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나미비아 관계
1. 개요
독일과 나미비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나미비아는 19세기말에 독일의 식민지배와 헤레로족 학살을 겪을 적이 있었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1883년, 독일인 상인이었던 아돌프 뤼더리츠(Adolf Lüderitz)가 지금의 나미비아에 도착한 뒤, 원주민 족장으로부터 앙그라 페케나(Angra Pequena) 인근의 땅을 구입했다. 이후 뤼데리츠란 이름이 붙었고 독일 제국은 베를린 회담을 통해 나미비아 지역에 남서아프리카를 설치했다.[1]
독일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나미비아에는 독일인들이 이주했고 이주한 독일인들과 토착민간의 갈등이 생겨났다. 독일 제국의 통치에 헤레로족들이 반발했고 봉기를 일으켰다.
1904년 1월에 헤레로족과 나마족들이 봉기하면서 독일은 헤레로족 학살을 저질렀다. 이과정에서 헤레로족들의 피해가 매우 컸고 학살로 인해 헤레로족들의 80%가 줄어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패했고 나미비아는 남아프리카 연방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나미비아는 1990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독립한 뒤, 독일과 수교했다.
2.2. 현대
현대에는 역사적인 이유로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당시 독일 제국이 19세기에 나미비아를 식민지배한 적이 있었고 이 당시의 나미비아지역은 독일령 남서아프리카란 이름으로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나미비아는 독일의 상임이사국진출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고 헤레로족 학살은 나미비아의 교과서에도 실려져 있다. 2010년대 후반에 독일 정부는 헤레로족 학살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보상은 하지 않았다. 독일은 나미비아를 식민지배했을 당시에는 피해자들의 두개골을 연구에 사용하겠다는 명목으로 가져가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했고, 2018년 8월 29일에 두개골을 나미비아로 되돌려주는 행사가 3번째로 열렸다. 기사 그리고 2019년 5월 17일에 독일 정부는 120여년전에 약탈해간 유물을 나미비아에 반환했다.#
2019년에 재건되는 프로이센 왕궁 내에 헤레로족 학살을 비롯한 식민지에서 자행된 만행을 반성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한다고 했다. 독일과 나미비아 정부가 독일제국 당시 있었던 나미비아 학살 사건을 집단학살(genocide)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공동 선언을 놓고 양자 회담 중이며 이를 2016년 연말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0년 독일은 나미비아에게 100만 유로를 지급하여 과거사를 청산하러는 의도를 내비쳤으나 나미비아에선 고작 100만 유로(약 139억원)로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점을 모욕에 가깝게 받아들였고 독일이 배상금이란 표현을 꺼린다는 점, 독일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는 점 때문에 해당 안을 거부했다. 2015년 이후 8차례 협상이 이루어졌으나 배상에 대한 독일의 소극적 태도와 공식적인 사과를 계속 미루는 점으로 아직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0년 12월 3일에 나미비아 북부에서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을 가진 의원 후보자가 당선되어 화제를 모았다.#
3. 문화 교류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나미비아는 독일의 영향으로 루터교회가 널리 퍼져 있고 독일어화자들이 나미비아에 존재하고 독일어도 나미비아에서 쓰이고 있으며 소수의 독일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소시지, 슈바인스학세, 자우어크라우트 등 독일 요리를 즐겨먹는 사람이 많으며 나미비아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
독일은 맥주의 나라인 만큼 식민지에도 독일의 맥주 양조 기술을 전파했는데 이 영향으로 나미비아 맥주는 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맥주들 중에서도 상당히 맛이 좋기로 매우 유명하다. 빈트후크(Windhoek)와 타펠(Tafel)이 대표적이다. 물, 보리, 홉 외에도 쌀을 첨가하는 중국 칭따오 맥주와 달리 나미비아 맥주인 빈트후크나 타펠은 독일의 맥주 순수령에 가깝게 물과 보리, 홉으로만 맥주를 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