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테퍼

 

'''David Tepper'''
'''이름'''
David Tepper
데이비드 테퍼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57년 9월 11일 (66세)
미국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신장'''
176cm
'''학력'''
피츠버그 대학교 (경제학 /B.A)
카네기 멜런 대학교 경영대학원 (금융학 / MSIA)
'''현직'''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회장[1], 캐롤라이나 팬서스 구단주
'''직업'''
펀드매니저, 구단주
'''배우자'''
니콜 브로니쉬
'''자녀'''
2남 1녀
'''재산'''
130억 달러 (한화 약 14조 7594억 원)[2][3]
1. 생애
2. 커리어
3.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4. 신념
5. 스포츠


1. 생애


미국의 기업인이자 스타 펀드매니저. 1957년 9월 11일펜실베니아 피츠버그에서 태어났다. 테퍼는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이스트 앤드의 스탠트 하이츠 인근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그는 운동을 좋아하고, 할아버지께서 주신 야구 카드의 뒷면에 있는 통계를 외우는 아이였다고 한다. 피츠버그 인근에 피바디 고등학교를 다녔고, 재학시절 프라크 미술 도서관에서 일한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냈다고 한다. 피츠버그 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투자를 하기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일하던 프라크 미술 도서관에서 일했고 다양한 투자상품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보유한 기업은 펜실베니아 엔지니어링과 커리어 아카데믹이었으며 현재 두 회사는 모두 파산했다.

2. 커리어


피츠버그 대학교 졸업 후, 에쿼티 뱅크 재무팀에서 근무했다. 테퍼는 여기서 자신의 학사 학위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금융업의 더 높은 위치에서 일하기 위해 더 높은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 입학했으며, 당시 MBA와도 같은 MSIA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테퍼는 월가의 금융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카네기 멜런 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후 오하이오에 위치한 리퍼블릭 스틸의 재무부에서 일했다. 후에 테퍼는 보스턴에 위치한 뮤츄얼펀드인 키스톤의 에버그린 펀드로 이직하게 된다.
1985년, 테퍼는 골드만삭스의 애널리스트 팀에 스카웃된다. 당시 골드만삭스뉴욕에 고위험 고수익 투자 팀을 신설하고 있었다. 테퍼는 정크본드 트레이딩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결국 입사 6개월만에 신설 트레이팅 팀의 팀장이 되었다.
1987년은 미국 주식시장 역사상 가장 큰 폭락인 검은 월요일이 일어난 해이다. 테퍼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되던 고위험~고수익 채권을 적극적으로 매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은 회복했고 그가 구매했던 채권의 가격은 급상승했다. 테퍼의 예리한 투자 능력으로 골드만삭스는 악몽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테퍼는 트레이딩 부서의 팀장으로 8년간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다. 그는 1987년에 올린 성과로 회사의 파트너가 되길 원했지만, 결국 오르지 못했다. 테퍼의 고위험 고수익 투자 성향이 골드만 삭스와 맞지 않는다는 경영진의 판단 때문이었다. 두번의 시도가 모두 무산되자 테퍼는 결국 1992년 골드만삭스를 자진 퇴사하게 된다.[4]
골드만삭스 퇴사 후, 자신의 고객이었던 뮤츄얼펀드 매니저인 마이클 프라이스의 사무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테퍼는 프라이스의 사무실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프라이스의 사무실에서 번 돈은 훗날 아팔루사 매니지먼트의 시드 머니가 된다.
1983년 테퍼는 그의 골드만삭스 전 동료였던 잭 월턴과 함께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Appaloosa Management L.P.)를 공동 설립한다. 아팔루사를 운용하는 동안 테퍼는 전성기를 맞이 한다. 첫 투자는 부실 기업이었던 알고마 스틸이었다. 테퍼는 회사 주식을 주당 20센트에 매수해 일년 만에 70센트에 처분하게 된다. 즉, 첫 거래에서만 약 250%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이후 아팔루사는 승승장구해 1994년에 3억 달러, 1995년에 4억 5천만 달러, 1996년에 8억 달러로 성장하였으며, 2001년에는 한 해에만 무려 6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식시장이 급락하였을때 금융회사이 소유한 자산을 적극 매수했다. 대침체가 진정되자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테퍼는 70억 달러 (한화 약 8조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3.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주식채권 거래에 특화된 헤지펀드로, 특히 고위험 고수익 투자 전략을 사용한다. 2020년, 약 13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중이고 있다. 현재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 예정 중이다.
테퍼는 펀드의 자산 규모가 너무 커지면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힘들거라 생각해 펀드의 규모를 200억 달러 선에서 맞춘다고 한다. 현재는 200억 달러에서도 규모를 더 줄여 130억 달러 만의 자산을 운용중이다.

4. 신념


테퍼는 성공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과 투자전략이 필요하다 믿었다. 아래는 테퍼가 직접 명시한 4가지 신념이다.
'''1'''. '''열정적으로 살아라'''
테퍼는 젊은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야망과 열정은 더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힘이 된다. 테퍼는 그의 첫 번째 업무에 만족하지 못했고, 더 높은 학위를 따기 위해 비즈니스 스쿨에 등록했다. 그는 금융권에서 더 높은 위치에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서는 학사보다 높은 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야망은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야망은 더 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행동과 실천을 포함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마라. 당신의 목표를 상상하고 계속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2'''. '''한 가지에 집중해라'''
테퍼는 다양한 분야를 고루 아는 것보다 자신의 역량을 집중해 가장 생산적인 하나의 영역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한다. 그는 신용 위기에 빠지거나 파산 위험에 처한 고위험 고수익 채권 투자 전문가가 되었다.
한 가지 분야 집중해 전문가가 되는 것이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나 능력을 키우는 사람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영리하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테퍼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시간과 자원을 가장 생산적인 것에 집중해 그 분야 전문가가 되는 것이 영리한 선택이다.
'''3'''. '''앞으로 나아가라'''
테퍼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햐서는 현재의 편안함을 포기해야 된다고 믿었다. 테퍼는 골드만삭스가 자신의 실적에 맞지 않는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 믿었고 자진 퇴사를 결정하게 된다[5]. 그 결과, 테퍼는 14조원 자산가가 되었다.
'''4'''. '''탐욕을 부리지 마라'''
테퍼는 그의 욕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보통 펀드매니저는 투자자금을 키워 더 많은 수수료를 취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는 아팔루사 매니지먼트가 운영하는 투자자금에 상한선을 설정하고 감당하지 못할 자금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운영하는 펀드 수익이 많이 발생해 투자자금을 돌려주는 경우가 많았다. 테퍼는 탐욕을 버리고 아팔루사 매니지먼트가 운영하는 펀드를 투명하게 관리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이런 테퍼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5. 스포츠


테퍼는 어려서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18년 5월캐롤라이나 팬서스를 매수했다. 현재 구단의 가치는 23억 달러이다.


[1]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로 130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중이다[2] 2020년 11월 1일 포브스 기준[3] 미국 부자 순위 50위권에 드는 엄청난 거부이다[4] 이 일을 계기로 테퍼는 억만장자가 된다[5] 참고로 골드만삭스의 팀장급 연봉은 수억 수십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