 여인천하에서와 마찬가지로 같은 편으로 등장한다. 김종결의 경우 김안로 → 사이쇼 조타이로, 이효정은 윤임 →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배역을 받았다.
- 이 작품에서 정난정의 친구 옥매향으로 분했던 박주미는 십여 년 후 정난정을 직접 맡게 된다. 사실 박주미는 이전에 시대적 배경이 같았던 1996년 작인 KBS2 조광조에서 장경왕후 윤씨를 맡은 적이 있었다.
- 엄상궁 역의 한영숙은 MBC 성우 출신으로,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큰 인기를 얻어 팬클럽이 생기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야구 경기 시구에 나선 전인화와 함께 여인천하 속 분장 차림으로 같이 등장하기도 했다.
7.2. 그 외
- 여인천하의 방영 도중에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9.11 테러 관련 첫 번째 SBS 뉴스속보가 자막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아직까지 여인천하 보던 중에 자막으로 처음 미국 테러 속보를 봤다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41]
- 중국 드라마 당궁연이 CHING 채널을 통해 한국에 방영되면서 여인천하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 MBC 사극 다모 OST 수록곡인 단심가는 본래 여인천하 OST의 수록곡이었던 길(Love Song)에서 이름만 바꾼 동일곡이다. 다만 여인천하가 궁중 암투극을 다룬 탓에 본 드라마와 엇나가는 감이 컸던 해당 곡은 묻혔다가 다모에서 비로소 빛을 본 것.
- 여인천하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러 병사들과 신하들이 경빈을 억지로 붙잡고 항아리째 사약을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아무리 죄인이라도 엄연히 명색이 왕의 후궁인데, 낯선 남정네가 후궁의 몸을 만지는 일은 큰일날 일인데다 사대부 아녀자급 이상의 여자를 사사할 땐 사약을 방안에까지 전달해서 방안에서 절하고 마셨기 때문에 이 장면은 고증이 잘못된 것이다.[42] 제작비화에 의하면 경빈 박씨의 최후를 처참하게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어겼다고 하며, 경빈을 맡은 도지원은 코와 입에 사약 대용으로 사용한 콜라가 마구 들어가는 바람에 매우 놀라서 엉엉 운 것이 비하인드 장면에 나왔다. 충격적인 사약 장면으로 겨울연가 때문에 주춤했던 시청률이 대폭 상승하여 40%에 육박하였다.
- 이 작품에서 문정왕후를 맡은 전인화와 경빈 박씨를 맡은 도지원, 단경왕후로 나온 김희정은 13년 뒤 옆동네의 어느 개막장 주말 드라마에서 다시 만났다.
- 이덕화와 담당 PD 김재형도 94년에 한 KBS 2TV 한명회 이후 7년만에 연출자 - 연기자로 재회했는데, 이덕화는 담당 PD 김재형씨의 전작인 KBS 1TV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 역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한 적이 있다.
- 담당 PD 김재형과 도지원의 경우에는 처음으로 연출자 - 연기자로 만났는데 담당 PD는 자신의 전작이기도 한 <한명회>, <용의 눈물> 등에 도지원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본인이 모두 고사했다.
- 담당 PD 김재형이 KBS를 떠나 SBS로 이적한 후 처음 연출한 드라마이기도 했는데 불미스러운 일(수뢰 혐의 때문에 불구속 기소)로 태조 왕건의 연출을 포기한 뒤[43] <여인천하>로 재기에 성공하여 은실이 이후 한동안 이어진 월화극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 여인천하가 종영한 다음 날인 2002년 7월 23일에는 <대하사극 여인천하, 찬란한 꿈의 기록들>이란 제목의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고, 한선교 아나운서와 개그우먼 김미화가 공동 진행을 맡았다.
[1] 용의 눈물, 왕과 나(중도 하차)의 연출이었다.[2] 사실 계약했던 50부에서 절대 연장은 못한다던 강수연조차도 백기 들고 150부작까지 촬영한 걸 보면, 어떡하든 설득한다면 연장자체는 불가능하지 않았지만 늘어지는 전개에 시청자들조차 한계가 왔는지 시청률이 하락하면서 종영하게 되었다.[3] 가수 고복수의 3남. 2004년 동남아 대지진으로 사망.[4] 첫방영 이전 예고편에서는 성우 안지환과 장정진이 각각 내레이션을 맡은 두 가지 버전의 예고편이 있다. 본방 이후에는 예고 내레이션도 유강진으로 고정.[5] 사실 박종화의 원작도 이 부분은 좀 지나가는 경향이 짙다.[6] 이러한 부담스러울 정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은 김재형 PD의 후속작 왕의 여자에서도 재현된다.[7] 삼국지연의 제갈량 사후가 휙휙 지나가는 것처럼 지나갔는데, 삼국지연의의 그 부분과 달리 이 드라마에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드라마의 제목과도 부합하는 진정한 여인천하는 사실상 이 부분이었기에 비판이 많았다.[8] 감독도 이부분을 많이 아쉬워했다. 시청률이 좋으니 태조왕건 사례도 있고, 200회까지 연장생각이 있었던듯~ 그러나 50회를 200회까지 연장하니 배우들도 지쳤고, 시청자들 조차 질질끄는 스토리에 항의가 빗발쳐 결국 150회로 마무리짓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연장을생각했던 늘어졌던 스토리는 마지막에 번갯불 콩 구어 먹듯이 초스피드한 스토리로 진행되었다.[9] 8회 한정[10] 1회 한정[11] 63회 한정[12] 12회 한정[13] 윤임 [9] , 희빈 홍씨, 윤지임, 윤원로, 윤원형, 박원종[10] , 복성군[11] , 문정왕후[12] [14] 추가로 엄상궁이 엄근진한 표정과 목소리로 "주웅즈언 마마아~ 굥빈 들었사옵니다"라고 하는 대사가 압권이다. 엄상궁은 나이와 무게가 있는 캐릭터로서 자신보다 지체가 높은 경빈 박씨의 패악에도 전혀 쫄지 않고 오히려 역관광을 시키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자신을 때리려는 경빈의 팔을 잡고 노려보자 경빈이 기가 죽는 등) 이 때문에 은근한 인기를 끌었다. 2018년 식으로 표현하면 "핵사이다"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15] 훗날의 인종[16] 한반도에서는 명성황후를 맡았다.[17] SBS 대하사극 왕과 나에서는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를 연기했다.[18] 7일의 왕비에서는 자순대비를 맡았다.[19] 실제로 배우 최종환은 이 드라마가 종영하고 15년 후 사임당, 빛의 일기 에서도 중종을 맡는다.[20] 비슷한 시기 옆 동네에서 방영했던 명성황후에서는 민영익을 연기했다.[21] MBC 교동마님과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중 풍란 편에서 정난정을 연기했었다.[22] 드라마에서는 장흥댁이라 불리며, 본래 사대부 출신으로 이름은 허초희. 아버지는 "허찬수"로 정윤겸과 아는 사이이며 성종 모시는 당상관이었지만 연산군 때 사화를 당해 집안이 몰락했다. 그 후, 허초희가 장흥 관아에서 노비를 되었다.[23] 이 드라마 이후 소속사 연습생으로 합류하였고 5년 뒤 카라로 데뷔하였으며 그룹이 해체된 후에는 본업인 연기자로 돌아갔다.[24] 명나라 상인. 여성이며 조선에서 상권을 넓힐 연줄을 만들려 경빈을 지원했지만 경빈이 작서의 변으로 사사되자 김안로로 갈아탔다. 김안로도 몰락하자 조선에서의 사업을 접고 명나라로 돌아갔다. 능금도 이 때 장대인을 따라 명나라로 간다.[25] 당시 야사에 등장하는 백정 출신 현인으로 임꺽정(드라마)에서는 양주팔이라는 이름으로 이정길이 연기했다.[26]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사이쇼 죠타이를 연기했다.[27]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연기했다.[28] 배우[29] 대조영에서 당나라의 장손무기를 연기했다.[30] 원래는 윤원형 일파와 함께 을사사화를 일으킨 원흉 중 한명이지만, 드라마가 중종 치세에만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보니, 임백령의 정치적 활약상 보다는 옥매향과 소월향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적인 면모가 더 부각되는 편. 실제 역사상으로는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병으로 죽지만 극 중에서는 다녀오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죽는다.[31] 옥매향 역의 배우 박주미가 개인적인 사정(임신)으로 드라마에서 하차하자, 옥매향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가상 캐릭터다.[32] 공교롭게도 1년 전 전작이었던 KBS 왕과 비에서는 반정공신 박원종을 연기했었다. 흠좀무[33] 이 드라마 이후 매직키드 마수리로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34] 안홍진은 홍경주 역을 맡은 안대용의 아들이다.[35] 야인시대의 오상사 역으로 유명한 배우이다[36] 현 가야금 병창 부문 인간문화재[37] 원래 MBC 전속처럼 나왔지만 드라마 모래시계부터 SBS와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인식된 건 바로 이 작품.[38] 66년 음력 2월생 말띠지만 65년생과 동창이므로 거의 동갑뻘이다.[39] 전인화와 도지원은 2015년 14년 만에 8월 31일부터 방송하는 MBC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내 딸, 금사월에서 14년 만에 호흡을 맞춘다. 여기서는 친구다.[40] 정난정은 실제 역사 상으로는 명종 치세 때 윤원형 일파와 함께 활개를 치고 다녔지만, 극 중 정난정은 문정왕후와 함께 주로 중종 치세 때 궁중암투에 관여하는 것으로 나온다.[41] 뉴욕과 서울특별시의 시차는 원래 14시간이나, 9.11 테러 당시는 북미 지역 서머타임 시행 기간이었기 때문에 시차가 13시간이었다. 세계무역센터에 처음으로 비행기가 부딪혔을 때가 우리 시간 밤 9시 45분(뉴욕 현지 시간 아침 8시 45분)이며, 그로부터 15분~20분 안에 외신을 통해 보도를 받고 그걸 다시 국내(우리나라)에 보도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42] 애초에 사약을 내린 것 자체가 함부로 몸에 손을 댈 수 없는 사람이니 준 것이다. 몸에 손을 대도 되는, 예를들면 반역을 꾀한것이 걸린 대역죄인인 경우엔 사약이 아니라 교수형이나 참형으로 처리한다.[43] 1999년 11월 26일 배임수재죄가 적용되어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1612만원이 선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