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히트 노런
No-Hitter
1. 개요
투수가 상대팀에게 안타#s-3나 실점을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을 말한다. 미국과 한국/일본이 용어와 규정이 조금 다르다.
미국/WBSC - 노히터 - No-hitter (또는 No hit game)
- 투수(들)이 최소 9이닝을 던지고, 안타를 1개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것.[1]
- 단 한 명의 투수가 해당 경기의 모든 아웃카운트를 잡고(9이닝 이상) 경기를 승리로 마치면서, 상대팀이 그 경기에서 안타나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것.
- 한국/일본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면, 미국 기준으로도 노히터가 된다. 하지만, 그 역은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예: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
- 미국에서는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패전이 가능하지만[5] , 한국/일본에서는 노히트노런 패전은 불가능하다.
- 미국에서는 여러 투수가 노히터를 합작하더라도 기록으로 인정하지만, 한국/일본에서는 1회 노아웃 때 한 교체가 아닌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 한국/일본에서도 무안타로 막았지만 점수를 준 경우 '노히터'라고 부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정식으로 표현하면 '무 피안타 완투'가 되지만 정통 노히터 정의보다는 더 좁다.
참고로 경기 자체를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강우콜드 등의 이유로 9회 이전에 경기가 끝나면 인정되지 않는다. 실제로 박동희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6회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났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받지 못했고, 번외 기록으로 언급된다.
9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어도 0:0으로 연장으로 이어져서 10회에 안타를 맞는다거나 10회에 새로운 투수가 올라왔으면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았으나, 0:0 무승부로 끝나면 인정되지 않는다.[7]
물론 언론에서는 노히트 노런을 했다고 언급하고, 준-공인급 기록으로 인정해주는 사례도 있지만 그래도 '''안습.''' 심지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은 적이 있으나 결국 승리투수가 되지 못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MLB식으로 관대하게 팀 기록을 계산한대도 본인이 완투한 것이 아니므로 개인의 노히터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어차피 후속 투수가 안타를 얻어맞기도 했으니.
국제 대회에서는 미국의 정의를 따른다. 즉, 노히트 노런 개념 자체가 없으니 국가대표 기록에 노히트 노런이 있을 수 없다. 노히트 노런 시 노히터로써 인정. 승부치기도 노런 조건은 없으므로 영향이 없다.
2. KBO 리그에서
2017 시즌 종료 후 기준으로 정규 시즌 노히트 노런이 14개, 노히터[9] 가 15개 나왔다.
2.1. 공인된 노히트 노런
유승안은 처음으로 2회의 노히트 노런 때 배터리를 맞췄으며, 2개 팀 이상에서 기록한 것 역시 최초다. 강인권은 역대 2번째로 2회의 노히트 노런 때 배터리를 맞춘 포수가 되었는데 한 팀에서 2번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다. 양의지는 역대 3번째로 2회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으며, 한 팀에서 이것을 세운 기록은 2번째다.
구장별로는 무등, 잠실이 4회, 사직 3회, 대전, 무등 2회, 전주 1회 순으로 나오고 있다.
2.2. 비공인 노히트 노런
-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은 정규시즌 기록과 따로 취급한다.
- 강우콜드 노히트 노런
레코드북에서 따로 기록은 되어 있지만, 강우콜드이므로[20] 공식 기록에서는 제외된다.
- 합작 노히트 노런
KBO에서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인정하지 않지만 MLB에서는 인정한다. 2019년 현재까지 KBO 역사상 아래의 LG가 유일한 기록이다.[22]
2.3. 정규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경우
2004년 배영수는 한국시리즈에서 4차전에서 참으로 불운한 기록을 세웠다. 정규 이닝인 9이닝동안 상대팀을 노히트 노런으로 막았는데, '''자기 팀 역시 점수를 못내는 바람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지 못했다. 더욱이 배영수는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배영수는 연장 10회까지 노히트 노런으로 막고, 11회에 결국 교체 되었는데 0:0에서 내려 왔기에, 노히트 노런은커녕, 완봉승, 승리투수 그 어느것도 달성하지 못하고 ND를 기록했다. 단, '''한 경기 연속이닝 노히트 노런 기록'''으로는 유효하다.[25] 해당 경기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7회 2사 1, 2루의 득점 찬스 상황에서 김한수가 안타성 타구를 때려 냈는데, 상대팀 유격수 박진만의 호수비에 막히면서 찬스를 놓쳤다. 게다가 배영수의 퍼펙트를 깨뜨린 것도, 다름 아닌 박진만이 볼넷을 골라냈던 것이다.
경기는 결국 12회까지 득점 없이 0:0으로 끝났다.
2.4. 9회에 무산된 노히트 노런
1989년 8월 31일 빙그레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빙그레의 한희민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홍승규가 우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1993년 4월 11일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광주 경기에서 해태의 조계현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송구홍이 중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26][27]
1998년 5월 6일 한화 이글스와 현대 유니콘스의 인천 경기에서 현대의 위재영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 강석천을 볼넷으로 내보내고 이어 백재호에게 좌전 안타를 맞으며 무산되었다.
1999년 4월 17일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와의 광주 경기에서 해태의 박진철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에만 몸에 맞는 볼 2개에 패스트볼로 1, 3루 상황을 만들었고, 결국 박경완의 스퀴즈 번트로 실점하면서 무산되었다. KBO 리그 정규시즌에서 안타 없이 실점으로 노히트 노런이 무산된 유일한 사례이다.
2000년 7월 16일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수원 경기에서 현대의 김수경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헤수스 타바레스가 기습번트로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무산되었다.
2001년 8월 11일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대구 경기에서 삼성의 임창용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호세 에레라가 우전 안타를 쳐서 무산되었다.
2005년 7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광주 경기에서 롯데의 장원준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이종범[28] 의 1루수 앞 내야안타로 무산되었다. 당시 장원준 나이는 19세 11개월 26일로, 김원형의 최연소 노히트 노런을 경신할 수 있었다.
2006년 8월 11일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잠실 경기에서 데뷔 첫 선발 등판한 LG의 신재웅이 8회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9회 첫 타자인 신경현이 좌전 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
2008년 7월 4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이범석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박석민이 3루수 앞 내야안타를 치면서 무산되었다.[29][30]
2010년 6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의 문학 경기에서 SK의 김광현이 9회 2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최형우의 우전안타로 무산되었다.
2012년 9월 26일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대구 경기에서 KIA의 윤석민이 9회말까지 노히트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박한이의 안타로 노히트 노런은 무산되었다.[31]
2020년 6월 27일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인천 경기에서 LG의 정찬헌이 9회 1사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김경호에 안타를 허용하면서 기록이 무산되었다.
퍼펙트 게임을 이어오다가 9회에 안타로 무산된 사례는 1982년의 황규봉, 2007년의 다니엘 리오스가 있었다. 항목참조.
2.5. 이야깃거리
- 대한민국 야구역사에서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거둔 노히트 노런이다. 7이닝(13:0으로 승리하면서 콜드게임 선언)5사사구 1실책을 기록.
- KBO리그에서 최초의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운 투수는 1984년 대 삼미전에서 해태 타이거즈의 방수원. 그가 그 시즌 기록한 유일한 1승이 바로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이 경기 하나로 남기게 되었다.
- 1986년 김정행은 빙그레 이글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였다. 당시 상대팀 감독이었던 배성서 감독 말로는 사사구를 8개나 허용했다고 하는데, 당시 동아일보 기사나 KBO 레코드북에 따르면 사사구 4개만 허용했다고 나온다.
- 1988년 OB 베어스의 장호연은 첫 '개막전 노히트 노런'이자, '무탈삼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이날 경기에서 장호연은 볼넷 1개와 몸에 맞는 공 2개를 허용하고 28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 없이 범타로 잡았다. 투구수 99개로 역대 최소투구 노히트 노런도 이 경기에서 나왔다. 장호연은 평소 "공 세 개로 삼진잡는 것보다 공 하나로 맞춰 잡는 게 효과적인 투구다"라고 말하는 등 독특한 관념을 지녔다. 다른 투수가 이게 좋은 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던져서 좋은 성적을 못내니까 안하는 건데 이걸 실전에서 해낸 것이다.
- 1988년 이동석은 선동열을 상대로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2실책)을 기록하였다. 실책을 범한 선수는 장종훈과 강정길이었다. 7회와 8회에 유격수 장종훈이 1루수 강정길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졌는데 7회는 장종훈, 8회는 강정길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퍼펙트를 깬 장종훈을 탓할수도 없는게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것이다. 한편 이동석은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 이 날 노히트 노런을 떠올리면서 "해태 선발은 선동열이고 상대 선발은 나라고 그러니까 해태 타자들이 전날 맘놓고 술을 엄청나게 마셔서 그런 거다."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32]
-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현대 유니콘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4차전에서 정명원이 2024-12-13 10:55:54 기준 2019년 현재까지 한국시리즈 유일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35]
- 1997년 5월 23일 OB 베어스 對 한화 이글스의 대전 경기. 정민철의 노히트 노런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퍼펙트게임에 가까웠던 경기였다.[36] 그때 포수였던 강인권은 그 에러 때문에 한때 많이 까였다.
- 2000년 송진우는 김정행이 갖고 있던 최고령 노히트 노런을 2개월 차로 새로 경신했다. 송진우의 기록 희생양이 된 해태 타이거즈는 창단 이후 최초로 5월 18일에 광주 홈경기를 치뤘는데 하필이면 이날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을 당했다. 사족으로 한화는 다음 날 현대전에서 박경완에게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내주고 만다.[37] 또 해태는 7월 16일 현대 유니콘스의 선발 투수 김수경을 상대로 무안타로 꽁꽁 막혀있다가 하필, 9회말 2아웃 용병 타자 헤수스 타바레스가 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기록이 깨지는 일이 발생하였다.[38]
- 2008년 7월 4일 삼성 라이온즈 vs 기아 타이거즈의 대구 구장에서 이범석이 9회말 2아웃 까지 노히터를 이어가고 있었으나 9회말 2아웃에 김주형의 안일한 수비로 내야안타를 허용하며 기록이 깨져 완봉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연히 김주형은 모든 KIA 팬 커뮤니티에서 맹비난을 받았다.
- 2014년 6월 24일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찰리 쉬렉이 드디어 송진우 이후 14년만에 달성하였다. 외국인 투수 1호기록도 가져가되었다. 2014년은 타고투저가 심한 시즌이라서 노히트 노런의 의미가 커 보였다.
- 2014년 10월 6일 NC 다이노스와 잠실에서 맞붙은 LG 트윈스는 선발 투수 신정락이 7⅓이닝 동안 무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다 오른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여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왔고, 뒤이어 나온 유원상과 신재웅이 나머지 1⅔이닝을 무안타 무사사구 1실책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후 9회말 이진영의 끝내기 안타로 스코어 1:0 승리를 거두면서 KBO 최초로 팀 합작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약 석달 전에 찰리 쉬렉에게 당했던 복수를 톡톡히 한 셈이다.
- 참고로, 이미 이보다 11년 전인 2003년 3월 23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와 한화 이글스와의 시범경기에서 이상목-김정수-안영명-레닌 피코타가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지만, 시범경기이기 때문에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LG 트윈스가 거둔 팀 합작 노히트 노런이 KBO 최초의 팀 합작 노히트 노런 기록이다.
- 포수로서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경험한 KBO 출신 선수는 2016년 현재 세 명이다. 유승안(1984년 방수원, 1988년 이동석), 강인권(1997년 정민철, 2000년 송진우), 그리고 양의지(2015년 마야, 2016년 보우덴)가 그 주인공.[39]
- 외국인 투수 최초의 KBO 리그 노히트 노런 기록은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후로 16년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다가 2014년에 가서야 찰리 쉬렉에 의해 처음 작성되었다. 흥미롭게도 찰리 쉬렉 이후 나온 3번의 노히트 노런 기록도 모두 외국인 선수가 기록했다는 것. 반면 한국인 투수의 KBO 리그 기록은 2000년 송진우 이후 명맥이 끊겨있다.
- 외국인이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우면 롱런을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
- 외국인 1호 기록은 2014년의 찰리 쉬렉인데, 다음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 2015년 6월 웨이버 공시되었다. 욕설 논란을 일으킨적이 있다.
- 외국인 2호 기록은 2015년의 유네스키 마야인데, 기록을 세운 뒤 부진하더니 2015년 6월에 웨이버 공시되었다. 욕설 논란도 있었다.
- 외국인 3호 기록은 2016년의 마이클 보우덴인데, 남은 정규시즌에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그 해 탈삼진왕 타이틀까지 획득한다. 뿐만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3차전 MVP 에도 선정되는 등 큰 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일조했다. 그렇지만, 2017년 어깨충돌증후군으로 아파하면서 잦은 결장을 하더니 애매한 기록만 남기고 시즌 종료. 결국 국내리그와 결별했다.
- 외국인 4호 기록은 2019년의 덱 맥과이어인데, 카리대와 비교될 정도로 초반 부진을 겪다가 첫 승을 노히트노런으로 챙겼다. 초반 부진을 생각해보면 앞의 선수들과 마찬가지의 불명예가 예상되었고, 노히트 노런 기점으로 잠깐 반등하나 했으나 결국 부진과 부상으로 방출되었다.
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의 노히터
2020시즌 기준 최신 노히터 경기인 시카고 컵스의 알렉 밀스.
메이저리그의 No hitter, 한 팀의 투수'''들'''이 안타를 맞지 않고 경기를 종료하는 것.
안타 이외의 요인으로 인한 실점은 논외로 한다. 따라서 No-hitter를 작성하고도 질 수가 있다. 하단의 '노히터 패전' 항목 참조. 이런 차이로 인해서 켄 존슨의 노히터 패전은 대한민국에서는 노히트 노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일본에서는 여러 투수가 합작하여 노히트 노런를 기록하더라도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MLB에서는 합작 노히터도 인정된다. 2003년 6월 1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뉴욕 양키즈 경기에서의 로이 오스왈트, 피트 먼로, 커크 살루스, 브래드 릿지, 옥타비오 도텔, 빌리 와그너의 6명 합작 노히터를 기록한 바 있다. 그리고, 2012년 6월 8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에서 다시 6인 합작 노히터가 나왔고[40] 2019년 7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시애틀 매리너스를 상대로 2인 합작 노히터를 달성했다.[41] 퍼펙트 게임 NPB 항목을 보면, 2007 일본시리즈 5차전(시리즈 최종전)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의 야마이 다이스케와 이와세 히토키가 계투 퍼펙트를 기록했지만 공식기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고로 계투 퍼펙트게임은 일본에서는 비공식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스페인어를 쓰는 국가를 포함해 한국이나 일본을 제외한 다른 비영어권에서도 가끔 No Run, No Hit이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도 노히터≠노히트노런이었던 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해설자들도 마지막 아웃카운트 때엔 그냥 No-No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구 정통론자들은 No-Hitter를 여러 투수가 합작할 수 있음을 명시한 MLB의 정의를 신봉한다. 즉 합작 노히트 노런이나 합작 퍼펙트 게임은 물론, 포스트시즌 것도 기록하자는 말. 당연히 점수 먹은 것도 포함이다. 이러면 정명원, 신정락-유원상-신재웅 기록도 공인으로 승격된다.
사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0월 6일에 '''KBO 최초의 합작 노히터가 달성되었다.''' 아래 참조.
일단 노히터 하나 찍은 것만 해도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회자되기에 충분하다. 단, 그 뒤에 해당 선수가 뜨고 안뜨냐는 별개의 문제. 미국 야구에서는 데뷔 첫 해에 노히터(상대는 빅유닛 랜디 존슨!)를 기록했지만 그 뒤로는 오히려 내리막길을 걸은 前 콜로라도 로키스의 마무리투수였던 호세 히메네즈[42] 같은 사례도 있다. 아예 주니치 드래곤즈의 곤도 신이치 같이 데뷔전에서 노히트노런을 하고 나서 얼마 못 가 막장 테크를 탄 선수도 있다. 멀리 갈 거 없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방수원도 별 커리어를 남기지 못했고, 외국인 1-2호인 찰리 쉬렉과 유네스키 마야도 2015시즌 도중 짐을 싸야만 했다.
현재 MLB에서도 데뷔전 노히트 노런은 없다. 1953년 보보 홀로먼이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를 상대로 선발 첫 경기 노히트 노런을 성공했지만, 그것이 데뷔전 경기는 아니었다. 커리어 2번째 경기 노히트 노런을 한 선수가 두 명 있는데 한명은 1991년 당시 화이트삭스의 왼손투수 윌슨 알바레즈이고, 다른 한 명은 현역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클레이 벅홀츠이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노히터 상대팀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사실 A급 투수들 중에도 이걸 못 해 본 투수가 수두룩하다. 그 때문에 노히터 횟수가 곧 투수의 실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운빨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상대팀 타자들이 어지간하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그러나, 노히터를 던지려면 구위가 장난 아니게 강하거나(ex-저스틴 벌랜더, 랜디 존슨, 놀란 라이언) 타자들에게 분석이 덜 되어 비교적 생소한 신인급 투수, 혹은 리그를 갓 옮긴 투수여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에 노히터를 던지는 투수들을 최근에 보면 대체로 강력한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는 선수들이 많다.(댈러스 브레이든과 마크 벌리의 6K 퍼펙트 게임은 논외로 한다. 김형준 기자의 칼럼에 따르면 퍼펙트게임은 강력한 수비진을 등에 업고 제구력과 노련함도 갖춰야 한다고 한다. ) 전체적으로 보면 위에 예로 든 벅홀츠처럼 루키로서 타자들에게는 아직 낯설었던 투수들이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로이 할러데이도 AL 동부에서 뛸 적엔 커리어 두번째 선발경기에서 9회 2사까지 노히트 행진을 가다 솔로홈런 맞고 1안타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이후엔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AL 동부를 탈출하여 NL 동부로 가자 MLB 역사상 20번째 퍼펙트게임을 달성했고 볼넷 하나 내준 포스트시즌 노히터도 달성했다.
만약 선발투수가 4, 5회 이상 노히트/퍼펙션을 하고 있는 경우, 아무도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43] 는 야구의 암묵적인 룰이 있다. 게다가 투수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서 정신에 혼란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44] 아마 노히트 노런을 '''언급했다 하면 바로 그 타이밍에 투수가 안타를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45][46] 그러니 아무래도 투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정확히는 안타를 맞은 기억만이 남아있는 탓일테지만...
합작 노히트 노런으로 남은 경기중엔 이런 경기도 있다. 1917년 6월 23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워싱턴 세너터스와의 경기에서 베이브 루스가 선발투수로 나왔는데, 잘 알려진 대로 성격이 불같았던 베이브 루스가 등판하자마자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는데 볼판정에 화가 나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해버렸다. 그래서 루스는 타자 한명만 내보내고 어니 쇼라는 구원 투수가 나왔다. 어니 쇼가 마운드에 올라온 뒤, 루스가 내보낸 주자가 2루 도루실패로 잡히고 나서 어니 쇼는 나머지 26명의 타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고 9회를 마쳤다. 심정적으로 볼땐 '''어니 쇼가 퍼펙트 게임'''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규정상 이 경기는 루스, 어니 쇼의 합작 노히터로 처리되었다.
현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팀들 중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유일하게 아직까지 노히터를 기록하지 않은 팀으로 남아있다. 뉴욕 메츠도 포함 되었으나 2012년 6월 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홈경기에서 요한 산타나가 구단 사상 첫 노히터를 기록하면서 파드리스가 유일하게 '''노히터를 기록하지 못한 유일한 팀'''으로 남아있다[47] .
2011년 7월 27일 LA 에인절스-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게임에서 MLB 사상 272번째 노히터가 나왔는데, 주인공은 어빈 산타나. 노히트노런이 아니다! 1회말에 폭투로 1실점을 내주었지만, 타자들이 3점을 뽑아내 주면서 3-1로 노히터 승리를 기록했다.
2018년 4월 21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션 머나야가 당시 17승 2패로 펄펄 날던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노히트를 달성하며 야구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 경기로 '''역대 노히트 당한 팀 중 최고 승률 팀'''이라는 굴욕적인 기록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2019년 5월 7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마이크 파이어스가 신시내티 레즈와의 인터리그 홈경기에서 노히트를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300번째 노히트의 주인공이 되었다.또한 저스틴 벌랜더,맥스 슈어저, 제이크 아리에타,호머 베일리에 이어 현역 투수 중 노히트 두번을 기록한 투수가 됐다.
2019년 9월 1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랜더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전 원정경기에서 개인 통산 세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벌랜더는 8년전인 2011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시절에도 토론토 원정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적이 있었기에 이 경기로 '''메이저리그 최초로 단일구장 원정에서 노히트 노런을 두번 달성한 투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3.1. 노히터 패전
MLB 에서는 노히터 기준에 이닝만 존재하지 실점과 승패에 대한 조건이 없다. 그래서, 노히터 패전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존재한다. 상대팀은 안타1개도 없이 승리한 것이므로 무안타 승리가 된다. 대표적으로 1964년 휴스턴의 켄 존슨은 신시내티를 상대로 '''1실점 노히터'''를 기록하고도 팀의 무득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자세한 건 무안타 승리 항목 참고.
3.2. 노히터 무승부
2015년 3월 9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시범경기에서 2-2 '''팀 노히터 무승부'''를 기록했다. 애틀랜타는 총 9명의 투수가 합작하여 '''팀 노히터'''를 만들어 냈다. MLB 는 원칙적으로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지만, 이 경기는 '''시범경기'''였기에 10회 무승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관련기사
4. 일본프로야구의 노히트 노런
일본프로야구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무안타 무득점 시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2020년 8월 15일까지를 기준으로 15회의 퍼펙트 게임을 포함하여 총 93회의 노히트 노런이 기록되었으며, 달성자는 82명이다. 공식 홈페이지의 달성 기록 페이지에는 공인 노히트 노런뿐만 아니라 합작 노히트 노런, 포스트시즌 노히트 노런, 노히트 노런 도중 콜드게임으로 중단된 사례 등도 적어 놓고 있다.
4.1. 공인된 노히트 노런
- 나무위키 문서명이 외래어 표기법을 지킨 것과 지키지 않은 것이 섞여 있으므로 통일성을 위해 인명은 전부 국립국어원 표기에 준하여 표기함.
- 비고에 표기된것 처럼 퍼펙트 게임인 경우를 포함한다.
4.2. 비공인 노히트 노런
- 합작 노히트 노런
- 올스타전 노히트 노런
- 포스트시즌 노히터 완투완봉
위에 하나도 해당 안 되지만 포스트시즌이라 비공인 처리된 기록이다.
- 선발투수가 9이닝까지 노히트 노런을 했으나 연장에서 무산된 경우
특히 니시구치 후미야의 퍼펙트 게임 실패는 당시 일본 전역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고, 당연히 다음날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은 온통 니시구치 소식으로 장식되었다. 게다가 니시구치는 이 이전에도 9회 2사까지 1사사구 노히트 노런을 이어가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못 잡고 아깝게 안타를 맞아 노히트 노런이 깨진 기억이 무려 '''두 번'''(2002년 8월 26일, 2005년 5월 13일)이나 있었다. 본인에게도 한으로 남았는지 은퇴 인터뷰에서도 끝내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직접 언급했다. 장장 10년이 넘게 지난 2017년에 LA 다저스의 리치 힐이 아깝게 퍼펙트 게임을 놓친 소식이 일본에 전해졌을 때도 당시를 기억하는 수많은 세이부빠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카더라.
- 점수를 허용한 노히터 경기
5. 대만프로야구의 노히트 노런
2019년까지를 기준으로 통산 10번의 노히트 노런이 있었다. 2020년 6월 현재를 기준으로 가장 최근의 노히트노런은 2018년 10월 7일, 퉁이 라이온즈의 라이언 버두고가 중신 브라더스를 상대로 기록한 퍼펙트 게임.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닉 애디튼도 2018시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바 있다.
6. 아마추어 야구
리틀야구(13세 이하) 한국대표팀의 '유윤재' 선수가 2017년 7월 7일 아시아-퍼시픽 중동 지역예선 결승에서 일본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리틀야구이기에 7이닝 노히트노런. 6회에 기록한 1개의 볼넷이 없었다면 퍼펙트 게임이 되었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투구였다. 관련기사
7. 관련 이야깃거리
- 스티브 달코스키[56] 라는 마이너리그 투수가 있었는데, 18개의 볼넷을 주고 노히터를 기록했다. 어떤 의미로는 퍼펙트 게임보다 진기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볼넷을 18개 허용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구수로 무피안타 완투했다는 얘기다. 이 경기에서 달코스키는 18개의 삼진을 기록했으니 투구수는 최소 129개 이상이라는 이야기. 이 129라는 숫자는 모든 삼진이 삼구삼진(54개), 모든 볼넷이 스트레이트 볼넷(72개), 남는 9개의 아웃카운트는 초구 삼중살 3번으로 처리했을 경우에나 가능한 투구수니까 실제로는 200구를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때 그 노히트 게임은 고교야구 경기였기 때문에 투수가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혼자 던지다보니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 선수는 마이너리그 선수생활을 하면서는 7이닝 20K-18BB가 평균이었다고 한다.
- 2013년 9월 29일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선 마이애미의 투수 엔더슨 알바레스(Henderson Alvarez)가 조금 특별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9회초까지 알바레스가 1볼넷 1사사구에 5회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킬 뿐 노히터를 이어나가고 있었는데, 팀 타선도 8회말까지 점수를 내지 못해서 스코어 0-0. 잘못하다간 1995년 페드로 마르티네즈[57] 처럼 연장에서 기록이 깨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지만, 9회말 2사 만루에서 상대 투수 루크 풋코넨의 폭투로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당시 알바레스는 다음 타순을 준비하려고 대기 타석에 있었는데[58] 경기가 끝나고 그자리에서 팀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다.
- 1999년에 발간된 한국야구사에 따르면 한국야구사 최초의 노히트 노런은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기록한 것이 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13:0이라는 스코어가 말해주듯 7회 콜드게임이 선언되었지만, 7이닝 5사사구 1실책으로 6명의 주자를 내보냈고 그중 5개의 도루를 허용했으나 단 한 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고 한다.
- 일본프로야구의 2군 첫 노히트노런 기록은 퍼펙트 게임이다. 그러나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 야마자키 마사유키는 이후 타자로 전향하여 그리 특출나지 않은 성적을 거두다 트레이드되어 프로 입단 6년만에 조기 은퇴했다.
- 애니메이션 메이저의 3기 21화에서는 '노히트 노런'관련 오류가 하나 나오는데, 시게노 고로가 안타를 맞고 "노히트 노런이 깨졌잖아!" 라며 좌절한다. 그런데 그 상황은 1회말에 볼넷과 실책으로 이미 실점을 준 상황이었다. 메이저 제작진은 이 외에 보크 상황을 그려놓는[59] 등의 오류를 저질렀다.
- 이렇게 힘들고 운도 따라줘야 하는 노히트 노런이지만, 세계 야구사에 딱 한 명 노히트 노런을 2경기 연속으로 해낸 투수가 있다. 신시내티 레즈의 데뷔 2년차 투수였던 자니 반더 미어는 1938년 6월 11일 보스턴 비즈와의 경기에서 노히터를 거둔 후 바로 다음 경기인 6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또 한번 노히터를 기록했다. 당연히 그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록이며, 후에 놀란 라이언이 노히트 노런을 거두고 바로 다음 경기에서 8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간 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 한국시각 2018년 7월 30일 월요일 LA 다저스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 션 뉴컴이 8.2이닝동안 134구를 던지며 야시엘 푸이그에게 볼넷 1개만 내주며 노히터에 근접했으나 후속타자 크리스 테일러에게 3루쪽 안타를 맞고 노히터가 깨지고 강판당했다. 이 노히트에 성공했다면 선트러스트 파크 개장 이후 최초의 노히터가 될 수 있었는데, 아웃카운트 1개만 남겨놓고 기록이 깨진 것이 무척 아쉬운 부분. 심지어 후속투수가 분식회계를 하는 바람에 1실점까지 뒤집어썼다. 그래도 승리 투수가 되는 데에는 성공.[60]
8. 관련 문서
[1] 다시 말해 원정팀의 9회초에 뒤쳐져 있는 채로 끝난다면, 홈팀 투수가 아무리 무안타로 막아도 이닝이 8개이므로 노히터가 아니다.[2] 누적된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 실책, 도루 등으로 인해 실점한 경우.[3] 즉, 노히트노런이 노히터 보다 더 강화된 조건이다.[4] 만약 선발투수가 1회 선두타자에게 4사구로 출루를 허용한 후 강판되고, 바뀐 투수가 무안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면 해당 투수는 공식 노히트 노런을 인정받으나, 아직 이런 케이스는 없다. 그러나 완봉에는 1998년 유사 사례가 있는데, 선발투수 김상진이 1회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강판된 후, 두번째로 올라온 진필중이 실점 없이 혼자 경기를 마무리 지어 완봉승을 달성한 사례가 있다.[5] 원정팀은 이럴 가능성이 낮다. 원정팀이 노히터 인정 경기를 하면서 지는 건 연장전을 안 가는 이상 불가하다.[6] 1회 노아웃 교체는 예외.[7] 메이저리그와 같이 무승부를 인정하지 않고 무한 연장전을 진행한다면 '노히터 무승부'는 나올 수 없다. 연장전에서 비오면? 그래도 안 끝낸다. 참고로,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에서는 '3인 합작 노히트노런 무승부'라는 기록이 나온 적은 있다.[8] 맥과이어는 '''KBO 첫 승'''이 이 노히트 노런이었다. 심지어 그 전까지 등판하는 경기마다 계속 형편없는 피칭을 보인 탓에 '''맥리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붙으며 퇴출 1순위로 지목받던 상황에서 세운 기록이라 본인에게는 의미가 아주 클 것이다. 그러나 이 경기 이후에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고 결국 8월 8일 팀에서 웨이버 공시 되었다.[9] 경기가 끝났을 때 투수진 총합이 9이닝 이상이어야 하고 피안타가 0이어야 한다. 실점과 경기 결과는 상관 없다.[10]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원래는 선발이 아니었는데 그날 선발이 펑크나서 갑자기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11]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하다 왔다.[12] 이 기록도 KBO에서 유일하다.[13] 이 경기의 선발은 원래 김진욱이었는데, 훈련 중 김광림의 타구에 급소를 맞고 선발 투수가 교체되었다. 출처[14] 2개는 볼넷, 1개는 몸에 맞혔다. 2개의 병살타로 28타석만에 노히트 노런.[15] 7회와 8회에 유격수 장종훈이 1루수 강정길에게 던진 공이 뒤로 빠졌는데 7회는 장종훈, 8회는 강정길의 실책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퍼펙트를 깬 장종훈을 탓할수도 없는게 당시 유일한 득점이 장종훈이 3루타 치고 나가서 견제구 미스로 득점한 것이다. 이때 상대팀 투수는 선동열이었고 그 한점만을 내주며 11탈삼진 완투를 하였다.[16] 퍼펙트 게임이 나오지 않은 현재까지 퍼펙트 게임에 가장 가까웠던 게임으로 여겨진다.[17] 비공인 기록까지 확대해도 좌투수는 합작 노히트 당시 ⅓이닝을 던진 신재웅 이외에는 없다.[18] 그날 타구장에서 에릭 테임즈가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 했는데 하루에 노히트 노런과 히트 포 더 사이클이 같이 나온것은 최초이며 둘다 외국인 2호다.[19] 김형남 8이닝, 장광호 1이닝.[20] 조건인 9이닝을 만족하지 못한다.[21] 기사를 보면 16타자를 상대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병살이나 견제사 등이 나왔을 경우 5⅓이닝까지, 아니면 5이닝을 소화했을 것이다.[22] LG는 2015년 4월 4일 잠실 삼성전에서도 합작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뻔했으나 9회초 1사에서 최형우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말았다. 최형우는 이미 2010년 6월 10일 인천 SK전에서 김광현의 노히트 노런을 9회초 2사에서 깬 적이 있었다.[23] 8회 초에 중지 손톱이 들리는 부상을 당해 자진 강판했다.[24] 최경철 8이닝, 현재윤 1이닝(실책 범함).[25] 연속이닝 노히트 기록은 2016년 마이클 보우덴의 14이닝이며, 종전이자 배영수가 10이닝 노히트를 기록할 당시의 최고기록은 1987년 김진욱의 13이닝이었다.[26] 그리고 조계현은 15년 후에 삼성 투수코치로서 친정팀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9회 2사에서 깨지는 순간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직관하였다.[27] 이후 송구홍은 1997년 9월 10일 잠실경기에서도 연장 14회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역전 끝내기안타를 때려냈다. 그리고 조계현과 송구홍은 2012 시즌에 LG 트윈스에서 각각 1군 수석코치와 주루코치로서 조우하게 되었다.[28] 공교롭게도 이종범은 이범석의 노히트 노런이 깨지는 순간에 1루수였다.[29] 사실 9회말 박석민 타석 전에 양준혁의 땅볼 타구 처리 과정에서 이미 노히트 노런은 깨졌다. 1루에서 약간의 차이로 세이프가 되어야 하는데 아웃선언이 나온 것. 승패는 KIA쪽으로 확실히 넘어간 상황이고, 비디오 판독 제도도 없던 시절이라 양팀 모두 그것에 대해선 아무말 없이 넘어갔다. 팬들도 그땐 발이 더 빨랐던 것을 몰랐다. 박석민은 3루 쪽 깊은 타구를 날리고 1루까지 열심히 뛰어갔다. 3루수 김주형이 잡아서 스텝을 한발 밟고 던졌는데 약간의 차이로 세이프가 되었다. 딱히 김주형의 포구와 송구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닌데(2루타성 타구를 단타로 막았기 때문에) 막상 세이프가 되자 수년간 가끔씩 이 일을 이유로 욕을 먹었고,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 위기 상황에서의 악송구로 더 까였다. 차라리 송구가 빠졌으면 실책으로 기록되어서 노히트 노런 기회를 살릴 수 있지 않았냐는 말도 나왔다.[30] 공교롭게도 당시 삼성 벤치에는 이미 9회 2사 후에 노히트 노런이 깨지는 경험을15년 전에 이미 해 본 조계현이 삼성 투수코치로서 앉아 있었다. 더군다나 삼성이 3루쪽 덕아웃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 장면이 조계현의 두 눈에 너무나 생생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31] 박한이는 바로 전날 김진우의 완봉승을 희생플라이로 저지한 바 있다.[32] 당시 기준으로 이동석은 전해 데뷔 시즌에 1승에 6.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을 뿐인 2년차 투수였고, 뿐만 아니라 군산상고 출신임에도 고향팀인 해태의 지명을 받지 못해 빙그레로 입단했기 때문에 해태 선수들에게 얕보였을 가능성은 있다.[33] NC 다이노스에 있는 그 이태일과는 동명이인이다.[34] 다만, 완봉승은 챙겼다.(...)[35] 기타 기록으로는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 배영수가 10이닝 노히트 노런을 달성 했었으나... 강판 되었고 결국, 후속 투수가 안타를 맞으며, 당일 날의 경기는 물빠따 경기로 무승부로 끝났다(...) 공식인정도 되지 않는 것에 심히 안습으로 만들고 말았다.[36] 8회초 1아웃 2스트라이크1볼에서 헛스윙한 공을 포수가 포구에 실패하며 나온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 한 개가 유일한 피출루였다. 참고로 당시 타자는 심정수. 심정수에게 1루 베이스를 밟을 때의 소감을 인터뷰하니 '똥밟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37] 결국, 한화는 17년 뒤 수원 구장에 어떤 팀을 상대로 팀 내 최고 타자가 똑같히 재현을 했다. 물론 홈런 쳤던 그 팀과 맞은 팀은 같은 팀이 아니였을 뿐[38] 해태가 만약 당했다면 한 시즌에 2번을 당한 유일한 팀으로 보여줄 뻔 했다. 결국에는 현대/해태를 제외한 전 구단에 욕을 먹고 말았다(...)[39] 재밌는 점은 세 명 다 각각 인연이 있다. 유승안과 양의지는 양의지가 경찰청에서 군복무하던 시절 만나 양의지의 포텐을 터뜨리는데 유 감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고, 강인권과 양의지는 강인권이 두산 배터리코치를 맡던 시절 코치-선수 관계를 유지했다. 유승안과 강인권 역시 한화 시절 유승안이 코치, 강인권이 선수였다. 유승안은 해태와 빙그레에서, 강인권은 한화에서만 노히터를 경험했고, 양의지는 두산에서만 경험해 노히터를 기록한 시점에서의 소속팀은 각기 다르다.[40] 선발 케빈 밀우드가 6회 동안, 이어 등판한 찰리 퍼부시가 2/3이닝 동안, 뒤를 이어 스티븐 프라이어가 1/3이닝, 그 뒤를 이어 루카스 륏기가 1/3이닝, 다음에는 브랜든 리그가 2/3이닝, 마지막으로 톰 윌헴센이 1이닝을 노히터로 마무리.[41] 오프너 테일러 콜이 2이닝 퍼펙트, 펠릭스 페냐가 7이닝 1볼넷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게다가 하필 이 날이 7월 1일 세상을 떠난 타일러 스캑스 메모리얼 데이다 보니 모두 스캑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어 더욱 감동이 컸다.[42] 실질적인 데뷔 시즌인 1999년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선발투수로 달성했다.[43] 해설자들도 웬만큼 분위기가 무르익는 7, 8회가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되도록이면 언급을 피하려 하며, 설령 언급을 하더라도 살짝 지나가는 말로나 하지, 대놓고 분석을 하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말 한 번 했다가 안타를 쳐맞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44]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야구 영화 <for love of the game>에서 이것이 잘 보인다. [45] 2011년 5월 18일 삼성 카도쿠라 켄은 대구 넥센전에서 5회까지 노히트를 이어갔지만 이기호 캐스터가 노히트노런을 들먹이자마자 첫 안타를 얻어맞았다. 2011년 7월 10일 기아와 LG의 경기에서는 로페즈가 6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경기를 틀어막고 있었는데 양준혁 해설위원이 노히트노런을 언급하자마자 이병규에게 안타를 허용하였다.. [46] 이외에 천조국의 야구게임인 MLB 2K11이 발매 초기에 퍼펙트 게임 달성 이벤트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이 게임에서도 해설자가 5회~6회 쯤에 노히터에 대한 언급을 한다. 'I would never say anything about the no-hitter.'라고(...)이 말이 나오자마자 안타를 얻어맞았다고 치를 떠는 게임 유저들의 후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47] 다만 메츠는 아직까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가 없다.[48] 1937년 창단, 1943년 해체한 구단이며 해체 당시의 팀명은 야마토군이었다.[49] 1936년 창단한 구단으로 1940년 나고야 긴코군과 합병. 이후 1945년 이 팀의 주전선수였던 요코자와 사부로가 세너터스의 부흥이란 명목 하에 동명의 구단을 만드는데, 이 구단이 지금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다.[50] 1936년 창단, 1952년 해체한 구단이며 해체 당시의 팀명은 쇼치쿠 로빈스.[51] 도쿄 세네터스와 별개의 팀.[52] 1950년 단 한 해간 존재했던 야구 구단. 시즌 후 니시테쓰 클리퍼스(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합병.[53]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된 선수 중 한 명이다.[54] 미국의 경우 합작 퍼펙트도 공인 퍼펙트다.[55] 사실 11건 쓰여 있으나 1949년 10월 1일 경기는 선발투수가 8이닝까지 막은 경우라 제외함.[56] 마이너에서 빅리그로 올라오지 못했지만, 평균구속 160km/h, 최고구속 170km/h의 도시전설을 남긴 좌완투수다. 민훈기가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공이 너무 빨라서 공을 받는 포수의 미트가 찢어졌다고 한다.[57] 단, 이쪽은 연장 전까지 퍼펙트 게임이었다.[58] 어차피 9회말에 타석에 들어설 일은 없긴 했다. 2사 만루였으니 득점이면 끝내기 승리, 아웃이면 연장이었기 때문이다.[59] 고의사구시에 포수는 미리 캐처박스를 나가 있으면 보크가 되나, 고의사구장면에서 포수가 캐처박스를 나가 있는 것처럼 그렸다. 그리고 심판은 보크 판정을 안 한다.[60] 2016년 맷 무어도 이런 식으로 8.2이닝에 노히트가 깨진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에도 상대는 공교롭게도 다저스였다.