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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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 Volkspartei / DVP (독일어)
German People's Party (영어)
1. 개요
2. 역사
3. 성향


1. 개요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독일에서 활동한 정당. 독일 제국 시기 제국의회에서 활동했던 국민자유당(Nationalliberale Partei)의 후신이기도 하다. 인민당이라는 이름탓에 좌익 계열로 착각하기 쉽지만[1] 실제로의 성향은 중도 보수에 자유주의적이었다. 독일 인민당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수상과 외무장관을 지냈던 192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있다.

2. 역사


1918년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주도 하에 국민자유당이 비슷한 성향의 자유 보수당(Freikonservative Partei) / 경제연합(Wirtschaft Vereinigung)과 통합되어 형성되었다.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의 상황에서 중도보수라는 성향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크게 끌어오기 힘들었기 때문에 늘 원내 제3당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실제로 독일 인민당은 14년동안 이어진 바이마르 공화국 기간 동안 단 두 차례 총리를 배출하는데 그쳤으며, 그렇게 배출한 내각 역시 오래 존속하지는 못해서 슈트레제만 내각은 불과 100일 동안 집권했으며(...) 한스 루터 내각도 1년 정도를 집권하는데 그친다. 그렇지만 군소정당이 난립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 특성상 인민당은 연정의 설립과 붕괴에 몇 차례나 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고 1930년 실업률 문제를 놓고 헤르만 뮐러 내각을 붕괴시키는 데 일등공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직후 대공황이 불어닥치면서 독일 유권자들의 성향은 으로 분산되기 시작했고 중도성향이었던 인민당은 여기에 제대로 직격탄을 맞고 만다. 1930년 9월의 선거에서 인민당은 불과 30석의 좌석을 차지하는데 그치며 원내 제4,5당 수준으로 주저앉아버렸고 여기에 당의 핵심이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사망은 당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이후 1933년 수권법이 통과되면서 인민당 역시 다른 기타 정당과 마찬가지로 활동이 금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오늘날에는 자민당이 독일인민당의 성향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3. 성향


독일 민주당(Deutsche Demokratische Partei)과 함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 국민자유주의 성향을 보인 정당이었는데, 상대적으로 중도좌파 성향이었던 독일 민주당과 달리 중도우파적인 성향을 보였다. 실제로 독일인민당이 주된 지지층으로 삼은 계층은 중산층과 산업가 세력이었다. 실제로 독일인민당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함유한 가정, 정교분리, 낮은 관세를 비롯한 자유 무역, 복지 축소, 반 마르크스주의 등을 주요 강령으로 삼았다. 게다가 당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부를 수 있었던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이 심정적으로는 왕당파였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하여 상당히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서 바이마르 공화국 설립 초기에는 사민당이 주도하는 연정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었다.[2]

[1] 사실 유럽에서는 우파들도 인민이라는 단어를 꺼리낌 없이 쓴다. 유럽 인민당 그룹만 봐도 알 수 있다.[2] 슈트레제만이 공화정을 지지하기 시작하여 인민당이 연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것은 1920년대 초반부터였다. 다만 슈트레제만 본인은 이 때도 마음속으로는 왕당파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