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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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돈 제임스 라슨(Don James Larsen)
'''생년월일'''
1929년 8월 7일
'''사망'''
2020년 1월 1일 (향년 90세)
'''국적'''
미국
'''출신지'''
인디애나 주 미시간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47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입단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1947~1954)
뉴욕 양키스(1955~1959)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1960~1961)
시카고 화이트삭스(196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62~1964)
휴스턴 콜트 45s(1964~1965)
볼티모어 오리올스(1966)
시카고 컵스(1967)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56'''
'''1958'''
'''1956년 월드 시리즈 MVP'''
조니 포드레스
(브루클린 다저스)

'''돈 라슨
(뉴욕 양키스)'''

류 버데트
(밀워키 브레이브스)
'''뉴욕 양키스 개막전 선발 투수'''
화이티 포드(1954~1955)

'''돈 라슨(1956)'''

화이티 포드(1957)

'''The Imperfect person pitched the Perfect Game.(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한 경기를 해냈다.)'''

- 돈 라슨의 퍼펙트 게임 다음 날 뉴욕 데일리 뉴스의 칼럼 제목.

1. 개요
2. 선수 시절
2.1.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를 달성하다
2.2. 퍼펙트 이후
3. 사망
4. 기타
5. 관련 문서


1. 개요


1947년부터 1967년까지 MLB에서 활약한 투수. 선수 경력 전체 기록으로는 대단하다고 하기 어렵지만, 1956년 '''월드시리즈에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투수로 유명하며, '''2024-12-31 03:38:20 현재까지 월드시리즈 & 포스트시즌 퍼펙트 게임 기록을 보유한 유일한 선수'''이다.[1]

2. 선수 시절


인디애나에서 태어난 돈 라슨은 고등학교 때 농구와 야구를 병행했는데, 농구로 대학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유망주였다. 야구도 하던 1947년의 어느 날,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현 볼티모어) 스카우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후에 왜 계약을 대학 재학 중에 맺었냐는 질문에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마이너리그에서도 방어율 3점대로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던 중,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지원해 참전했다. 특별한 보직 없이 이리저리 활동하다가 1953년 제대해 다시 팀에 복귀했다.
그리고 이 해에 돈 라슨은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메이저리그에 승격한지 한달 만에 선발로 등판해 7.2이닝을 잘 틀어막아 메이저 첫 승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1954년 시즌 후 돈 라슨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후부터 괜찮은 선발로 활약하더니, 1956년에 명성을 날릴 기회를 얻었다.

2.1. 월드 시리즈에서 퍼펙트를 달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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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당시의 전광판.
1956년 좋은 활약으로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5차전 선발로 예정되었다. 상대는 브루클린 다저스. 마침 시리즈 스코어도 2-2로 팽팽한 상황이었기에 양 팀 모두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돈 라슨은 97개의 투구수로 타선을 꽁꽁 묶어버리며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다. [2] 심지어 피 위 리즈만이 유일하게 3볼까지 얻어냈을 정도로 제구가 좋았다. 타선도 미키 맨틀의 솔로 홈런과 행크 바우어의 1타점 적시타로 2점을 지원하며 2-0 승리를 도왔다.

이 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돈 라슨은 "제구가 정말 잘 됐다. 이보다 더 제구가 잘 된 적은 없었다."라며 짤막한 소감을 밝혔다. 거기다 양키스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하며 월드 시리즈 MVP를 타는 영광도 얻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과거 라슨의 차 번호가 DL000이었는데, DL은 자신 이름의 머릿글자, 000은 노히트-노볼넷-노에러를 따서 지은 것이다. 현재도 이 번호인지는 불명.
상술했듯이 이 경기는 포스트시즌 최초의 퍼펙트 게임임과 동시에 최초의 노히트 노런이기도 하다. 포스트시즌에서의 2번째 퍼펙트 기록은 아직 없고 노히트는 2010년 로이 할러데이가 한 번 기록한 바 있다.

2.2. 퍼펙트 이후


1957년 시즌은 시즌 첫 경기에서 1.1이닝동안 4피안타를 맞으며 시작했다. 영 좋지 않다가 천천히 컨디션을 회복해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었지만, 7차전 선발로 등판해 2.1이닝만을 소화하고 강판당했다.
이후로도 영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1959년 시즌 후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되었다. 1961년 시즌 후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고, 여기선 불펜으로 보직을 바꿔서 괜찮은 성적을 냈다. 1964년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된 후 선발로 다시 보직을 옮겼으나 영 신통치 못했고, 결국 1968년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3. 사망


은퇴 이후 메이저리그 프런트, 술 공장을 전전하다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제지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2012년엔 손자의 대학비를 위해 자신이 퍼펙트 게임 당시 입었던 유니폼을 옥션에 올린 것이 확인되었다.
이후 식도암 투병을 했고 2020년 1월 1일 아이다호 주 헤이든에 위치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향년 90세

4. 기타


타격에 뛰어난 투수였다. 통산 타율이 .242에 14홈런. 심지어 선수 시절을 통틀어 대타로 66번(...) 들어섰다. 1956년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4이닝을 소화하고, 만루홈런을 쳐버려서 단숨에 4점을 뽑아낸 적이 있다.
뉴욕 시절 잘 놀았던 선수였다. 밤만 되면 팀 동료들과 바에 가서 술을 즐겼다고. 덕분에 붙은 별명이 "Gooney Bird". 알바트로스라는 뜻도 있지만 속어로는 날라리 정도 된다(...).
훗날 1999년 요기 베라 데이를 맞아 라슨이 시구, 베라가 시포를 맡았는데 이 날 양키스 선발투수 데이비드 콘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 그야말로 퍼펙트 게임의 사나이.

5. 관련 문서


[1] 노히트 노런까지 합치면 2010년에 로이 할러데이가 포스트 시즌에 처음 선발로 나섰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기록한 적이 있다.[2] 메이저리그에서 무려 34년만의 퍼펙트 게임, 그것도 월드 시리즈에서 해냈으니 그 가치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